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책, 영화, 음악 이런 것들은 나를 숨쉬게 하는 요인들이라고. 하지만 일정한 벌이가 없이 거금의 등록금을 매학기 내야 하는 나로서는 이것들을 누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이러한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내게 항상 뭐라뭐라 하신다. 돈이 없으면 저축을 해야지, 그렇게 자꾸 책 사고 영화 보고 하면서 돈을 쓰고 다니면 어쩌냐고. 하지만 내가 이것들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나의 정신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장황하게 설명해봐야 그저 내가 저것들을 누리기 위해 갖다붙인 한갖 변명이 될 뿐이다.

  동생도 아나운서 준비를 하면서 과외를 하며 돈 벌이를 하지만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외출도 없다. 영화도 안보고, 책도 안읽고 그다지 문화생활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러신다. 동생이 영화 보기 싫어서 돈을 아끼는거냐고. 다 방송쪽으로 돈이 들어가니까 저축해두는거 아니냐고. 그래 맞다. 동생이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그런 보이지 않는 부분을 어머니도 동생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독특한 놈으로 밖에 인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요새 동생이 자기 소개서 봐달라고, 자기 논술 좀 봐달라고 그런다. 그래서 봐주겠노라 했다. 하지만 주제를 내줘도 아직 한번도 써온 적이 없고, 자기 소개서를 쓴 것만 봐도 그냥 대충 봐도 나라도 떨어뜨릴 그런 문장력이다. 사실 문장력이라기보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렇다. 내가 뭘 좋아했고,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게 뭐고 기타 등등. 그럼 나는 뭐 대단한 사유를 해왔느냐. 그렇다고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난 꾸준히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신문기사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무언가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는 작업을 해왔다. 아직 부족하고 별 되지도 않는 글발이지만, 글발이란건 국어시간에 글은 어떻게 써야한다 라는 식으로 해서 배워지는게 아니라 생각한다. 나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동생은 자신이 글발이 안되는 것을 기술의 부족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계속 안될 밖에. 신문을 봐도,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생각을 해야하는데 그냥 즐기고 마니깐 안되는게다. 글은 실력이 아니고 사유다.

  어쨌든 없는 돈에 이것저것 다 하고 다니는 나지만 돈이 부족한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다. 걱정하면서도 내가 이 짓을 멈출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나를 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빚을 지면 나중에 정식취직되면 그때 갚지 머. 어쩌면 아주 편안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또 내가 문화생활을 하는데 있어 돈을 왕창 쏟아붓고 다니는 바도 아니다. 단지 현재의 나의 수입에 비해 문화비 지출이 많을 뿐. 이런걸 이해시키기란 너무나 힘들다. 

  어머니는 예전에 아버지가 집에 비디오를 잔뜩 빌려와 보는 것도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니깐 어머니에겐 비디오든 영화든 책이든 일체의 문화생활이란 여유로움에서 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집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여유로움을 가질만한 경제적 부가 축적되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모든 일체의 것들은 다 사치다. 가끔 어머니도 영화를 보러 나가신다. 하지만 아주 가끔이다. 책도 보신다. 하지만 아주 가끔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기준에서 봤을 때 나는 사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방식이 다른 것에 대해 이해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나는 돈 보다 시간이고, 이때의 시간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기 위한 시간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이것들보단 돈이다. 돈 많이 쌓이면 그때 비로소 이것들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어찌 설명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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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6-06-2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제쯤이면 엄마 마음에 드는 인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지만 피할 수 없는 갈등, 정말 지겹고 힘들어요.

비자림 2006-06-2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시는 게 좋아요. 돈은 30대, 40대에도 벌 수 있거든요. 정신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님을 응원하고 싶네요.

책방마니아 2006-06-2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주 공감이 되는 글이다. 글은 실력이 아니라 사유라는 주장엔 순간 찔리기도 하구 ^^

비로그인 2006-06-22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어느정도는 어머님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오페라도 보고 해야겠지만 생활속에서 이거 하나면 쌀 한 말인데..하는 순간이 없잖아 있거든요. 한번, 제가 모았던 비디오테잎들을(그거 다 샀습니다..흐흐..) 방출하면서 잠시 그 생각을 했어요. 이거 사 모을 때는 돈이 얼마였는데...이제 DVD로 바꾸고 이건 다 내다버리는구나..
그렇지만 아직은, 제가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을 꽁꽁 닫아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히 돈에 쪼들리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방법도 있고, 세상에는 얼마든지 공짜가 있는 법이니까요.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멈추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을 수집하는 일 이전에 글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뒤돌아보고, 생각을 얼지 않게 해두는 것. 물론 님이 책을 수집만 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책을 읽기 전의 제 마음이라는 뜻에서 입니다. 아프락사스 님께서는 지금도 훌륭하세요^^

이리스 2006-06-22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을 떠나서.. 내가 영화보러 나가고 전시회 보러 가고 공연 보러 가는 일련의 문화생활이 어른의 눈엔 그저 노는 행위로 보이더구나. 그래서 넌 마감하고 힘들어 죽어가면서도 짬이 나면 또 그렇게 놀러(그분의 기준)다니니까 힘든거지. 라고 일축해버릴때 난 그닥 항변 안해. 해봐야 서로 답답하니까. 어쩌면 타인에 대하여 당최 이해가 안될법한 부분이 있는게 자연스러운거 아닌가 싶으이.

씩씩하니 2006-07-0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실력이 아니라,,사유란 말땜에 눈물이 날뻔했어요...
왜 그런지 설명하는건 필력이 부족해서 어렵지만,,정말 너무 가슴에 와닿아요...
많이 읽고 많이 보고 그러세요...
누구는 옷을 사는데 누구는 큰 차를 사는데 누구는 여행을 다니는데....각자 자기가 원하는 곳이 다르잖아요,,,,근대.........전 옷을 못 입는 것도, 꼬진차에 몸을 싣는 것도, 여행 하나 다닐 수 없이 궁핍한것도 싫지만..
책 하나 안읽고 영화 한편 못보면서 산다면 그게 제일 불행할 것 같애요..
사실은 엄청 읽지도 못하며 살면서 그냥 생각은 그래요...
암튼 글은 사유다,,,그 말 가슴에 꽁꽁 담아 갑니다~

이잘코군 2006-07-04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
 
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그녀의 언어는 참으로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귀엽기도 하고, 이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소설 속 두 남녀 주인공의 상처가 슬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언어가 슬프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슬픈 이야기를 할 때면 꽃, 하늘, 풍경, 바람 등의 이쁘고 다정한 단어들을 활용하곤 한다. 아름다운 동시에 슬픈.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개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허니문>에도 어린 소년과 소녀가 사랑을 나눈다. 역시나 그들은 각자 누구에게나 쉽게 꺼내어놓을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만 상처를 내보인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랑은 상대가 나와 같다고 생각할 때, 너와 내가 함께 뭔가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살며시 다가온다. 히로시와 마나카짱은 그랬다.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나고, 그것은 나의 지난 상처를, 상대의 지난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시간이었고, 우리 둘의 신혼여행이었다. 가족, 친지, 친구들의 축하를 받는 결혼이 아닌, 그저 호적등본에 이름 올려놓는 정도의, 결혼이라 할 수도 없는 결혼이지만, 우리 두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의 행복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저 말이지 결혼하지 않을래?" 
  "뭐?"
 놀라 나도 모르게 유카다로 몸을 가리고 말았따.
  "나를 데릴 사위로 삼지 않겠느냐고? 마나카짱의 가족만 좋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상관은 없지만"
 
  싫다든가 좋다든가 그런게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인생, 이랄 만큼 비관적인 것도 아니고, 나는, 그때, 무언가가 더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간이, 확 트이면서, 넓은 하늘 아래로 나선 것 같은 느낌...... 별이 있고, 먹거리가 있고, 촛불인지 뭔지의 아름다운 불빛이 있고, 공기가 맑고, 그런 대로 쓸 만하다는, 열린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도 운명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나 역시, 히로시의 가족이 되리라 다짐하였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돈이 없기 때문에,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 결혼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 두 사람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고 그래서 결혼하고 싶고, 그래서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태도. 사회제도로서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치는 결혼이 아닌,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내면의 결합, 그것이 두 사람에게 있어 결혼이었다.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의 작업은 그저 결정에 대한 간단한 수순이었다.

  여행을 다니고 이야기를 나누고 섹스를 하고 서로를 어루만져주는 이 모든 과정들은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허니문이다. 결혼했다고 해서 의무적으로 4박 5일 좋은 휴양지에 놀러갔다오는 것이 허니문이 아니라 이것이 진정 허니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점 더 때묻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일까. 예전의 순수했던 나는 간데 없고 맑고 순수하지 못한 내가 이곳에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주인공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지만,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녀의 소설이 언제나 비슷한 구조와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은,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은, 여전히 나의 내면에 상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볼수록 새로운 상처를 발견하고, 또 치유하고, 또 다른 소설을 접하며 또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고. 그녀의 소설이 편하게 읽혀지지만 한편으로 허한 것은 그런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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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1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6-06-1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감사. ^^

2006-06-13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품절


동백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개인 날이면 빨래를 넌 다음 신문지를 깔고 동백나무와 함께 지냈다. 눈을 감기도 하고, 뜨기도 하고, 맨발이 되었다가, 다시 샌들을 신기도 하고, 동백나무 아래 앉아있으면, 짙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동백나무는 마치 플라스틱 같은 색깔의 분홍색 꽃잎과, 장난감 같은 디자인의 꽃술을 미련없이 톡톡 땅으로 떨어뜨려, 새카만 흙을 물들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마다, 그 동백나무가 하나둘 꽃을 피웠다가 용감하게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아왔다. 아무 것도 변한게 없는데, 이렇게, 사람만 풍경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이 있다.-17-18쪽

좋은 풍경이라도 보지 않으면, 이 기분이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농밀하게 고정되어버리고 만다.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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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의 마지막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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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작이다. 바나나의 작품을 손이 짚히는대로 읽다보니 뒤죽박죽이지만 대충 후기작을 먼저 접하고 초기작으로 역주행 중이다. 그러다보니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둘다 맘에 들지만, 좀더 어둡고 침울한 후기작보다는 여전히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밝고 산뜻한, 그리고 깔끔한 초기작이 더 맘에 든다. <하치의 마지막 연인>은 어리지만 각자 나름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하치와 마오의 이야기다.

  "너는, 머리가 이상해지든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게 될거다. 아무리 애원해도, 여기의 뒤를 이으면 안돼.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이상해질 거니까. 그림은 괜찮다. 지금 이대로는 안 돼. 굉장히 멀어. 그 열쇠는 인도에서 온,  음 그러니까,  그 훌륭한 개의 이름... 하치공, 그래, 하치라는 아이한테 있어, 너는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 될거다

   도통 무슨소리인지 감이 안오는 할머니의 유언. 마오는 정말 할머니의 엉뚱한 말대로 인도에서 온 하치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연인이 되었으며,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고, 결국 할머니의 말대로 하치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마오 자신이 그의 마지막 연인이 되는 운명을 겪게 된다. 할머니의 그 이상한 유언이 주술이 되어 나타난건지, 아니면 어쩌다 우연히 할머니의 유언과 맞아떨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언제나 그렇듯 상처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것은 부모님의 이혼 혹은 나를 아끼던 할머니의 죽음, 아니면 나의 절친한 친구의 죽음 등등 참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고 소설에 등장하지만 어쨌든 공통적인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맺음에 있어서의 상처받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직 어리지만, 어림에도 불구하고 온전하지 못한 집안에서 성장한 마오.

  우리집은 <종교 단체 비슷한 곳>이요, 할머니는 여기를 이끌고 있고, 엄마는 여기를 드나드는 남자들과 인연을 만들고, 나는 이런 우리집안과 할머니와 엄마가  싫다. 누구도 나와 대화하지 않으며, 나는 단절되어 있다. 고립되어 있다.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온전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지만 나에겐 어렵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엔 벽이 생겨버렸고, 바깥세상과 단절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남자아이가 내 안에 들어왔고, 그는 나를 사랑했으며, 나는 그를 사랑했으며, 그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나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온전한 관계맺음을 해나갈 수 있는 통로였다. 사랑은 그렇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떠나갔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그는 떠나갔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란 것을.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 나는 하치를 잊지는 않지만, 잊으리라.
   슬프지만, 멋진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마오는 이제 세상과 대화를 나눈다. 사람을 사랑한다. 자신을 사랑한다. 어느 한 순간 그녀를 스쳐간 이 짧은 사랑의 상처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더 많은 상처를 치유해줬으며, 그녀가 자라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사랑은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히 내 안에 들어왔고,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히 내 안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그를. 그리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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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의 마지막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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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을 증오했던 것은 아닌데, 늘 꿈속처럼 생의 모든 장면이 멀고 뿌옇기만 했었다. 많은 것들을 아주 가깝게 느끼거나 부자연스럽게 멀리 느꼈다. -7쪽

단 한순간이라도 자기 자신과 농밀한 사랑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증오는 사라진다. -26쪽

옷을 벗는 하치를 보고 있었다. 느닷없이, 나는 언제나 보고 있을 뿐, 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고 있을 뿐, 거기에 나 자신은 없다.
방황하는 혼 같은 것이다. 방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봉제 인형이다.
하지만 살아있다, 손길도 닿지 않았는데 젖어드는 부분이 있다.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는 심장이 피를 순환시킨다.
하치의 벗은 몸이 낯익은 무엇처럼 내 눈에 비쳤다.
인형의 눈이었던 내 눈이 갑자기 뜨이고, 온 몸의 기관과 함께 움직이며 욕망을 반영하였다. 태어나 처음 본 동물을 어미로 여기고 따르는 병아리처럼 첫 욕망을.
그에 화답하듯 하치는 금방 삽입하였다.
하치 자신이 이불 속으로 삽입된 지, 불과 5초 만에.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 순서는 차치하고.
빨리, 어서 빨리 고정시킨다. 이 기분을, 그 구멍 속에다. 서둘러, 갈 수 있는 데까지.-39-40 쪽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아질 때까지 떨어져 있으면 돼"
"무슨 소리야?"
하치가 말했다.
"이 세상에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잖아? 아무리 해도. 물구나무서기를 해도 안되는 사람"
"그래서"
"하지만 그 사람도 죽잖아. 똑같이,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사람도 좋아했다가, 죽잖아? 그런 생각이 들면, 용서해 주자고 생각하기도 하고, 싫어할 수 없게 되잖아. 그건 멀리서 본다는 거야. 저 파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빛하고 구름이 아름다우면, 그 사람도 아름답게 보이고, 바람이 상쾌하면, 용서하잖아? 그럭저럭 좋아지잖아?"
나는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 이 분야는 내 전문이므로. 무엇을 어떻게 얘기해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손에 자랐으므로.-55쪽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이 세상으로 통하는 무지갯빛 다리를 놓아주고, 생의 한 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우리네들 삶 속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랑에 생활이 개입되면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변하고 사랑 또한 증오와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공의 사랑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환상의 꿈을 그리게 되는 것이리라. (옮긴이의 말 中)-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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