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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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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였나.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작은 바닷가 아멧에서의 일이다. 바닷가를 향해 가파르게 경사진 오두막 숙소에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수영장이 있었다. 경사진 탓에 수영장 끝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보름달이 뜬 밤이면 수영장에 둥둥 떠서 바다 멀리 떠 있는 달빛을 넋 놓고 바라만 봐도 좋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수영을 하지 못했던 나는 달빛을 받으며 유영을 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바로 옆 작은 식당 마루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채식주의자인 백인 여자들이 소곤거리며 달빛에 취해 있었고, 나와 내 짝꿍도 말없이 달빛을 받고 있었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노래들이 음표가 되어 날아다니던 밤이었다. 그 밤, 나도 수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달빛을 받으며 유유히 떠다니고 싶다고.

게으른 나는 아직도 수영을 못하지만, 달빛을 받으며 유영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간혹 몸으로 느끼곤 한다. 요며칠 나는 계속 떠다녔다. 달빛이 나리는 싱그런 초목 울창한 숲에서 멀리 생명의 숨소리를 느끼며 조용히 물을 떠다녔다.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문장들은 깊고 조용한 물 같았다. 단문들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감에 떠밀리기보다는 유유히 흘러갔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안남은 그런 곳이었다. 비오던 밤, 멀리 철썩이는 바닷소리를 들으며, 나뭇잎새로 만든 지붕위로 후두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도마뱀이 눈을 빛내고 도망을 치던 베트남 무이네의 바다처럼 말이다.
내리 두 번을 읽고 세 번을 읽으며 마음껏 헤엄을 치고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김화영 교수의 후기를 보았는데,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망망대해와 건너지를 수 없는 침묵의 공간이 깊고 넓어진다’(154) 는 설명이 있어 다시 한번 놀랐다.

바타유의 글이 흐르고 있는 곳들 깊숙이에는 종교에 대한 물음이 있다. 끊어지지 않는 근원적인 물음에 호기롭게 직진하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나에게 종교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끊임없이 도망쳐 다녔던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적인 행위와 발현들을 속이 빈 허위의식이라 생각하면서도 종교 그 자체는 도무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과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온갖 신앙들을 볼 때마다 역겨워하면서도 그 존재의 자연스러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개하고 축복받지 못한 베트남을 개명시키기 위해 떠났던 선교사들이 항구를 떠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을 버려야 했다. 배를 버리고 성직자의 예복을 버리며 깊은 숲으로 들어가 베트남인들과 함께 땅을 갈고 살았다. 기도를 가르치고 복음서를 가르쳐도 무언가 변하는 것은 없어 보였다. 끝내 카트린 수녀는 물었다.
“도미니크, 우리는 진정으로 바딘의 농사꾼들을 개종시킨 것일까요?”
“나도 오랫동안 그 생각을 해봤어요, 카트린. 그들은 우리가 들에서 하는 일과 당신의 미소 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들이 과연 하느님만을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102)
오히려 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었다. 도미니크와 카트린.
‘두 사람은 단순하고 자유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의 영혼은 헐벗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군더더기 없는 핵심만이 남았다.’(124)
그리하여 결국 ‘오직 시편들과 기쁨만’이 남았다.(126)
우기가 시작되고 지붕의 흙더미가 비를 타고 툭툭 떨어지는 어두운 날들이 계속되자, 그들은 그것이 종교임을 깨달았다. 세계에 대한 순수한 기쁨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서로를 향한  열정. 그것이 곧 종교 아닌가.

하하. 눈물이 난다. 그것이 곧 종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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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내한했을 때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공연했던 부분 중 일부이다.
다음에 꼭 또 오겠다고 약속하고 갔는데, 정말 오려나.
이번에 오면 꼭 보러 갈텐데.

라이브 앞부분엔 당시 게스트로 오프닝 무대에 섰던 이지형에게 감사의 말을 보내며,
이지형의 노래 Nobody likes me 를 한 소절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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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에서 서사나 드라마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의 톡톡 튀는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명랑함과 재기발랄한 말들, 억지논리, 묘하게 낙관적인 세계관 등등 만으로도 이사카 코타로의 책이 소장의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서사나 드라마가 있다손쳐도 등장인물들은 그 황당한 행동들과 유쾌한 생각들에 다 묻혀버리는 것도 큰 이유일 게다.
피곤해서 활자들이 눈에 하나도 안들어올 때, 마음이 바빠서 마음이 바쁜 사람들의 이야기가 버거울 때, 그런 때 읽으려고 하나씩 둘씩 쟁여 놓았던 이사카 코타로의 책은, 그것 자체가 존재의미이다.
모르겠다.
이 정도의 존재가치에 대해 이사카 코타로가 괜찮타 해주려는지.
간혹 뭔가 김빠진 콜라 먹는 듯한 느낌이 들고, 바람빠져 버린 축구공 굴리는 느낌이 나더라도, 얘는 원래부터 김빠진 콜라였고 바람빠진 공이었다고, 그게 존재의 가치였다고 생각하며 곁에 두고 있는 묘한 작가가 이사카 코타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옴니버스식 작품들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김빠진 콜라와 바람빠진 공에도 나름의 서사와 드라마가 있었나 보다.
<중력 삐에로> 이후 영 시원찮은 느낌이었는데, 이 책에 와서 좀 탄력받은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장편이어서 그런가 하는 섣부른 일반화까지도 가능하겠다.

괜시리 기대도 않던 서사,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어쨌든, 맘껏 웃었으니 됐다.
입에 음식물을 잔뜩 엏고 있다가도 푸흡! 하고 웃었고,
화장실에서 열심히 힘주다가도 푸흡! 하고 웃고 말았고,
자율학습 시키면서 감독하다가도 푸흡!하고 소리내서 웃고 말았으니,
정말로 이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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