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인터넷에 들어와 돌아댕기다 네이버 뉴스를 접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요즘 나이 어린 신입사원들이 학력, 영어나 컴퓨터 능력 등은 향상되었을지 모르나 조직 적응력, 문제 해결력, 대인관계 능력 등은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과거에 업무능력이 부족해 일을 못하는 사원들이 많자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대학에서 영어 토익점수 몇 점 이상 졸업 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놓고, 또 취업전에 대학에서 집중 취업준비를 해줬기 때문에 개인의 토익점수나 회화능력은 향상되었을지 모르나 '나홀로 공부'를 하다보니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기사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고, 기사내용도 관심은 가지만,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보게 된 것이다. (역시 제목은 잘 뽑아야돼)  '신입사원 어머니가 찾아와 '인사부장 면담 좀 합시다" '라는 제목의 글이다.

   아들이 석사를 끝내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연수를 받고 난 후 지방으로 발령이 났는데, 아들의 우울증 진단서를 가지고 와서 인사부장에게 제발 지방은 안되고 서울에 발령내달라고 토로했다나 뭐래나. 아들이 우울증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상관할 바는 아니고, 왜 어머니가 와서 인사부장을 만나 인사조치를 바꿔달라느니 어쩌느니 하느냐 말이다. 그것도 석사를 끝낸 나이면 도대체 몇살인거야. 아무리 못해도 내 나이잖아. 서른 가까운 나이 먹은 아들의 일을 가지고 왜 어머니가 그러는건데.  

  대학 졸업하고 - 왜 대학시절엔 잘안했는지 모르겠지만 - 외박하는 경우도 있고 하다보니 - 다른 일로 외박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학부시절 술을 마실 때면 집이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에 늦어도 항상 들어왔다 - 슬슬 딴지가 들어오는 것이다. 어디서 뭐 하다 이제 들어오냐는 식. 저 내일 들어가요, 라고 친절하게 문자메세지까지 날려드렸건만 뭐가 문제인건데. 내가 외박을 매일 하는것도 아니고 한달에 많아야 두 세번 했는데. 집에서 기거하는 날보다 밖에서 숙식하는 날이 많다면 그나마라도 이해하겠는데 왜.왜. 20대 중반을 넘긴 아들이 외박하는게 문제가 되는건데. 

  어머니는 아셨던 것이다. 내가 외박하는 날 당신께서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는걸. 그러나 말은 못하고 왜 늦게 들어오느냐고 뭐라 하신게지. 그러나. 엄연히 나는 이미 독립했어야 할 나이를 먹은 법적 성인이고, 단지 돈이 없어 여기에 붙어있을 뿐 돈만 있으면 충분히 나갔을 것이다. 이런 말을 어릴적에도 한 적이 있다. 나 돈만 있으면 나가서 따로 살거라고. 그때도 어머니는 뭐하러 돈을 두 군데 쓰느냐 고 뭐라 하셨더랬지. 집에서 밥먹으면 밥값 안들어, 가스비, 전화비 등 공과금도 한번만 내, 월세는 또 어쩌고. 그래 말씀은 맞는데, 핵심은 그게 아니잖아. -_- 

  제작년에 운동을 하면서 살을 좀 뺐더랬다. 어머니가 돈 들여 3개월 끊어주길래 다녔는데 내가 운동을 안하는 날에는 왜 운동 안가니, 빨리 갔다오는게 낫지 않겠니, 이러다 오늘 못가겠다, 등등 간섭을 하시는거다. 아 진짜. 운동을 가고 안가고는 내가 결정할 일이지 왜 남의 신체와 자유의지에 대해서까지 명령을 하는거야. 그래도 돈을 내줬으니까 그 돈에 대한 참견이라 생각하고 참았는데, 내가 내 돈주고 운동을 하던 때에도 똑같은 행동을 하시는거다. 그래서 몇 차례 언쟁이 오간 뒤 이제는 덜 하시지만, 역시나 지금도 그러신다. 그러다 언제 가려고 그러니. 제발. 내 몸와 내 의지에 자유를. 아멘.

  사례 하나. 나의 이야기는 아니고. 얼마전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였나. 여기서 종교갈등 문제를 다뤘는데 - 사실 종교갈등이라고 해도 종교가 거기에 끼어들어가 있을뿐이지 온갖 갈등의 종합병동이었다 - 한 집안에서 나이 서른일곱쯤 된 남자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이 여자가 증산도를 믿는게다. 아들쪽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였는데 아들이 이 여자를 만나고 증산도를 믿게 되었고, 집에서는 여자 때문에 아들을 망쳤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여자에게 헤어지라고도 했나보다. 아들은 또 왜 여자친구와 헤어져야하느냐 뭐 등등. 더 말 안해도 충분히 상상가능한 일.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어서 사귀고 함께 살겠다는데 왜 부모님이 헤어져라 말아라 하는 일이 발생하는 걸까. 아들이 사람을 잘못봤다면 조언을 해주면 될 것이고, 조언했는데 안통했다면 어쩔 수 없는거지 왜 '명령'과 '강요'로 일관하느냐.  

  사례 둘. 티비 아침마당 프로그램 같은 데 보면 어머니들이 나와서 우리 아들이 어쨌어요 저쨌어요 자랑질을 한다. 서로들 자기 아들 자랑을 한다. 상대가 듣던 안듣던. 요즘 송일국씨가 주몽으로 뜨자, 김을동씨가 나와서 우리 아들이 어쩌구 저쩌고. 제발. 71년생이면 37살이라고. 헉.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정말 많네. 그런데 37살 먹은 아들 자랑을 엄마가 아직도 하고 다니면 어쩌란 말이냐. 김을동씨 라고 불리기보다 '주몽 어머니'라고 불리는걸 더 좋아하는 이 분 어찌보면 좋을까. 

  우리 어머니도 내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동창의 어머니들 만나면 - 정작 친구들끼리는 어머니 통해 소식 듣는다 - 서로들 딸자랑, 아들자랑 하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이번에 우리아들이 인턴 들어갔는데 3월에 결혼을 한다, 여자친구네서 여의도 아파트 하나를 가지고 왔다, 우리 딸이 이번에 대기업 어디에 들어갔다, 아들은 정부 장학금으로 미국에 유학 중인데 거기서 여자친구 만들었나보더라 지금 박사학위만 받으면 다시 들어온단다 등등. 나야 뭐 초반에 잘 나가다 지금이야 별 볼 일 없으니 자랑할 거리도 없지. 그러면서 또 빼먹지 않는 말씀이, 누구네는 엄마한테 한달에 40만원씩 준다더라. 아들은 통째로 월급 내놓는다더라. 현장에선 암말 안한다. 속으로 아 정말.  

  왜 이리 되었을까. 아주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한국의 어머니의 모습이다. 외국이야 내가 잘 모르겠고. 유독 두드러진 것은, 아버지의 아들이나 딸에 대한 태도보다, 어머니의 딸에 대한 태도보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태도가 위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유독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착을 보인다.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집착당하는 아들은 못살겠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장남'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남이라고 나에게 의지하고, 아들이라고 나에게 의지하고, 이런거 원치 않는다. 내가 한 살 어린 동생보다 더 받은 것도 없고, 덜 받은 것도 없으며, 똑같이 언제나 똑같이 대해줬으므로 나는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적인 예만을 지킬 뿐 그 이상의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이 한국의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불편해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각 가정의 어머니와 아들이 각각 이와 같은 행위를 서로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불편해한다면 이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대개는 아들의 불편에서 시작이 되겠지. 그래서 '이제는 말 할 수 있다'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최대한 미리 나의 가치관과 태도를 분명히 하고자 어린시절부터 언질을 했으며, 꾸준히 내 사고방식을 피력하고 있지만, 받아들이실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머리로는 받아들이셔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실게다.  

  어머니로부터 아들의 자유를 허하라. 세상 모든 어머니들께 말씀드리오니. 애정어린 관심과 조언은 고맙지만 지나친 간섭과 강요와 명령은 사양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어머니들이 나와 자식자랑삼아 웃고 즐기는 아침마당 프로그램을 폐지했으면 한다. 자식을 더이상 소유물로 생각지말고 프로그램에 나와선 본인 자랑을 하시길, 남편과 아내 자랑을 하시길 권합니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낳으신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자식의 인생까지 낳으신 것은 아닙니다.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개별자입니다. 부모님으로는 관심과 조언을, 하나의 개인으로서는 사생활과 의사 존중을 기본으로 삼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나는 하나의 개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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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2-03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_*
구구절절...^^;;
저도 아들만 둘인데... 참고해야 겠어요...^^;;
하 하 하 ^^

책속에 책 2007-02-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은 딸만 둘인데, 갈수록 어머니 아버지가 딸 둘을 못 놓으셔서, 조금씩 갈등상황이 빈번해져요..사춘기때 부모님하고 치뤘어야 할 걸 이제야 한다는 기분이라니까요..ㅎㅎ

이잘코군 2007-02-0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 ^^
데이드리머님 / 저도 역시 그렇습니다. 10년전에 치뤘어야 할 일들이 이제와서 벌어진다는 것이 참. 왜 이 나이를 먹고 그런 문제를 가지고 언쟁을 해야하는지 답답합니다.

2007-02-03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7-02-0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할 때 완전 절정에 이르릅니다. 모든 의지를 했던 아들이, 자신에게는 한번도 안보이던 애정과 관심을 쏟는 여인에 대한 질투, 상실감, 서운함, 위기 등등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제 동생도 결혼할 때 몇 번 싸웠죠.. 며느리보다는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더 크셨던 겁니다....

sweetrain 2007-02-0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버지가 저한테 너무 간섭을 안하셔서 가끔 서운할 때도 있다는...
너무 일찍 손에서 놔줘버리셨어요;;;

얼룩말 2007-02-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제가 다 머리가 아파요

2007-02-03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2-0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 네 아마도 그렇겠죠. 여자친구만 생각하고 위하고 그런다면 극에 달하겠죠. 더군다나 함께 사는 집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저는 확실히 따로 살 생각입니다만. 지난번 어머니도 그러셨어요. 당신과 아내가 싸운다면 당연히 아내편 들겠네? 이러시는데, 옳고 그름 여부를 봐서 편을 들겠다고 했지만, 당연히 전 아내편이죠. 이런 상황이라도 벌어진다면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_-

단비님 / -_- 음... 그게 좋은 겁니다. 잘생각해보면 서운한건 '관심'을 덜하셔서겠지요, '간섭'을 안하셔서는 아닐거에요.

얼룩말님 / 두통엔 게보린! ^^
속닥님 / 아 여자친구가 혼자 나온지 좀 되서 거기서 놀고 있슴다. 데이트 비용도 절약하고, 밖에서 피곤하게 빨빨 거리고 돌아댕기지도 않아서 편해요. 음식도 해먹고.

춤추는인생. 2007-02-04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그렇군요..^^ 저는 적당한 관심은 아직 좋은것 같아요. 저도 쪼금 더 있으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이잘코군 2007-02-04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적당한 관심은 환영합니다. 관심을 넘어서면 문제가 되는거죠. 나이를 먹을수록, 따로 나가 살지 않는 한,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순전히 '액션'만 있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몇몇 좋아하는 시리즈 물이 있는데, <다이하드> 편과 <리셀웨폰> 편이 그렇다. 둘 다 굉장히 오래된 영화들인데, <다이하드>는 88년에 1편이 나오기 시작해 4편까지 있고, 리셀웨폰은 3편까지 나왔던가. 뭐 검색해보면 금방 나오겠지만 귀찮아.  

  순수 액션 영화인 다이하드의 주인공은 언제나 존 맥클라인 경사. 브루스 윌리스. 이 사람 나온 영화들은 거의 다 좋아한다. 특별히 매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브루스 윌리스는 나오는 영화마다 거의 이런 식의 액션영화들인데 출연작도 엄청 많고 대개 흥행했다. 비슷한 이미지로 이렇게나 오래 읅어먹는 사람도 많지 않을텐데, 게다가 이렇게 또 오래도록 사랑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 참 멋있게 늙었다. 저 나이(55년생)에 몸매도 저 정도면 잘 빠졌고.

  언제나 살짝 벗겨진 이마에 인상 잔뜩 지푸린 얼굴로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브루스 윌리스. 영화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올시다. 탐크루즈가 나오는 액션도 좋아하지만 대개 탐크루즈의 액션은 액션도 액션이지만 영화에 메세지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출연작은 그렇지 않다. 나름 스타일이라면 스타일. 두 사람 다 온몸을 내던지며 열연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은 안쓰럽다. 맨날 많이 당하고 주먹구구식 싸움인 경우가 많다. 탐 크루즈 처럼 최첨단 무기도 사용하지 않으며 기교를 부릴 줄도 모른다. 그냥 냅다 몸만 던진다. 이제 나이 생각도 하셔야지. 88년 첫 작품이면 거의 20년 세월이다. 대단하다.

   역시나 <다이하드> 1편에서도 홀로 독일 우익 테러범들과 맞서 고군분투 하며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맨발의 청춘으로 계단을 이리저리 뛰댕기고, 엘리베이터 안에 위에, 옥상에, 책상 밑에 여기저기 안다니는 곳이 없다. 그러다 결국 발바닥에 유리 잔뜩 찔리고, 근육질 어깨는 피투성이다. 아 그냥 얼굴만 봐도 아프겠다 싶다. 수고했다 존 맥클라인 경사. 당신이 수고한 만큼 20년 뒤에도 이 영화를 사랑하는 나같은 이가 있으니. 이 영화를 내가 대여섯번은 본 거 같은데 봐도 봐도 다음에 무슨 장면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재밌다.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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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바랜 사진 한 장에 담겨진 함께 오락실도 가고 야자도 하고 땡땡이도 치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영화 <친구>를 보고나면 문득 내 어린시절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한국영화 대박신화의 초기의 획을 그은 <친구>의 흥행원인은 아마도 잊고 지내던 친구와의 추억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2001년의 개봉 당시에는 아마도 나는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 처박혀 있었을 것이다. 당시 전국민의 1/4 정도가 봤다는 이 영화를 나는 그로부터 횟수로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만났다.

  장동건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하지만 그 옆에 별거 아닌듯 보이는 유오성의 전혀 가오잡지 않은 가오가 더 눈에 띈다. 영화를 보기 전과 본 후의 포스터에 대한 느낌은 이렇게 다르다. 좋아하는 배우 유오성과 장돈건의 젊게 꾸민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가운 영화. 나는 남자이고 완전한 이성애자이지만 장동건을 정말이지 좋아한다. 여자들이 장동건을 좋아하는 똑.같은 이유로. 잘생겼잖아. 멋있잖아.



* 정말 해맑은 모습을 한 순수(?)했던 시절의 네 친구의 모습이다. 몇 년이 지난 후 각자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결국 공부로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나는 어릴 때 공부밖에 모르는 순도 100% 의 모범생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 하기 전에는 수줍어 얼굴 새빨개지는 그런 아이였고 언제나 엄마 치마 뒤에 숨어서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였으며, 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 내 주는 숙제 꼬박꼬박 하고 - 아이들은 보통 다음달 학교 와서 숙제하지만 난 집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날 학교에서 되도록 끝내려했던 아이였다 -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필기도 다 하고,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고, 밖에 나가하는 축구, 농구 이런건 관심도 없었으며, 오락실도 멀리했더랬다. 아으. 지금 생각하면 완전 내 친구 말마따나 '재수없는 모범생'이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에겐 항상 나를 지켜주는 주먹들이 있었다. 공부 잘하는 순둥이 모범생에게는 으레 시비거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며 그다지 성격이 둥글둥글하지 못했던 나는 건드리면 발악하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질 싸움 뻔히 알면서 덤비다가 코피 쏟는건 당연하고, 코뼈가 휘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언제나 나랑 붙는 녀석들은 반짱, 학년짱의 수준인 주먹들이었다. 게임이 되나. 그러나 그녀석들이 날 칠 때마다 옆에서 그 아이들을 말리고, 나를 현장으로부터 도피시켜주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참 고마웠다. 그 친구들은 어디서 뭐 하나 궁금하네. 친놈이나 막은놈이나.

  남학교에서는 특히나, 주먹이 계급서열을 짓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여학교는 모르겠고. 그러나 졸업하고 누구는 대학가고, 누구는 재수하고, 누구는 깡패가 되면서 서열은 거꾸로 뒤바뀐다. 영화 속 준석과 동수, 중호와 상택은 전형적인 서열의 뒤바뀜을 경험한다. 약에 찌들어 방구석에서 떨고 있는 준석과 깡패 시다바리를 하고 있는 동수, 2년제 대학에 간 중호, 4년제 대학에 가고 유학까지 한 상택의 모습은 너무나 일반적이다. 한때 바다에서 튜브 띄워놓고 함께 이야기 나누던 그들은 어느덧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한바닥에 머물던 준석과 동수는 결국 부딪히게 되었고,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다.



* 장동건 정말 멋있다. 머리길이가 기나 짧으나, 정장을 입으나 교복을 입으나, 수염을 깎거나 기르거나, 어떻게 해도 멋있다. 야 정말. 잘생긴게 컴플렉스일수도 있겠다. 너 정도면.

   상택이 준석을 면회하기 위해 신청서 '관계'란에 친.구. 라고 적어넣는 그 장면은 눈물 핑 돌게 한다. 결국 친구를 죽이고 친구에게 미안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길 자청하고 철장 안에 있는 준석의 모습과 그 친구를 면회간 성공한 상택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모인 네 명의 인생살이는 너무나 달랐다. 똘똘뭉치고 학교를 퇴학당하면서 서로를 지켜주던 그 모습은 이제 없다.

  친구. 곁에 두고 오래 사귄 벗. 내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저들만큼이나 서로를 아껴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을까.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누군가와 사귐에 있어 나를 다 내놓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그러다보니 자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직장'과 '학교'와 '동호회'로 이어져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엇' 때문에 연결된 사이라 할 수 있다. 그 '무엇'이 지워지면 고리는 자연 사라진다. 관계망에 있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친구'라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모두가 시간을 쪼개살면서 맺게 되는 관계는 대개 '무엇'을 통하기 마련이니까.

  p.s.

 영화 <친구> 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93년 7월 부산에서 곽경택 감독의 친구인 칠성파 행동대장 정모씨가 부하들을  시켜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살해한 사건으로, 흥행 이후 2001년 정모씨와 칠성파 권모씨가 곽경택 감독에게 돈을 요구해 3억원 가량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 법정 재판 과정에서 곽감독이 이를 부인함으로써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005년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 1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영화 속 모범생 상택은 곽경택 감독의 모습이었던 것인가? 그렇담 친구인 정모씨가 곽감독에게 금품을 요구함으로써 영화의 결말까지도 유지되던 준석과 상택의 우정과는 참으로 다른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된다. 결국 친구가 친구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것이니. 정모씨와 권모씨는 비록 징역 3년과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실형을 샀는지는 의문이고, 3억 받아낸 것치고는 꽤 작은 수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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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3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2-0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속닥님 / 이른 아침부터. ^^ 동감. 그런게 심하게 드러났었죠. 근데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고, 남자들마다 다르긴 하지만 내 주변에서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하는 녀석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인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고 볼 수 있죠.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6
루이스 캐럴 지음, 남기헌 옮김 / 책세상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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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네가 의미하는 것을 말해야지." 3월의 토끼가 말했다.
"그럴게." 앨리스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적어도..... 적어도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을 의미해...... 이거나 그거나 같은 거잖아."
"전혀 같지 않아!" 모자 장수가 말했다.
" '나는 내가 먹는 것을 본다'와 '나는 내가 보는 것을 먹는다'가 똑같다는 말이니?"
"그러니까 네 말은,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좋아한다'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졌다'가 똑같은 거구나!" 3월의 토끼가 거들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는 잠을 잘 때 숨을 쉰다'와 '나는 숨을 쉴 때 잠을 잔다'가 똑같다는 거구나!" 겨울잠쥐까지도 잠꼬대하듯 거들었다.
"너에게나 똑같겠지!" 모자장수가 말했다. -92쪽

남기헌 : 그렇다면 혹시 부조리와 난센스-무의미는 서로 다른 것인가요? 사뮈엘 베게트는 보통 부조리 작가로 여겨지는데, 선생님은 이와 어떻게 구별된다고 보십니까?

캐럴 : 음. 부조리가 한 의미의 체계 안에서 상반되는 의미들을 대조시키는 것이라면 무의미는 전혀 다른 의미의 체계가 존재함을 전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무의미는 의미의 체계가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뿐, 다른 의미 체계 사이에 종속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두 의미 체계의 공존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런 차이를 부정하고 하나의 의미 체계로 다른 의미 체계를 이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자와 저자의 가상인터뷰 '나른한 오후의 다과회' 中 ) -185-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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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와 루이스 캐럴 간의 가상 인터뷰 형식, 흥미롭네요.
 

2007. 1. 25  예스24 영화

http://movie.yes24.com/movie/movie_memwr/view.aspx?s_code=SUB_MEMWR&page=2&no=13861&ref=2&m_type=0

 

매트릭스 directed by 앤디 워쇼스키, 래리 워쇼스키

이 영화를 봤을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마도 대학 2학년 시절 본 것 같은데, 그간 배웠던 철학적 지식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달까. 워쇼스키 형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삼아 이것저것 다 끼워 맞춰봤다고 하지만, 영화는 이미 던져졌고 난무하는 것은 해석뿐.
우리는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내가 만지는 이 자판이 딱딱하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현실세계에 살고 있는가, 현실이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는 무엇인가, 어떻게 규정되는가 등등의 질문들. 이 영화 한편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철학 수업이 가능하다.

봄날은 간다 directed by 허진호

아, 도저히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뒤에 일어설 수 없었다. 그렇게 아픔을 가져다준 영화였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안에서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는 존재했지만 나를 포함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이를 심적으로 거부한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봄날은 그렇게 간다. 사랑에 빠졌고 사랑은 떠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래 사랑은 변한다. 인정하자.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꿈꿔왔던 사랑의 관념을 뒤바꿔준, 현실을 확인시켜준 영화랄까. 허진호 감독의, 사랑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장미의 이름 directed by 장 자끄 아노

움베르트 에코의 힘겨운 소설 『장미의 이름』을 영화로 확인하는 매력이란 이런 것.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아, 어렵다, 정말, 벅차다, 이런 느낌이었으나 영화는 좀더 대중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영화 그 자체로서보다는 소설과 연계하여 봄으로써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소설 속 캐릭터들은 영화 속에서 적절한 배우와 연기로 환원되었다. 지적인 희열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소설을 읽기 힘들었다면 이 영화를 먼저, 혹은 함께.

사랑을 놓치다 directed by 추창민

애절하게 질질짜고 전혀 안 쿨한 사랑영화. 요즘 세상에 이런 인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를 향해 고백하기 힘들어하는 두 남녀에 관한 이야기. 아, 한번의 고백을 위해 십년의 세월을 보냈던가. 난 그간 뭘 했던가. 우리가 만나기 위해 십년의 세월은 너무나 가혹했고, 십년은 우리의 그 애틋했던 느낌을 지속시키기 힘들었다. 어긋나고 어긋나고 또 어긋나고. 보는 관객이 더 화가 나고 답답해하는 그런 영화. 하지만 쿨한 요즘 세상에도, 과거와 똑같이,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향해 고백하기 그렇게 힘들다. 세상의 흐름과 사랑방식의 변화 문제가 아니라 본래적인 사랑의 문제이다. 쿨하지 않다고, 찌질하다고 그들을 욕하지마라. 정말 쿨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쾌락일지니.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directed by 리차드 링클레이터

참으로 다양한 사랑만큼이나 참으로 다양한 사랑방식이 존재하고, 참으로 다양한 사랑영화가 존재한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새로운 방식의 사랑영화이다. 낯선 남녀와 기차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끌려 함께 거리를 거닐고, 눈이 맞아 사랑을 하고, 훗날을 기약하며 기차에서 헤어진다. 원나잇을 다룬 이보다 더 순수한 영화가 있을까. 사랑이 시작하고, 진행되는 과정을 매우 자연스럽게 압축적으로 그려낸 영화이다. 마치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보는 듯.

 

 

  지금 다시 고르라면, <장미의 이름>을 빼고, 
  <이터널 선샤인>  <파니핑크>  <내 남자의 유통기한>  <클로져> <아들의 방>
  중에 하나가 들어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랑영화가 아닌 것은 <매트릭스>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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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개네요.^^ 왜 아직 매트릭스를 못 봤지...

이잘코군 2007-02-0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더 꼽을 수 있지만 다섯편만 써달라해서 그리 되었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지금 와서 보면 다른 걸 집어넣을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거 말고도 넣을 영화는 많은데.

토트 2007-02-0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놓치다는 못봤네요. 이 영화들 다 좋았어요.^^

이잘코군 2007-02-02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랑을 놓치다>는 극과 극으로 나뉠 듯 하군요. 토트님께서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아픈 영화였답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2-0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라이즈-유럽여행에 대한 환상을 키워준 영화. 언제 봐도 좋아요, 이 영화는. :)

이잘코군 2007-02-02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미리 정해놓지 않은 듯 한 그런 자연스러움이 좋았어요. 영화니 당연히 인위적인 설정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저 두 사람의 뒤를 밟아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이나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나. 간격을 두고 꾸준히 보고픈 영화입니다.

프레이야 2007-02-0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그 블로그가 님의 것이었군요. 몰랐어요. 축하드려요.^^
토로피칼 빠숑, 재미있어요. 비포선라이즈는 정말 대사를 놓치면 안 되겠더군요.^^

이잘코군 2007-02-0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네 ^^ 혹 알고 계셨던건가요. 비포선라이즈는 그쵸 대사 놓치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