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흡을 하자. 깊고 길게. 그러다가 숨쉬기를 멈추고 들어봐. 아니 바라봐. 뇌수 저쪽에서 떠오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는 넓은 평원이 있지. 부드러운 경사로 내려가는 초원의 끝에 강이 흐르고 있어. 가만히 강안(江岸)에 앉아 그 강물을 바라봐. 그 강물의 흐름을 좇아가노라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지. 이상하게도 뇌리에 흐르는 그 강물은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사실이야. 누구나 동일하게 매번 같은 시간, 같은 풍경을 불러낸다는 것도 예사롭지는 않아. 이를테면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햇살이 수면 위에 쏘아대는 금화살의 방향으로 보아 나는 남쪽을 마주하고 있고, 물 위에서 일렁이듯 반짝거리며 이동하는 햇살 가루의 온기로 느끼건대 머물러 있는 시간은 아마도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쯤의 시간. (그 집 앞, p.15)


좋아해마지않는 최 윤의 글은 손이 닫지 않는 거리의 마음과 귀를 씻긴다. 잠깐의 우울로 가라앉은 기분도 덩달아 축 늘어지는 팔다리도 그래서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눈을 감아도 잠들지 못하는 불안에 떨던 영혼을 달랜다. 종교가 없는 나는 신을 부를 수도 없고 반복해서 읽으며 길라잡이가 되어줄 성서도 없지만 간혹 이렇게 몇몇 글들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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