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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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자못 위압적이다. 80년대였다면 가방에 넣고 다니다 불온서적으로 걸리기 딱 좋은 제목이다. 하긴 어떤 선배는 가방안에 막스 베버의 책을 가지고 다니다 검문에서 ' 이 막스가 그 맑스랑 무슨 연관이 있는 사람이지? '라며 책을 압수당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전설처럼 남던 시절이니까...

책 제목의 그럴싸한 혁명성에 비해 책의 내용은 평이하다.평이하다는 말이 곧 수준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이성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했다는 뜻이다. 책 후미에 어느 외국 고등학교에서 사회교과서로 쓰였다는 이야기가 이 책이 얼마나 읽기 편하게 씌여졌는지 그 예가 될 듯 하다. 저자가 좌파적 저널에 지속적으로 글을 썼던 사람이어서 학술적인 용어를 자제하고 훨씬 대중적인 접근을 택했기 때문이리라.

우선 자본주의의 형성을 위해 저자는 중세시대부터 꼼꼼하게 사회의 부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축적되는지 살피고 있다.한마디로 자본주의의 역사는 착취와 피착취의 역사이다.물론 작가가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잘라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자본주의는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담고 이루어졌다.하지만 극단순화해 본다면 그러한 결론도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작가는 사회적 이해관계와 새로운 계급의 탄생,그리고 부를 둘러싼 헤게모니를 역사적 필연성으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무자비한 이윤의 추구만이 목적인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소상히 설명한다.

특히 이 책이 눈에 띄는 점은 각 계급간의 대립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소송문이나 판결문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리얼하게 그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남미로부터 유럽으로 유입된 금은으로 인한 유럽의 실제 물가상승을 한탄한 탄원, 국왕의 돈줄이 되었던 거대 카르텔이 국왕에게 보낸 협박성 편지,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모험가들의 편지, 몰락하는 봉건 영주들이 자신의 사유지를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계약서 등등.. 이러한 충분한 자료들은 화면을 과거로 돌려 당시의 상황을 독자가 개연성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많은 독자들이 그랬겠지만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대공황시기까지 만 자본주의의 역사가 쓰여졌다는 것이다.책이 1930년대에 쓰여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이 책은 지금과 같은 다국적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형성될 수 있었던 물적토대가 어떠한 착취과정을 통해 어떻게 미화되면서 만들어졌는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틈만 나면 자본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야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어려운걸 싫어하니까 더욱 이 책이 좋다. 그들이 우리 생활에 밀접해 있는 자본주의가 어떤 피의 역사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안다면 마이더스가 황금을 숭배하듯 자본주의를 자랑스럽게 떠벌이고 다닐 수 만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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