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은 과학 도서이다. 뿐만 아니라 매우 즐겁게 읽었던, 때때로 감탄하며 읽었던 첫 과학책이다. 전형적인 문과 성향이고 인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길 꿈꾸는 사람인지라 (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과학 분야의 책에는 평소 눈도 돌리지 않고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이 책에 처음 손을 뻗은 건 <내안의 물고기>라는 자못 문학적인 제목의 영향이 매우 컸다.
결코 모든 내용을 이해하며 읽은 건 아니지만, 내가 고등학교 시절 지구과학, 생물, 물리, 화학을 필수로 배우고 과학탐구 영역까지 필수로 시험을 봤던 세대라는 데에 감사 또 감사했다. 나의 이 얄팍한 과학 지식만으로도 뭉뚱그려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책을 써내다니. 그것도 고생물학과 유전학과 복잡다단한 DNA에 관한 이야기까지를 말이다.
인간이 현재의 인간으로 있기까지 무수히 변이하고 적응한 모든 역사가 인간안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내 안에는 물고기도 있고, 거북이도 있고, 북극곰도 있고, 믿어지지 않지만(믿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편모충까지도 모두 들어 있다는 것. 아, 놀라워라~ 경이로운 과학의 세계, 라고 할만 한데. 사실 내가 감동하고 즐거웠던 건 인문학과 자연과학과 온갖 응용학문들이 모두 풍부하게 자기의 자리를 잡고 발전하는 세계가 참으로 조화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학문들간의 문제의식과 그 연구 과정은 놀랍도록 서로 닮았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는 것.
그런 면에서 닐 슈빈의 글은 충분히 인문학적이고, 부드러웠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
현장의 먼지 속에서 바위를 깨며, 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는 물체를 발견하고 있었다. 아주 어린아이 같고 심지어 하찮기까지 한 활동이 인류의 위대한 지적 열망과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은 더없이 경이로웠다.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