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최근의 책을 고르는 나의 취향이 전과 달라졌다. 확실히. 내가 책을 조금씩 건.드.리.기. 시작할 무렵이 2001년 쯔음부터. 그 이전에는 사실 책은 별로 안봤다. 보더라도 그냥 서점 가서 한 두개 사와서 읽고 그랬다. 그것이 한달은 갔을 거다. 한달에 한권도 안본 적도 많았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기 시작한 뒤로 책 사는 재미를 붙였고, 사기만 하고 전시해놓으면 아까우니까 읽기 시작했나.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본격적인 계기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알라딘 서점이 윤활류 역할을 해줬던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처음에 예스 24를 이용했다면, 난 지금 여기에 알라딘 대신 예스24 를 집어넣었겠지만. 이후 나는 거의 모든 책을 알라딘에서만 구입하고 있다. 가끔 예스와 비교해봐서 그쪽이 더 싼건 그쪽에서 사기도 한다. 디비디 같은.
책을 읽기 시작한 또다른 이유 하나는, 내가 경제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하면서 철학책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거기서 철학의 주변 것들에 대해서 또 관심이 이동했다. 아주 오래전 내가 고딩때 읽기 시작한 책이 사르트르의 <구토>와 윌듀란트의 <철학이야기>, 조성오의 <철학에세이> ,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였고, 철학과 재학 중 관심을 갖던 책이 철학자들의 1차 서적들,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국가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기타 등등 이었다. 여기에서 나의 관심이 '철학'에서 좀더 일반화된 '인문/사회과학'으로 이동하면서, 강준만이나 진중권, 권혁범, 고종석, 김호기, 김상환, 한홍구, 박노자, 김규항 등등의 대개 우리사회의 진보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는 그들의 책을 하나 둘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이후 좀더 일반화 되어 진보적 지식인의 저서 뿐 아니라 에세이와 자서전 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글쓰기에 대한 책에도 관심을 보였다.
첫번째 독서 취향 의 예시 - 나의 고딩시절



두번째 독서 취향의 예시 - 경제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












세번째 독서취향 의 예시 - 철학에서 인문/사회과학으로, 그중에서도 진보적 지식인


















네번째 독서 취향의 예시 - 진보적 지식인에서 좀더 넓은 범주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






위에 제시한 예들은 그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저와 같은 류의 책들을 읽었다는. 저 중에는 제대로 읽지 않은 책도 있고, 그래서 아직 읽지 않은 책 칸에 꽂혀있는 책들도 있다. 그리고 읽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책들이 대다수이고, 그 느낌과 감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 나의 관심은 소설과 에세이로 향하고 있다. 예전에 내가 읽었던 책들이 대개 철학책이거나 아니면 딱딱한 인문학, 사회학 서적인데 비해 요새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은 대개 소설류이다. 난 참 소설을 안읽었다. 예전 시절에 내가 소설을 읽은 것은, <상도> <한명회> <삼국지> <오래전 정원> <위대한 유산> <동의보감> 뭐 이런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더 있겠지만 용량의 한계로. 어찌되었든 많진 않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소설은 더욱 안읽었다. 나의 관심이 딱딱한 저 책들에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를 못느꼈던 것이 주요했을 터. 지금 나는 소설로 향하고 있다.
소설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뭐 나 꼴리는대로 읽어야 책읽기가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유는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하지만 좀더 예의바르게 이유를 대보자면,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나의 고전소설에 대한 밑바탕의 한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책을 읽을 때 저자가 내가 모르는 다른 책을 인용하거나 마치 독자가 다 아는 양 써버리면 나 같은 독자는 무시당한 느낌. 아 내가 부족하구나 읽어야겠다. 그러면서 서양고전소설, 카프카나 까뮈, 샐린저, 찰스 디킨스 등등의 작가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동했다.
그런데 니가 지금 읽고 있는건 주로 고전이 아니라 현대 소설 아니냐? 맞다. 고전소설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지만 옛것보다는 새것에 더 마음이 동하는 것이 사실. 그래서 고전에는 관심만 가지고 있고 실제로는 요즘의 소설들을 읽고 있는 것이다. 요즘 소설로 치면 파울로 코엘료를 시작으로, 알랭 드 보통, 무라까미 하루끼, 가네시로 가즈키, 공지영, 츠지 히토나리, 온다 리쿠, 댄 브라운을 고루고루 거치는 중이다. 좀더 나와 맞는 작가가 없을까 물색하는 시기라고 할까. 일단 찾아낸 작가는 추천받아 읽게 된 알랭 드 보통씨. 파울로 코엘료는 시작은 좋았으니 끝이 시들해졌고, 일단은 보통씨가 나의 주 관심대상이다. 그리고 일본 작가들 중에서 맘에 드는 사람을 찾고 있다. 가장 유명한 하루끼는 그럭저럭 나랑 맞는 듯 하다. 아하 울 나라 작가 중엔 공지영씨가 마음에 들었다. 아직 한편 밖에 안봤지만. 험. 울나라 작가들의 소설도 많이 봐야하는데 아직까진 일본소설을 탐색중...











지금 이 페이퍼를 작성하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 내가 쓴 리뷰들을 살펴보면서 과거의 그것과 지금의 그것의 글에서 보이는 질적인 차이나 문체, 스타일의 변화 등을 확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아 불과 2년 전만해도 난 이런 책을 봤구나. 이런 글을 썼구나. 아 지금보다 사람이 많이 딱딱하고 심각했네. 내가 오래전(?) 쓴 글에서는 책의 취향 뿐만 아니라 나 라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마음가짐의 변화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난 참 폐쇄적인 어둠의 자식이었으며, 때로는 독단적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꽤 무서웠나보다. 말도 별로 없었다. 말이 없는건 여전하지만 그때보다야 훨씬 나아졌지. 지금은 내가 많이 두루뭉실해진 것을 느낀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가. 20대 초반 열정에 불타 자기자신만 알다가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열정은 식고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습관에 맞춰 살게 되었기 때문인가. 예전에 비하면 자기중심성은 많이 사라진 듯 하다. 그것은 또한 나만의 개성이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과거에 비해 나는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지금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되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난 더 마음에 든다.
앞으로 내가 어떤 책을 읽게 될지, 책을 읽으며 사람이 변하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 변해서 책 읽는 취향이 변하는건지 모르겠지만, 혹은 또 나이를 먹기 때문인지도, 딱딱한 인문사회학 서적에서 좀더 부드러운 에세이나 소설로 관심이 이동한 것은 지금으로선 만족. 관심을 좀더 더 넓게 잡아보려한다. 한가지에만 얽매이며 고집하는 것은 그 한가지에 정통할지는 모르나 한 쪽 면만 바라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오늘도 소설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