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간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김영하의 작품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번째 만남이다. 이 만남을 불행이라 말한건 그 전에 읽었던 <검은꽃>이 개인적으로는 훨씬 좋았으며 이 작품을 통해 그 때의 느낌을 더이상 그대로 간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만남을 다행이라 말하는건 김영하라는 소설가는 아직 좀더 시간을 두고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기껏 그의 책이라고 해봐야 이제 두번째 작품이니 아직 나 개인이 그를 평가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그를 평하가는데 있어 비난할 만큼 이 책이 나쁜 것은 아니며 이 책은 충분한 즐거움은 선사했지만 단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뿐이다.

  꽤나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들과 아마도 정확한 당시의 시대 자료들, 그리고 설득력있는 이야기 전개 등등 원고지 1500장 분량의 소설을 써내며 한장 한장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소설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하지만 아 뭔가 아쉽다 싶은 그런 공백도 느껴진다. 그것은 아직 그가 젊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소설을  쓰라하면 단 한장도 뽑아내지 못할 나 같은 이에겐 이 소설은 그의 젊음에 비했을 때 상당히 묵직하다.

  가벼운 연애 소설 따위가 아닌 남북 분단의 문제와 이로인해 빚어지는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그의 가족의 인생의 이야기를 녹여낸 잘 쓰여진 소설이다. 간첩으로서의 인생, 하지만 15년의 세월 동안 그는 그저 반쪽짜리 대한민국의 소시민적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아내와 사랑하고, 돈 걱정하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회사 생활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갑자기 떨어진 4번 명령만 아니었다면 그는 그저 남쪽에서 태어나 남쪽에서 그저그런 삶을 살다 죽은 한 남자로서의 인생을 마무리했을 것이고,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 삶은 그에겐 불행이 아닌 삶의 안정과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내려왔을지 모르는 그 명령을 따라 지금껏 살아온 남쪽에서의 생활, 아내와 딸과 친구와 회사를 그만 놓고 갈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러나 가야만 한다. 가야만 한다. 가기 싫지만 가야만 한다. 그럼 아내는 딸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아내는 스무살의 어린 대학생 두 명과 무인러브호텔에서 그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아 어떻게 이럴수가. 나와 가족의 남은 삶이 걸린 문제를 홀로 고민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섹스의 환락에 푹 빠져있었다. 이 두 사람의 하루 동안의 행보가 이렇게나 극명하게 대조될 수 있는가. 이렇게나 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버릴 수가 있는가 싶다. 그녀는 그랬다. 내가 거짓말같은 사실들을 다 까발려 말했을 때 거짓말이라고,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그러면서, 믿었고, 믿은 뒤에 남고 싶다는 나를 북으로 올라가라 했다. 자신과 딸은 그냥 남쪽에 내버려둔채로. 남쪽에 내려와 살며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15년을 산 그녀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너는 가고, 우리는 남는다고.

   소설은 많은 문제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크게는 남북한의 분단상황과 남파간첩 문제를 묵직하게 던져놓고 있지만, 남쪽의 한 가정의 소시민적 삶을, 그리고 부부의 사랑을, 자본주의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그 속에 녹였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구성해내려 애쓴 김영하에게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다음 작품에서는 2%의 부족함을 메워주리라 기대하면서, 좀더 나이가 들어 삶을 관조하고 깊이있는 사고를 할 수 있을 때 즈음에 걸작이라 불릴만한 작품을 하나 내놓으리라 기대하면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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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3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소설 보면서 결론은 가족의 붕괴라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이념갈등과 간첩등등의 고차원(?)적인 사회문제보다는 서서히
보여주고 있는 평범한(?) 사회문제 더 끔찍했어요..

마늘빵 2006-08-3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랬습니다. 묵직한 주제를 툭 던져놨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부부의 일상적인 면들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