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최근의 책을 고르는 나의 취향이 전과 달라졌다. 확실히.  내가 책을 조금씩 건.드.리.기. 시작할 무렵이 2001년 쯔음부터. 그 이전에는 사실 책은 별로 안봤다. 보더라도 그냥 서점 가서 한 두개 사와서 읽고 그랬다. 그것이 한달은 갔을 거다. 한달에 한권도 안본 적도 많았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기 시작한 뒤로 책 사는 재미를 붙였고, 사기만 하고 전시해놓으면 아까우니까 읽기 시작했나.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본격적인 계기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알라딘 서점이 윤활류 역할을 해줬던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처음에 예스 24를 이용했다면, 난 지금 여기에 알라딘 대신 예스24 를 집어넣었겠지만. 이후 나는 거의 모든 책을 알라딘에서만 구입하고 있다. 가끔 예스와 비교해봐서 그쪽이 더 싼건 그쪽에서 사기도 한다. 디비디 같은.

  책을 읽기 시작한 또다른 이유 하나는, 내가 경제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하면서 철학책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거기서 철학의 주변 것들에 대해서 또 관심이 이동했다. 아주 오래전 내가 고딩때 읽기 시작한 책이 사르트르의 <구토>와 윌듀란트의 <철학이야기>, 조성오의 <철학에세이> ,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였고, 철학과 재학 중 관심을 갖던 책이 철학자들의 1차 서적들,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국가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기타 등등 이었다. 여기에서 나의 관심이 '철학'에서 좀더 일반화된 '인문/사회과학'으로 이동하면서, 강준만이나 진중권, 권혁범, 고종석, 김호기, 김상환, 한홍구, 박노자, 김규항 등등의 대개 우리사회의 진보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는 그들의 책을 하나 둘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이후 좀더 일반화 되어 진보적 지식인의 저서 뿐 아니라 에세이와 자서전 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글쓰기에 대한 책에도 관심을 보였다.

첫번째 독서 취향 의 예시 - 나의 고딩시절

 

 

 

 

두번째 독서 취향의 예시 - 경제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

 

 

 

 

 

 

 

 

 

세번째 독서취향 의 예시 - 철학에서 인문/사회과학으로, 그중에서도 진보적 지식인

 

 

 

 

 

 

 

 

 

 

 

 

 

네번째 독서 취향의 예시 - 진보적 지식인에서 좀더 넓은 범주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

 

 

 

 

 

 위에 제시한 예들은 그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저와 같은 류의 책들을 읽었다는. 저 중에는 제대로 읽지 않은 책도 있고, 그래서 아직 읽지 않은 책 칸에 꽂혀있는 책들도 있다. 그리고 읽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책들이 대다수이고, 그 느낌과 감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 나의 관심은 소설과 에세이로 향하고 있다. 예전에 내가 읽었던 책들이 대개 철학책이거나 아니면 딱딱한 인문학, 사회학 서적인데 비해 요새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은 대개 소설류이다. 난 참 소설을 안읽었다. 예전 시절에 내가 소설을 읽은 것은, <상도> <한명회> <삼국지> <오래전 정원> <위대한 유산> <동의보감> 뭐 이런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더 있겠지만 용량의 한계로. 어찌되었든 많진 않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소설은 더욱 안읽었다. 나의 관심이 딱딱한 저 책들에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를 못느꼈던 것이 주요했을 터. 지금 나는 소설로 향하고 있다.

  소설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뭐 나 꼴리는대로 읽어야 책읽기가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유는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하지만 좀더 예의바르게 이유를 대보자면,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나의 고전소설에 대한 밑바탕의 한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책을 읽을 때 저자가 내가 모르는 다른 책을 인용하거나 마치 독자가 다 아는 양 써버리면 나 같은 독자는 무시당한 느낌. 아 내가 부족하구나 읽어야겠다. 그러면서 서양고전소설, 카프카나 까뮈, 샐린저, 찰스 디킨스 등등의 작가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동했다.

  그런데 니가 지금 읽고 있는건 주로 고전이 아니라 현대 소설 아니냐? 맞다. 고전소설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지만 옛것보다는 새것에 더 마음이 동하는 것이 사실. 그래서 고전에는 관심만 가지고 있고 실제로는 요즘의 소설들을 읽고 있는 것이다. 요즘 소설로 치면 파울로 코엘료를 시작으로, 알랭 드 보통, 무라까미 하루끼, 가네시로 가즈키, 공지영, 츠지 히토나리, 온다 리쿠, 댄 브라운을 고루고루 거치는 중이다. 좀더 나와 맞는 작가가 없을까 물색하는 시기라고 할까. 일단 찾아낸 작가는 추천받아 읽게 된 알랭 드 보통씨. 파울로 코엘료는 시작은 좋았으니 끝이 시들해졌고, 일단은 보통씨가 나의 주 관심대상이다. 그리고 일본 작가들 중에서 맘에 드는 사람을 찾고 있다. 가장 유명한 하루끼는 그럭저럭 나랑 맞는 듯 하다. 아하 울 나라 작가 중엔 공지영씨가 마음에 들었다. 아직 한편 밖에 안봤지만. 험. 울나라 작가들의 소설도 많이 봐야하는데 아직까진 일본소설을 탐색중...

 

 

 

 

 

 

 

 

 

  지금 이 페이퍼를 작성하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 내가 쓴 리뷰들을 살펴보면서 과거의 그것과 지금의 그것의 글에서 보이는 질적인 차이나 문체, 스타일의 변화 등을 확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아 불과 2년 전만해도 난 이런 책을 봤구나. 이런 글을 썼구나. 아 지금보다 사람이 많이 딱딱하고 심각했네. 내가 오래전(?) 쓴 글에서는 책의 취향 뿐만 아니라 나 라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마음가짐의 변화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난 참 폐쇄적인 어둠의 자식이었으며, 때로는 독단적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꽤 무서웠나보다. 말도 별로 없었다. 말이 없는건 여전하지만 그때보다야 훨씬 나아졌지. 지금은 내가 많이 두루뭉실해진 것을 느낀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가. 20대 초반 열정에 불타 자기자신만 알다가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열정은 식고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습관에 맞춰 살게 되었기 때문인가. 예전에 비하면 자기중심성은 많이 사라진 듯 하다. 그것은 또한 나만의 개성이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과거에 비해 나는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지금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되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난 더 마음에 든다.

  앞으로 내가 어떤 책을 읽게 될지, 책을 읽으며 사람이 변하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 변해서 책 읽는 취향이 변하는건지 모르겠지만, 혹은 또 나이를 먹기 때문인지도, 딱딱한 인문사회학 서적에서 좀더 부드러운 에세이나 소설로 관심이 이동한 것은 지금으로선 만족. 관심을 좀더 더 넓게 잡아보려한다. 한가지에만 얽매이며 고집하는 것은 그 한가지에 정통할지는 모르나 한 쪽 면만 바라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오늘도 소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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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2-0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도 한 작가의 소설만... ^^

마늘빵 2006-02-0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 소설을 읽을 때도 한 작가의 소설만 읽는다구요? ^^ ㅋㅋ 아녀요. 요새 여러 작가 건드리고 있습니다. 괜찮다 싶으면 그 작가를 다 파고 들지만요.

하루(春) 2006-02-0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 드 보통

하루(春) 2006-02-0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니군요. ^^;

마늘빵 2006-02-0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 위에 보통씨랑 하루끼 책만 넣어놔서 그러셨군요. ^^; 두 사람은 찜한 작가들이고요, 지금은 다양한 일본작가를 찔러보고 있는 중이에요.

미미달 2006-02-0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 드 보통에 대한 칭찬은 입이 닳도록 하시는 .. ㅋㅋㅋ
도서관에서 프루스트... 저거 빌렸는데 몇 장 읽고 갔다줬어요. -_ - ;

물만두 2006-02-0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우린 너무 달라요입니다 ㅠ.ㅠ 한권도 못 읽었어요~

마늘빵 2006-02-02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미달 머해. 보통씨는 내 사랑. 절대 아무도 안줘. 내꺼야. 프루스트 그거보다는 <우리는 사랑일까> 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요고 두갤 먼저 보삼. 그럼 생각이 달라질거삼.

마늘빵 2006-02-02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 저 위에 있는 책들요??? 엇 그래두 어떻게 한권도 일치하지 않을수가. 대신 만두님은 추리소설의 대가잖아요. 저도 추리소설로도 관심 갖어 볼래요.

승주나무 2006-02-0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이 '철학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아프락사스 님은 철학에서 문학으로 옮겨지고 계시군요. 저는 철학에서 과학으로 옮겨지고 있는 중입니다.^^
저랑 비슷한 취향이신 듯.. 누가 '세계를 먼저 뚫고' 나오나 내기할까요?^^

비로그인 2006-02-03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딩시절에서부터 느껴지는 내공..;;;
전 고딩시절 나열하자면 오로지 교과서만-_-;;

마늘빵 2006-02-03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 ^^ 아 전 과학은 워낙 관심이 안가더라구요. 집에 과학책이 몇권 있긴하지만 아직 안봤어요. 고등학교 때 산 <카오스> 밖에 없는듯. ㅋㅋ 저는 세계를 안 '뚫고' 그냥 '깨고' 나올래요. ㅋㅋ
여대생님 / 고딩때 사기만 하고 제대로 본 책은 없어요. 너무 어렵더라구요. 저 혼자 보려니깐. 맨날 보다 잤어요. ㅋㅋ
 
오체 불만족 - 완전판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조금은 촌스러운 표지에 그다지 관심을 끌지 않는 제목. 마치 무슨 기 수련하는 책같은 이미지가 풍긴다.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책이다. 일본에서의 유명세는 번역을 통해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2003년인가. 잘 모르겠다. 난 군대에 있던 시절인 듯 하다. KBS 에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듯 하고, 일본에서도 그랬듯, 그는 한국에서도 잡지와 신문을 온통 도배했고, 그가 낸 책들은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올라섰나보다. 그는 외국인 장애인 최초로 중학교 도덕 교과서도 실리는 인물이 되었다. 아니 무엇이 대단하기에, 그에게 도대체 어떤 마력이 있기에 이렇게들 호들갑을 떨까.

  이 책을 읽기 전 예상을 해봤다.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을. 아마도 남녀 주인공 중 하나가 죽는 슬픈 멜로 영화를 본 뒤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장애인의 이야기니까, 그는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의 인생은 매우 슬펐을 것이고, 따라서 슬픈 내용의 책을 읽다보면, 더구나 실화인데, 나는 나중에 눈물 흘리며 마지막 장을 덮지 않을까. 그렇게 아직 책도 읽지 않고서 책 읽은 뒤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의 모습은 예상을 확실하게 빗나갔다. 난 즐겁다.

  몸뚱이, 팔 두개, 다리 두개 중 네 개가 없는 그. 오로지 태어났을 때부터 그는 몸뚱이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몸뚱이 하나로 지금껏 살아왔다. 76년생. 나보다 3살 많은 그가 이 책을 낸 것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때이고, 그 나이에 수많은 일을 해낸 그는 정말이지 부럽다. 비장애인이었다 하더라도 그만큼 열심히 살기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그냥 상체 사진으로만 보면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정상인 중에서도 잘생긴 축에 속하는 오토다케 히로타다. 자신의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특장(특징적인 장점)으로 여기고 살았던 그는, 결코 학창시절에도 왕따가 되지도 않았고, 장애인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시달린 적도 없다. 재수 끝에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않았던 그가 목표로 했던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고,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마치고, 미국여행도 떠났었다. 영어 웅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환경 강연회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의 특기는 운동이다. 아니 팔 다리 없는 장애인이 무슨 운동이야, 할지 모르지만, 그는 정말 운동을 잘한다.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미식축구도 한다. 만능 스포츠맨이다. 팔 다리 없지만 그는 고된 오랜 훈련 끝에 자신이 원하는 운동을 남들과 함께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심지어 선수로 출전할 만큼 실력을 키울 때까지 노력했다. 눈물을 훔치며 이를 악물고 연습한 것은 아니다. 그저 즐겼을 뿐이다.

  만일 그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책에 의하면 그의 부모님은 그의 장애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가 나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그 누구도 그를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자신과 다르다고 왕따를 시키거나 괴롭히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친구들 중에서도 리더쉽이 강하고 타인을 이끌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긍정적이인 성격도 있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의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시선 또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기초생활 보호 대상자로 지정되어 매월마다 세끼 겨우 먹고 살 정도의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겨우겨우 살아갈지도. 그가 아무리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서라면 그는 심한 좌절감을 맛봐야 했을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전혀 장애인의 삶을 읽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무슨 성공한 비장애인의 삶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 사회적으로 성공한 한 기업가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불쌍하거나 가련하기는커녕 그의 약간은 거만한 태도와 자신감 때문에 내가 주눅드는 느낌이다. 아 도대체 이 거만함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자기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하지만 내가 보는 그는, 그리고 우리가 보는 그는,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의 장애를 이겨내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대단한 사람이다. 2006년 지금 그는 어떤 또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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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아 이런 불성실한 독자같으니. 출판사 '책과함께'로부터 이 책을 받은지 어언 몇달이 지났는지 셀 수도 없다 이제. 너무나 미안해서 고개도 못들겠다. 책 읽고 싶다고 함부로 도서신청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제목이 참 끌렸고, 내가 충분히 관심 갖는 분야의 도서이기에 신청을 했는데, 결국 가장 늦게 리뷰를 올린, 가장 불성실한 독자가 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출판사 여러분. <한권으로 보는 마르크스>는 제 날짜까지 올렸답니다. 꾸벅.

  지금은 21세기 초반. <가상역사 21세기>의 저자 마이클 화이트와 젠트리 리는 불과 21세기가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21세기를 마무리짓는 저서를 쓰겠다고 나섰다. 주변 사람들이 뜯어 말릴 것은 당연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저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21세기의 역사를 쓰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 처럼 예언이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은 예언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어떤 믿을 수 없는 힘에 의거해 신내린 인간이 앞으로 언제쯤 지구가 종말할 것이다, 언제쯤 대재앙이 닥칠 것이다 라고 그야말로 말 그대로 '예언'하는 것인데 비해, 두 저자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예언'이 아닌 '예상'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한참 뒤의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저자들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상역사 21세기>의 저자는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일들의 가능성 중 단 하나에 대해서 서술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THE' 로 시작하지 않고 'A'로 시작하는 것이다. 단지 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고자.  

  이 책은 매우 두껍다. 장장 53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모두 미래의 가능한 이야기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아니 도대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이리 많을까? 뭘 근거로 해서 이렇게 방대한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 이건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질문 중의 하나이다. 도대체 뭘 근거로 해서!

  <가상역사 21세기>는 지구상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생물학의 혁명, 쾌락, 죽음, 전쟁, 핵, 국제문제, 테러, 세계대국, 지진, 주식, 인구증가, 기아, 외국인, 대륙공동체, 아프리카, 일본, 멕시코, 중국, 네트워크, 오락, 가상세계, 사랑, 예술과 문화, 로봇, 환경, 물, 생태계, 우주 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분야는 어느 하나만 딱 찝어서 말하기도 어려운 무거운 주제들 뿐이다. 아니 이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다 다룬단 말인가? 그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저 많은 주제를 가지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방대하고 깊은 지식과 자료수집 능력에 찬사를 보냈다. 정말 대단하다. 모든 분야의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 한 그 분야들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얼마나 영양가 있는 책인지를 논하기에 앞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저자는, 또 이 책은, 대단하다.

  또 하나의 의문. 이 책을 소설로 분류해야 할까, 아니면 인문사회과학 서적, 그 중에서도 역사서로 분류해야 할까? 소설은 허구를 다룬다. 이 책도 허구를 다룬다. 허구를 다루는 모든 책은 소설이다? 아니다. 꼭 그렇지는 않다. 소설은 허구를 다루지만, 허구를 다룬다고 다 소설은 아니다. 소설에는 등장인물과 사건의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 책에는 등장인물이 없다. 물론 중간중간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각각의 주제를 설명하는데 제시되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럼 역사서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서라는 것은, 지금을 기준으로 하여 시간상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그 '사실'을 서술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사실도 아니고, 과거의 일도 아니다. 그럼 뭐야. 소설도 아니고 역사서도 아니야?

  역사서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고정된 관념으로서의 역사서는 아니다. 분명히. 하지만 이 책은 역사서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 옮긴이가 말하고 있는 부분을 잠깐 살펴보자.

  "과연 그럴까? 역사는 꼭 인류 사회의 지나온 변천 과정만을 더듬어 가야 하는 것일까? 사실만을 다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상역사 21세기>를 쓴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의 자취를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보든 현재의 관점으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든 역사는 다 같은 역사라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 中)

  역사는 꼭 인류의 과거일만을 서술해야하는가? 사실만 다루어야하는가? 아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여 과거를 살펴보는 것도 역사이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예측해보는 것도 역사다. 흔히 미래를 다루는 학문을 '미래학' 이라고 하지만 더 큰 범주에 있어서 미래학은 역사에 포함된다. 넓은 범주의 의미에서 미래를 다루는 이 책 또한 역사서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저자는 정말 대단한 자료수집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그 많은 지식을 자기화시켜서 씹고 또 씹고 곱씹어서 짜깁기하고 재구성해내어 미래를 바라본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내가 21세기를 다 산뒤에 지난 과거를 정리하는 듯한 기분이다. 아니 어쩜 그렇게 세심하게 또 논리적으로 마치 일어났던 일을 머리로 재구성해 바라보듯이 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현재로 와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그냥 생각'이라고 말하고선, 정말 미래에 발생활 확실한 일들을 책으로 써낸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쓸 수가 있어. 다 말이 돼잖아.

  그가 예상하는 미래의 모습은 밝다. 대개의 소설들이 미래의 암울한 측면들을 바라봤던데 비해, 그가 바라보는 우리의 미래는 생각보다 확실히 밝고 긍정적이다. 정말 그의 말대로만 미래가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핵전쟁과 같은 부분은 빼고. 그가 예상하는 미래는 간혹 테러나 핵전쟁과 같은 우울하고 슬픈 사건들도 있지만, 큰 맥락에서 봤을 때 매우 긍정적이다. 밝은 미래를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기분이 좋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이런 분야에 있어서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그는 또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쉬지 않고 후딱 읽었다. 진작 이렇게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책 두께에 지레 겁먹고 미루고 미루다 여기까지 왔다. 나중엔 자포자기상태로 그냥 놔뒀다가 내내 마음이 찜찜했는데 이제서야 그 찜찜함을 거둔다. 어쨌든 즐겁게 읽었고, 책의 편집과 구성에 대해서도 만족한다. 물론 두꺼운 책에 비해 값싼 책값도 만족.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세개인 이유는 그저 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재미로 읽어본다는 의미를 가질 뿐, 이 책에 대한 대단한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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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6-02-01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는데, 운동은 또 언제 하신대요?
부지런하셔라 >o<

마늘빵 2006-02-0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절판


과연 그럴까? 역사는 꼭 인류 사회의 지나온 변천 과정만을 더듬어 가야 하는 것일까? 사실만을 다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가상역사 21세기>를 쓴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의 자취를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보든 현재의 관점으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든 역사는 다 같은 역사라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 中)-5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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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되기 한참 전부터 엄청난 홍보를 해대더니 개봉된 지 얼마 안된 지금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별 한개의 평점을 내리고 있다. 끄덕끄덕. 한개는 좀 짠가. 그럼 두개. 더는 못줘. <무극>이 개봉된 건 지금이지만 이 영화 이전에 장동건이 나온 영화가 하나 더 있었다. <태풍>. 사실 처음에 두 영화 모두 장동건이 출연하는 영화들이고, 장동건이 한류열풍 주역의 한 명이기에, 맨 신문에 한류열풍 어쩌구 하면서 두 영화가 자주 언급되었었다. 난 <무극> 과 <태풍>이 같은 영화인줄 알았다. -_-V  우리나라에선 <태풍>이고, 해외에선 <무극>인줄 알았지. <무극>이 해외에서는 또 <The promise>로 내걸린다고 하니, 머 그런면에선 일치. 요새 우리 나라 영화들이 해외에 자주 걸리는 바람에 국내 제목과 해외 제목이 딴판이 경우가 많고, 홍보 역시 <무극>으로도 되고, <The pomise>로도 되니 정신이 없을 밖에. 나만 그런가?

  무극. 한자로는 없을 無 자 , 다할 極 자를 써서, 다함이 없음? 흠. 영원하다. 뭐 이런 의미인듯 하다. 영화 속에서도 운명의 여신이라고 나온 자가 허공에 떠서 이런 말을 건네고 간다.

  한 번 운명을 받아들이면,
  강물이 거슬러 올라갈 수 없듯이,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없듯이,
  무엇도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



* 물에 잠긴 외나무 다리에서 운명의 여신은 옷자락 펄럭이며 말한다. 미래의 왕비 칭청에게. 그녀의 운명에 대해서.



* 도대체가 너무나 바보스럽고 멍청하고 순해빠진 노예 쿤룬. 하지만 그는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다. 첫 만남에서 칭청을 구해내고 그녀를 위해 폭포로 뛰어든 그. 칭청의 사랑을 얻는다. 그도 칭청을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설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쿤룬(장동건)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선 모른 채, 지금 현재 노예의 상태다. 노예로서 전쟁의 칼받이가 되어 나서지만 다른 노예가 다 죽어도 그는 죽을 수 없다. 빛보다 빠른 그 몸동작. 아니 영화 초반부터 그가 네 발로 길고 긴 협곡을 발도 보이지 않도록 달리는 통에 헉! 일단 충격 먹고 들어갔다. 어 이 영화 장난이 아니네? 현실과 거리가 먼 환타지의 세계를 다루고 있군. 사실 그건 모르고 봤으니까. 난 이 영화가 환타지인지 몰랐다. 그냥 스케일 큰 중국 무협 영화이려니 했지.

  왕비 칭청을 둘러싼 쿠앙민 장군과 그의 노예 쿤룬의 사랑 이야기. 칭청은 이미 어릴적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자신을 사랑한 남자를 모두 잃게 된다고 들은 바 있다. 그러니 그녀는 사랑에 빠져서는 안된다. 하지만 사랑에 빠져버렸고, 그녀를 사랑한, 그녀가 사랑한 남자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어떻게 죽건. 아름다움과 우러름을 받는 대신,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을 운명으로 삼게 된 그녀의 사랑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영상미는 아름다웠지만 부담스럽게 아름다웠고, 줄거리는 부재. 요즘 영화들의 러닝타임이 대개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데 비해, 이 영화는 102분의 러닝타임. 즉 한 시간 사십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보유하고 있지만, 영화는 너무나 지루하다. 아니 뭐야. 뭐 좀 터질려고 하면 또 암것도 아니고, 뭐 좀 있는가 싶으면 별거 없고. 기대감만 잔뜩 부풀리게 하고선 바람 빼놓는다. 장동건의 연기는 좋았지만 연기가 빛을 발할 만큼 받쳐주는 영화도 아니었고, 쓸데 없이 스케일만 크고 지나치게 미화된 영상미 때문에 되려 없는 줄거리 마저도 퇴색되어버리는 영화였다. 우리나라의 <단적비연수>를 생각하면 될듯. 뭐 한중일 삼개국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패왕별희>를 만들었던 첸 카이거 감독이 지휘한다하여 기대 좀 했더만 에이 아니올시다. 너무 다들 바람만 들어갔어. 실컷 띄워놓고 아무것도 아닌 영화는 간판이 얼마 못간다. 제작비나 뽑을까 모르겠다. 장백지도 별로 이쁜지 모르겠고.

  이만한 영상미와 스케일을 준비할 여력이면 줄거리에 좀 신경을 쓰지, 하는 아쉬움이 절실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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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6-01-3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백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그런지 예전의 얼굴이 사라졌습니다. 좀 마귀할멈같은 인상이라고나 할까요? 무극은 영상 자체가 너무 뽀샤시해서 보기가 망설여졌는데 님 평을 읽고나니 볼 마음이 더 없어집니다..^^

마늘빵 2006-01-31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백지를 아주 이쁘고 도도한 왕비 컨셉으로 잡았는데, 제가 봤을 땐 별로 이쁘지도 않았어요. 교통사고 야기는 몰랐는데. 흠. 그렇군요. 영상이 지나치게 뽀샤시해요. 과대하게. 많이 실망했어요. 원래 장동건 볼라고 본거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