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13 - 미국은 '1당 민주주의' 국가인가? 미국사 산책 1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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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쓰고자 노력하는 미국 중산층들은 실제로 사회의 소수집단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만큼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수정된 단어, 예를 들어 steward, stewardess를 flight assistant로 사용함으로써 상대방 기분을 상하지 않게 완곡하게 표현하는 데에만 머무를 뿐, 실제 그들의 생각은 결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만큼 평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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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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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한 일화까지 담아냈고 재미까지 있는 안티조선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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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외국에서 살다니. 나는 칸트처럼 한 지방에서만 살 생각은 아니지만, 한국 땅을 벗어난다는 것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직까지 해외 여행도 한 번 안 해봤는데. 그런데, 올해 들어 마음이 자꾸 약해진다. 물론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내가 어떤 나라를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찍는다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 테고, 어느 정도의 재산도 좀 있어야겠지. 언어는 물론이고.  

  그런데, 이런 건 결심을 한 이후에 따져볼 문제이고, 일단 생각은 자꾸 외국을 향한다. 술자리에서 농담반 진담반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인이 살기 괜찮다더라. 거기에서 살면 생활하는 데에 경제적으로 돈이 많이 들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덜 받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도 꺼내봤고, 얼마 전엔 남미를 70일동안 여행한 지인의 이야기에 혹해 아, 그래?, 아르헨티나가 괜찮단 말이지?, 관심을 갖고 반응하기도 한다. 평생 한국땅에서 살고,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만 생각했는데, 내 손은 이미 검색창에서 이런 단어를 치고 있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이민, 아르헨티나 언어, 스페인어 학원.  

  현재 삶이 괴롭긴 괴로운가보다. 예상치 못한 일도 당하고, 삶을 압박하는 사회 구조와 환경,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자꾸 이곳을 벗어나고픈 생각이 든다. 아, 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면 앞으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이런 생각도 들고. 물론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삶이 힘들긴 하겠지만, 차원이 다른 힘듦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어 장벽, 직업, 문화 적응 등등과 같은. 한국은 갈수록 점점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한순간도 사람을 마음 편히 놔두지 않는 문화다. 이러한 사회 환경과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면 되는데, 말만 쉽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니 나는 주체적이기보다는 사회의 흐름을 의식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따라가며 때로 경쟁하고 있었다. 이러지 않으려고 남들 다 하는 토익 공부나 취직 공부, 영어 공부 안 하고, 이런저런 일을 벌이기도 하고, 마음이 끌리는대로 살아왔던 건데. 결국 밥벌이의 문제에 있어선 애초 가진 것이 있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던 것이다.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고 해도, 이것은 물질적 기반이 갖춰진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들이 철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노예의 경제 활동이 있기 때문 아니었나.

  이민을 가려면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던데 나는 지식 노동자인지라 가진 기술이 아무것도 없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살더라도 기술을 가지고 손을 쓰는 일이 아닌 문화나 지식 방면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이건 결심이 서면 나 하기 나름이겠지만. 예전보다 마음이 자꾸 약해진다. 땅 속 깊이 뿌리박고 있는 나의 주관과 주체성이 심히 흔들림을 느낀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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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2-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시나 자동차 정비가 외국이민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기술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마늘빵 2011-02-06 22:15   좋아요 0 | URL
기계 다루는 데엔 소질 없고, 요리 배워야 하나요? 스시 일본 요리 말씀하시는거 맞죠? 아닌가. 어정쩡한 지식 노동자는 어느 곳에도 발붙일 곳이 없네요. ^^

Mephistopheles 2011-02-07 09:2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초밥 말하는 거죠.

2011-02-06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1-02-0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변 사람에게 단기간 외국에서 살아보는 걸 적극 권장해요.
정말 많은걸 깨닫게 되는거 같아요. 그리고 잘 알아보면 꼭 돈이 많이 들지 않아도 가능해요. 단 오래 사는건 적극 비추 ^^;;;

마늘빵 2011-02-07 09:10   좋아요 0 | URL
아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뭘 먹고 사나요? ^^ 지금도 힘든데. 홀로 자체적으로 뭔가를 하시는 분들이 아니면,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살면 더 힘들 거 같아요.

2011-02-07 0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2-07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변 사람들에게 위의 Kitty님과 똑같은 말을 합니다.

마늘빵 2011-02-07 09:13   좋아요 0 | URL
갔다 왔는데 개인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이 최악이면, 음, 더 좌절할 거 같아요. 한국 사회는 점점 뜨거워져서 사람들이 전속력으로 질주해야만 겨우겨우 찬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상황인 거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11-02-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그런 생각많이해요..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팍팍하게 살아야되나 싶고..

마늘빵 2011-02-07 09: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난, 그냥 쫓기며 살지 않을 만큼만 살고픈데 이게 엄청 힘들어요. 그냥 최소한의 먹고사니즘만 충족시키고, 마음은 여유롭게 살고픈데 삶이 팍팍해져요. 여유가 전혀 없어요. 생각해보면 사회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자꾸 그렇게 만드는 거 같아요.

BRINY 2011-02-0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기간 외국에서 살아봤을 때, 그땐 그저 돌아오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돌아왔나 싶어요. '어디나 똑같아,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사는 게 맘 편하지'라고들 말하지만,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사람 사는 게 같다면 차라리 외국이 낫다고 요즘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싫어요. 아둥바둥 살면서도, '여기 아니면 안되, 너도 이렇게 살아'라는 사회분위기가요. 하지만, 역시 돈이 문제인가요.

마늘빵 2011-02-07 11:07   좋아요 0 | URL
인생 한 번뿐인데 이렇게 갑갑하게 살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 들더라고요. 사회가 짜맞추어준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아둥바둥거리지만, 보통의 삶에 도달할 수 없는 삶의 지속이라고나 할까요. ^^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평균적 삶, 보통의 삶도 맘에 들지 않고,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벗어날 수도 없죠. 밥벌이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밥벌이를 위해서는 다시 그 안에 들어가야 하고. 남미는 사람들이 저축이란걸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현재의 삶을 즐기며 산다고. 그게 답인데.

이때가 되면 결혼 자금을 위핼 얼마가 있어야 하고, 이때가 되면 넓은 집으로 가야 하고, 이때가 되면 또 뭘 해야 하고, 뭘 해야 하고,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이게 좋고, 애들 학교는 여기로 가야 하고, 이런 식의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1-02-0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벽은 어디에나...먼 산..

마늘빵 2011-02-07 12:51   좋아요 0 | URL
큭큭. ^^

2011-02-07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1-02-0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간극장에선가 남 태평양의 어는 섬에 사는 한국인에 대해 방영한 적이 있는데 섬 생활이라 낭만적인줄 알았는데 그곳도 사람사는곳이라 희노애락과 생노병사가 있더군요.어디서나 장삼이사의 삶은 순탄하지 않은가 봅니다ㅡ.ㅜ

마늘빵 2011-02-08 09:37   좋아요 0 | URL
음, 사람사는 곳이면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은 다 있겠죠. 다만 각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별별일 다 겪다보니 자꾸 정이 떨어집니다.

프롬나드 2011-02-0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저 현아예요~ 여기에다가는 처음 남기는 거 같은데..오랜만에 글이 올라와 있길래 쭉 읽어보다가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네요. 저도 아프님과 비슷한 생각을 종종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더라도 지금을 너무 극단으로 부정하지 않았음 좋겠어요. 물론 저도 ^^ 그래야 혹 떠나더라도 가볍게, 힘차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힘내세요^^*

마늘빵 2011-02-08 09:36   좋아요 0 | URL
엇, 현아 씨 여기서 보니 또 새롭네요. ^^ 일단 전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좀 다녀야겠어요. 올해는 기필코. 그러면서 다시 생각도 정리해보고.
 
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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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조선운동.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민 운동 중 하나이다. 한윤형이 연표에서 짚었듯 1995년 강준만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진중권을 비롯 고종석,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가세하며 널리 알려졌다.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엔 중학생이었던 한윤형이 고등학생 시절, 조선일보 논술 대회에서 대상을 거부하면서 주목받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 안티조선운동의 주된 논의를 지켜보며 간간히 참여하기도 했던 그가, 지금 이 책을 낸 건 그다지 놀랄 만한 소식은 아니다. 

  한윤형은 <삼국지>의 저자 진수와 닮았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소설 <삼국지>의 저자는 나관중이지만,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삼국지'는 4세기경 촉의 장수인 진식의 아들 진수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서술된 역사의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으로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바탕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윤형 또한 두 진영 중 한 쪽에 몸담아 싸웠기에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는 이 책에서 어떤 주의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하려고 애쓴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 짜릿함은 물론 안티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일보를 까는 시원함은 아니지만, 여러 다른 논점들이 등장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지적 쾌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한윤형은 진수와 닮았지만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닮았다. 조자룡이 유비의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적진을 뚫으며 여러 장수들의 목을 베는 것과 같이 세세한 안티조선운동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이 책 어딘가에서 한윤형은, 재임 기간 중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피력하기도 했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점에 안티조선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들었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는 논쟁의 중심에 있던 진중권이나 강준만이 안티조선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면서 조용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자꾸 떠들고 논쟁을 키워야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데 이미 말을 할 사람들은 한 마디씩 다 하고, 치고 받고 싸울만큼 싸워 담론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다. 이후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고, 절독 운동 등으로 이어졌지만 이슈거리는 아니었다. 이것이 2008년 촛불 시위 현장에서, 미국소 수입이나 광우병 문제에 대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자신들이 과거에 내놓은 의견과는 전혀 다르게 주장하며 촛불 시위자들을 매도하고 왜곡하던 조중동 절독 운동으로 부활하였다.

  다시, 그간의 논쟁과 시위 현장에서의 구호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조선일보가 왜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인식을 하지만, 여전히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마치 삼성의 행태가 잘못된 건 알면서 삼성 소비를 그만두지 않는 것처럼. 삼성을 소비함으로써 삼성이 그대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서 머리로는 삼성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지지함으로써 조선일보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서 머리로는 조선일보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불가능하다.

  "나는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언론이 불편부당한 관점을 취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들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심지어는 그저 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보도를 할 뿐이라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한윤형은 위와 같은 이유로 안티조선운동이 실패했다고 본다. 확실히, 안티조선운동 과정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 논쟁에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에 비해서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운동은 실패했다. 그러나 관심없던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와 이를 흉내내는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왜 문제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절반만 성공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낮추고, 소설쓰기를 그만두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운동의 성공은 인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는 것에서 행동으로 나아가야 실질적으로 타격을 주고, 그들의 태도를 개선시킴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 안티조선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약 15년간의 안티조선운동사를 정리함으로써 다시 한 번 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새로운 운동으로 잇기 위핸 동기가 될 것이다. 강준만과 진중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안티조선'이란 말도 몰랐을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10년 넘게 집에서 보던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덕에 조선일보를 끊고, 한국일보를 보았고, 한국일보를 끊고 경향신문을 보았다. 두꺼운 지면과 문화 방면의 풍부한 읽을거리, 그리고 현금이나 자전거, 무료구독에 혹해 조선일보를 보게 되는 이들이 아직 많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아직 대학생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윤형은 그간 여러 유명 진보 논객들이 내는 책에 함께 이름을 올려 공저자가 되곤 했다. 그렇게 서서히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키보드 워리어 일지>와 <안티조선운동사>를 통해 강준만이나 진중권 못지 않은 놀라운 정리 능력과 글발, 논리력을 보여주었다. 아직 20대인 그가 그들의 나이쯤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힘차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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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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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응모는 이광수를 비롯한 <동아일보>의 핵심 인력들을 스카우트했고, <동아일보> 사주 일가의 허점을 기사로 파고들어 발끈하는 <동아일보>와 함께 이전투구를 벌였다. 조선에 마땅한 기업이 없었던 탓에 일본 기업들의 광고를 받아야 했던 이들 두 신문사는 경쟁이 지나치다 못해 일본 광고주들에 대해 '기생 관광'을 향응으로 제공하는 지경이었다.
이러한 방응모의 공격적인 경영은 그가 자신의 자본으로 <조선일보>를 매입한 '사주'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처음엥는 국민주 비슷한 형식으로 출발했던 '민족지'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경쟁할 무렵에는 사주 중심의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시기 두 신문의 경쟁으로부터 한국 언론은 사주 가문의 의지에 따라 상업성 경쟁을 벌이는 '족벌 상업 언론'의 형태를 원형으로 체득했다. -25쪽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관행은 기자들의 정관계 입문이었다. 신문 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여전히 빈곤했다. 1969년 <동아일보>의 마산 주재 기자가 최저 새계비 이하의 급료를 받다가 일가족과 함께 자살한 사건이 일어날 정도였다. 기자들은 요령껏 촌지를 받거나 전직해야 했다. 박정희는 한때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는 것으로 이름을 떨치던 소장 언론인들을 총애해 그들을 중용했다. 정치인이 직접 언론에 관여하기도 했던 이승만 정권 시기 정파지에서도 볼 수 있듯, 한국 언론이 선진국드러럼 선수(정치인)와 심판(기자)의 분리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인을 정관계 인사로 '출세'시키는 것을 당근으로 제시하며 언론인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점점 언론과 언론인은 독재 정권의 통제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변해 갔다. -33쪽

"나는 지식권력이 정치권력을 썩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안전장치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지식권력이 존재한 적이 없다. 그간 지식권력은 정치권력에 기생하다가 정치권력이 몰락할 때엔 사납게 물어뜯는 하이에나 근성을 보여왔다. 지식권력의 그런 하이에나 근성을 바로잡지 않는 한 한국의 정치권력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반드시 정치권력 못지 않게 지식권력에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강준만)-77쪽

<조선일보>식이라면 내가 누군가를 민족주의자라고 칭한다면 바로 그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사회주의자보다 민족주의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회주의자라 부르지 않고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를 추켜세우는 말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김일성을 민족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은 친북 세력이라 봐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김일성을 민족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은 친북 세력이라 봐야 한단든 논리다. 그런데 나는 김일성의 사회주의 성향보다는 민족주의 성향이 더 질색이다. 그것 때문에 그가 주체사상을 만들고 부자 세습 같은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9쪽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지식인은 신문이 원하는 것, 허용한 것만을 써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론 권력이 지식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인은 자율성을 지닐 수가 없다.-122쪽

"프랑스에서는 '지식인'이란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드레퓌스 사건 때부터였다. 극우 쇼비니즘, 반유태주의에 반대하고 드레퓌스 옹호파로 등장했던 세력이 바로 지식인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지식인들이 극우 세력의 진지를 구축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지를 구축해줄 뿐만 아니라 지원부대 노릇까지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사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희극이 아니다. 비극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비극이다. 그들은 일제의 미화에 앞장섰던 친일파 지식인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이 일제에서 극우로 바뀌었을 뿐."(홍세화)-126-127쪽

나는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언론이 불편부당한 관점을 취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들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심지어는 그저 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보도를 할 뿐이라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464쪽

공론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이 '파편화된 취향의 부족'의 다발로서만 사회를 구성하고 지각하게 될 것이다. 신문이 매체의 중심이었던 시대에서조차 공론을 형성해 본 경험이 없는 한국 사회는 그런 지경에 굴러떨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468-4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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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0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정경 유착뿐만 아니라 정언 유착이 일어나던 시기군요.

마늘빵 2011-02-08 09:38   좋아요 0 | URL
음, 그렇죠. 이때부터 언론은 정치에 종속되었다는. 돈 좀 쥐어주면 뭐든 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