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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 Be Happy - ... Falling in Love with Movie
조수미 (Sumi Jo) 노래 / 워너뮤직(WEA)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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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다닐 때 기억이 새롭다. 신입생이었을 시절 친구들 하숙집에 드나들면서 함께 밤을 지새곤 하였다. 지역에서 그때까지 살다가 서울에 올라온 나로서는 딴데 갈 곳이 마땅치 않았고 또 온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놀 수 있는 비용도 가지지 못했다. 이래저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같이 올라온 친구놈들과 어울리는 것이었는데 그래봐야 주로 한 것은 고작 밤 늦게까지 또는 밤새도록 컵라면을 안주삼고 소주를 곁들이면서 대화하는 것이었다. 결론도 없고 정답도 없는 대화였지만 그래도 다들 이제는 대학생이라는 생각들이 앞서 나름으로 아주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석하게 된 것이 음악이었다, 사실 고등학생때까지는 음악이라곤 전혀 몰랐다. 오다가다 등하교하면서 버스안에서 전해듣게 되는 유행가 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부르는 교가가 전부였다.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시기였지만 나는 그런 걸 유별나게 경험한 적이 없었다. 워낙이 천성이 둔감하고 무디고 또 투박하였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내가 음악다운 음악을 접하면서 느끼고 빠져들었던 시기는 대학생이 되고나서가 본격적이었다


잔잔하고 부드럽고 감미롭고 뭔가 아주 특별한 사연을 노래하는 듯한 그런 음악들이었다. 내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인 것도 분명 크게 작용하였으리라! 사실이었다. 이런 음악도 있다니!  나는 그렇게 감흥을 받았다.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움! 거기다가 밤 으슥한 때 나를 사로잡은 감상적인 분위기 탓에 나는 그당시 음악에 더더욱 진하게 녹아들 수 있었다. 내가 들었던 노래는 음악에 제법 조예가 있던 친구가 틈틈이 따로 녹음하여 보관하고 있던 흘러간 영화음악이었다. 발라드풍의 팝과, 샹송, 칸쪼네 등등이 골고루 섞여 있었는데 나로서는 음악도 이렇게 공을 들여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그때 깨달았다. 조수미의 이번 음반은 이미 대중에게 널리 공개된 곡들이다. 물론 나는 처음 듣는 생소한 것들도 많았다. 조수미의 이번 곡을 들으면서 나는 불현듯 대학 신입생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음악에 대해 처음으로 호기심다음 호기심을 가졌던 그 시절 말이다. 그만큼 이번 곡들은 나의 초심을 자극하는 애잔하고 감미로운 곡들로 채워져 있다.


조수미의 특징이라고 하면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오히려 청아하고 명쾌해지는 목소리인데 이번에는 많이 자제하였다. 작은 체구에서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경이적인 울림은 찾을 수 없다. 의도적으로 가라앉히며 잦아드려 애쓰고 있다. 자신이 가진 특기를 죽임으로써 또다른 자신을 표현하는 역설이라고 할까! 그녀의 다른 색깔 한가지를 발견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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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트 40곡
나훈아 노래 / 아라기획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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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나는 언제부터 그를 알게 되었을까? 나 어릴 때는 그가 한창 맹활약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도무지 나에게 포착되지 않았다. 당시 텔레비젼이 없었던 집안에서 내가 그를 어디에서 어린 나이에 접할수 있었겠는가. 그러다가 조금 더 세월이 흐르면서 유행가에 익숙해지고 또 즐겨 따라 부르게 되면서 조금씩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그만한 가수가 없다느니, 뭐니뭐니해도 나훈아가 최고다, 다른 가수는 가수도 아니다 등등 그를 찬양하고 칭송하는 경탄의  메세지는 찬란하고 떠들썩했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로는 도저히 더 이상 어떻게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최상의 것들이었다. 노래 실력으로는 단연 최고였고 타인의 도전을 결코 용서치 않았다. 본인도 그렇게 여겼으리라.


하지만 그에 대해 아쉬워하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노래 솜씨는 귀신도 못 당하는데 생긴 게 영 시원치 않아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의 라이벌이 있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 라이벌은 꽤나 준수한 용모를 하고 있다. 막상막하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두 사람이었지만 한해를 정리하는 여러 시상식에선 대부분 그 라이벌이 영광의 윗자리를 차지하였고 나훈아는 그날만큼에서는 항상 박수를 쳐주는 입장에 머물렀다. 내가 바라보기에 그 라이벌은 용모도 뛰어났지만 또 솔직히 노래도 잘 불렀다. 그 라이벌은 결코 노래 못하는 가수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개방화, 서구화 바람을 타고 그러한 시대 조류를 무대를 통하여 적절하게 발산하고 표현함으로써 즉각적이고 열광적인 환호와 사랑을 받았으리라. 단순히 나훈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용모 하나때문에 나훈아를 제쳐두고 그 라이벌이 영광을 차지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으로 본다. 물론 나훈아 본인은 아마 그러한 느낌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였을 것이고 그런 만큼 그 역시 자신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정당하지는 않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수없이 존재하였던 가수들은 물러났지만 노래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생존해 간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다. 하지만 그 노래와 함께 나훈아는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고 왕성하게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무대를 볼라치면 노래와 가수와 관객이 한 호흡으로 일체가 되어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도대체 나훈아가 소름끼치도록 뿜어대는 무대위에서의 카리스마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노래에 대한 자신감, 아직도 확인되고 있는 인기, 방송사마다 앞다투어 중계해주는 상품성 등등 이 모든 것들이 그를 무대위에서 그렇게 미치지 않고는 견딜수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이것뿐일까?  다 맞는 말이지만 나는 본질적인 것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세월과 함께 그도 나이를 먹었고 연륜이 쌓여감에 따라 세상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으리라. 결국 그는 가수였고 세속의 자잘한 평판과 요란스런 이벤트에 휩쓸리는 것을 거부하고 그저 노래에만 승부를 걸고자 했던 것이다. 오로지 노래! 가수는 노래로서 모든 것을 표현하여야 하며 관객과의 소통은 결국 노래를 통한 만남만이 가능하고 또 진실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리라!


음반이 나온지는 2년정도 되었다. 그는 이미 절정에서는 한발짝 비켜 서 있다. 이는 본인도, 관객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체력도 한계가 있고 신체의 생명력도 이미 노화되었으며 따라서 지금은 파워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젊은 날에는 자연스럽고 유려하게 불러대던 그 곡들도 이제는 간혹 막히기도 하고 힘에 부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세속의 부질없고 잡스러은 수군거림을 일찌감치 물리치고 오로지 노래만으로 관객과 진실되게 만나고자 하는 지금 시대의 나훈아가 들려주는 노래에서 나는 더욱더 강렬한 울림과 애절한 떨림을 느끼는 것이다. 난데없이 전설로 남겠다면서 자청하여 무대에서 은퇴하는 비뚤어진 스타의식에 함몰되기 보다는 노래를 사랑하고 노래할 힘이 있고 그의 노래를 찾는 관객들이 있다면 죽는날까지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그를 보고 싶다. 그는 지금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노래를 부르다가 무대위에서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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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6-2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훈아의 그때 그 라이벌은 지금 지방의 밤무대를 전전하며 있지요. 하지만 나훈아는 지금도 큰 공연장에서 노랠 부릅니다. 그리고 나훈아 앞에는 술꾼들이 아니라, 나이 지긋하신 팬들이 환호하구요.
우리 형제도 나훈아의 팬입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곡인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를 가장 좋아하지요.
 
임형주 - Silver Rain
임형주 노래 / 신나라뮤직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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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가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스타일일수 있고 그가 몸담고 있는 팝페라가 가지는 속성일 수가 있다. 어쨌든 임형주는 맑다. 이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임형주 본인이 혹시라도 내 색깔은 맑음이 아니라 탁함, 흐림, 또는 무거움이라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의 맑음은 그의 음악을 접한 대중들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맑음으로 정체화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작업이 아니며 임형주와 대중의 교감이 이루어 진 그 찰라적인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고 앞으로 임형주를 접하게 될 대중들에 의해서도 예외없이 거듭 확인될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확언한다


임형주의 맑음은 그냥 맑음이 아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긴다고 하였던가? 나는 임형주의 맑음속에서 그 어떤 격한 말과 가눌 수 없는 몸부림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애절함을 포착하였으니 그의 맑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게 표현되어진 애절함이었던 것이다. 잔잔한 표정이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단아하고 연약한 모습이지만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열정적인 몸짓을 보았으며, 은근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에서는 두발로 멀쩡히 마냥 서 있을수 없도록 하는 떨림의 호소를 느꼈던 것이다. 그의 맑음은 창과 화살이 되어 나의 심장을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맑음과 그 맑음을 통해 전해지는 애절함! 우리는 흔히 어린 사람이 기량은 뛰어날 수 있을 지언정 삶의 원숙미를 전달할 수 있을려면 연륜이 필요하다고 쉽게 얘기하곤 하는데 임형주 앞에서는 이게 모두 다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였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임형주의 맑음과 애절함! 나는 그의 출현 이전에 결코 경험한 적이 없었고 장차 어느 누구라도 임형주만큼의 감흥을 만들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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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송이 장미 - 한국인이 좋아하는 러시아 로망스 베스트
Various Artists 노래 / 아울로스(Aulos Media)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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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내게 언제나 차가웠다. 눈과 얼음, 겨울바람, 시베리아 벌판, 오랜 독재시대에 걸친 냉전의 강대국,  그리고 무엇보다 하얀얼굴에 발그스레하게 상기된 차가운 눈동자를 가진 러시아 사람들을 대하면 달리 가질수 있는 느낌은 없었다. 단지 차갑다는 것과 그 차가움이 무섭게 느껴진다는 것! 지금까지 나의 의식세계를 지배해 온 러시아에 대한 그리고 러시아인에 대한 나의 감상은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러시아도 사람사는 곳이며 그 사람들 몸속에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차가울수록 그 차가움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은 더더욱 진실된 것이며 따스함에 대한 열망은 한층 더 간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나는 이 음반을 통해서 새삼스레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느리든 빠르든, 경쾌하든 차분하든 결국 러시아 음악에서 뿜어져 나온 온기는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어 러시아와 러시아인에 대한 나의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일시에 녹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 러시아가 차가운 나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따스함은 용광로의 절대적인 뜨거움이나 한여름 뙤약볕의 끝간데 없는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다 타다 남은 장작불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한토막 숯불의 온기라고나 할까?. 결코 넘치지 않지만 한사람 정도의 차가움을 녹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따스함! 이게 바로 러시아 음악의 따스함이며 실제 러시아에서 나는 이러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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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 - Salley Garden
임형주 노래 / 미디어신나라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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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는 세상의 어떤 특별한 지식을 가진 부류의 사람들이 어느 누군가를 향해 칭송하는 말에서 천상의 목소리란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최상의 칭송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천상의 목소리라는 칭송을 받은 어떤 이의 목소리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기회가 닿는다면 꼭 들어보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조수미였고 다짐이 현실로 이루어 지던 날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솔직히 다른 소프라노와 비교해서 조수미의 무엇이 그리 유별난지 그리고 무슨 그리 큰 차이나는 부분이 있는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나의 무식함때문에 그렇다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나는 내 입장에서 내 능력의 현실치에서 느끼고 판단할 뿐이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조수미를 비롯하여 성악가가 내지르는 소리는 자연스런운 목소리가 아니고 만들어내는 가공의 소리이다. 성악의 창법에서 연유하는 이러한 목소리 비틀기는 소위 음계를 확장시키고 성량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이런 인공의 목소리 변조행위에 대해서는 도무지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가 없다. 독자 여러분들도 조금 더 솔직해 보자. 성악의 고급스런 분위기, 찬란한 무대장치를 뇌리에서 지우고 과연 정말 성악가의 노래에서 테크닉을 제외하고 노래 그 자체에서 여러분이 느끼는 감흥이라는 것이 있는지 말이다. 오히려 노래에서 감동을 찾을려면 성악가 아닌 일반 대중가수에서 훨씬 더 빈번하게,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대중가수들이 자연의 목소리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열창하는 것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것이다


임형주는 심플하다. 요란하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으며 평화로운 시골마을의 순수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이 그는 스스로 그런한 상태에 자신을 맡기며 이를 인위적으로 바꿀려고 하지 않으니 듣는 사람도 자연스럽고 그래서 전혀 부담이 없다. 또한 무엇보다 임형주의 가장 큰 감흥은 맑다는 것이다. 천상의 목소리는 조수미류가 아닌 바로 임형주였던 것이다. 목소리에서 군더더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오염되지 않은 깨끗함은 지상에 내려온 천상의 사자에 다름 아니니 그가 부르는 노래가 바로 천상의 목소리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임형주는 최근에 결정된 나의 선택 중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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