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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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김영하의 작품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번째 만남이다. 이 만남을 불행이라 말한건 그 전에 읽었던 <검은꽃>이 개인적으로는 훨씬 좋았으며 이 작품을 통해 그 때의 느낌을 더이상 그대로 간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만남을 다행이라 말하는건 김영하라는 소설가는 아직 좀더 시간을 두고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기껏 그의 책이라고 해봐야 이제 두번째 작품이니 아직 나 개인이 그를 평가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그를 평하가는데 있어 비난할 만큼 이 책이 나쁜 것은 아니며 이 책은 충분한 즐거움은 선사했지만 단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뿐이다.

  꽤나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들과 아마도 정확한 당시의 시대 자료들, 그리고 설득력있는 이야기 전개 등등 원고지 1500장 분량의 소설을 써내며 한장 한장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소설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하지만 아 뭔가 아쉽다 싶은 그런 공백도 느껴진다. 그것은 아직 그가 젊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소설을  쓰라하면 단 한장도 뽑아내지 못할 나 같은 이에겐 이 소설은 그의 젊음에 비했을 때 상당히 묵직하다.

  가벼운 연애 소설 따위가 아닌 남북 분단의 문제와 이로인해 빚어지는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그의 가족의 인생의 이야기를 녹여낸 잘 쓰여진 소설이다. 간첩으로서의 인생, 하지만 15년의 세월 동안 그는 그저 반쪽짜리 대한민국의 소시민적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아내와 사랑하고, 돈 걱정하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회사 생활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갑자기 떨어진 4번 명령만 아니었다면 그는 그저 남쪽에서 태어나 남쪽에서 그저그런 삶을 살다 죽은 한 남자로서의 인생을 마무리했을 것이고,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 삶은 그에겐 불행이 아닌 삶의 안정과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내려왔을지 모르는 그 명령을 따라 지금껏 살아온 남쪽에서의 생활, 아내와 딸과 친구와 회사를 그만 놓고 갈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러나 가야만 한다. 가야만 한다. 가기 싫지만 가야만 한다. 그럼 아내는 딸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아내는 스무살의 어린 대학생 두 명과 무인러브호텔에서 그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아 어떻게 이럴수가. 나와 가족의 남은 삶이 걸린 문제를 홀로 고민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섹스의 환락에 푹 빠져있었다. 이 두 사람의 하루 동안의 행보가 이렇게나 극명하게 대조될 수 있는가. 이렇게나 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버릴 수가 있는가 싶다. 그녀는 그랬다. 내가 거짓말같은 사실들을 다 까발려 말했을 때 거짓말이라고,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그러면서, 믿었고, 믿은 뒤에 남고 싶다는 나를 북으로 올라가라 했다. 자신과 딸은 그냥 남쪽에 내버려둔채로. 남쪽에 내려와 살며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15년을 산 그녀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너는 가고, 우리는 남는다고.

   소설은 많은 문제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크게는 남북한의 분단상황과 남파간첩 문제를 묵직하게 던져놓고 있지만, 남쪽의 한 가정의 소시민적 삶을, 그리고 부부의 사랑을, 자본주의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그 속에 녹였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구성해내려 애쓴 김영하에게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다음 작품에서는 2%의 부족함을 메워주리라 기대하면서, 좀더 나이가 들어 삶을 관조하고 깊이있는 사고를 할 수 있을 때 즈음에 걸작이라 불릴만한 작품을 하나 내놓으리라 기대하면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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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3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소설 보면서 결론은 가족의 붕괴라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이념갈등과 간첩등등의 고차원(?)적인 사회문제보다는 서서히
보여주고 있는 평범한(?) 사회문제 더 끔찍했어요..

이잘코군 2006-08-3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랬습니다. 묵직한 주제를 툭 던져놨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부부의 일상적인 면들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성공의 길은 내 안에 있다 살림지식총서 121
이숙영 지음 / 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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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목적을 "나는 한 차원 높은 성공이 무엇인지,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94쪽 밖에 안되는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저자의 의도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저자 이숙영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과 전혀 다른 분야(물리학)를 전공했지만 이 바닥에선 꽤나 경험 쌓고 지금은 잘 나가는 사람인 듯 하다. 자기 이름을 단 자기계발클리닉을 세워 원장을 할 정도라면야 뭐.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자기계발서, 성공서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기독교에 가지고 있는 반감과도 비슷한.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몇몇 일부 너무나도 독실하고 신실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타인을 잡아두고 하느님이 어쩌느니 저쩌느니, 지옥간다느니 하면서 원치 않은 설교를 하곤 한다. 가만 있고 싶은데 아무 곳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은데 무엇인가가 나에게 강요로서 다가오면 당연 싫.다. 그런 반감이라고나 할까. 자기계발서는 가만있는 나에게 다가와 강요를 하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그러한 책들이 담고 있는 메세지들은 마치 그들이 말하는대로 따라하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가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직접적인 강요는 아니지만 간접적인 강요적 메세지를 전달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난 이러한 류의 책들이 싫다.

  물론 읽고 따르면 참으로 도움이 될만한, 사회를 건설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갈 만한 메세지이지만, 차라리 난 그 시간에 철학서를 하나 더 읽고 행복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사색을 하길 권한다. 아 이것도 싫은 이들에게는 강요가 되겠군. 허나 정말로 그런 누구나 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메세지보다는 스스로 철학을 하면서 내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인간은 왜 행복해야만 하는가 등등에 대한 고민들을 하며 사는 것이 더 깊이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에 대한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책은 매일매일 쏟아져내리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대표하여 나의 비난(?)을 받고 있을 뿐. 자기계발서, 성공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 충분히 별 다섯을 줄 만 하지만 난 둘 이상은 주지 못하겠다. 그나마 둘이라도 주는 것은 나의 기호와 주관에 순수하게 이 책을 바라봤을 때의 평가를 합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별 하나로 가는 길을 막았다고나 할까.

  대개의 성공서들이 말하고 있는대로 살면 모든 사람들은 건전하고 교과서적인 아주 깨끗한 삶을 살게 될 듯 하지만 불행히도 행복은 교과서적 삶에 들어있지 않다. 우리는 학교 도덕시간에 배우는 교과서 안에 들은 삶의 메세지들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그 시간을 보내온 지금의 나도 그렇고, 지금 학교에서 도덕을 배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행복의 조건을 돈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대답은 결코 거짓되지 않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사회가 돈이 행복을 보장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내 마음 속에 있다는 말, 그것은 거짓은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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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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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이 문제야. 위성곤씨한테 매력이 철철 넘쳤다면 포르노를 보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거야. 매력만 있다면 사람들은 뭐든 용서하려고 들지. 좀 부도덕해도, 말을 뒤집어도, 사악한 짓을 해도, 다 이해하려고 한단 말이야. 그러나 이런 후진 회사에 다니는 대머리 아저씨가 포르노를 보는건 용서할 수 없는거야." -35쪽

애들도 연인처럼 여러 종류가 있었다. 맛있는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애가 있는가 하면 미술관 같은 곳을 함께 거닐며 수다를 떨고 싶은 애도 있었다. -48쪽

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보면 권태와 허무야말로 이 사회의 특질이었다. 권태는 무차별적으로 퍼져 있었다. 기영은 권태가 무엇인지는 알았으나 그것을 실제로 목도하기는 처음이었다. 그가 떠나온 사회에서 권태는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에나 등장하는 추상적 개념이었다. 물론 그곳에도 권태는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의 권태는 차라리 무료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적절한 동기부여가 부족한 상태라 할 수 있었고, 따라서 어떤 자극만 주어진다면 금세 사라질 가볍고 허망한 것이었다. 그것은 삶을 짓누르고 질식시키는 유독 가스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생겼다. 가끔 어떤 종류의 인간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아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라는 원초적인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경로로 포섭되었는지 모를 그 동사무소 직원이야말로 그런 사람이었다. 권태와 우울, 허무와 냉소, 후줄근한 옷차림과 매력 없는 용모가 어우러진, 잠시라도 함께 있기 불편한 인간이 되어있었다. -80쪽

그녀의 혀는 천천히 마중을 나갔다. 그의 혀는 그녀의 혀를 만나 미끄러졌다. 오래 걸어온 달팽이들이 더듬이를 빼 서로를 확인하듯, 둘의 혀는 조심스럽게 서로를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둘의 혀는 뒤로 수줍게 후퇴했다가 다시 앞으로 나와 서로를 맞았다. 마침내 소년과 소녀의 혀가 격렬히 엉키며 입 속을 가득 채웠고, 그의 혀가 좀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그녀는 입을 조금 더 크게 벌렸다. 침이 입가로 흘러 허벅지로 떨어졌다. -306쪽

그녀는 문득, 엄마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런 일이 과연 자신의 인생에 닥쳐올까, 따위를 생각했다. 끔찍하기만 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키스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아까처럼, 끔찍했던 어떤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것,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 혹시 그런게 인생이 아닐까.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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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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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리트레 사전에 따르면 <어떤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이르기 위하여 옮겨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위하여>라는 말을 강조해야 한다. 여행은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도달해야 할 목표가 주된 것이며 그 수단은 부차적이다. 수단은 그것이 목적지에 닿게 해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 바로 여행이니만큼 중요한 것은 목적지이다.
(여행 中)-13쪽

여행의 기원과 궁극적인 목적은 여행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여행의 완성은 결과적으로 그것의 소멸인 셈이다. 이는 마치 나무를 태우는 불이 결국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것과 같으며, 직관이 떠오르고 나면 논증적 추론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과 같다. (여행 中)-15쪽

한편 <여행>에는 옮겨감으로 인해 치르게 되는 희생에 대한 저항이 따른다. 이를테면 <이곳을 위하여>라는 관념은 끊임없이 <다른 곳을 위하여>라는 관념보다 우위에 선다. 또한 머무르려는 욕망은 이동하려는 기질을 이겨내며, 영원에 대한향수는 순간적인 것의 유혹을 물리친다. 시베리아 횡단 여행자가 원양 항해자도 결국은 정착한다. 그는 더 이상 여행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여행>의 패러독스이다. 즉 <존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의도된 <변화>, <존재>를 상정했을 때에만 실재하는 그 <변화>가 이제는 <존재> 그 자체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여행하는 자는 자신의 습관에 집착한다. 그는 이전의 그 호텔 그 방에 다시 머무르려 하고 그 음식점의 그 테이블에서 식사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 방랑자는, 자기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정착민이 된다. 말하자면 여행하지 않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 中)-16쪽

아이들이 타는 회전 목마는 여행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순환적인 여행이다. 거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여행자는 움직이지 않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빙빙 돈다는 것 말고는 어떠한 목적도 없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추해서 생각하면, 여행기를 읽고 있는 사람도 돌아가고 있는 사물과 사람들의 한복판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도 어떤 방향, 어떤 목적이 여전히 존재한다. (여행 中)-27쪽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산책 中)-53쪽

내가 담배를 피움으로써 세계가 내 속으로 흡입되며 그럴 때 나는 세상을 단지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으나 결코 내 것이 아닌 이 견고한 세계를 담배를 태움으로써 내 것으로 전환시킨다. 왜냐하면 내가 그 견고한 세계를 연기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 사물을 통해 세상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담배 中)-79쪽

두 사람이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비밀은 한편으로 큰 부담이긴 하지만 동시에 커다란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세상 어느 누구도 당신들 둘의 관계를 모르고 - 물론 그게 당신들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단둘이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은 어떤 은근하고도 지속적인 만족감이다. 그렇지만 남몰래 하는 사랑의 은밀함은 그리 오래도록 지켜지지 못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나고야 말거나 혹은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서로를 애써 피하려 하는 것도 기대와는 반대의 효과를 내기도 하는 것이다.(비밀 中)-88쪽

한갓 인간들 사이에서 비밀은 결코 지켜지지 못한다.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아무리 애써봐야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애시당초 사람의 비밀이란 밝혀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은근슬쩍 털어놓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제삼자가 부추기지 않아도 스스로 토로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당신에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남이 알아주는 것은 더 소담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게 비밀인지조차 모르는 바에야 그 비밀의 내용이 잘 지켜진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고 자기에게 비밀이 하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러듯이, 그 내용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그 비밀의 베일은, 너만 알고 있으라는 식의 공모의 분위기가 마련되어야만 벗겨진다. 그래야만 그 비밀이 저잣거리에 파다하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따. 그러나 어쩌랴, 결국은 그렇게 퍼지고야 만다. 죄의 고백은 원칙적으로 은밀한 가운데서 이루어지지만 물론 공개적일 때도 있다. 이 경우, 처음에는 남몰래 애써 감추어왔지만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은 죄과가 만인 앞에 밝혀졌을 때, 비로소 그 죄인은 용서받는 것이다.
(비밀 中)-93-94쪽

긴장은 오전의 속성이다. 사람들은 아침 나절에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준비한다. 그에 비해 저녁은 이완의 시간, 휴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종종 이 저녁 시간도 아침의 소리들과는 또 다른 소리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상대적인 침묵마저도 제대로 견뎌내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도시에 살면서 늘상 시골로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막상 시골 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오락거리를 찾는다. 물론 시골 사람들도 오락거리를 찾기는 마찬가지지만 도시인들은 훨씬 더 복잡한 쾌락을 요구하는 것이다. (침묵 中)-112쪽

혼자서 하는 묵독은 오늘날 많이 하는 독서 형태로서 대화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도피의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둘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꼭 그렇게 대립적이지는 않다. 가령 어머니가 자녀에게 <넌 맨날 책 속에 파묻혀 있구나!>라고 말할 때 그건 자녀의 건강을 염려해서 나무라는 것이라기보다는 자녀가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자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독서 中)-126쪽

데카르트가 독서를 대화라고 말한 것에 대해 프루스트는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에게 독서는 대화의 반대이다. 즉 무엇을 읽는다는 것은 <혼자 남은 상태에서, 다시 말해 고독 속에서만 발휘되고 대화가 시작되면 이내 사라져버리는 그 지적 능력을 계속해서 누리는 상태에서 다른 사유와 소통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깨지기 쉬운 어떤 고취된 상태, 우리를 그 상태로 두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그래서 독서는 우리에게 자극제가 된다. 그것은 우리를 성가신 사회적 관계로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혼자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며, 마치 베르길리우스를 읽은 단테가 그러하였듯이 우리는 독서로 인해 새롭게 자극받는다. 그래서 저자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이다.(독서 中)-143쪽

재능이 없다면 쓰지를 말아야 할 것이며 있다면 자신의 머리에 듣는 생각과 자신의 가슴에 고이는 것을 그냥 쓰면 되는 것이다. (독서 中)-146쪽

고립은 그것이 강요된 것이라는 점에서 고독과 다르긴 하지만 때로 고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풀려난 자는 다시 얻은 자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묶인 채로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서 그는 사슬에 너무나 길들여진 나머지 더 이상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혼자라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 조건에 대해서 거기에 덧입혀진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우리는 결정적인 탈출이란 없으며 인간의 고독은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인 것이다.
(고독 中)-173-174쪽

냄새와 향수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냄새는 의도적이지 않지만 향수는 그렇다. 냄새는 적응하기와 방향 짚기에 도움이 되는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향수는 그와는 다른 종류의, 훨씬 의도적이고 개인적인 매력을 낳는다. 그렇지만 자연이라 부르는 것과 예술이라는 것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향수 中)-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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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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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 그리고 <동물원에 가기>에 대한 잡설

  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던가. 그가 어서 책을 쓰기를, 그의 책이 어서 번역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의 짧은 에세이 묶음집을 접한건,  아직 번역되지 않은 <행복의 구조(?)> 를 읽고픈 - 사실 영어가 되면 원서를 보면 되는데 난 영어문맹이라 - 그에 대한 나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다.

  생각보다 매우 가볍고 짧은 글이었지만 그래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보고 싶었어요 보통씨.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동물원에 가기>는 2005년에 나온 원서 을 번역한 책이다. 왜 이렇게 늦은게야. 나는 나온 즉 바로바로 번역된 책을 읽고 싶다고. 번역서와 원서의 동시출간은 꿈도 못 꿀 터이니 그런건 바라지도 않아. 한 가지 불평을 늘어놓자면, 왜 원서 제목을 자꾸만 맘대로 바꾸는거야. 난 원제가 붙어있는 책을 보고 싶다고. 그럼 원서로 봐! 라고 하면 나는 역시나 나는 영어문맹이잖아 라고 대답할 밖에. -_-

  왜 출판사가 번역서의 제목을 <동물원에 가기>로 붙여놨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이 책 안에 담겨있는 아홉개의 에세이들 중 한 가지로부터 제목을 달았다고는 하지만 이 제목이 독자들에게 그다지 끌리는 제목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그렇다고 이 제목이 이 책을 대변해줄 수도 없다는 생각. 그.래.도. 우얏건 그의 책이 너무나 기다려졌고, 기대됐고, 단숨에 읽었고, 너무나 좋았던 것은 사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내게 주는 효과. 게으르고 지루해진 책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한참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등등 그의 책들을 해치우던(?) 그 때에 '독서침체증상'은 사라졌다. 역시나 이번에도 게으른 나의 책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이 책 안에 언급된 온갖 철학자들과 화가와 작가들의 책들을 더불어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고 다음 주문목록에 올려놓은 것만 해도 수두룩. 일단 플로베르의 책들, <부바르와 페퀴셰>, <통상관념사전>, <마담 보바리>, 또 에드워드 호퍼의 사진집, 레너드 코헨의 음반들. 보통씨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그림, 책이라면 나도 좋아 정도의 수준 쯤이면 심각한 보통 사랑 아닌가. 내가 그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객관적인 평가를 넘어서 별 다섯개를 모두 주고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아닐런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그만큼 그가 좋다.

 - 본 리뷰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철학적이지만 철학적이지 않다. 이런 범주에 드는 다른 분야의 예술가로는 레디오헤드나 신해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중심 주제는 삶이다. 보통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괴로움과 슬픔을 안고 있다. 그들은 헤어진 남자친구를 기억에서 되살리며 이미 지나간 과거의 슬픔과 그리움을 떠올리기도 하며, 어떤 남자는 맘에 드는 여자에게 "말 한마디 붙여볼 기회도" 갖지 못하고, "사과 주스 팩과 내 머리 속의 결혼 계획만 뒤에 남겨놓은 채 다음 역에서 내려버린 여자 때문에 며칠씩 마음아파" 한다. (<슬픔이 주는 기쁨> 도입부 문장 구조를 고대로 가져다 씀)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여러가지 면에서 철학적이다. 첫째, 연애소설이건 에세이건 장르를 가리지 않고 - 사실 그의 글은 장르구분하기가 힘들다 - 그가 알고 있는 온갖 다양한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연애소설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마르크스가 등장하며, 스탕달, 세네카, 니체, 헤겔,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콩트, 스피노자, 데카르트, 몽테뉴, 파스칼, 에피쿠로스, 쇼펜하우어  등등 등장철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나열하면 몇 줄이다. 둘째, 그의 글은 매우 철학적이다. 아주 조그마한 사건들, 사물들을 관찰함에 있어서도 그의 시선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매우 익숙해하는 침대, 기차, 터널, 사과 주스 등등의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에서 그는 많은 생각을 펼친다. 그의 머리 속엔 흰 구름 둥둥 떠다니며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그 무엇도 알랭 드 보통을 통하면 쉽게 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철학적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철학적이지 않다. 왜냐면, 그의 글은 너무나 쉽다. 대개의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이라는 것은 용어조차 쉽게 해석되지 않는, 자기들끼리의 언어세계를 가지고 있는 듯한, 어려운 말로 쓰여진 사색의 흔적들이다. 저 멀리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푸코와 데리다,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도통 이해하기 쉽지 않다. 라깡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라깡만이 사용한 언어를 가지고 사전을 냈을 정도니깐. 그런데 보통의 글은 온갖 철학자들을 뒤집어 까놓고 버무리고 으깨지만 너무나 쉽다.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그의 책 첫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는 마법에 걸린 채 책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지막 장을 덮어버린다. 왜 재밌으니까, 또 쉬우니까. 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서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고로 철학적이지 않다. 맛배기 하나.

 "어쩌면 침묵과 어줍음은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p48)(<진정성>中)

 "여자들은 홀로 있는 남자들의 절망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충서와 이타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로맨스라는 면에서 잘나가는 유형의 남자들을 의심할 만한 이유도 되겠다. 그런 남자들은 넘치는 매력 때문에 내가 겪었던 이런 희비극적 과정을 알지 못한다. 말 한마디 붙여볼 기회도 주지 않고, 사과 주스 팩과 내 머릿속의 결혼 계획만 뒤에 남겨놓은 채 다음 역에서 내려버린 여자 때문에 며칠씩 마음 아파하는 그 과정을. "(p99-100)(<독신남> 中)

   <슬픔이 주는 기쁨> <공항에 가기> <진정성> <일과 행복> <동물원에 가기> <독신남> <따분한 장소의 매력> <글쓰기와 송어> <희극> 의 아홉개의 에세이들은 모두 각각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껏 우리가 접해왔던 알랭 드 보통의 여러 책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고루 분배되어있어 일종의 종합판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글은 그의 로맨스 3부작을 보는 듯 하고, 어떤 글은 <불안>을 연상시키며, 어떤 글은 <여행의 기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나머지 다른 글들 또한 어떤 특정한 전작을 떠올리게 하지 않더라도, 모두 지극히 '보통스럽다'. 보통은 첫 글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에드워드 호퍼적인"이란 말을 쓰는데, 같은 차원에서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다보면 지극히 "보통적인" "보통스러운" 뭔가를 감지하게 된다. 내 머리에 돋아난 촉수가 그를 자연스럽게 알아본다고나 할까. 추상적인 것에 대해  혹은 사소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 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 하고, 한편으로 이런 저런 인용구와 비유를 들어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안착한다.

  보통의 저서들이 줄줄히 번역되어 출간된지 시간이 꽤 흐른 지금, 그의 인기가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하면 이는 착각. 여전히 나와 같이 보통을 짝사랑하는 이들은 도처에 널려있으며 이 책이 그들의 사랑을 받을 것임은 '사.실.' 혹여 아직도 그를 모르는 이가 있다면 이 책 하나로 보통의 매력에 푹 빠질 기회가 다시 왔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 것. 꽝은 절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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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채 2006-08-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알랭 드 보통 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프락사스 님과 밑에 하이드님에 견줄 정도가 못되네요 ㅠㅠ.. 사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혼자보기아까운, 아니 그래서 아무한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그런 작가이거든요. 제가 너무 이기적이죠? ㅋㅋㅋ

이잘코군 2006-08-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반갑습니다. 저도 사실 그렇습니다. 꼭꼭 숨겨놓고 보고픈 작가인데 너무 많이 알려져서 이제 그런거 포기했습니다. -_- 제가 숨겨도 다 드러나는데요 뭐. 아 정말 맘에 드는 작가입니다. 통독하고선 또 곱씹어서 다시 보고 들춰보고픈 책들이에요.

이매지 2006-08-2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봤는데 엄청 얇고, 엄청 가볍더군요. 하이드님과 아프락사스님의 보통씨 사랑은 정말 ^^;

이잘코군 2006-08-2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이 내거에요 건들지마세욧. -_-+

하이드 2006-08-2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나온 건축.에 관한책도 완전 재미있는데 =3=3

안나채 2006-08-27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은 벌써 원서로 읽으셨네요. 저도 며칠 전에 <행복의 건축>주문했어요. 번역본이 나올때까지 못기다리겠더라구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사볼껄. 기다리다 결국 ㅠ,ㅠ

이잘코군 2006-08-2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 막 약올리고 가시네. -_- 번역되면 후딱 사봐야지.
지젤님 / 옷 님두. ㅠ_ㅡ

안나채 2006-08-2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아프락사스님- 본이 아니게 그런 셈이 되었네요. 죄송/ >_ㅠ]
저도 아직 술술 읽을 정도의 실력은 못되서, 영어 공부도 할겸. 겸사겸사루ㅋㅋㅋ

이잘코군 2006-08-2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