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집엔 엄마가 처녀 시절에 읽었다는 낡은 책이 두권 있었다.
한권은 한국소설이었던 듯 한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고,
또 한권의 책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었다.
폭풍 속에 위태롭게 서있는 저택이 그려져 있던 낡은 책.
어린 나이에 도시로 올라와 공장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도,
침침한 불빛 아래서 이 소설을 읽었을 젊은 내 엄마.
그래서 더 쉽게 읽히지 않는다.
퀘퀘하게 나무냄새가 나는 워더링 하이츠의 마루 바닥 켜켜이 내 엄마의 젊은 시절이 묻혀져 있는 것 같아서.
오늘도 폭염이라는데, 마음이 서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