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외국에서 살다니. 나는 칸트처럼 한 지방에서만 살 생각은 아니지만, 한국 땅을 벗어난다는 것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직까지 해외 여행도 한 번 안 해봤는데. 그런데, 올해 들어 마음이 자꾸 약해진다. 물론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내가 어떤 나라를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찍는다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 테고, 어느 정도의 재산도 좀 있어야겠지. 언어는 물론이고.
그런데, 이런 건 결심을 한 이후에 따져볼 문제이고, 일단 생각은 자꾸 외국을 향한다. 술자리에서 농담반 진담반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인이 살기 괜찮다더라. 거기에서 살면 생활하는 데에 경제적으로 돈이 많이 들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덜 받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도 꺼내봤고, 얼마 전엔 남미를 70일동안 여행한 지인의 이야기에 혹해 아, 그래?, 아르헨티나가 괜찮단 말이지?, 관심을 갖고 반응하기도 한다. 평생 한국땅에서 살고,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만 생각했는데, 내 손은 이미 검색창에서 이런 단어를 치고 있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이민, 아르헨티나 언어, 스페인어 학원.
현재 삶이 괴롭긴 괴로운가보다. 예상치 못한 일도 당하고, 삶을 압박하는 사회 구조와 환경,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자꾸 이곳을 벗어나고픈 생각이 든다. 아, 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면 앞으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 생각도 들고. 물론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삶이 힘들긴 하겠지만, 차원이 다른 힘듦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어 장벽, 직업, 문화 적응 등등과 같은. 한국은 갈수록 점점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한순간도 사람을 마음 편히 놔두지 않는 문화다. 이러한 사회 환경과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면 되는데, 말만 쉽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니 나는 주체적이기보다는 사회의 흐름을 의식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따라가며 때로 경쟁하고 있었다. 이러지 않으려고 남들 다 하는 토익 공부나 취직 공부, 영어 공부 안 하고, 이런저런 일을 벌이기도 하고, 마음이 끌리는대로 살아왔던 건데. 결국 밥벌이의 문제에 있어선 애초 가진 것이 있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던 것이다.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고 해도, 이것은 물질적 기반이 갖춰진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들이 철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노예의 경제 활동이 있기 때문 아니었나.
이민을 가려면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던데 나는 지식 노동자인지라 가진 기술이 아무것도 없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살더라도 기술을 가지고 손을 쓰는 일이 아닌 문화나 지식 방면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이건 결심이 서면 나 하기 나름이겠지만. 예전보다 마음이 자꾸 약해진다. 땅 속 깊이 뿌리박고 있는 나의 주관과 주체성이 심히 흔들림을 느낀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