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바와 같이 7월 5일 토요일 백만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아니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서울에서만 50만 촛불이 모였다 하는데, 다른 지역에 모인 촛불 개수를 다 세면 100만 촛불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점차 거세졌음에도, 이만큼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비록 100만까지는 안된다 하더라도 대단한 건 틀림없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 기대 안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촛불의 개수가 현격히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머리수 채우고자 며칠에 한번씩 나가곤 했지만, 다시 '그날'을 재현하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 눈으로 확인하고 기우였음을 깨달았습니다.
50만 촛불. 6월 10일과는 양상이 조금 달랐습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7시가 되자 전경들이 역시나 광화문 네 거리로 가는 모든 통로를 차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종로 3가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광화문으로 향하는데, 이미 거리에는 전경들이 군데군데 모여앉아 있었습니다. 교보문고 직전에는 역시나 닭장차를 가로로 이중으로 세워 묶고, 전봇대에도 묶어, 혹시나 있을 '버스 줄다리기' 사태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대비하더군요.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아마 이곳을 지날 수 없었을 겁니다. 이곳을 지나 광화문으로 나가보니 역시나 여기도 이순신 동상 앞에 닭장차를 가득 세워두고 중간중간 전경들을 포진해놨습니다.
길을 건너 시청으로 향하려는데, 여긴 이미 다 막혔습니다. 시민들이 항의도 해보지만 돌아가라는 말 뿐. 할 수 없이 돌아돌아 가는데 또 막혀 있고, 돌아가면 또 막혀 있고.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항의합니다. 이렇게 막아놓으면 어디로 가라는거냐. 명박이 똥구멍이나 닦으니 기분이 좋냐. 경찰이 지금 뭐하는 짓이냐. 세가 부족했는지 다이아몬드 세 개 단 아저씨는 심하게 대응하지는 않더군요. 새벽이 되면 이 아저씨가 어찌 변할지는 모르지만. 무슨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다. 말하고보니. 모든 길이 막히기 전에 가까스로 시청에 도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민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노래를 하고,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오늘 처음 나간 지인과 함께 있었는데, 이거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일단 초를 받아야겠기에, 시청광장으로 건너갔습니다. 시민들이 앉아있는 지역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어디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돌아봤더니 대학 동기입니다. 대학원 사람들과 함께 나온 것 같았습니다. 일단 인사만 하고 얼른 건너던 길을 마저 건너 촛불을 받고 광장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서울시에서 광장 잔디를 바꾼다고 다 빼가서 흙덩이 위에 종이를 깔고 앉아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처음 나온 지인과 계속 수다를 떨면서 촛불도 들고, 피켓도 들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일어서서 거리행진을 시작했는데, 앞에 사람들이 가득한지 좀체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드디어 거리로 나아가고 함께 촛불을 들고 느린 걸음으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남대문을 돌아 명동으로, 청계천으로, 종각으로, 종로로, 또 안국동으로, 광화문으로, 그곳에 있는 시민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여러곳에 흩어졌습니다. 명동을 지나면서부터 이미 자리를 깔고 대로에 앉아 수다를 떠는 시민들, 청계천에 내려가 거니는 사람들, 안국동으로 향하는 사람들, 종로로 향하는 사람들, 광화문으로 향하는 사람들 등 광화문 일대 주변 곳곳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두번째 대규모 국민 엠티날입니다. 돗자리와 먹을거리는 기본 준비물이었습니다. 비 온다해서 일부러 돗자리나 방석같은 건 가지고 가지도 않았는데, 비가 그칠 줄이야. 저는 지인과 함께 취향(?)대로 광화문으로 향했고, 교보문고 못미친 거리엔 아까 봤던 닭장차들이 이미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막으면 더 이상 뚫지 않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온 이 새벽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민들은 길이 막히면 주저앉아 수다를 떨고 구호도 외치고, 배도 채우고, 피곤하면 누워 자는 등 도로 곳곳에 엠티촌을 세웠습니다. 멀리서 풍물패가 흥겨운 소리를 내면서 버스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 속속 모여듭니다. 아고라 깃발도 곳곳에 보입니다. 그동안 자주 봤던 인천 계양시 주민들 깃발, 도봉구에 사는 사람들 깃발, 잠 좀 자자, 김밥 그만 먹자, 무한도전 좀 보자는 깃발 등 눈에 익은 깃발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광장에 나가 이들과 인사 나눈 적은 없지만, 깃발을 보니 매우 반갑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 만난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나갈 때마다 매번 봐서 그랬나봅니다.
처음 나간 지인은 우리 밤샐까, 라고 말해 저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_- 난 피곤하다규. 아무래도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거 같습니다. 중반 이후 띄엄띄엄 나갔는데도 계속 피곤한거보면. 하긴 나가지 않은 날에도, 강연회 다니고, 회식하고, 사람들 만나고 다니느라, 12시 전에 잔 적이 없는거 같습니다. 이러니 피곤할 밖에. 이대로 라면 계속 죽치고 앉아서 엠티놀이하게 될 거 같다며 집에 가자 했습니다. 엠티촌을 차릴 준비물이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일전에 밤을 지샌 경험을 토대로라면, 돗자리에 긴팔 옷, 먹을거리가 준비되어야 아침까지 견디겠더라고요. 애초 밤샐 준비가 안 되어있었으므로 다시 걸어 나와 명동까지 가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토요일이라 지하철은 이미 끊긴 상태.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먼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 들어갔는데, 눈으로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분필 낙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들의 행렬 등. 광화문 네 거리를 경찰이 미리 차단하는 바람에, 여러군데로 흩어져서 이 모든 광경을 볼 수 없었나봅니다. 행진 도중 본 '자동차 촛불 시위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차에 태극기를 달고 나와 클랙션을 울리며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진이 들어간 '수배전단'도 재밌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오늘은 카메라 기자들이 크레인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은 것도 새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촛불은 절대 꺼지지 않고, 시위는 계속해서 진화합니다. 7월 5일의 백만촛불 대행진은 성공이었습니다. 그동안 재충전한 시민들은 거리로 다시 나와 시민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이명박에게 마지막 경고장을 던졌습니다. 이제 이명박의 대답을 들을 차례입니다.
p.s. 오늘 나와 함께한 知人, 밴드 기타리스트 동생, 알라딘의 마노아님, 승주나무님과 형수님, 어딘가에 계셨던 네꼬님, 또 그곳 어딘가에 계셨을 순오기님의 따님과 아드님, 대학동기 J양, 행진 중 우연히 마주친 '깃발 없는 자들의 모임' 바람구두님과 일행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함께 하지 못했지만 전화주신 멜기세덱님도 감사합니다. :) 그밖에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곳 어딘가에서 함께 계셨을 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 (실시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