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문열과 김용옥 - 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1년 9월
평점 :
청소년기 나의 사고체계와 그마나 갖추어진 논리성 형성은 이문열에 힘입은 바 크다. 그 당시 이문열은 대한민국 최고 소설가 중 하나였고 그에 대해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로서는 신문이나 방송의 이문열에 대한 그러한 평가를 그저 믿고 수용하고 책 구입의 가장 중요한 자료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렇게 소설을 통하여 접한 이문열은 세간의 평가가 단순한 덕담이 아닌 그럴만한 사정에 기인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문열이 구사하는 문장의 유려함과 논리성은 나는 지금도 대한민국의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탁월한 것이었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고 스스로의 판단능력이 생기게 된 후부터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문열은 보수주의자라는 것을. 그리고 보다 폭넓은 직간접적인 경험과 정보수집을 통해서 이문열 스스로도 그렇고 세상의 일반 평가도 그를 보수주의자라 부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다 소중한 가치관이고 세상은 하나의 획일적인 가치체계로 굴러갈 수도 없다는 점에서 보수주의 혹은 보수주의자를 적대시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나는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더나아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수구반동으로 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으며 나 또한 문득문득 이문열은 보수가 아닌 수구적인 사람임을 확인해 나가고 있다
보수! 도대체 보수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냥 어느 한순간에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방식으로 찰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갖은 시행착오를 겪고 오랫동안 사회 구성원들의 타협과 공통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소중한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지키면서 물려주어야 할 것이지 고치고 바꾸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가치체계다. 다 맞는 말이다. 지킬 것인가 또는 바꿀 것인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이의 인식과 판단의 차이이며 따라서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왜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무조건, 기득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 맥락이 전혀 와닿지 않는 궤변으로써 그저 죽자사자 지켜야 한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이미 보수가 아니라 수구다. 특히 사회 전체의 발전과 개선을 위해 바뀌어야 함이 정당함에도 소수 특권 세력의 이익유지나 향상을 위하거나, 정권에 아첨 또는 정권 획득을 위한 방편으로써 사회안정이나 질서유지를 원하는 일반대중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그야말로 수구의 전형이다. 나는 불행하게도 이문열에게서 이러한 수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순수냐! 참여냐! 예술가 본인에게도 그렇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아직까지 시원하게 결론나지 않은 문제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술가는 예술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기가 노는 물은 따로 정해져 있다. 팔방미인치고 제대로 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작가적 역량으로 볼 때 그 누구도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이문열이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지향을 공표하는 것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마음에 안 들수는 있어도 말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왕 참여한다면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논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문열은 작품 따로 현실 따로 놀고 있다. 작품속에서 나타나는 논리정연함이 현실에서는 왜 어거지로만 표현되는지 정말 알수 없는 일이다. 그가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그래서 수구반동이라고 욕 먹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주장과 비판이 있어야 하나 너무나 자주 나는 그의 주장들에서 단지 터무니없다는 느낌을 넘어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하는 것이다.
건전하고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의 진면목을 보고싶다. 지금의 이문열에게서 과연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