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실은 - 디알북
박대령 지음 / 데일리서프라이즈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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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반드시 존재한다. 세상에 진실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섣불리 한탄할 일은 아니다. 다만 진실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다. 하나의 사실이 태초에 있는 그대로 온전히 제 모습을 지켜내기에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악마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 악마다. 스스럼없이 자기 무리들의 이익추구를 위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세력들이 있다. 진실이 오히려 조작되었다며 그 진실마저 폐기시키려 날뛰는 무리들이 있다. 그렇다면 분명 악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 한점 부끄러울 게 없는 진실은 타고난 성향상 그저 진실하게 처신할 뿐 어떤 대응이나 방어에도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오히려 속이려고 처음부터 작정한 악마들은 너무나 치밀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을 죽이고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려는 그들의 감쪽같은 전략과 선전에 세상 사람들은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 너무나도 간단하게 농락당한다.


그렇지만 진실은 끝끝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서 있다. 일순간 혹은 때때로 예상외로 길게 허위와 거짓에 기만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언젠가는 그 진실한 가치를 발산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진실 자체가 가지는 내재된 속성이다. 특별한 힘을 들여 몸부림치고 인위적으로 물리적인 노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일시적인 선동과 교묘한 현혹으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현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어리석지는 않다. 세상 일에 무관심하고  속절없이 분위기에 사정없이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진작에 다 알고 있으며 결국 언젠가 결정적일 때 반드시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진실 지향적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나는 그런 믿음을 한시라도 포기한 적이 없다


이 나라 거대 언론은 하나같이 보수를 지향한다. 거대하다는 것은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며 그래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 땅 가진 자들의 대부분이 자기들이 가진 것을 지키려 보수주의로 무장하듯이 언론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간사의 필연적인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는 더 이상 보수가 아니다. 제대로 된 보수는 허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잘못은 거침없이 반성하고 인정할 줄 안다. 그리고 깨끗하게 바로잡으려 행동에 나선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무조건 자기들만 선이고 나머지는 악이다.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이익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안위와 사주의 이익을 위해 언론을 사적 도구로 이용하여 여론을 호도한다. 언론이 공적인 임무를 방기하고 사적인 영리추구를 위한 사사로운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바로 대한민국의 언론이다. 조중동에 의해 터무니없이 왜곡되어진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똑바로 한번 확인하시라! 이 책에 나와 있다. 이제 껍데기는 그만 가라! 그리고 악마들도 물러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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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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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기본적으로 일어나면 안된다. 너무나 반인간적이고 철저히 반도덕적이다. 전쟁 후에 벌어지는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반인륜적인 행태를 직접 보고 겪고 들으면서 뒤늦게 전쟁 발발을 후회한 들 이미 소용이 없다. 이건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쟁은  역사의 시작과 아울러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이에 덩달아 우리 인간들의 후회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더니 하필이면 피해야 할 역사마저 답습하는 우리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징비록을 읽으면서 느낀 점 한가지는 이거다. 국란 중에 전쟁터에서 싸우고 기꺼이 목숨을 바쳐야 할 군인들이 그 전쟁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무리가 왜 이다지도 많은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한 개인의 생명 본능에 그  원인을 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해봐야 질 것은 뻔하니 개죽음은 피하자는 지극히 이해타산적 심리에서만 찾을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의 군인들은 전쟁 중임에도 그렇게 부지기수로 도망다녔던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전투에 기꺼이 참여할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한가롭게 무슨 명분이냐고 따질 분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을 거는 일에 이를 무시하면서 원인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라가 나라꼴을 하고 지도자가 정당성을 가지고 백성을 위하는 통치를 하였다면 그 나라와 지도자 밑에 있는 백성들은 기꺼이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 또 지도자를 구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과 선조는 백성들로 하여금 이런 명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선정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흔들림없는 사실이다


역으로 선종과 조선이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도록 하였다면 전쟁은 애시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혹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하였더라도 백성은 제 나라 제 임금을 팽개쳐 두고 줄행랑 치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일반 백성이 그대로 군인이 되는 그 당시에 승리의 가망없는 전쟁, 목숨 바쳐 당당히 싸울 사명감을 가질 수 없는 전쟁에서 조선의 백성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선조와 관료들은 무슨 수로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불현듯 두렵다. 이 시대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 군인들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그대로 전쟁터로 달려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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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 왜
강만길 외 지음 / 서해문집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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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다.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쪽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패배한 쪽의 반역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서의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궁예는 왕건에게 패퇴하고 도망다니면서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민가에서 무를 훔쳐 먹다가 백성들에게 발각되어 돌로 맞아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아무리 몰락한 군주라 하더라도 죽음의 처참함이 그 정도로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거라며 승리한 당사자의 왜곡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본 서는 우리가 대충 교과서를 통하여 외피적으로만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그 내부속까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실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우리가 다 알고 있다는 착각속에 빠져 있는 분야 중의 하나가 바로 역사다. 삼국통일은 누가 했느니, 고려는 누가 건국했느니,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장수는 누구인지 등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 알만큼 알고 있다는 자만감과 자부심에 홀려 있는 게 우리 자신들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꼼꼼이 따져 보고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거나 심지어는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 역사 중 고대사 또는 근대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럼 현대사는 정당하게 또는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평가되어 지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살고 있고 버젓이 두눈 똑똑히 뜨고 바라보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왜곡은 가해지고 진실은 가려지며 어처구니 없는 평가가 따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역사란 정말 정답이 없는 것인가?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사관에 따라 달리 보여지는 구석은 있을지언정 정말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타당한 사실이라 여겨지는 것조차도 버젓이 뒤틀리고 삐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단언하건대 지금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가 아니다. 정확히 기득권자의 역사다.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장치를 장악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 배후의 세력이 조정하고 평가하며 단죄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들은 과거의 승리를 바탕으로 기득권을 형성하여 악착같이 유지해온 변형된 승자에 다름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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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반의 역사 - 역사는 그들을 역모자라 불렀다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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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반이라고 하는 것은 현존질서 또는 체제에 불만을 품고 이를 뒤집어 엎고 새로운 질서나 체제를 수립할 음모 또는 그러한 음모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모반을 일으키는 자는 일단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려고 하는 것이다. 작게는 자신의 이익에서부터 무언가 수지가 안맞는 부분이 있으며 크게는 백성의 이로움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수탈되고 있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가 느끼기에 지금의 세상은 분명히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나서지 않기에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으며, 남이 나서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세상이 너무 뒤틀려 있어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니 결국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명분을 가지고 모반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모반은 결국 실패를 의미하고 있다. 모반이라는 말은 그 모반을 진압한 자가 모반을 일으킨 자의 무모하고 헛된 시도에 대해 붙이는 실패의 이름이다. 그러니 당사자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마음속에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선언하는 이름이다. 자신도 반역으로 집권했을 지도 모를 지배자는 자신의 것은 정당한 것이고 자신 이외의 것은 바로 모반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이야 말로 집권기반을 강화하고 권력의 정당서을 확보하기 위한 술수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것이든 출발은 똑같이 모반이지만 성공이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영웅이 되기도 하고 숱하게는 역적도 되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모반도 종류가 여러가지 있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어중이 떠중이 모여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가담한 자도 있고, 자기 또한 이미 충분한 권력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더 큰 영화를 향유하기 위해 덤벼던 자도 있었다. 그런데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오늘날의 판단으로 먼 옛날의 그 모반이 성공하였더라면 우리 역사는 한단계 전진하지 않았을까 하는 모반이 있다. 그래서 그 실패가 못내 아쉽고 분하기까지 한 모반이 잇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종류의 모반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절절히 배여 있는 것이고 실패든 성공이든 모두 다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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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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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가들이 부르기 좋게 붙인 말일까. 아니면 정말로 엇비슷한 예술적 경지를 개척한 무리들을 한 묶음으로 분류하다 보니 우연찮게 돌림말로 이름지은 것일까. 우리가 국사에서 배웠듯이 흔히 3원이라 하면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그리고 혜원 신윤복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네임밸류는 사뭇 다르다. 당연히 단원 김홍도는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인 동시에 단군이래 한민족 5천년을 통틀어 또한 최고로 꼽힌다(물론 이의제기자도 있다). 오원 장승업은 조선시대 3대 화가다. 단원 김홍도, 현동자 안견과 더불어서 말이다. 그런데 혜원은 그냥 3원 중 하나이다. 호에 원이라는 공통 글자가 들어가서 다른 대가들과 두루뭉실하게 어울리게 된 흔적이 역력하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어떤 오해에서 빚어진 편견이든 아니면 무지몽매한 중생들의 무식의 소치든 아무튼 우리 일반인들 사이에 각인된 혜원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대충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런데 혜원에게 이보다 더 불행한 것은 이러한 시야를 확 바꿔 줄 후대의 자손들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시대까지는 말이다. 그림 소재가 대체로 이성간 유희, 남성의 관음증, 심야의 불륜 등을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보기에는 흥미로우나 파헤치기에는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일까?


게다가 혜원은 워낙이 베일에 가려진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단원은 졸년을 알 수 없으나 혜원은 졸년뿐만 아니라 그의 사회활동 자체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따라서 그의 예술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오로지 세상에 남겨진 작품뿐이다. 그림의 소재로 인하여 지배계급 또는 사회주류로부터 배척당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동시대의 혜원을 탐구하고자 변변한 평론 한마디 남겼을 리 없고, 당대에 남겨진 게 없으니 후대의 연구성과도 자연 박약할 수 밖에....


본서도 혜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니다. 단지 혜원의 그림을 통해 그 당시 사회상을 개괄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 본디 인물 평전을 기대한 나에게는 그런 점에서 약간은 불만이나 이 땅 혜원에 대한 척박한 인정을 감안할 때 그나마 저자의 이런 성의가 고맙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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