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유방 1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달궁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항우는 이미 갖춘 사람이다. 좀처럼 틈을 발견할 수 없다. 무예도 출중하고 체계적인 조직을 이끌면서 리더로서의 훈련도 쌓았다. 그리고 숙부인 항량을 따라 다니면서 적지 않은 전투경험을 가진 참전용사로서 찬란한 전공을 세운다. 아무리 숙부라 한들 자질도 능력도 그리고 가능성도 없는 존재를 그저 조카라는 이유로 무작정 믿고 하염없이 키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숙부 항량이 조카 항우를 기르는 것은 인척관계를 떠나 그만큼 항우가 잘난 인물이라는 뜻이고 또한 자신이 조금 더 이끌어주면 앞으로 더 잘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항우는 숙부의 기대를 고스란히 충족시키며 주변사람들의 인정속에서 어린 나이에 이미 충분히 우뚝 솟아 올라버렸다. 결국 진작부터 너무나 잘나버린 항우는 든든한 숙부의 후원마저 있었기에 주변 사람의 도움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고 굳이 애써가며 사람을 가까이에 둘 절실함이 없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하면 기브 앤 테이크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유방은 한마디로 백수요 건달이다. 스스로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기는커녕 자신의 의식주조차 해결할 수 없었고 또 그럴 의지도 없었다. 게다가 백수인 주제에 무슨 기는 그렇게 펄펄 살아서인지 온갖 말썽과 소란을 피우면서 도망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듯이 묘하게도 유방에게는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완전무결하고 매사에 철저한 사람에게는 쉽사리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허술하고 분란만 일으키며 그렇다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재물이나 배경도 없는 유방이지만 낙천적이며 호방한 기질은 타인으로 하여금 한번 다가가서 얘기하고 싶고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를 유발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유방 본인도 보잘것 없는 자신이 결국 믿을 것이라고는 오직 사람밖에 없음을 무의식 중에 인지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유방에게는 자의든 타의든 사람이 모였고 또한 그 역시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을 내쫓을 이유가 없었다


항우와 유방을 바라보는 난세의 그당시 사람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을 조속히 정비하고 참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주변을 압도하는 탁월하고 출중한 항우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이 올바르다고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빈틈은 많지만 그런 유방의 부족함을 자신이 채워가며 세상 바로잡기에 일정한 역할을 뚜렷하게 하기를 바랄 것인가? 잘나면 잘난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하류와 이류들도 그렇게 생긴대로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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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7-0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세상을 움직이지 않을까요? 항우는 사람 없는 세상을 움직이려 했고
유방은 사람 안의 세상을 움직이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아마도...

2004-07-11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yonara 2004-07-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예모 감독의 걸작 '서초패왕'은 항우와 우미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 단순무식하지만 우직하고 남자다운 항우에 매료되었지요.
지금도 그때의 감흥이 변치 않아서 유방은 여전히 얍삽해 보이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