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건 거짓말을 즐기기 위해서잖아."(71) 라고, 이즈미가 말했다.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버려서 뭐라 대꾸해야 하나 당황했다. 이즈미의 말에 이즈미의 멋진 아버지는 그냥 시덥잖다는 듯 넘겨버렸지만, 사실은 그 아버지도 뜨끔했을 거다. 아니, 작가 이사카 코타로도 뜨끔했을 거다. 그렇다. 이사카 코타로의 글을 읽는 건 거짓말을 즐기기 위해서다. 현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와 있을 수 없는 인물과 있을 수 없는 대화들의 향연. 그게 이사카 코타로의 글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단편으로 그의 글을 만났을 땐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게 맞아 보였다. 그래서 유쾌한 기분으로 낄낄거렸고 상쾌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딱 그 정도였다. <중력 피에로>를 집어들었을 때의 기대수준도.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의 느낌으로 장편을 어떻게 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반신반의의 찜찜함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거지?
세상 모든 일들을 늘 명쾌하게 정의하는 하루는 세상살이도 명쾌할 줄 알았다. 그는 피카소의 재능을 이어받은 비범한 사람이었으니,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나 말끔하게 낙서를 지우는 모습이나, 모두 감탄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자에게도 초연하고, 섹스에도 초연하고, 세상 모든 일에 초연하고, DNA에도 초연할 줄 알았다. 강간범의 아들이면 어떻고, 유전자의 영향이 뭐 대수란 말인가, 이렇게 쿨~하게 얘기할 줄 알았다. 현실에서라면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이사카 코타로의 등장인물이니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랬던 하루 역시, 그리고 하루의 정신적 지주 이즈미 역시 그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이 시시껄렁하게 웃으며 얘기하는 내용들이 사실은 10년을 결심했던 일이었고, 매일을 확인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던 일이었을 줄이야. 그 질긴 유전자의 끈을 스스로 끊어내지 않고서는 세상에 명쾌해 질 수 없음을 알게 된 순간, 우는 얼굴의 우스꽝스러운 피에로가 생각난 건 우연이었을까.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하는 거야. 무거운 짐을 졌지만 탭댄스를 추듯이."(109) 과연 그러했구나. 하루와 이즈미의 피에로는 그러한 것이었구나. 중력을 까맣게 잊은 피에로의 즐거운 곡예? 천만의 말씀! 그것은 중력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 잠시라도 중력을 잊고 싶어하는 서러운 울음. 형이라는 존재와 아버지라는 존재로, 가족이라는 존재로 구원받고자 하는 슬픈 피에로.
언젠가 그도 중력을 잊게 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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