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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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언어는 참으로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귀엽기도 하고, 이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소설 속 두 남녀 주인공의 상처가 슬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언어가 슬프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슬픈 이야기를 할 때면 꽃, 하늘, 풍경, 바람 등의 이쁘고 다정한 단어들을 활용하곤 한다. 아름다운 동시에 슬픈.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개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허니문>에도 어린 소년과 소녀가 사랑을 나눈다. 역시나 그들은 각자 누구에게나 쉽게 꺼내어놓을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만 상처를 내보인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랑은 상대가 나와 같다고 생각할 때, 너와 내가 함께 뭔가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살며시 다가온다. 히로시와 마나카짱은 그랬다.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나고, 그것은 나의 지난 상처를, 상대의 지난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시간이었고, 우리 둘의 신혼여행이었다. 가족, 친지, 친구들의 축하를 받는 결혼이 아닌, 그저 호적등본에 이름 올려놓는 정도의, 결혼이라 할 수도 없는 결혼이지만, 우리 두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의 행복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저 말이지 결혼하지 않을래?" 
  "뭐?"
 놀라 나도 모르게 유카다로 몸을 가리고 말았따.
  "나를 데릴 사위로 삼지 않겠느냐고? 마나카짱의 가족만 좋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상관은 없지만"
 
  싫다든가 좋다든가 그런게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인생, 이랄 만큼 비관적인 것도 아니고, 나는, 그때, 무언가가 더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간이, 확 트이면서, 넓은 하늘 아래로 나선 것 같은 느낌...... 별이 있고, 먹거리가 있고, 촛불인지 뭔지의 아름다운 불빛이 있고, 공기가 맑고, 그런 대로 쓸 만하다는, 열린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도 운명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나 역시, 히로시의 가족이 되리라 다짐하였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돈이 없기 때문에,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 결혼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 두 사람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고 그래서 결혼하고 싶고, 그래서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태도. 사회제도로서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치는 결혼이 아닌,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내면의 결합, 그것이 두 사람에게 있어 결혼이었다.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의 작업은 그저 결정에 대한 간단한 수순이었다.

  여행을 다니고 이야기를 나누고 섹스를 하고 서로를 어루만져주는 이 모든 과정들은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허니문이다. 결혼했다고 해서 의무적으로 4박 5일 좋은 휴양지에 놀러갔다오는 것이 허니문이 아니라 이것이 진정 허니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점 더 때묻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일까. 예전의 순수했던 나는 간데 없고 맑고 순수하지 못한 내가 이곳에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주인공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지만,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녀의 소설이 언제나 비슷한 구조와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은,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은, 여전히 나의 내면에 상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볼수록 새로운 상처를 발견하고, 또 치유하고, 또 다른 소설을 접하며 또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고. 그녀의 소설이 편하게 읽혀지지만 한편으로 허한 것은 그런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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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1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6-1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감사. ^^

2006-06-13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