
애초에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에서 서사나 드라마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의 톡톡 튀는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명랑함과 재기발랄한 말들, 억지논리, 묘하게 낙관적인 세계관 등등 만으로도 이사카 코타로의 책이 소장의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서사나 드라마가 있다손쳐도 등장인물들은 그 황당한 행동들과 유쾌한 생각들에 다 묻혀버리는 것도 큰 이유일 게다.
피곤해서 활자들이 눈에 하나도 안들어올 때, 마음이 바빠서 마음이 바쁜 사람들의 이야기가 버거울 때, 그런 때 읽으려고 하나씩 둘씩 쟁여 놓았던 이사카 코타로의 책은, 그것 자체가 존재의미이다.
모르겠다.
이 정도의 존재가치에 대해 이사카 코타로가 괜찮타 해주려는지.
간혹 뭔가 김빠진 콜라 먹는 듯한 느낌이 들고, 바람빠져 버린 축구공 굴리는 느낌이 나더라도, 얘는 원래부터 김빠진 콜라였고 바람빠진 공이었다고, 그게 존재의 가치였다고 생각하며 곁에 두고 있는 묘한 작가가 이사카 코타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옴니버스식 작품들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김빠진 콜라와 바람빠진 공에도 나름의 서사와 드라마가 있었나 보다.
<중력 삐에로> 이후 영 시원찮은 느낌이었는데, 이 책에 와서 좀 탄력받은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장편이어서 그런가 하는 섣부른 일반화까지도 가능하겠다.
괜시리 기대도 않던 서사,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어쨌든, 맘껏 웃었으니 됐다.
입에 음식물을 잔뜩 엏고 있다가도 푸흡! 하고 웃었고,
화장실에서 열심히 힘주다가도 푸흡! 하고 웃고 말았고,
자율학습 시키면서 감독하다가도 푸흡!하고 소리내서 웃고 말았으니,
정말로 이것으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