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 한 장에 담겨진 함께 오락실도 가고 야자도 하고 땡땡이도 치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영화 <친구>를 보고나면 문득 내 어린시절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한국영화 대박신화의 초기의 획을 그은 <친구>의 흥행원인은 아마도 잊고 지내던 친구와의 추억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2001년의 개봉 당시에는 아마도 나는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 처박혀 있었을 것이다. 당시 전국민의 1/4 정도가 봤다는 이 영화를 나는 그로부터 횟수로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만났다.

  장동건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하지만 그 옆에 별거 아닌듯 보이는 유오성의 전혀 가오잡지 않은 가오가 더 눈에 띈다. 영화를 보기 전과 본 후의 포스터에 대한 느낌은 이렇게 다르다. 좋아하는 배우 유오성과 장돈건의 젊게 꾸민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가운 영화. 나는 남자이고 완전한 이성애자이지만 장동건을 정말이지 좋아한다. 여자들이 장동건을 좋아하는 똑.같은 이유로. 잘생겼잖아. 멋있잖아.



* 정말 해맑은 모습을 한 순수(?)했던 시절의 네 친구의 모습이다. 몇 년이 지난 후 각자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결국 공부로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나는 어릴 때 공부밖에 모르는 순도 100% 의 모범생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 하기 전에는 수줍어 얼굴 새빨개지는 그런 아이였고 언제나 엄마 치마 뒤에 숨어서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였으며, 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 내 주는 숙제 꼬박꼬박 하고 - 아이들은 보통 다음달 학교 와서 숙제하지만 난 집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날 학교에서 되도록 끝내려했던 아이였다 -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필기도 다 하고,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고, 밖에 나가하는 축구, 농구 이런건 관심도 없었으며, 오락실도 멀리했더랬다. 아으. 지금 생각하면 완전 내 친구 말마따나 '재수없는 모범생'이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에겐 항상 나를 지켜주는 주먹들이 있었다. 공부 잘하는 순둥이 모범생에게는 으레 시비거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며 그다지 성격이 둥글둥글하지 못했던 나는 건드리면 발악하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질 싸움 뻔히 알면서 덤비다가 코피 쏟는건 당연하고, 코뼈가 휘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언제나 나랑 붙는 녀석들은 반짱, 학년짱의 수준인 주먹들이었다. 게임이 되나. 그러나 그녀석들이 날 칠 때마다 옆에서 그 아이들을 말리고, 나를 현장으로부터 도피시켜주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참 고마웠다. 그 친구들은 어디서 뭐 하나 궁금하네. 친놈이나 막은놈이나.

  남학교에서는 특히나, 주먹이 계급서열을 짓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여학교는 모르겠고. 그러나 졸업하고 누구는 대학가고, 누구는 재수하고, 누구는 깡패가 되면서 서열은 거꾸로 뒤바뀐다. 영화 속 준석과 동수, 중호와 상택은 전형적인 서열의 뒤바뀜을 경험한다. 약에 찌들어 방구석에서 떨고 있는 준석과 깡패 시다바리를 하고 있는 동수, 2년제 대학에 간 중호, 4년제 대학에 가고 유학까지 한 상택의 모습은 너무나 일반적이다. 한때 바다에서 튜브 띄워놓고 함께 이야기 나누던 그들은 어느덧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한바닥에 머물던 준석과 동수는 결국 부딪히게 되었고,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다.



* 장동건 정말 멋있다. 머리길이가 기나 짧으나, 정장을 입으나 교복을 입으나, 수염을 깎거나 기르거나, 어떻게 해도 멋있다. 야 정말. 잘생긴게 컴플렉스일수도 있겠다. 너 정도면.

   상택이 준석을 면회하기 위해 신청서 '관계'란에 친.구. 라고 적어넣는 그 장면은 눈물 핑 돌게 한다. 결국 친구를 죽이고 친구에게 미안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길 자청하고 철장 안에 있는 준석의 모습과 그 친구를 면회간 성공한 상택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모인 네 명의 인생살이는 너무나 달랐다. 똘똘뭉치고 학교를 퇴학당하면서 서로를 지켜주던 그 모습은 이제 없다.

  친구. 곁에 두고 오래 사귄 벗. 내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저들만큼이나 서로를 아껴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을까.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누군가와 사귐에 있어 나를 다 내놓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그러다보니 자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직장'과 '학교'와 '동호회'로 이어져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엇' 때문에 연결된 사이라 할 수 있다. 그 '무엇'이 지워지면 고리는 자연 사라진다. 관계망에 있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친구'라 지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모두가 시간을 쪼개살면서 맺게 되는 관계는 대개 '무엇'을 통하기 마련이니까.

  p.s.

 영화 <친구> 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93년 7월 부산에서 곽경택 감독의 친구인 칠성파 행동대장 정모씨가 부하들을  시켜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살해한 사건으로, 흥행 이후 2001년 정모씨와 칠성파 권모씨가 곽경택 감독에게 돈을 요구해 3억원 가량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 법정 재판 과정에서 곽감독이 이를 부인함으로써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005년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 1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영화 속 모범생 상택은 곽경택 감독의 모습이었던 것인가? 그렇담 친구인 정모씨가 곽감독에게 금품을 요구함으로써 영화의 결말까지도 유지되던 준석과 상택의 우정과는 참으로 다른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된다. 결국 친구가 친구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것이니. 정모씨와 권모씨는 비록 징역 3년과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실형을 샀는지는 의문이고, 3억 받아낸 것치고는 꽤 작은 수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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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3 0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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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속닥님 / 이른 아침부터. ^^ 동감. 그런게 심하게 드러났었죠. 근데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고, 남자들마다 다르긴 하지만 내 주변에서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하는 녀석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인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고 볼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