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할머니'란 존재는 아동문학의 단골 캐릭터이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작품에서도 개성있는 할머니 캐릭터를 만나보기란 어려웠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할머니란 그저 손주들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사랑을 베푸는, 늘 잘못을 용서해주고 품에 안아주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책의 할머니는 지금까지의 할머니들과는 다르게 매우 매력적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할머니에게 빠져들어가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부모님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된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 평범한 작품이라면 할머니의 한없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할머니의 캐릭터를 미화하느라 바빴겠지만 이 이야기의 할머니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다. 손주를 사랑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할머니이지만 가난한 살림 형편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불평하기도 하고 밖에서 놀 때는 새 옷을 입고 나가지 말라고 혼낸다. 할머니는 또 가게 주인에게 물건값이 비싸다고 따지고, 아동학대를 염려하는 사회복지사에게 호통을 치다가도 자신이 죽고 나면 손주는 어쩌나 걱정하며 몰래 눈물짓기도 한다. 때로는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양육방식과 비교하는 손주를 못마땅해하고 살아생전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던 며느리를 질투할 때도 있다.

얼마전 영화 '집으로' '죽어도 좋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새삼 그동안 우리가 노인들의 존재를 얼마나 잊고 있었나 깨닫게 해주기도 했듯이 노인은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소외된 존재이다. 개인적, 사회적 현실에서 뿐 아니라 문학작품이나 대중매체에서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들은 늘 이야기의 주변인물로 밀려나있거나 '인간다운' '생생한' 캐릭터를 유지하지 못한 채 희화화되거나 죽어있는 캐릭터이기 일쑤다. 아동문학 작품의 노인들이 구태의연한 틀을 벗지 못할 때 아이들에게 역시 노인은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닌 '노인들' 중 하나로 소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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