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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와 유방 3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달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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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죽음이 어찌 슬프지 않으리요! 나는 이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죽음이 있는 반면에 분명히 속이 후련한 죽음도 있다. 나에게 돌을 던져도 좋다. 사람의 죽음을 두고 어떻게 속시원할 수 있냐며 쌍욕을 퍼부어도 좋다. 그래도 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죽어도 바꾸지 않으련다. 하루하루 실시간으로 나는 제발 죽어 없어 졌으면 좋겠다고 판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목격한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 도대체 귀신은 뭐 하는 걸까! 꼴도 보기싫은 화상들 얼른 잡아먹지 않고 말이다. 


항우는 죽었다. 그런데 항우의 죽음은 슬프다. 안타깝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삼촌밑에서 갖은 풍랑과 역경을 스스로 정면으로 돌파해온 항우의 종말이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이 나야 하는지 안타까우면서도 허무하다. 성정이 포악하다고? 그는 전쟁을 치르는 장수이며 부하를 지휘하고 그 목숨을 지켜야 하는 지도자다. 전쟁에서는 상대방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살고 부하들이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항우는 이를 실천했을 뿐이다. 제발 한참이나 후세에 태어나서 항우의 시절과 하등 상관없는 오늘날만의 시각으로 상황을 단순화시키지 마시라!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해서 무조건 승자의 편에 빌붙어 승부가 갈린 결과론적 접근으로 패자의 행위를 난도질하지 마시라! 항우는 그냥 전쟁에서 패하였고 그로 인해 죽었을 뿐이다. 적장 유방이 항우보다 더 뛰어나서도 아니고 부하들의 능력이 심하게 차이가 나서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늘이 항우를 버렸기 때문도 아니다. 이유는 없다. 승자와 패자가 엄연히 갈릴 수 밖에 없는 전쟁터에서 항우는 그냥 패자로 사라졌을 뿐이다. 사람들아! 제발 부탁이다. 가당찮게 원인을 들먹이고 시비를 따져 훈계하려 들지 말지어다. 


지 나는 새삼 깨달을 뿐이다.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그의 의지와 능력과는 상관없이 세상은 무심하게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라는 거. 그래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장래를 예측하고 내다볼 수 없다는 거. 항우와 유방도 그렇고 장량과 한신도 그렇다. 그저 세월이 흐른 뒤에 되짚어보니 세상의 중심에 유방이 있었을 뿐이며 항우는 사라져버렸을 뿐이다. 그 이유가 이렇다 저렇다고 떠벌리지 마시라. 당신은 너무 간사하다. 바보 천치라도 다 아는 이미 나타난 결과를 두고 몇마디 말을 덧붙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유는 없다. 이번 싸움에서는 그냥 항우가 졌을 뿐이다. 오로지 이것만이 사실이다. 다른 모든 것은 한낱 허깨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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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12-06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초패왕'. 그 영화를 보면 항우(여랑위)와 우미인(관지림)의 결말이 더욱 서글프지요.
 
항우와 유방 2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달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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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채워져 있는 사람은 그리고 조금 더디기는 하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채울 것이 마땅치 않거나 거의 채웠다고 판단할 때에는 채우기 위해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필사적이고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 채움의 과정에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이 보다 중요하게 작용하였다고 단정하는 자에게는 더 이상 주변인은 그저 무위도식하는 식충이로 비칠 뿐이다. 채움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할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절대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유지와 관리라는 역할을 아주 하찮게 보는 사람이며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찮게 여긴다. 따라서 그 정도의 일을 할 사람은 사방에 널려 있으므로 굳이 자기곁에 둘려고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려는 스타일에서는 애써 매달려가며 널리 인재를 구하고 키울 마인드조차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항우는 항상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걸 채워왔다. 채우는 과정도 타인의 의견은 거의 묵살하였고 언제나 자기의 주장을 그대로 관철시키면서 성공하였다. 스스로가 사고하고 의도한 바대로 큰 실패없이 그대로 성공하는 삶에서는 타인은 한낱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다. 항우에게 거의 유일하게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범증도 결국은 항우의 독단과 독주앞에 인간에 대한 배신과 존재의 무가치함을 절실히 느끼며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항우의 운명은 어쩌면 그의 이러한 기질속에서 예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천하만물과 삼라만상을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움직이고 조종할 수 있다는 과신과 아집은 그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한계였다


처음부터 아무런 가진 것이 없었던 유방은 너무나 자유스러운 의식의 소유자였다. 애초 가진 것이 없었고 따라서 밑천들여 투자한 것이 없으니 제 아무리 밑져봐야 손해볼 것도 없었다. 생기면 생기는 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지극히 한가하고 홀가분한 삶이야말로 유방을 최후의 승리자로 만든 동력이었는지 모르겠다. 유방은 스스로가 항상 굶주림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보니 사람이든 무엇이든 종류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야만 했다. 받아들인 사람이 행여나 배신하였더라도 그는 그대로 내치는 법이 없었다. 늘 부족하고 빈 상태인 그로서는 사람을 내친다는 것은 곧바로 심각한 손실이라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사람을 항상 자신의 울타리안에 거둬들여야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인술은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으니 항우가 포용하지 못한 진평을 거두어들여 끝까지 신뢰하고 지원함으로써 항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범증을 항우와 영원히 격리시키는데 성공한 것은 유방이 구사한 용인술 중 최고의 하일라이트였다. 혼자 힘으로는 세상의 수많은 난제를 헤쳐나갈 수 없음에 일찌감치 주변의 도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또 그러한 사정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고 담담하게 현실속에서 실천해나간 유방이 비록 시시때때로 황제로서의 모양새는 일그러졌을망정 평생을 폼나게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몰락한 항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다


천하를 거의 얻었으나 사람을 잃어버린 항우와 세상의 대부분을 잃었으나 사람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유방은 이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여야 한다. 현재 벌어지는 싸움이 아니라 먼 엣날의 일이니 이미 결과는 알고 있다. 그래도 항우와 유방을 따라 다니며 그날을 체험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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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와 유방 1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달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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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는 이미 갖춘 사람이다. 좀처럼 틈을 발견할 수 없다. 무예도 출중하고 체계적인 조직을 이끌면서 리더로서의 훈련도 쌓았다. 그리고 숙부인 항량을 따라 다니면서 적지 않은 전투경험을 가진 참전용사로서 찬란한 전공을 세운다. 아무리 숙부라 한들 자질도 능력도 그리고 가능성도 없는 존재를 그저 조카라는 이유로 무작정 믿고 하염없이 키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숙부 항량이 조카 항우를 기르는 것은 인척관계를 떠나 그만큼 항우가 잘난 인물이라는 뜻이고 또한 자신이 조금 더 이끌어주면 앞으로 더 잘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항우는 숙부의 기대를 고스란히 충족시키며 주변사람들의 인정속에서 어린 나이에 이미 충분히 우뚝 솟아 올라버렸다. 결국 진작부터 너무나 잘나버린 항우는 든든한 숙부의 후원마저 있었기에 주변 사람의 도움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고 굳이 애써가며 사람을 가까이에 둘 절실함이 없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하면 기브 앤 테이크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유방은 한마디로 백수요 건달이다. 스스로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기는커녕 자신의 의식주조차 해결할 수 없었고 또 그럴 의지도 없었다. 게다가 백수인 주제에 무슨 기는 그렇게 펄펄 살아서인지 온갖 말썽과 소란을 피우면서 도망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듯이 묘하게도 유방에게는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완전무결하고 매사에 철저한 사람에게는 쉽사리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허술하고 분란만 일으키며 그렇다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재물이나 배경도 없는 유방이지만 낙천적이며 호방한 기질은 타인으로 하여금 한번 다가가서 얘기하고 싶고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를 유발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유방 본인도 보잘것 없는 자신이 결국 믿을 것이라고는 오직 사람밖에 없음을 무의식 중에 인지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유방에게는 자의든 타의든 사람이 모였고 또한 그 역시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을 내쫓을 이유가 없었다


항우와 유방을 바라보는 난세의 그당시 사람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을 조속히 정비하고 참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주변을 압도하는 탁월하고 출중한 항우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이 올바르다고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빈틈은 많지만 그런 유방의 부족함을 자신이 채워가며 세상 바로잡기에 일정한 역할을 뚜렷하게 하기를 바랄 것인가? 잘나면 잘난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하류와 이류들도 그렇게 생긴대로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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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7-0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세상을 움직이지 않을까요? 항우는 사람 없는 세상을 움직이려 했고
유방은 사람 안의 세상을 움직이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아마도...

2004-07-11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yonara 2004-07-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예모 감독의 걸작 '서초패왕'은 항우와 우미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 단순무식하지만 우직하고 남자다운 항우에 매료되었지요.
지금도 그때의 감흥이 변치 않아서 유방은 여전히 얍삽해 보이기만 합니다.
 
모차르트 평전
필립 솔레르스 지음, 김남주 옮김 / 효형출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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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는 어릴 적에 제일 먼저 접하는 위인이었다. 그의 업적도 업적이려니와 그 천재성으로 말미암아 나의 뇌리에 더 깊숙이 남아 있는 모짜르트에 대해 언젠가는 위인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모짜르트를 진실되게 알고 싶다는 소망을 키워왔다. 그런데 막상 모짜르트를 찾다 보니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모짜르트를 알 수 있는 책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위인이 아니라 인간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평전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 책은 나에게 반가움과 흥분을 안겨다 주었고 나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듯 주저없이 이책을 사들였던 것이다


평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일생에 대한 진지한 탐구다. 평전에서는 인간의 업적이나 실력이나 공헌을 재확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러한 성취를 이룩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삶의 과정과 고통과 번민을 같이 공유하면서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인가? 모짜르트는 온데 간데 없고 저자만 있을 뿐이다. 모짜르트는 주변에 밀려나 철저히 소외당하면서 저자는 무엇이 그리 신나 있는지 여행지에서의 소회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모짜르트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고찰은 흔적도 없고 이미 세상에 알려진 그의 편지나 모짜르트 주변 사람들의 객담만 무슨 대단한 정보인양 전달하고 있다. 이게 무슨 평전이란 말인가.  평전은 기행문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며 신변잡기나 늘어놓는 팔자 늘어진 한가한 장르도 아니다. 제발 좀 속이지 마시라!


어이없다. 어쩌다가 나는 평전이라는 타이틀만 믿고 덥썩 책을 사고 말았는가!. 저자와 역자와 출판사가 원망스럽지만 결국은 사리분별 제대로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평전이 아니다. 그리고 모짜르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짜르트를 이용한 저자의 본인 알리기에 지나지 않는 책이다. 따라서 나는  한 인간으로서 모짜르트와 진실되게 만나려던 소망이 처절하게 좌절되었다. 무슨 이유로 어떤 명분으로 나와 모짜르트의 만남을 방해하려는 것일까? 서운하다. 그리고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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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7-0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는 언제나 속이 시원하네요. 읽어보기 전이지만 어떤 류의 글일지 짐작이 갑니다.
이럴 때 억울하지요... ^^

반조 2005-03-14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이 책 원전의 제목은 "Mysterieux Mozart"이죠. 그러니까 "신비로운 모차르트" 쯤 되려나요? 모차르트 해석서라고 할 만하죠. 확실히 "평전"과는 어울리지 않은 글인데, 번역한 출판사에서 "평전"이라는 이름을 붙힌 것은 의도적인 잘못이라고 봅니다
 
이백, 두보를 만나다
다카시마 도시오 지음, 이원규 옮김 / 심산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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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과 두보! 우리는 그들을 라이벌이라 부른다. 또한 뛰어난 시인이라 부른다. 동시대에 살면서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그들의 성취를 서로 비교했을 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용호상박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훗날 사람들은 서로의 취향과 입장에 따라 이백이나 두보를 서로 치켜세우기도 하는데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들은 우열을 가리는 일을 쓸테없는 일이라 치부한다. 비록 문학이라는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 추구하는 이상이 엄연히 달랐고 그 이상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이라는 형식도 상이하였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이백이나 두보의 성취에 감히 접근하지도 못한 부류들이 어디에 대고 함부로 입을 놀리며 누가 더 뛰어나다고 주절대는 것 자체가 도대체가 희극이다. 이백은 이백대로 두보는 두보대로 그들이 걸어온 족적 그 자체로써 스스로들 이미 충분히 뛰어날 뿐이다. 우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입을 다물라!


그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달랐다. 이백은 보잘것없는 집안의 태생이다. 조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가까이는 아버지마저 도재체 뭐하는 인물이었는지 속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다. 이는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출신들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두보는 대대로 선비집안의 출신이다. 먼 조상들 중에는 중국역사에 제법 이름을 올릴 만한 인물들도 더러 있었다. 집안으로만 따지자면 어디에 내놓아도 위축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런 점에서 이백과는 뼈대가 다른 집안이다. 문학적 성향면에서 이백은 낭만적이며 도교적인 기풍을 가지는 데 비해 두보는 현실적이고 유교적이다. 이백이 호방하며 당당한 자의식을 거리낌없이 표출하는 남성적이라며 두보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왜소한 자신을 하염없이 자책하는 여성적이다.  이백은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독불장군식 스타일이어서 사람이 붙지 않았고 그래서 항상 외로웠음에 비해 두보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와 타인에 대한 배려로 그를 보살펴주는 이가 꽤 많았다


하지만 또 많은 점에서 그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생의 많은 세월을 무위도식으로 보냈다. 기본적으로 가진 재산이 바닥을 드러내면 알음알음 아는 지인들의 원조를 받아가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면서도 밥을 굶는 일도 없었고 또 술은 언제나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천자의 부름을 받지 못해서 그리고 국왕의 신임을 얻지 못해서 유랑하고 방랑하면서도 스스로 일을 하며 얻은 댓가로 의식주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태어난 글재주를 팔아가며 연명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날품팔이 문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이게 전부다. 그들의 타고난 글재주는 천자의 영광을 노래하고 개인의 신세를 한탄하는 도구로만 씌였을 뿐 그들이 살고 있던 당나라의 국란과 왕조의 전횡으로 인하여 신음하며  고통받는 백성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회를 개선코자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문학이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재주가 기껏 지배자의 평안을 염원하고 불안한 체제의 안위를 염려하는 것에 제공된다면 그들은 타고난 기재에 바탕을 둔 뛰어난 테크니션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진실로 참다운 위인은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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