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이 아니라 판타지 소설이라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가정사정 때문에 잠시 살게 된 이모네 집은, 두개의 탑이 우뚝 솟은 서양식 저택이다.
유머러스하고 자상하며 멋진 이모부, 아름답지만 병약한 사촌 동생이 있고
푸근한 서양 할머니와 꼼꼼한 동양 할머니가 쌍둥이처럼 살고 있다.
게다가 한때는 동물원이었던 넓은 정원에는 아직도 작은 하마가 살고 있다.
병약한 사촌동생은 하마를 타고 학교를 가고, 할머니의 생신에는 특급 호텔의 요리사들이 집으로 불려와 만찬을 준비한다.
크리스마스엔 진짜 전나무가 거실을 장식하는 이 추억담은, 추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동화이다.
이게 일본의 70년대 맞나 하는 의구심, 많이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 일찌감치 머리 속에서 다 쫒아 버렸다.
누구든 어느 정도는 그러지 않겠는가.
노스탤지어라는 단어가 눈에 보이는 색깔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빛깔로 추억에 색을 입히고 있을 테니까.

이 책은 그 색깔을 오가와 요코의 글 뿐만 아니라 테라다 준조의 일러스트로 보여준다.
아니, 오히려 오가와 요코의 글보다도 테라다 준조의 그림이 더 강력했다.
미나의 성냥갑이 아련한 빛깔의 일러스트로 나타났을 때
아.. 하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연애하던 시절에, 이곳저곳 카페를 다니면서 성냥갑을 모았더랬다.
일러스트는 고사하고 멋진 글귀하나 없는 촌스런 성냥갑이 다반사였지만,
안에 들은 성냥을 모두 털어 버리고, 그 안쪽 상자를 펴서 사랑의 이야기를 적었다.
그렇게 적었던 연애편지 성냥갑들을 남편 주머니에 넣어 주었었는데,
결혼할 때 보니 큼지막한 상자에 가득 모아두었더라.
성냥갑을 열면 작고 삐뚤삐뚤 써진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오늘 밤, 다시 그 상자를 열어 봐야겠다.
미나의 침대 밑에서 상자를 열고 성냥갑에 써진 이야기를 읽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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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전야의 혼란스럽고 격렬했던 일본.
수많은 번들이 합종연횡하며, 무엇이 정의인지 알수 없이 떠밀려가던 시절.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 되는 진흙탕 싸움 가운데, 한 사무라이가 있었다.
다른 역사를 살아온 나조차도 그들의 무사도가 어떤 무게를 갖는지 어림짐작할 만큼 무거운 시절을 살던 남자였다.
거대한 역사는 온갖 허위의식을 낳고,
정의는 유사 정의감을 꾸역꾸역 만들어내,
드디어는 정의가 정의롭지 못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가 정의라고 생각했던 것들, '단지 내 식구 배곯지 않고 단란하게 살 수 있도록.'은 어디에도 발을 붙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평범한 사람이었는데도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고,
가장 올바른 사람이었는데도 가장 불경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방금 그가 너른 방을 피투성이로 굴러다니며 배를 가르고 눈을 찔렀는데.
아, 더이상 못 읽겠다.
슬프고 슬프면서도 씁쓸한 이유는,
그것이 일본의 어느 시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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