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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바다 건너기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라는 설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지금, 혹은 요사이 몇년 이라고 썼다. 그래, 망설임 없이 썼다. 나는 지금이 참 좋다. 지금의 내가 좋고, 지금의 내 상황이 좋고, 지금의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다. 만족하고 살 수 있어 좋겠다고 맘편히 살 수 있어 좋겠다고 시샘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이라고 쓴 이면에 '과거는 잊고 싶다'는 바람이 숨어 있음을 눈치챘을까.
뭔가 크게 잘못하고 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되고 싶은 나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 시점이란 게, 단절적으로 존재했다. 특별히 부정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샌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나를 지워갔다. 기억들은 토막토막이 났고, 실제 하얗게 지워져 버린 (지저분한 지우개 자국을 남기고) 기억들도 늘어갔다. 생각보다 심각한 징후를 보이기도 했다. 대학 때 우리과로 편입해서 들어온 고3때 같은 반 친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제법 친하기도 했던 거 같은데, 정말 까맣게 기억이 나질 않았던 당황스러움. 아,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과거의 나는 포르말린 냄새가 가득한 유리병에 갇혀 어두운 실험실 구석에 버려졌구나.
이런 나에게 열일곱의 내가 찾아온다면? 열살의 내가 찾아온다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한다고 나를 다그친다면? 나는 과연 프래니처럼 때때로 밀려오는 그 시절의 반짝거림에 감동할 수 있을까? 과연 열일곱의 나는, 열살의 나는 반짝거렸을까?
월드 머신이 어쩌고, 외계인이 어쩌고, 인류를 구해야 한다느니 어쩌구 하는 이야기들은 외눈박이 개새끼나 들으라지. 세상에 이렇게 지맘대로인 외계인이 어디있냐고. 첨엔 내눈에만 보이는 거라고 그랬다가 이젠 남들 눈에도 다 보이고, 분명히 마흔일곱의 나이로 이곳에 왔는데 다들 어린 시절의 나로 알아본다. 아~무런 규칙도 이유도 없는 시간여행이다. 세상을 구원할 히어로가 되라고? 믿을 수가 없어. 당췌 신뢰가 안가는 외계인들이다.
가장 어이없던 장면은, 마치 기록 필름을 돌리듯 천천히 창문밖 세상이 30년 전에서 현재로 변화하는 장면이었다. 풀이 자랐다가 잘렸다가, 그네가 놓여져 있다가 화분이 놓여져 있다가 하며 사르륵 시간이 흘러갔다. 그걸 유리창 너머로 보는 기분이란, 노스탤지어 라는 말 만으론 설명이 안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거리를 지나 친구네 집으로 가야하는 일이 생겼는데, 주인공은 차를 타고 갈 수 없었다. 왜냐. 거리가 변하는 속도보다 차의 속도가 더 빨라서, 친구네 집이 아직 현재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게 말이 되냐고. 이런 것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허술한 외계인들이 시간 여행은 어찌 한다니. 어이구, 못미더워.
그러니, 프래니가 움직인 이유는 세상을 구한다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불쑥 찾아온 과거의 나를 대면하는 일, 30여년 전 내 동네를 다시 걸어보는 일,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에 동요하기 시작하면서 프래니도 이 일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때론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젊었던 내 아버지를 만나, 스테레오 타입이었던 아버지의 삶이 사실은 웃지 못할 비밀투성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같은 거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종 잠언이 된다. 그동안의 이 작가의 글로 보건대 절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낯간지럽게도 조너선 캐럴은 '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모든 자아를 살려두라'로 얘기한다. 아아. 왜 이러시나 하고 좁쌀같은 닭살이 돋으려는데, 전혀 조너선 캐럴스럽지 않은 이 책의 어느 대목에서부터, 나는 나사가 빠진 듯 멍하니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 가 아니라 너 자신'들'을 알라 라는 대목에서 말이다. 단지 어른의 시간여행 이야기로 끝났을 지도 모를 이 판타지가 일종의 철학서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프래니가 종국에 만난 것은 자그마치 다섯 명의 프래니였다. 그러나 그들 뒤 깊은 숲에서 더 많은 프래니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난 이제 안다.
수많은 '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또한 수많은 내가 될 것이라는 사실. 나의 역사는 긴 끈을 이어가듯 한 가닥의 선으로 주욱 이어진 게 아니었다는 사실.
그래서 프래니의 무덤에 흙 한 삽을 퍼넣고 있는 지지 (또 다른 프래니)는 눈을 슬쩍 돌리고는 나를 채근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수많은 나 자신들을 잊지 말라고, 그들을 박제로 만들지 말라고. 그들의 모습이 알알이 박혀진 채로 너는 이렇게 잘 자라왔다고.
아, 나는 마주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반짝였을지도 모를 나의 과거들이 저-기 바람결에 펄럭이는 커텐 너머에 서 있는데, 나는 두손을 내밀고 맞아줄 수 있을까. 열일곱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곤 반짝거리고 있다고 말을 해 줄까?
사실을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망설이고 있다. 프래니처럼 웃으며 눈감을 수 있는 자신감 같은 게 없다. 하지만 아스토펠이 말했듯이 여러개의 구슬들이 만들어 낸 일련의 패턴이 나의 현재라면, 이제 그 구슬들이 각각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모두 자신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는 걸 이제 막 알았을 뿐이다.
잡념은 여기까지. 이 밑은 북스피어 출판사의 이스터 에그에 관한 것임. -------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페이지 윗부분에 잘려진 개의 하반신이 보이는 게 아닌가. 헉. 이 사람들 또 숨겨놓았구나.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북스피어 라는 출판사를 좀 특별한 출판사로 기억하고 있는 건 바로 이 이스터에그 때문이었다. 이야기로서의 책의 세계를 독자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장치. 이 이야기를 즐겁게 읽은 사람들 간의 비밀스러운 교감.
이번에 이 강아지, 아니 개새끼를 잘라놓으셨구나. 킥킥 대며 책장을 넘겼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옆 귀퉁이에서 개의 얼굴을 찾았다. 좋다고 웃고 있었는데, 이 상반신과 하반신을 이어붙여 보아도 뭔가 그림이 안된다. 가만 보니 가운데 토막이 빠졌다. 담배 물고 팔짱끼고 있는 부분이 없는 거다. 어.. 분명히 못 봤는데... 이럴수가. 다시 첨부터 책을 다시 봤다. 책 읽는데만 3일 걸렸는데, 이 녀석의 가운데 토막 찾느라 하루를 꼬박 더 썼다.
아무리 봐도 없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 나는 공실공히 미스터리 문학의 팬이잖아. 추리를 해보자구. 하반신은 페이지 윗부분에 있었고, 상반신은 페이지 옆부분에 있었다. 그렇다면 가운 토막은 페이지 밑부분?? 열심히 뒤졌다. 그러나 역시 못찾았다. 그럼 가능성은 한 가지. 가운데에 있는 거다. 페이지와 페이지가 만나는 가운데 부분. 눈여겨 유심히 벌려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부분인데 설마 여기에 두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개새끼를 토막내서 넣어둘 정도면 이 사람들, 그러고도 남는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벌려서 한장한장 수색을 했다. 책 등허리가 다 휘어지도록 찾았으나 역시 못찾았다.
그래서 지금 출판사에 따지러 갈 참이다. 가운데 토막은 어디에 있나요? 제가 못찾은 거라면 다시 한번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혹 가운데 토막은 없는 건가요? 상반신과 하반신을 붙여봐야 불구 개새끼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신 건가요? 흑흑 왜 그러셨나요? 설마... 인쇄상의 오류 때문에 조각난 그림이 들어갔다는.. 그런 끔찍한 얘기는 안하시겠지요??? 책등이 휘도록 살펴봐서 책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책임지라고, 새책 한 권 더 내놓으라고 협박이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무슨 책이 아무리 휘어도 이렇게 멀쩡한 건가요??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여 200%더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하실 건 아니죠?? 엉엉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