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제외하고 일주일간 읽은 책이라곤 달랑 한 권. 이런.
그 한 권은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읽으면서 몇번이나 작가의 이름을 다시 살펴봐야 했는데, 배경이 미국인데다 미국의 장례문화에 대해 소상히 설명이 되어 있어, 진짜 일본문학이 맞아? 하고 3분에 한번씩 놀라야 했다.
작품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내가 일본의 문화(문학이나 영화, 만화 등)에서 때로 놀라기도 하고 기막혀하기도 하고 대단하다 싶기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책에서 오랜만에 그 기운을 느끼고 즐거웠다. 뭐랄까, 뜬금없이 던져진 재앙. 그리고 그 안에서 발버둥치고 적응하는 (혹은 끝까지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가장 놀라운 건, 그 재앙의 근원이나 원인은 눈꼽만큼도 언급하지 않고, 또 그 안의 사람들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태연작약하고 무신경해서 놀라울 정도인데, 은근히 사실적이란 말이지. 이를테면 갑자기 같은 반친구들은 마구 죽여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아이들의 이야기라거나.. 필시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몰인정하고 어마어마한 자연재해가 일본인들의 미학적 관점에 뭔가 큰 생채기를 낸 게 틀림없다고 병리학적으로 생각해 보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이 이야기도 끝까지 왜 시체들이 살아나는 건지 전혀 언급하지도 않을 뿐더러, 거의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뭐, 주인공도 죽고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시체들이니 별 문제가 없나 보다 하고 제풀에 포기하고 만다.  

 만화책들은, 2라운드로 접어든 카이의 콩쿨 이야기. <피아노의 숲> 17권. 카이의 연주가 나오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팡웨이의 어린시절 이야기도 나름 충격적인 스토리였다.  
<치하야후루> 1,2권은 하이드님의 서재에서 알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내내 흐뭇했다. 꼬맹이들의 불타오르는 경기 모습이며, 큰 눈 가득 반짝반짝거리는 아이들이며, 슬슬 순정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므흣한 전개까지. 좋아좋아.. 당장, 3,4권 구입.
<죽도 사무라이>는 오랜만에 만난 마츠모토 타이요였는데, 아, 그래 이래서 마츠모토 타이요를 좋아했었지 하고 새삼 추억에 잠기게 했다. 순수한 즐거움이랄까. 붓으로 그려진 거침없는 선이나 주욱 찢어진 눈매나 펄럭이는 옷자락 모두 감탄스러웠지만, 역시 마츠모토 타이요는 그 눈빛, 몰입의 즐거움, 순결무결한 100% 즐거움의 눈빛, 그게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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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6-09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의 숲>만 알아요~.^^;;;
이 페이퍼 찜해놔야겠어요~.

애쉬 2010-06-09 08:42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보던 만화만 이어보지 새로운 만화는 선뜻 도전하기 어렵더라구요. 여기저기 서재 기웃거리다가 좋은 이야기 들리는 만화들로 도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