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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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조선운동.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민 운동 중 하나이다. 한윤형이 연표에서 짚었듯 1995년 강준만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진중권을 비롯 고종석,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가세하며 널리 알려졌다.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엔 중학생이었던 한윤형이 고등학생 시절, 조선일보 논술 대회에서 대상을 거부하면서 주목받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 안티조선운동의 주된 논의를 지켜보며 간간히 참여하기도 했던 그가, 지금 이 책을 낸 건 그다지 놀랄 만한 소식은 아니다. 

  한윤형은 <삼국지>의 저자 진수와 닮았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소설 <삼국지>의 저자는 나관중이지만,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삼국지'는 4세기경 촉의 장수인 진식의 아들 진수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서술된 역사의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으로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바탕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윤형 또한 두 진영 중 한 쪽에 몸담아 싸웠기에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는 이 책에서 어떤 주의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하려고 애쓴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 짜릿함은 물론 안티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일보를 까는 시원함은 아니지만, 여러 다른 논점들이 등장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지적 쾌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한윤형은 진수와 닮았지만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닮았다. 조자룡이 유비의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적진을 뚫으며 여러 장수들의 목을 베는 것과 같이 세세한 안티조선운동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이 책 어딘가에서 한윤형은, 재임 기간 중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피력하기도 했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점에 안티조선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들었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는 논쟁의 중심에 있던 진중권이나 강준만이 안티조선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면서 조용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자꾸 떠들고 논쟁을 키워야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데 이미 말을 할 사람들은 한 마디씩 다 하고, 치고 받고 싸울만큼 싸워 담론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다. 이후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고, 절독 운동 등으로 이어졌지만 이슈거리는 아니었다. 이것이 2008년 촛불 시위 현장에서, 미국소 수입이나 광우병 문제에 대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자신들이 과거에 내놓은 의견과는 전혀 다르게 주장하며 촛불 시위자들을 매도하고 왜곡하던 조중동 절독 운동으로 부활하였다.

  다시, 그간의 논쟁과 시위 현장에서의 구호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조선일보가 왜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인식을 하지만, 여전히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마치 삼성의 행태가 잘못된 건 알면서 삼성 소비를 그만두지 않는 것처럼. 삼성을 소비함으로써 삼성이 그대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서 머리로는 삼성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지지함으로써 조선일보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서 머리로는 조선일보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불가능하다.

  "나는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언론이 불편부당한 관점을 취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들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심지어는 그저 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보도를 할 뿐이라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한윤형은 위와 같은 이유로 안티조선운동이 실패했다고 본다. 확실히, 안티조선운동 과정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 논쟁에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에 비해서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운동은 실패했다. 그러나 관심없던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와 이를 흉내내는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왜 문제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절반만 성공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낮추고, 소설쓰기를 그만두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운동의 성공은 인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는 것에서 행동으로 나아가야 실질적으로 타격을 주고, 그들의 태도를 개선시킴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 안티조선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약 15년간의 안티조선운동사를 정리함으로써 다시 한 번 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새로운 운동으로 잇기 위핸 동기가 될 것이다. 강준만과 진중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안티조선'이란 말도 몰랐을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10년 넘게 집에서 보던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덕에 조선일보를 끊고, 한국일보를 보았고, 한국일보를 끊고 경향신문을 보았다. 두꺼운 지면과 문화 방면의 풍부한 읽을거리, 그리고 현금이나 자전거, 무료구독에 혹해 조선일보를 보게 되는 이들이 아직 많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아직 대학생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윤형은 그간 여러 유명 진보 논객들이 내는 책에 함께 이름을 올려 공저자가 되곤 했다. 그렇게 서서히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키보드 워리어 일지>와 <안티조선운동사>를 통해 강준만이나 진중권 못지 않은 놀라운 정리 능력과 글발, 논리력을 보여주었다. 아직 20대인 그가 그들의 나이쯤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힘차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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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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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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