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이었다.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도로 위의 섬같은 버스정류장에 내렸는데, 곧바로 어디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냉큼 달려가 버스와 버스 사이 도로를 살펴보니, 어떤 한 여자가 도로에서 굴러 널브러져있었다. 그렇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사고 차량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여자는 온몸 곳곳에 피를 흘리며 휑한 도로에서 인도로 자신의 몸을 끌었다. 사거리 도로였고, 신호등이 바뀌지 않아 건너편 차량은 아직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말없이 여자에게 쏠렸다. 잠시 놀란듯 했지만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자 그들은 모두 건넜고, 곧 사라졌다. 여자는 홀로 남았다.
버스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나도 건넜다. 그러나 지하철로 향하지 않았다. 여자 곁엔 중년의 한 남자만이 어찌된 일인지, 몸은 괜찮은 지 묻고 있었다. 그 외엔 아무도 없었다. 사고를 목격한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지하철로 갈 수 없었다. 여자와 아저씨 곁에 남아 나도 거들었다. 동시에 한 젊은 남자가 또 다가왔고, 결국 남자 셋은 그 여자 곁을 지켰다. 서로가 목격한 장면을 이야기하며. 아저씨는 사람들이 건너온 지하철역 쪽에서,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한 남자는 또다른 곳에서 사고를 목격했다. 제대로 본 사람은 젊은 남자 뿐이었다. 나는 이미 사고가 벌어진 바로 뒤에 여자가 구르는 상황만 봤을 뿐이다.
젊은 남자에 의하면 이렇다. 은색 택시 한 대가 버스전용차선으로 역주행해서 들어왔는데 버스에서 내린 여자가 신호등이 반짝반짝 거리자 횡단보도까지 가지 않고 내리자마자 도로로 건너가다 택시에 치였다. 택시는 주저하지 않고 여자를 치고 빠른 속도로 사라졌고, 여자는 데굴데굴 굴러 바닥에 널브러졌다. 몇 바퀴 굴렀다 한다. 일어나긴 했으나 몸 곳곳이 피투성이였다. 젊은 남자는 전화를 걸어 경찰을 불렀고, 나는 메모지를 꺼내어 우리 셋의 연락처를 적어 여자에게 주었다. 진술이 필요하면 목격한 부분에 대해서 말해주겠노라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경찰차가 도착했고, 경찰은 우리를 상대로 목격한 바를 진술토록 했다. 여자는 경찰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고, 우리는 각자 가던 길을 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택시가 역주행해서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려와 사람을 쳤다. 역주행해 전용차선으로 들어온 건 그냥 그렇다 치자. 근데 사람을 쳤으면서 어떻게 그냥 가나. 어떻게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빠른 속도로 휑하니 사라져버릴 수가 있나.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은 어떻게 잠깐 놀라기만 하고 그냥 가버릴 수가 있나. 바닥에 구른 여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 버스는 길을 비키라고 빵빵 거릴 수가 있나. 정말 그때 상황만 떠올리면 화가 난다. 나는 지각을 하더라도 이 꼬라지를 보고 그냥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 진술을 하고 여자를 맡기고 갔다. 내가 얼마나 정의로운지가 아니라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말하고 싶다.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싸이코패스처럼 느껴졌다. 영화 <검은집>의 범인을 두고 사이코패스라고 욕할게 아니라,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냐고 분노할게 아니라, 나 자신이 사이코패스스러운 짓을 하고 있진 않은지 각자가 생각해봐야 한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고, 마땅히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에 대해서 침묵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뺑소니 사고를 당했는데 보고도 못 본 척 그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간다면 어떨까. 왜 그걸 생각지 못하는걸까. 그게 내가 될 수 있음을. 그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불의한, 부당한 일을, 그것도 아니라면 우연한 사고라도 겪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미친소 수입에 반대하지 않고, 촛불집회 나가 목청껏 소리 높이는 이들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밤을 새며 물대포 맞고 곤봉 세례를 받으며 군화발에 짓이겨지는 이들을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사람들은, 그 사고 현장에서 잠시 놀란, 하지만 그냥 제 갈 길을 가버린 이들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아니 왜 촛불집회를 나가서 두드려맞아? 아니 왜 거기에 아기를 데리고 가서 소화기를 맞고와? 이 따위 소리를 하는 이들과 사고 현장에서 그냥 지나가버린 이들이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다행히 회사에 도착하고 약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경찰서에서 뺑소니 운전자가 잡혔다고 전화가 왔지만,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美사대주의 굴욕협상의 주인공과 국민의 몸뚱이를 강간한 국가폭력의 주인공은 어디가서 찾아야하나.
나는 알고 있다. 범인을. 그리고 당신도 알고 있고, 경찰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모른 척 할 뿐이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지 않고, 마땅히 소리 높여야 할 것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알면서. 다 알면서. 왜. 무섭기 때문이다. 아니 '무섭기 때문'이라면 좋겠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관심없어서라면, 아니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나는 사람들이 무섭다. 타인에게 무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섭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못 본 척 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면,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나와 함께 직장에서 일하고, 나와 함께 술을 마신다면, 나는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p.s. 촛불집회에서만 경찰을 보다가 사고현장을 수습하러 온 경찰을 보니 반갑다고 해야할지. 경찰을 바라보는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하는 상황 역시도 사회가 똑바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그 상황에서 취해야 할 조치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뿐'이라는 현실도 암울하다. 그 경찰과 이 경찰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게는 그 둘을 분간할 능력이 없기에. 사고 신고 했다가 촛불집회 참가자로 잡혀가는거 아냐? 결코 엉뚱한 생각만은 아니다. 현실이 이미 그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