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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아이들 - 시공주니어문고 3단계 13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3
노경실 글, 심은숙 그림 / 시공주니어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가난한 사람들은 참 잊혀지기가 쉽다. 내 주변에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아이들을 곁에서 많이 보아오고 아파했으면서도 잠시 그들과 떨어져 있으면 금새 그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정말 신기하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이 사실은 늘 그들과 함께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하기도 하지만. 이 책 '상계동 아이들'을 읽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난한 아이들을 다시 기억하게 됐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만난 이후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아이들이다.
'상계동 올림픽'이란 독립영화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달동네 상계동은 80년대 가난의 양상을 집약하고 있는 대명사라 할 만하다. 그런 배경을 알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가난한 아이들의 팍팍하고도 끈질긴 삶은 가슴팍을 더욱 아프게 헤집는다. 무당 엄마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그 엄마로 인해 놀림받는 깐돌이, 정박아인 형일이, 원만치 않은 가정형편으로 빗나가는 광철이, 장님 부모의 딸들인 은주네 자매들... 지금은 어느덧 키가 훌쩍 커져 있을 그 아이들의 지나온 삶을 따라가보면, 그리고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똑같이 살아내고 있을 지금의 다른 아이들을 떠올리면 늘 내 자리와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곤 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는 상계동 이야기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내는 것 또한 감추지 못할 사실이다. 지금처럼 달동네들이 사라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변두리의 지하 셋방으로 흩어져 가난의 개인화, 파편화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래도 달동네에서는 '희망'이 있었을지 모른다. '함께 있다'는 희망 말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함께 골목길을 누비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함께 아이들의 일과 동네 일을 의논하고, 공부방의 이모와 삼촌, 교회와 성당의 어른들이 자기네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가난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행복이었을런지도 모른다.
때론 자신의 가슴에 멍든 상처 때문에 서로를 할퀴기도 하지만 상계동 아이들은 결국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보살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빗나갔던 광철이는 소년원에서 돌아온 이후 제 갈 길을 찾고 구두쇠 고리대금업자로 부모없는 손주들을 키우는 할머니의 마음은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80년대 가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계동 아이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 가난은 없다'고 믿는 듯한 오늘날에 '달동네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