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유방 2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달궁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채워져 있는 사람은 그리고 조금 더디기는 하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채울 것이 마땅치 않거나 거의 채웠다고 판단할 때에는 채우기 위해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필사적이고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 채움의 과정에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이 보다 중요하게 작용하였다고 단정하는 자에게는 더 이상 주변인은 그저 무위도식하는 식충이로 비칠 뿐이다. 채움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할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절대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유지와 관리라는 역할을 아주 하찮게 보는 사람이며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하찮게 여긴다. 따라서 그 정도의 일을 할 사람은 사방에 널려 있으므로 굳이 자기곁에 둘려고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려는 스타일에서는 애써 매달려가며 널리 인재를 구하고 키울 마인드조차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항우는 항상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걸 채워왔다. 채우는 과정도 타인의 의견은 거의 묵살하였고 언제나 자기의 주장을 그대로 관철시키면서 성공하였다. 스스로가 사고하고 의도한 바대로 큰 실패없이 그대로 성공하는 삶에서는 타인은 한낱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다. 항우에게 거의 유일하게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범증도 결국은 항우의 독단과 독주앞에 인간에 대한 배신과 존재의 무가치함을 절실히 느끼며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항우의 운명은 어쩌면 그의 이러한 기질속에서 예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천하만물과 삼라만상을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움직이고 조종할 수 있다는 과신과 아집은 그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한계였다


처음부터 아무런 가진 것이 없었던 유방은 너무나 자유스러운 의식의 소유자였다. 애초 가진 것이 없었고 따라서 밑천들여 투자한 것이 없으니 제 아무리 밑져봐야 손해볼 것도 없었다. 생기면 생기는 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지극히 한가하고 홀가분한 삶이야말로 유방을 최후의 승리자로 만든 동력이었는지 모르겠다. 유방은 스스로가 항상 굶주림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보니 사람이든 무엇이든 종류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야만 했다. 받아들인 사람이 행여나 배신하였더라도 그는 그대로 내치는 법이 없었다. 늘 부족하고 빈 상태인 그로서는 사람을 내친다는 것은 곧바로 심각한 손실이라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사람을 항상 자신의 울타리안에 거둬들여야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인술은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으니 항우가 포용하지 못한 진평을 거두어들여 끝까지 신뢰하고 지원함으로써 항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범증을 항우와 영원히 격리시키는데 성공한 것은 유방이 구사한 용인술 중 최고의 하일라이트였다. 혼자 힘으로는 세상의 수많은 난제를 헤쳐나갈 수 없음에 일찌감치 주변의 도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또 그러한 사정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고 담담하게 현실속에서 실천해나간 유방이 비록 시시때때로 황제로서의 모양새는 일그러졌을망정 평생을 폼나게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몰락한 항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다


천하를 거의 얻었으나 사람을 잃어버린 항우와 세상의 대부분을 잃었으나 사람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유방은 이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여야 한다. 현재 벌어지는 싸움이 아니라 먼 엣날의 일이니 이미 결과는 알고 있다. 그래도 항우와 유방을 따라 다니며 그날을 체험해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