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품절


방응모는 이광수를 비롯한 <동아일보>의 핵심 인력들을 스카우트했고, <동아일보> 사주 일가의 허점을 기사로 파고들어 발끈하는 <동아일보>와 함께 이전투구를 벌였다. 조선에 마땅한 기업이 없었던 탓에 일본 기업들의 광고를 받아야 했던 이들 두 신문사는 경쟁이 지나치다 못해 일본 광고주들에 대해 '기생 관광'을 향응으로 제공하는 지경이었다.
이러한 방응모의 공격적인 경영은 그가 자신의 자본으로 <조선일보>를 매입한 '사주'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처음엥는 국민주 비슷한 형식으로 출발했던 '민족지'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경쟁할 무렵에는 사주 중심의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시기 두 신문의 경쟁으로부터 한국 언론은 사주 가문의 의지에 따라 상업성 경쟁을 벌이는 '족벌 상업 언론'의 형태를 원형으로 체득했다. -25쪽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관행은 기자들의 정관계 입문이었다. 신문 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여전히 빈곤했다. 1969년 <동아일보>의 마산 주재 기자가 최저 새계비 이하의 급료를 받다가 일가족과 함께 자살한 사건이 일어날 정도였다. 기자들은 요령껏 촌지를 받거나 전직해야 했다. 박정희는 한때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는 것으로 이름을 떨치던 소장 언론인들을 총애해 그들을 중용했다. 정치인이 직접 언론에 관여하기도 했던 이승만 정권 시기 정파지에서도 볼 수 있듯, 한국 언론이 선진국드러럼 선수(정치인)와 심판(기자)의 분리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인을 정관계 인사로 '출세'시키는 것을 당근으로 제시하며 언론인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점점 언론과 언론인은 독재 정권의 통제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변해 갔다. -33쪽

"나는 지식권력이 정치권력을 썩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안전장치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지식권력이 존재한 적이 없다. 그간 지식권력은 정치권력에 기생하다가 정치권력이 몰락할 때엔 사납게 물어뜯는 하이에나 근성을 보여왔다. 지식권력의 그런 하이에나 근성을 바로잡지 않는 한 한국의 정치권력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반드시 정치권력 못지 않게 지식권력에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강준만)-77쪽

<조선일보>식이라면 내가 누군가를 민족주의자라고 칭한다면 바로 그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사회주의자보다 민족주의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회주의자라 부르지 않고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를 추켜세우는 말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김일성을 민족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은 친북 세력이라 봐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김일성을 민족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은 친북 세력이라 봐야 한단든 논리다. 그런데 나는 김일성의 사회주의 성향보다는 민족주의 성향이 더 질색이다. 그것 때문에 그가 주체사상을 만들고 부자 세습 같은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9쪽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지식인은 신문이 원하는 것, 허용한 것만을 써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론 권력이 지식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인은 자율성을 지닐 수가 없다.-122쪽

"프랑스에서는 '지식인'이란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드레퓌스 사건 때부터였다. 극우 쇼비니즘, 반유태주의에 반대하고 드레퓌스 옹호파로 등장했던 세력이 바로 지식인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지식인들이 극우 세력의 진지를 구축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지를 구축해줄 뿐만 아니라 지원부대 노릇까지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사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희극이 아니다. 비극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비극이다. 그들은 일제의 미화에 앞장섰던 친일파 지식인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이 일제에서 극우로 바뀌었을 뿐."(홍세화)-126-127쪽

나는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언론이 불편부당한 관점을 취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들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심지어는 그저 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보도를 할 뿐이라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464쪽

공론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이 '파편화된 취향의 부족'의 다발로서만 사회를 구성하고 지각하게 될 것이다. 신문이 매체의 중심이었던 시대에서조차 공론을 형성해 본 경험이 없는 한국 사회는 그런 지경에 굴러떨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468-4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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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0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정경 유착뿐만 아니라 정언 유착이 일어나던 시기군요.

마늘빵 2011-02-08 09:38   좋아요 0 | URL
음, 그렇죠. 이때부터 언론은 정치에 종속되었다는. 돈 좀 쥐어주면 뭐든 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