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할 수 있다! - 불가능을 뛰어넘는 오바마의 희망 메시지
개런 토머스 지음, 김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한 때 미국 드라마 '24'가 인기를 끌었을 때 그 드라마에 대해 놀라웠던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극의 형식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미국 대통령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극의 특성상 그렇기야 하겠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이 원칙을 지키고 '존경할 만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통령이라는 게 드라마에서나 가능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조금 떨떠름해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대통령 후보로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버락 오바마'였다. 배리라는 이름이 아니라 '버락'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인 그 후보는 곧 돌풍을 일으켰다. 허나 그 때만 해도 그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민주당의 정식 후보가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었다. 반농담조로 '24'의 영상이미지가 무의식중에 새겨진 사람들이 그에게 투표를 해서 정말 그가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을 눌렀다. 이쯤 되자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변화'의 바람이 이미 폭풍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 오바마는 매케인을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고 현재 세계의 관심을 받는 정치인이 되었다. 이 책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그렇게 오바마가 돌풍을 일으킨 사람일 수 있었던 이유, 배리라는 미국식 이름이 아니라 '버락'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어린 시절 부터 하나하나 조명해가며 풀어놓고 있다. 오바마는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나 현실에 고개를 숙일 줄 몰랐던 오바마의 아버지는 하와이에서 오바마의 어머니인 앤을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오바마의 아버지 오바마 시니어는 그가 배운 것을 그의 조국을 위해 활용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오바마가 두 살일 때 아들을 두고 조국으로 돌아갔다. 조국의 정치적 상황을 개선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후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외조부모와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가족들은 오바마가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품길 바랐기에 오바마의 아버지에 대해서 과장 섞인 무용담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출생과 피부색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길 바란 것이다. 심지어 해변에서 놀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오바마를 하와이인으로 착각하자 외할아버지는 그가 하와이의 첫 군주인 카메하메하 왕의 증손자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족들의 애정 어린 시선과 보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집 밖을 나서면 조롱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피부색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즈음 오바마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장학생과 사랑에 빠졌고 오바마와 어머니는 인도네시아로 이주하게 된다. 새아버지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오바마는 친구들의 따돌림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나라에서 가톨릭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이미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을 아니지만 그 꿈을 어른이 되어 실현시켰다는 부분은 놀라웠다. 오바마는 혼란의 시기를 잘 적응해나가는 듯 했지만 정작 새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소원해지고 교육열에 남달랐던 그의 어머니가 오바마를 미국으로 보낸다. 아들이 좀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하기 바랐던 것이다.

결국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 오바마는 곤경에 빠진다. 피부색 문제는 차치하고도 하와이의 학생들은 배드민턴이나 축구를 하지 않았고, 오바마 역시 럭비공을 어떻게 던져야 할 지 몰랐던 것이다. 살던 곳이 연이어 바뀌어 문화적으로 힘들었던 데다가 학교에 간 첫 날 선생님이 그의 이름을 배리가 아닌 버락으로 소개했던 것이다. 오바마는 그 일로 놀림감이 되었다. 이어 오바마의 학년에는 아프리카계 학생이 단 한 명 있었는데 그 여학생과 오바마가 친해지자 그것이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당황한 오바마가 그 여학생을 밀어내자 더 이상 그를 비웃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신의 가치에 손상을 입힌 일을 한 것 같아 그는 그 일이 내내 불편했다.

이후 오바마는 인종적 차별에 인한 충격과 정체성에 의한 혼란에 시달린다. 그 문제는 그를 타락으로 이끌었지만 오바마는 점차 그 문제에서 벗어난다. 아버지와의 만남과 이해, 자신이 고통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감정을 발산할 대상인 농구를 찾았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부분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안으로만 쏠리던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물론 이후에도 많은 일이 일어나고 오바마는 실패의 경험도 한다. 하지만 그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었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이제 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오바마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읽었다. 공화당의 오바마로 불린다는 다른 정치인과 오바마가 연설대결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92%가 오바마의 연설 쪽에 손을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오바마는 형편없는 연설을 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평까지 나왔다고 하니 오바마에 대한 찬탄은 당분간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사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그가 끝까지 잘 해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그는 이미 놀라운 존재이기는 하다. 자신의 정체성 혼란을 넘어 이제 '세계인'이라고 할 정도의 자긍심을 품은 오바마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할 수 있다' 인상 깊게 읽었다. 책의 마지막장을 읽고 나니 Yes, We can의 We를 I로 바꿔보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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