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 & 로크 : 국가를 계약하라 지식인마을 22
문지영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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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의 저작들에서 공포는 모든 개인적 권리의 뿌리이자 도덕성의 근거이고, 나아가 인간으로 하여금 평화를 추구하게 만드는 동기로 나타난다. 특히 『리바이어던』에서 공포는 사람들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국가를 계약하게 만드는 감정이며, 절대적인 리바이어던의 힘을 요구하고 그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감정이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공포의 대상을 제거하거나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41쪽

가장 강력한 자들이 그러한 해악이나 비행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한 것들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은 즉각적으로 분열과 반란을 조장하는 목소리로 들릴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인간이 자연상태를 떠나 사회에 들어가면서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법률의 구속하에 있어야 하지만 그 한 사람만은 자연상태에서 누리던 모든 자유를 여전히 보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권력에 의해서 증대시키고 또 무절제하게 사용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인간이 스컹크나 여우로부터 받을지도 모르는 해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심을 하면서도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데는 만족하거나, 아니 심지어 안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통치론』제7장 93절)-44-45쪽

우선 홉스의 사상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공리를 의미있게 비교할 수 있다거나 소수의 공리가 더 큰 집단 이익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시사가 없다. 더욱이 개인주의적 전제에 충실했던 그는, 단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이유로 어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에 공리주의는 바로 그와 같은 도덕적 의무의 가능성을 핵심으로 했고, 따라서 공리주의자들이 홉스에게서 빌려오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의 사회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의 권리 혹은 권한에 관한 설명에 한정되었다. 무엇이 사회적 목표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그들 자신의 설명을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홉스에 대한 공리주의적 지지의 한계였다. -47쪽

(홉스에 대한 평가) 비록 절대군주를 옹호하긴 했지만, 군주의 절대권력이 조물주인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약에 참여한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군주주권론자나 왕권신수설 주창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다른 한편 국가의 발생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계약으로 설명하고 인민주권론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긴 했지만, 그 모든 논의가 결국 강력한 리바이어던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대의정부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력들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었다. -54쪽

우선 "권리의 상호 양도"로 정의되는 계약 과정에서, 계약 당사자들은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따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자연적 권리를 잃게 되며, 계약 이후 각 개인은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유일하고 정당한 재판관으로서의 자격을 잃는다. (중략) 각 개인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한다는 전제하에, 사실상 모든 권리를 포기 혹은 양도하는 셈이 된다.
(중략)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개인이 엄청난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말) 홉스가 설정한 자연상태에서는 생산 활동도 소유도 없고, 학문이나 예술, 심지어 정의, 불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양도한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것으로 미리 가지고 있지 않은 권리에 대해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다시말해, 홉스의 자연상태에서 각 개인이 노동권, 소유권, 지적 재산권, 학문 및 예술의 자유 등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사회계약의 과정에서 그러한 권리를 잃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69쪽

<홉스가 말한 국가를 약화시키거나 해체시키는 원인>
1.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든 불완전한 제도. 특히 절대권력의 결여.
2. 예컨대 "모든 사적 개인이 선악 행위의 판단자다", "사람이 그의 양심에 반하여 한 행위는 무엇이든지 죄다", "신앙과 신성함은 연구하고 이성적으로 추리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영감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주입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 "주권자도 시민법에 복종해야 한다.", "모든 사적 개인은 자신의 재산에 대해 주권자의 권리를 배제하는 절대적 권리가 있다.", "주권은 분할될 수 있다." 등과 같은 선동적인 주의주장들이 끼치는 해독.
3. 이웃 나라의 통치를 모방하려는 태도.
4.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및 정치 관련 서적을 읽도록 허용하는 것.
(계속)-86-87쪽

(이어서)
5. 시민적 권위와 영적인 권위를 구분하여 신민들에게 복종해야 할 두 개의 왕국을 제시하는 것.
6. 둘 이상의 통치 형태를 섞은 혼합정치체제.
7. 국가 재정, 특히 전쟁을 수행할 때 필요한 재원 조달의 어려움.
8. 한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부의 독점.
9. 과다하게 인기를 끄는 유력한 신민.
10. 지나치게 커진 대도시와 군대의 과도한 육성 그리고 과다한 조합.
11. 정치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에게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
12. 영토 확장의 야욕과 불필요한 정복, 안일함과 낭비. -86-87쪽

‘공동체 구성원의 복지’라는 신탁의 목적을 수행하는데 실패한 정부에 대해 국민이 저항권을 갖는다고 본 로크의 주장은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확산에 기여했다. 저항권에 대한 로크의 정당화는 정부의 권력행사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증하는 것이다. 이제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며 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부는, 단순히 나쁜 것이 아니라, 타도하고 전복해야 한다는 것이다.-109쪽

홉스에게 자연법은 자연상태의 공포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계약을 맺도록 개인을 이끄는 정도의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로크에게 자연법은 사회계약에 이르도록 이끌뿐만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자연상태에서도 각 개인이 타인에게 속하는 재산권과 자연법을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권을 존중하도록 자신의 의지를 제약하게 한다. 그리고 각 개인은 그의 이성에 따라 사는 한 자연법을 알 수 있고 또 준수한다. -122쪽

홉스의 자연상태를 특징짓는 공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것인데 비해 로크의 자연상태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위험은 권리들의 충돌 가능성과, 무엇보다 그것을 조정할 권위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26쪽

구성원 개인의 동의와 위임을 기원으로 공동체 내의 입법권(자)과 집행권(자)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지배자이기보다 계약의 직접적인 구속을 받으면서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일종의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계약 이후에도 로크의 개인은 평등한 지위와 자유를 잃지 않는다. 나 자신의 동의가 없는 한 어느 누구도 나를 정당하게 지배할 수 없고, 또 나는 거기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보면,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게 되는 지배-복종이란 결국 내가 나를 지배하고 또 내가 나에게 복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134쪽

로크의 사회계약론에서 시사되는 정부와 인민 간의 관계는 홉스에게서 살펴본 리바이어던과 신민 간의 관계를 정확히 뒤집어서 보여준다. 홉스의 사회계약은 신민들 상호간에 맺어지는 것으로서, 리바이어던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으로 인한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신민들에 대해 일체 의무도지지 않으며 천하무적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신탁으로 설명되는 로크의 통치계약은 신탁의 수혜자로서 인민이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탁자인 정부에 대해 아무런 의무는 없이 권리만 주장하고, 심지어 정부의 폐지를 결정할 정도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다. 인민은 다만 원초적인 사회계약이 요구하는 의무, 곧 공동체를 유지하고 보존할 의무를 서로에 대해 질뿐이다. -141-142쪽

<로크 : 입법권의 범위 제한 내용>
1. 입법권은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절대적, 자의적으로 다룰 수 있는 권력이 아니며 또 그러한 권력이 될 수도 없다. 입법권은 사회의 공공선에 의해 최대한 제한된다. 그것은 보존 이외에 그 밖의 어떠한 목적도 가지지 않는 권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민들을 죽이고, 노예로 삼고, 의도적으로 궁핍하게 만드는 권리를 결코 가지고 있지 않다.
2. 입법권 또는 최고의 권위는 즉흥적이고 자의적인 명령을 통해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것은 공포된 영속적인 법, 그리고 널리 알려진, 권한을 위임받은 재판관에 의해서 정의를 시행하고 신민들의 권리를 결정해야 한다.
3. 최고의 권력은 어떤 사람으로부터는 그의 재산의 일부를 그의 동의 없이 취할 수 없다. 입법부는 인민들 스스로가 표명하든 아니면 그들의 대표자들이 표명하든, 인민의 동의 없이 그들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4. 입법부는 법률을 제정할 권력을 그 밖의 다른 사람 또는 기관에 이전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민이 그 권력을 설정한 곳 이외의 다른 곳에 설정해서는 안 된다. -145쪽

<로크의 논리전개과정>
1.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로크의 개인들은 이미 신이 부여한 자연권의 주체로서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자신의 소유물과 인신을 처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2. 자연상태의 개인들은 자신의 복지와 안전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계약을 맺고 국가를 수립했다.
3. 계약 후 정치사회에서는 입법권이 단일한 국가 최고 권력으로 설정되지만, 입법권은 인민의 복지라는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활동할 수 있는, 단지 신탁된 권력이다.
4. 그러므로 입법권을 담당한 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신탁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이 발견될 때 인민은 입법부를 폐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151쪽

<로크 : 계약된 정부가 해체되는 경우>
1. 국가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입법부를 변경할 때, 예컨대 사회의 의지인 법률을 자의적인 의지로 대체하거나 정해진 시기에 입법부가 집회를 갖는 것 혹은 그것이 설립된 목적에 의거하여 활동하는 것을 방해할 경우, 자의적인 권력에 의해서 인민의 동의 없이 또는 인민의 공통된 이익에 반해 선거인단이나 선거 방법을 변경할 경우, 군주나 입법부가 인민을 외국 세력에 넘겨서 예속시킬 경우 등.
2. 최고의 집행권을 가진 자가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 하고 방기함으로써 이미 제정된 법률이 더 이상 집행될 수 없을 때.
3. 입법부와 군주, 둘 중 어느 한편이 그들의 신탁에 반해서 행동할 때. 예컨대 신민 혹은 공동체 구성원의 재산을 침해하고 자신들이나 공동체의 특정 부분을 인민의 생명, 자유, 재산의 주인 또는 자의적인 처분자로 만들고자 기도할 경우 등. -153쪽

"탄압, 음모 또는 외국에의 양도로 자신들의 예전 입법부가 없어졌을 때 인민들에게 새로운 입법부를 설립함으로써 자신들의 삶에 대비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늦어서 해악을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을 때 구제를 기대해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먼저 그들에게 노예가 되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자유를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사슬로 묶인 후에 그들에게 자유인처럼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구제라기보다는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폭정에 완전히 속박될 때까지 그것으로부터 도망갈 수단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폭정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폭정으로부터 벗어날 권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방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통치론』제19장 220절)-153-154쪽

"입법부가 사회에 그토록 필요한, 그리고 인민의 안전과 보존이 걸려 있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무력에 의해서 방해받을 경우, 인민은 그것을 무력에 의해서 제거할 권리가 있다. 상황과 조건을 불문하고 권한 없는 힘의 사용에 대한 진정한 치유책은 힘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권한 없이 힘을 사용하는 자는 항상 침략자로서 전쟁상태를 자초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와 같이 취급되어 마땅하다."(『통치론』제13장 155절)-154쪽

"상대방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 가격을 막는 방패만을 사용하는 자나 공격자의 오만함과 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손에 칼을 들지 않은 채 공손한 자세로 대처하는 자는 즉각적으로 저항의 밑천이 떨어짐은 물론 그러한 방어가 그 자신에게 오히려 악화된 사태만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따라서 저항을 해도 좋은 사람은 반드시 가격을 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통치론』제19장 235절)-154-155쪽

"정부의 목적은 인류의 복지다. 그렇다면 인민이 항상 폭군의 무제한적인 의지에 신음하는 것과 통치자가 권력을 방만하게 행사할 때 그리고 권력을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서 사용할 때 종종 저항하는 것 중 과연 어느 편이 인류에게 최선인가?"(『통치론』제19장 229절)-157-158쪽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인민이 재판관이라고 답변하겠다. 수탁자 또는 대리인이 그에게 맡겨진 신탁에 따라 잘처신하고 있는지는 대리를 위임한 사람, 곧 위임했기 때문에 그가 신탁에 반해 행동하면 그를 해임할 권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판단하겠는가?"(『통치론』제19장 240절)-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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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주변엔 의외로(?) 보수주의자들이 많다. 아니 본인의 정치성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굳이 구분하지 않지만, 선거날만 되면 보수 - 엄밀히 표를 받는 이는 보수가 아니라 그냥 꼴통인 경우가 절반 이상 - 에 한 표를 던지는 이들이 많다. 내 아버지는 지금 촛불시위대의 정반대에 위치한 이들의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에,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수십년 경찰에 몸담은 위인이다. 고엽제 어쩌고 하는 전우회에는 가입했는지는 모르겠다. 무식하지도 무대뽀도 아닌 분이지만, 선거날이면 언제나 박정희-전두환-이회창 라인을 달려오신 분이시다. 지금은 아버지 혼자 멀리 어디가서 살고 계신지라 전화한지도 만난지도 수년이 지나 이번 대선에서 누굴 찍었는지 모르지만, 둘 중 하나다. 이명박 아니면 이회창. 

  열여섯번째 촛불집회(내 기준)에 나와 함께 처음 나간 A는 대선 때 이회창을 찍었다. A의 정치성이 보수여서가 아니라, 마땅히 정치성이 없었고, 이명박은 아닌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 A의 아버지가 이회창 지지자였기에 A 역시 아버지를 따라 이회창을 찍었다. 그리고 이회창이 떨어졌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로부터 네 달이 지났고, A의 아버지는 A가 촛불집회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칭찬해줬다고 한다. A는 무서워서 그동안 못나갔지만 함께 처음 나가고는 밤을 새자는 말을 꺼내는 바람에 나를 당황케했다. 무섭지 않고 오히려 재밌었다고. 촛불집회를 오래전부터 지지해왔으나 무서워서 반, 귀찮아서 반, 못나가고 안나갔던 A는 나보고 또 나가자고 한다. -_-

  직업상 만나는 B는 또 부모님이 이명박 지지자라 이명박을 찍었는데, 지금의 촛불집회를 지지하면서도, 한편으로 관심은 또 별로 없는 듯 하다. 그러니까 엄밀하게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구호들에는 동의하면서도, 누군가 알려주기 전에는 혼자서는 관심갖지 않는 유형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지만 딱히 목소리 높여 반대하지는 않는달까. 또 밴드에서 기타를 쳤던 C는 명백히 자신의 정치성을 보수라고 밝혔는데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거나 관심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주변인들에 비해 과도하리만큼 촛불집회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밤을 새기를 밥먹듯 했고, 군화발과 곤봉세례만 피했지 나머지는 다 당했다. 대선 때 이명박을 찍었는지 이회창을 찍었는지까지는 묻지 않았지만 그의 정치성은 오래전부터 봐왔지만 보수가 확실하다.

  나는 정치성이 상대적으로 희미하거나 없는 이들은 제외하고, C의 행동을 주목한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친박연대 회원들까지 박근혜를 떠나 촛불집회에 참석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나오는지는 모르겠는데 몇주전 신문에서 본 바로는 친박연대는 현장에 나오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문제가 진보와 보수의 문제로 치환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다른 사안과 연계해 노동계나 진보쪽 인사들이 촛불집회 현장에 많이 오는 것은 사실이다. (색깔론은 경계해야 한다. 지금 美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다만 주변인들을 통해 촛불집회에 대한 시각을 대략 가늠해보고 싶을 뿐이다.) 

  C가 대운하나 영어몰입교육, 공기업 민영화 등에 대해서까지도 반대하는지는 묻지 않았으나 나에게 하는 말로 추정해봤을 때, 그는 다른 모든 사안들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말로만 보수라 하고 실제로는 중도이거나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위인인가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다. 그는 보수가 확실하다. 그런 C가 촛불집회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라는 것이 나는 살짝 신기하다. 사실 신기해 할 것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만한 내용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은게 친이명박계와 뉴라이트가 외치는 구호가 있고, 진보신당이나 민노당이 외치는 구호가 있는데, 아무래도 이 양자 대결하에서 보수인사면서 촛불집회에 열정적인게 분명 반갑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한데, 워낙 민감한 부분이라 조심스럽다. C는 나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내 촛불집회 현장에 내가 있는지를 체크하고, 현장에 있다면 얼굴 한번 보자고 말한다. 나는 그의 열정이 신기하면서도 다시 한번 반갑다. 어쩌면 그를 두고 신기해하는 내가 저들의 색깔론에 휘말려버린 비정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 사안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두가 분노할 만한 내용이지만, 현실적으로 보수들은 애써 모른 척 하거나 관심을 끊거나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신기하다. 그들이 비정상이고 C가 정상인게지.

  그게 맞다. 진짜 보수라면 美 사대주의에 분노하고,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이따위 굴욕협상의 주인공에게 분노하는게 맞다. 나와 같은 시민이 경찰의 곤봉과 군화발에 짓이겨지는 상황을 보고 분노하는 게, 뭐 이따위 경찰이 다 있어 라며 분노하는 게, 진짜 보수의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이땅의 보수라 표방하는 이들은 어찌된일인지 상식을 뒤엎는 말과 행동을 보이고 있으니 이 아이가 이상하게 보일밖에. 부디 C가 몸 상하지않고 끝까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것들을 보전해 지켜낼(保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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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0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드물게 보수다운 보수를 발견하게 되는군요. 동갑내기 친구 하나는 온 가족이 이명박 파인데 이명박이 지켜주는 소수의 부자에 자신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어요. 급이 너무 달랐는데 말이지요. 그때 너무 충격 받고 그 후론 정치 얘기 안했는데 담에 만나면 함 물어볼까 해요. 요새도 지지하냐고.

이잘코군 2008-07-09 21:05   좋아요 0 | URL
넵. 얘가 계속 촛불 집회에 열성적으로 나가는게 전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많습니다. 제 자신이 우석훈이 말한 88만원 세대에 연대하지 않는 5%의 젊은이인줄 아는, 하지만 전혀 현실은 그렇지 못한, 그런 사람들 참 많습니다. 경제 운운 하는데, 절대 자신의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죠.
 


  며칠전이었다.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도로 위의 섬같은 버스정류장에 내렸는데, 곧바로 어디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냉큼 달려가 버스와 버스 사이 도로를 살펴보니, 어떤 한 여자가 도로에서 굴러 널브러져있었다. 그렇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사고 차량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여자는 온몸 곳곳에 피를 흘리며 휑한 도로에서 인도로 자신의 몸을 끌었다. 사거리 도로였고, 신호등이 바뀌지 않아 건너편 차량은 아직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말없이 여자에게 쏠렸다. 잠시 놀란듯 했지만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자 그들은 모두 건넜고, 곧 사라졌다. 여자는 홀로 남았다. 

  버스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나도 건넜다. 그러나 지하철로 향하지 않았다. 여자 곁엔 중년의 한 남자만이 어찌된 일인지, 몸은 괜찮은 지 묻고 있었다. 그 외엔 아무도 없었다. 사고를 목격한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지하철로 갈 수 없었다. 여자와 아저씨 곁에 남아 나도 거들었다. 동시에 한 젊은 남자가 또 다가왔고, 결국 남자 셋은 그 여자 곁을 지켰다. 서로가 목격한 장면을 이야기하며. 아저씨는 사람들이 건너온 지하철역 쪽에서,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한 남자는 또다른 곳에서 사고를 목격했다. 제대로 본 사람은 젊은 남자 뿐이었다. 나는 이미 사고가 벌어진 바로 뒤에 여자가 구르는 상황만 봤을 뿐이다. 

  젊은 남자에 의하면 이렇다. 은색 택시 한 대가 버스전용차선으로 역주행해서 들어왔는데 버스에서 내린 여자가 신호등이 반짝반짝 거리자 횡단보도까지 가지 않고 내리자마자 도로로 건너가다 택시에 치였다. 택시는 주저하지 않고 여자를 치고 빠른 속도로 사라졌고, 여자는 데굴데굴 굴러 바닥에 널브러졌다. 몇 바퀴 굴렀다 한다. 일어나긴 했으나 몸 곳곳이 피투성이였다. 젊은 남자는 전화를 걸어 경찰을 불렀고, 나는 메모지를 꺼내어 우리 셋의 연락처를 적어 여자에게 주었다. 진술이 필요하면 목격한 부분에 대해서 말해주겠노라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경찰차가 도착했고, 경찰은 우리를 상대로 목격한 바를 진술토록 했다. 여자는 경찰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고, 우리는 각자 가던 길을 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택시가 역주행해서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려와 사람을 쳤다. 역주행해 전용차선으로 들어온 건 그냥 그렇다 치자. 근데 사람을 쳤으면서 어떻게 그냥 가나. 어떻게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빠른 속도로 휑하니 사라져버릴 수가 있나.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은 어떻게 잠깐 놀라기만 하고 그냥 가버릴 수가 있나. 바닥에 구른 여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 버스는 길을 비키라고 빵빵 거릴 수가 있나. 정말 그때 상황만 떠올리면 화가 난다. 나는 지각을 하더라도 이 꼬라지를 보고 그냥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 진술을 하고 여자를 맡기고 갔다. 내가 얼마나 정의로운지가 아니라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말하고 싶다.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싸이코패스처럼 느껴졌다. 영화 <검은집>의 범인을 두고 사이코패스라고 욕할게 아니라,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냐고 분노할게 아니라, 나 자신이 사이코패스스러운 짓을 하고 있진 않은지 각자가 생각해봐야 한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고, 마땅히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에 대해서 침묵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뺑소니 사고를 당했는데 보고도 못 본 척 그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간다면 어떨까. 왜 그걸 생각지 못하는걸까. 그게 내가 될 수 있음을. 그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불의한, 부당한 일을, 그것도 아니라면 우연한 사고라도 겪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미친소 수입에 반대하지 않고, 촛불집회 나가 목청껏 소리 높이는 이들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밤을 새며 물대포 맞고 곤봉 세례를 받으며 군화발에 짓이겨지는 이들을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사람들은, 그 사고 현장에서 잠시 놀란, 하지만 그냥 제 갈 길을 가버린 이들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아니 왜 촛불집회를 나가서 두드려맞아? 아니 왜 거기에 아기를 데리고 가서 소화기를 맞고와? 이 따위 소리를 하는 이들과 사고 현장에서 그냥 지나가버린 이들이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다행히 회사에 도착하고 약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경찰서에서 뺑소니 운전자가 잡혔다고 전화가 왔지만,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美사대주의 굴욕협상의 주인공과 국민의 몸뚱이를 강간한 국가폭력의 주인공은 어디가서 찾아야하나.

  나는 알고 있다. 범인을. 그리고 당신도 알고 있고, 경찰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모른 척 할 뿐이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지 않고, 마땅히 소리 높여야 할 것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알면서. 다 알면서. 왜. 무섭기 때문이다. 아니 '무섭기 때문'이라면 좋겠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관심없어서라면, 아니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나는 사람들이 무섭다. 타인에게 무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섭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못 본 척 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면,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나와 함께 직장에서 일하고, 나와 함께 술을 마신다면, 나는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p.s. 촛불집회에서만 경찰을 보다가 사고현장을 수습하러 온 경찰을 보니 반갑다고 해야할지. 경찰을 바라보는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하는 상황 역시도 사회가 똑바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그 상황에서 취해야 할 조치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뿐'이라는 현실도 암울하다. 그 경찰과 이 경찰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게는 그 둘을 분간할 능력이 없기에. 사고 신고 했다가 촛불집회 참가자로 잡혀가는거 아냐? 결코 엉뚱한 생각만은 아니다. 현실이 이미 그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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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8-07-0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그렇게까지 황폐해졌나요? 칼에 찔리는 여성을 보면서 누군가가 신고 하겠지란 마음을 먹고 38명의 목격자가 아무도 신고하지 않아 그 여자는 몇시간 동안 폭행 당하고,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우리에게 안벌어진다는 보장이 없겠군요. 조폭한테 맞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달려들 자신은 없지만, 도망가서 신고하거나, 그들에게 다친 누군가를 병원에 보내주는 일 정도는 해야될텐데, 그것마저 어렵게 만드는 세상인가 봅니다. 슬프네요.

이잘코군 2008-07-08 23:18   좋아요 0 | URL
현실이 그렇습니다. -_- 일본에서 한 여성이 기차 화장실에서 성폭행 당하고 있는데 아무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무슨 신드롬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런 식으로 하나의 현상인 것처럼 덮어버리면 안돼죠. 아마도 사람들은 당신들이 길거리에서 칼 맞고, 기찻간에서 성폭행 당하는 시대가 곧 오면 그때 깨달을 겁니다. 아니 깨닫지 못할지도 몰라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모른 척 할 수가 있어! 라고 그냥 화만 낼지도. 자신의 과거는 생각지 않고.

비로그인 2008-07-09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뎌져가고 무표정해져 간다는 것... 일본을 보면 정말 한국사회 앞날도 걱정되요. 무뎌져 가는 저 자신도 참 걱정되구요.. 워낙 험한 일도 많고,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요.

이잘코군 2008-07-09 07:21   좋아요 0 | URL
지금의 일본이 10년 뒤 한국의 모습이겠죠. 안 좋은 것들만. -_- 네 그 사람들도 회사에 지각하지 않고자, 또 거기서 목격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누군가 하겠지 하고 그냥 가버렸을수도 있죠. 그런데 2-3분 뒤에 그곳엔 전혀 다른 사람들로 가득찼고, 목격자는 남자 셋 뿐이었죠. 그것도 제대로 본 사람은 하나만.

얼룩말 2008-07-09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 슬퍼요
아프락사스님은 역시 훌륭하세요
하지만 정말이지 너무 슬퍼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잘코군 2008-07-09 07:22   좋아요 0 | URL
제가 특별한 일을 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정말 당연한 일을 한건데, 그 당연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거 같습니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Kitty 2008-07-09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수고 많으셨네요.
저도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답니다. 교통사고는 아니었지만..;;
집 근처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다가 어떤 미친 남자가 -_-(만취했거나 약을 한 사람 같았음) 갑자기 저한테 달려들어 머리 끄댕이 잡고 패기 시작했는데 제가 아무리 울면서 도와달라고 해도 장바구니 들고 지나가는 저희 엄마 또래의 아줌마들이나 퇴근길 아저씨들 힐끗거리고 지나갈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이다...ㅠㅠ 결국 엄청 맞고 겨우 도망쳤어요 ㅠㅠ 지금도 트라우마가 있어서 집 근처인데도 불구하고 그 길은 잘 못가요..ㅠㅠ 세상이 그렇더라구요...

이잘코군 2008-07-09 08:53   좋아요 0 | URL
아 머 그런 미친 놈이 다 있답니까. 참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게 자기가 될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군요. 정작 본인이 당할 때는 왜 저 사람들 그냥 지나가는거야! 하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겠죠. 자기가 그냥 지나쳤던 건 생각하지도 않고. 타인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마냐 2008-07-0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기지 않는게 현실이라더니. 우리 사회가 진화하고 있다는 믿음이 가끔 흔들립니다. 아직은 가끔입니다. 아프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잘코군 2008-07-09 21:10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는 명박 당선 이후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죠. 민주주의의 죽음을. 얼마 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무차별 살해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거나 그 피해자가 내가 되는 것은.

2008-07-09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09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7-0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한 일이에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와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슬프고도 무서워요. 경찰을 바라보며 겪어야 할 두 가지 감정도 갑갑합니다.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의 몽둥이도 되어버린 세상이어서요. 참 착잡하네요. 그나마 뺑소니 차량 잡혀서 다행입니다. 나쁜 시키!

이잘코군 2008-07-09 21:14   좋아요 0 | URL
끔찍하죠. 제 자신이 그 피해자가 되어도 느끼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매우 암울하죠. 이건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죠. 그냥 '기본'이죠. 점점 더 많은 기본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나쁜 노므쉐이 그 놈은 절대 봐줘선 안됩니다. 그 여자분이 어떻게 '합의'를 봤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습니다. 합의를 봐주면 안되는데.

무해한모리군 2008-07-1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측은지심(남의 감성을 느낄 수 있음)에 있다고 하던데.. 이러면 짐승모독인가 -.-
세상이 왜 이러는지 무섭네요..

이잘코군 2008-07-10 22:39   좋아요 0 | URL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죠. 겉모양은 예의바른 인간인 척 하면서 이미 자기자신 외에는 거들떠보지 않는. 짐승도 그러진 않죠.

Arm 2008-07-1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답답한 마음에 <브이 포 벤데타>를 다시 봐봤어요. 영화 속에서 마음을 휘감는 대사가 있더라고요. 왠지 위의 이 아프고 답답한 상황에도 맞아떨어질 것 같군요.

"만약 다른 이들보다 누군가가 더 책임이 있다면 여러분 마음은 편해지실 겁니다. 하지만 진실을 말씀드리죠. 누가 죄인인지 알고 싶다면 거울을 보십시오."

실천을 하셨다니, 멋지십니다. 부끄러움 없이, 칭찬받으실 자격이 있으세요! 저 상황에서 과연 나라면? 하고 물었을 때, 솔직히 저는 선뜻 자신이 없습니다. 머릿 속으로야 그 '죄인'들을 탓하고 탓하지만 저 자신 마찬가지로 자신이 없네요...

이잘코군 2008-07-10 22:40   좋아요 0 | URL
^^ 브이 포 벤데타 특별히 화려한 액션이 있는 것도, 줄거리가 재밌지도 않지만, 굉장히 인상깊었던 영화입니다. 대사 딱 어울리는 상황이군요. 저도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2008-10-21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고된 바와 같이 7월 5일 토요일 백만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아니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서울에서만 50만 촛불이 모였다 하는데, 다른 지역에 모인 촛불 개수를 다 세면 100만 촛불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점차 거세졌음에도, 이만큼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비록 100만까지는 안된다 하더라도 대단한 건 틀림없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 기대 안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촛불의 개수가 현격히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머리수 채우고자 며칠에 한번씩 나가곤 했지만, 다시 '그날'을 재현하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 눈으로 확인하고 기우였음을 깨달았습니다.

  50만 촛불. 6월 10일과는 양상이 조금 달랐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7시가 되자 전경들이 역시나 광화문 네 거리로 가는 모든 통로를 차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종로 3가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광화문으로 향하는데, 이미 거리에는 전경들이 군데군데 모여앉아 있었습니다. 교보문고 직전에는 역시나 닭장차를 가로로 이중으로 세워 묶고, 전봇대에도 묶어, 혹시나 있을 '버스 줄다리기' 사태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대비하더군요.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아마 이곳을 지날 수 없었을 겁니다. 이곳을 지나 광화문으로 나가보니 역시나 여기도 이순신 동상 앞에 닭장차를 가득 세워두고 중간중간 전경들을 포진해놨습니다.

  길을 건너 시청으로 향하려는데, 여긴 이미 다 막혔습니다. 시민들이 항의도 해보지만 돌아가라는 말 뿐. 할 수 없이 돌아돌아 가는데 또 막혀 있고, 돌아가면 또 막혀 있고.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항의합니다. 이렇게 막아놓으면 어디로 가라는거냐. 명박이 똥구멍이나 닦으니 기분이 좋냐. 경찰이 지금 뭐하는 짓이냐. 세가 부족했는지 다이아몬드 세 개 단 아저씨는 심하게 대응하지는 않더군요. 새벽이 되면 이 아저씨가 어찌 변할지는 모르지만. 무슨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다. 말하고보니. 모든 길이 막히기 전에 가까스로 시청에 도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민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노래를 하고,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오늘 처음 나간 지인과 함께 있었는데, 이거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일단 초를 받아야겠기에, 시청광장으로 건너갔습니다. 시민들이 앉아있는 지역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어디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돌아봤더니 대학 동기입니다. 대학원 사람들과 함께 나온 것 같았습니다. 일단 인사만 하고 얼른 건너던 길을 마저 건너 촛불을 받고 광장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서울시에서 광장 잔디를 바꾼다고 다 빼가서 흙덩이 위에 종이를 깔고 앉아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처음 나온 지인과 계속 수다를 떨면서 촛불도 들고, 피켓도 들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일어서서 거리행진을 시작했는데, 앞에 사람들이 가득한지 좀체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드디어 거리로 나아가고 함께 촛불을 들고 느린 걸음으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남대문을 돌아 명동으로, 청계천으로, 종각으로, 종로로, 또 안국동으로, 광화문으로, 그곳에 있는 시민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여러곳에 흩어졌습니다. 명동을 지나면서부터 이미 자리를 깔고 대로에 앉아 수다를 떠는 시민들, 청계천에 내려가 거니는 사람들, 안국동으로 향하는 사람들, 종로로 향하는 사람들, 광화문으로 향하는 사람들 등 광화문 일대 주변 곳곳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두번째 대규모 국민 엠티날입니다. 돗자리와 먹을거리는 기본 준비물이었습니다. 비 온다해서 일부러 돗자리나 방석같은 건 가지고 가지도 않았는데, 비가 그칠 줄이야. 저는 지인과 함께 취향(?)대로 광화문으로 향했고, 교보문고 못미친 거리엔 아까 봤던 닭장차들이 이미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막으면 더 이상 뚫지 않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온 이 새벽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민들은 길이 막히면 주저앉아 수다를 떨고 구호도 외치고, 배도 채우고, 피곤하면 누워 자는 등 도로 곳곳에 엠티촌을 세웠습니다. 멀리서 풍물패가 흥겨운 소리를 내면서 버스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 속속 모여듭니다. 아고라 깃발도 곳곳에 보입니다. 그동안 자주 봤던 인천 계양시 주민들 깃발, 도봉구에 사는 사람들 깃발, 잠 좀 자자, 김밥 그만 먹자, 무한도전 좀 보자는 깃발 등 눈에 익은 깃발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광장에 나가 이들과 인사 나눈 적은 없지만, 깃발을 보니 매우 반갑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 만난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나갈 때마다 매번 봐서 그랬나봅니다.

  처음 나간 지인은 우리 밤샐까, 라고 말해 저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_- 난 피곤하다규. 아무래도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거 같습니다. 중반 이후 띄엄띄엄 나갔는데도 계속 피곤한거보면. 하긴 나가지 않은 날에도, 강연회 다니고, 회식하고, 사람들 만나고 다니느라, 12시 전에 잔 적이 없는거 같습니다. 이러니 피곤할 밖에. 이대로 라면 계속 죽치고 앉아서 엠티놀이하게 될 거 같다며 집에 가자 했습니다. 엠티촌을 차릴 준비물이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일전에 밤을 지샌 경험을 토대로라면, 돗자리에 긴팔 옷, 먹을거리가 준비되어야 아침까지 견디겠더라고요. 애초 밤샐 준비가 안 되어있었으므로 다시 걸어 나와 명동까지 가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토요일이라 지하철은 이미 끊긴 상태.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먼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 들어갔는데, 눈으로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분필 낙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들의 행렬 등. 광화문 네 거리를 경찰이 미리 차단하는 바람에, 여러군데로 흩어져서 이 모든 광경을 볼 수 없었나봅니다. 행진 도중 본 '자동차 촛불 시위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차에 태극기를 달고 나와 클랙션을 울리며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진이 들어간 '수배전단'도 재밌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오늘은 카메라 기자들이 크레인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은 것도 새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촛불은 절대 꺼지지 않고, 시위는 계속해서 진화합니다. 7월 5일의 백만촛불 대행진은 성공이었습니다. 그동안 재충전한 시민들은 거리로 다시 나와 시민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이명박에게 마지막 경고장을 던졌습니다. 이제 이명박의 대답을 들을 차례입니다.

p.s. 오늘 나와 함께한 知人, 밴드 기타리스트 동생, 알라딘의 마노아님, 승주나무님과 형수님, 어딘가에 계셨던 네꼬님, 또 그곳 어딘가에 계셨을 순오기님의 따님과 아드님, 대학동기 J양, 행진 중 우연히 마주친 '깃발 없는 자들의 모임' 바람구두님과 일행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함께 하지 못했지만 전화주신 멜기세덱님도 감사합니다. :) 그밖에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곳 어딘가에서 함께 계셨을 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 (실시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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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8-07-06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너무 수고가 많으세요, 아프락사스님. 저도 12시 30분쯤 집에 돌아왔어요. 아프락사스님 같은 분들 덕분에 촛불이 꺼지지 않고 이렇게 오래, 흔들림없이 잘 타고 있는 것 같아요. :-)

이잘코군 2008-07-06 10:44   좋아요 0 | URL
^^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도 집에 돌아오니 한 시 좀 넘은거 같습니다. 촛불을 절대 꺼뜨려선 안됩니다. 여기서 무너지면 앞으로 이명박 맘대로 5년간 심시티 놀이할테니까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시민의 분노를 눈으로 보여줘야합니다. 이렇게 화가 났다고.

마노아 2008-07-0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청에서 가면 쓰고 행진하는 사람들 보았는데 그게 브이 포 벤데타군요. 영화를 못 봐서 그걸 차용한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바람구두님 만나셨군요!앗, 아쉽습니다. 미처 못 만났네요ㅠㅠ
아프님 후기를 보니 어제 시위를 마무리 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저는 그럼 다시 출근 준비하러 총총총...;;;;;

이잘코군 2008-07-06 10:4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왜 못봤죠. 흙. 브이 행렬 꼭 보고 싶은데. 촛불집회 초기부터 생각했던거라. 바람구두님은 명동에서 종각, 광화문으로 향하는 지점에서 만났어요. 커다란 엑스 깃발을 보고서 바람구두님을 찾았죠. ^^ 인사만 드리고 저는 옆에 지인을 데리고 먼저 갔습니다. 어제 수고 많으셨어요.

웽스북스 2008-07-06 15:00   좋아요 0 | URL
저도 봤는데 메롱메롱 ==3==3==3

이잘코군 2008-07-07 00:11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은 메롱메롱

순오기 2008-07-0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을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하는 명바기...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딸이 가기 전에 '브이 포 벤데타'를 보고 싶어했는데... 우리 애들은 밤샘하고 아침 8시 50분 차를 탔다고 문자 왔으니 1시쯤에는 집에 들어올 것 같아요. 김밥도 싸주고 생수랑 복숭아 갖고 갔으니 밤참은 되었겠군요. 긴팔도 보냈고... 아이들만 보내고 엄마는 집에서 동학을 다룬 청소년 소설 '네가 하늘이다'를 읽었어요. 이제 아이들 맞을 준비해야죠.^^

이잘코군 2008-07-06 10:47   좋아요 0 | URL
^^ 집에 돌아오면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함께 보는게 어떨까요. 큭큭. 영화가 재밌진 않은데 상당한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밤샘 시위대 보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글샘 2008-07-06 22:24   좋아요 0 | URL
어젠 무서운 집회가 아니어서 구경 잘 했겠군요. ^^ 사실 좀 무서운 집회도 봐야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문줄 알게 되는데.ㅋㅋ 아이들 보내놓고 걱정 많으셨겠습니다. 그래도 어젠 워낙 대규모여서 함부로 도발하지 못했지요. 다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프님두요.

순오기 2008-07-07 03:15   좋아요 0 | URL
광주촌넘이 서울 구경 잘하고 왔네요~ ^^ 후기 쓴다더니~ 녀석이 며칠전부터 입병이 심해서...

이잘코군 2008-07-07 08:59   좋아요 0 | URL
저도 입병 걸렸어요. -_-
 
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품절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 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김구, 『백범일지』)-4쪽

죽어가는 것들의 아픔을 느끼되, 명랑함으로 다양성을 만드는 것.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은 지구 위에 깃든 거대한 공동체라는 것을 느끼고 이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을 나는 생태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7쪽

한국에서 ‘상식적인 수준의 좌파’라고 하면 정말 한 줌밖에 안되는데, 정말로 좌파 인사 중에는 장관은커녕 행정부처의 국장 자리 정도에 가본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좌파는 학계와 노동계, 그리고 시민단체 일부에 움츠려 살아가고, 기타 사회활동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힘들게 지키면서 생활인으로 살아간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니 대체로 표현하면 한국은 극우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스스로를 ‘합리적 보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국제 기준으로 보자면 극우파에 가깝고, 일부 신문이 좌파라고 부르는 정치인들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들여다보면 중도우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정치 지형을 정확하게 보고 싶다면 오른쪽으로 한 칸씩 옮기면 된다. 그러면 제대로 된 이름과 지평에 대한 판단이 나올 것이다. -17쪽

경제이성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도 또 다른 도덕이나 가치에 대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한국 사회는 일종의 ‘경제종교’가 움직이는 단계에서의 악몽이다. (중략) 많은 사람이 자기 동네 집값이나 땅값이 오르면 자기가 잘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좋게 이야기하면 마음씨가 너무 좋은 것이고, 정확히 말하면 비경제적 행위에 의한 반계급적 현상이다. 자신의 계급을 스스로 배반하는 현상, 이 과정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일상에서 그렇게까지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좋았을 사람들이 더 고통받는 일이 벌어진다. (중략)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제도에 대한 경제이성보다 특정 정당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중략) 이 종교가 외치는 것은 최선을 다하라는 것과 당분간 다들 죽었다고 각오 단단히 하라는 것, 두 가지 교리다. 부차적으로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라는 부활의 예언이 하나있다. -69-71쪽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사업(청계천)을 수도만 틀면 나온다고 해서 ‘수도꼭지’라 부르기도 하고, 임시로 만들어놓은 물길에 물고기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어항’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프로젝트에 ‘생태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이런 식의 도시 조경을 ‘생태복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서울 시민들과 이를 칭송했던 전문가들, 그리고 예술가들 외에는 없다. 비만 오면 도시의 오염 물질이 한꺼번에 청계천을 흐르고, 당연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BOD의 피크치가 발생한다. 그러면 죽은 물고기를 걷어내고 또다시 물고기를 방류하는데, 이런 숨바꼭질은 청계천이 제대로 복원되는 날까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것이 ‘자연’이라고 가르칠 것인가? 지금의 그 어린이들이 언젠가 어른이 되어 물질순환과정과 물의 흐름을 알게 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금 이 순간에 배운 것이 아주 이상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80-81쪽

근본을 따져보자면 한국인들은 모두 전형적인 메갈로마니아들이다. 큰 것을 사랑하며 새로 생긴 것을 사랑하고, 인공적인 것을 사랑한다. 이러한 가치관이 동반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패권주의’성향이다. 힘없는 것은 죽어도 그만이고, 나보다 약한 것은 짓밟아도 그만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것. 이것이 미학적 가치의 위치에 있다. -143쪽

다원성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도 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니면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지 않은 것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죽여도 된다는 권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을 문화적이고 미학적인 차원에서 구현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힘이 없어도, 땅이 없어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생태 미학의 다원성이다.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핍박받고, 멋지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건설 미학은 못생긴 것들, 그리고 말 못하는 것들, 혹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도시의 자투리땅을 "놀고 있다"라는 이유로 밀어버리려고 한다. 여기에 반하는 것이 다원성의 원치이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다원성이란 이런 것이다. -177-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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