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창비아동문고 175
박기범 지음, 박경진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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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칭찬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지만 '문제아'란 제목으로 문제를 드러내어 놓았다는 점 외에 문학적으로 끌리는 점은 아쉽게도 없었다. 문제적 시각일수록 작가의 의도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에 녹아들어가기 어렵겠다는 예상은 해보지만 글의 구성도 문체도 어딘지 모르게 뻣뻣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다른 분들이 칭찬하시는 것처럼 훌륭한 점도 많다. 아동문학에서는 잘 보여주지 않던 새로운 시각, 배경, 주제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주제가 그리 생소한 것들이 아니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듯 싶다. 이 책 '문제아'가 그토록 환영받는 이유는 우리 아동문학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반증할 뿐인 것 같기에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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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짝꿍 최영대 나의 학급문고 1
채인선 글, 정순희 그림 / 재미마주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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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역시 글과 아울러 그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책. 늘 깔끔한 채인선씨의 글도 물론 좋았지만 정순희씨의 그림은 이 책의 진가를 올려주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학교와 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듯 보이는 왕따 문제. 이것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왕따 문제를 주제로 한 책은 몇 권 있지만 그래도 가장 잘 알려지고 작품성있다고 평가되는 작품은 바로 이것일 듯.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대를 왕따시키던 반 아이들이 영대의 울음으로 인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는 결말 부분이 조금은 성급하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고 판단하는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물론 사실동화의 측면에서 좀더 리얼리티를 견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혹시 성인 독자의 입장에서 가지게 되는 선입견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 책이 보여준 끝맺음은 사실적인 해결책 이상으로 문학성을 견지하는 가운데 오히려 어린이들에게 좀더 교훈적일 수 있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어린이들에게 '영대는 이러이러한 불쌍한 아이니까 괴롭히면 안되고 오히려 따뜻하게 잘 보살펴 주어야 돼'라고 말해야 했을까? 그럴 경우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일상 생활에서 친구를 따돌리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다른 한편 영대의 입장에서 볼 때 과연 그 아이가 스스로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었을까? 영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바로 '울음' 아니었을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어른들이 부추긴 경쟁심리와 공동체 의식의 부재로 인해 병든 아이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서, 즉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영대의 '울음'은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서에서 예리고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던 무기는 화려한 전술이나 무기가 아닌 바로 '고함'이라고 제시되었듯이 영대의 '울음'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항변이요 외침이었던 것이다. 향가 '처용가'의 처용이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것을 보았을 때 무엇을 했는가? 그는 아내를 강제로 끌고 나와 폭력을 행사하거나 법원에 간통한 아내를 고발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춤을 추었을 뿐이다. 가장 연약한 아이인 영대의 유일한 힘이자 무기는 바로 '울음'이었고 '울음'으로 표현된 그의 고통 앞에 아이들의 마음은 나쁜 꺼풀을 벗을 수 있었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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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2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인선 작가의 <시카고에 간 김파리>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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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란 존재는 아동문학의 단골 캐릭터이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작품에서도 개성있는 할머니 캐릭터를 만나보기란 어려웠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할머니란 그저 손주들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사랑을 베푸는, 늘 잘못을 용서해주고 품에 안아주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책의 할머니는 지금까지의 할머니들과는 다르게 매우 매력적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할머니에게 빠져들어가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부모님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된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 평범한 작품이라면 할머니의 한없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할머니의 캐릭터를 미화하느라 바빴겠지만 이 이야기의 할머니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다. 손주를 사랑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할머니이지만 가난한 살림 형편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불평하기도 하고 밖에서 놀 때는 새 옷을 입고 나가지 말라고 혼낸다. 할머니는 또 가게 주인에게 물건값이 비싸다고 따지고, 아동학대를 염려하는 사회복지사에게 호통을 치다가도 자신이 죽고 나면 손주는 어쩌나 걱정하며 몰래 눈물짓기도 한다. 때로는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양육방식과 비교하는 손주를 못마땅해하고 살아생전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던 며느리를 질투할 때도 있다.

얼마전 영화 '집으로' '죽어도 좋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새삼 그동안 우리가 노인들의 존재를 얼마나 잊고 있었나 깨닫게 해주기도 했듯이 노인은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소외된 존재이다. 개인적, 사회적 현실에서 뿐 아니라 문학작품이나 대중매체에서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들은 늘 이야기의 주변인물로 밀려나있거나 '인간다운' '생생한' 캐릭터를 유지하지 못한 채 희화화되거나 죽어있는 캐릭터이기 일쑤다. 아동문학 작품의 노인들이 구태의연한 틀을 벗지 못할 때 아이들에게 역시 노인은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닌 '노인들' 중 하나로 소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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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아이들 - 시공주니어문고 3단계 13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3
노경실 글, 심은숙 그림 / 시공주니어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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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참 잊혀지기가 쉽다. 내 주변에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아이들을 곁에서 많이 보아오고 아파했으면서도 잠시 그들과 떨어져 있으면 금새 그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정말 신기하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이 사실은 늘 그들과 함께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하기도 하지만. 이 책 '상계동 아이들'을 읽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난한 아이들을 다시 기억하게 됐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만난 이후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아이들이다.

'상계동 올림픽'이란 독립영화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달동네 상계동은 80년대 가난의 양상을 집약하고 있는 대명사라 할 만하다. 그런 배경을 알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가난한 아이들의 팍팍하고도 끈질긴 삶은 가슴팍을 더욱 아프게 헤집는다. 무당 엄마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그 엄마로 인해 놀림받는 깐돌이, 정박아인 형일이, 원만치 않은 가정형편으로 빗나가는 광철이, 장님 부모의 딸들인 은주네 자매들... 지금은 어느덧 키가 훌쩍 커져 있을 그 아이들의 지나온 삶을 따라가보면, 그리고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똑같이 살아내고 있을 지금의 다른 아이들을 떠올리면 늘 내 자리와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곤 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는 상계동 이야기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내는 것 또한 감추지 못할 사실이다. 지금처럼 달동네들이 사라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변두리의 지하 셋방으로 흩어져 가난의 개인화, 파편화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래도 달동네에서는 '희망'이 있었을지 모른다. '함께 있다'는 희망 말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함께 골목길을 누비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함께 아이들의 일과 동네 일을 의논하고, 공부방의 이모와 삼촌, 교회와 성당의 어른들이 자기네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가난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행복이었을런지도 모른다.

때론 자신의 가슴에 멍든 상처 때문에 서로를 할퀴기도 하지만 상계동 아이들은 결국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보살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빗나갔던 광철이는 소년원에서 돌아온 이후 제 갈 길을 찾고 구두쇠 고리대금업자로 부모없는 손주들을 키우는 할머니의 마음은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80년대 가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계동 아이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 가난은 없다'고 믿는 듯한 오늘날에 '달동네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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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 전10권 - 한국만화대표선
김주영 원작, 이두호 글.그림 / 바다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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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읽지 않았다. 원작이 소설이니까 왠지 소설을 읽고 난 후 만화를 봐야 할 것 같았지만 이두호씨가 그렸으니 소설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만화부터 집어 들었다. 역시 재미있었다. 소설은 만화보다 재미없을테니 읽지 않을 것이다.^^만화가 이두호란 이름에서는 걸출한 한국의 만화가란 직함보다는 '머털도사'란 캐릭터가 떠오른다. 어렸을 적 정기구독하던 '소년중앙'에 연재되었던 만화라고 기억된다. 애니매이션으로 제작된 것도 무척 좋아했었는데... 한국적인 선과 정감이 가는 인물, 잘 짜여진 구성, 해학 등은 어린 마음에도 잘 스며들었다. 지금 조금 더 커진 머리로 생각해볼 때 만화에는 문외한인 나이지만 이두호씨의 만화는 재미있을 뿐 아니라 훌륭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원작인 소설 객주 역시 감히 읽을 엄두는 못 내고 있지만 분명 훌륭한 작품일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파란만장한 삶과 민초들의 생존 방식, 삶에의 의지, 얼키고 설킨 운명 등은 안온하기만한 내 삶과 내 머리,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 인물들의 모습이 진정 삶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듯 했고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마치 미이라 마냥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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