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꼭 봐야할 영화였다. 그래도 이제야 본 것은 다행이었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꼭 봐야할 영화.

 이 영화가 개봉했던 당시 분명히 이 영화를 봐야겠다 하고 마음 속으로 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정으로-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와 동시에 개봉되었단 다른 로맨스 영화에 눈길이 더 쏠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금 그 영화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 그냥 지나치게 된 영화다.

 '길 영거'라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무명감독이 만든 영화이지만 주연 '제니퍼 러브 휴잇'이라는 문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영화였다. 제니퍼 러브  휴잇이 출연한 영화들은 대개 성공을 거두었다. <시스터 액트>도 그러했고,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도 그러했고, <하트브레이커스>나 <턱시도>, 그리고 최근에 본 <어바웃 러브>까지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제목들은 모두 익숙하다. 특히나 나는 그녀가 지금 언급한 영화들에 출연했는지조차 몰랐는데 이는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데 비해 배우들에 무관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각각의 영화들에서 보여준 이미지들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지 얼마 안 된 <어바웃 러브>에서 조차도 그녀가 나왔는지를 나중에 알았으니.

 그녀에 대해 한 마디 더 하자면 79년생으로 나와 동갑내기인 이 여자는 참 일찌감치도 성공의 문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영화계에서도 CF계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으며, 실제로 음반을 낼 만큼 뛰어난 가창력을 소유하고 있기까지 하니 성공할 만도 하다. <이프온리>에서는 마지막에 그녀가 직접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영화를 보면서 설마 실제로 부르는 거겠어? 했는데 진짜였다.

 '사랑'이라는 같은 주제를 놓고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영화들을 접해왔고 앞으로도 이 주제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리 퍼내어도 바닥이 나지 않는 주제이고 아무리 접해도 언제나 새롭고 참신한 주제가 사랑이다. 나이 어릴 때, 성년이 되어서, 사회에 발을 디디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동안에 같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놓고도 각각의 시기마다 다른 느낌을 품게 된다. 시간의 흐름뿐만이 아니라 만남, 설레임, 익숙함, 갈등, 이별로 이어지는 사랑의 시작과 끝-사랑에 시작과 끝이 있는지는 더 이야기해봐야할 거리이지만- 의 시점에서도 같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놓고도 사랑의 대상이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느낌은 다르다. 
 
 성공한 젊은 비지니스맨 이안과 이안을 따라 미국에서 영국으로 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졸업을 맞이하는 사만다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하지만 둘 사이엔 뭔가 문제가 있다. 이안은 언제나 사만다보다 일이 먼저이고, 사만다는 이런 점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사만다의 졸업식 연주회 날짜도 까먹고, 사만다를 위해 부모님을 뵈러 미국에 갈 생각도 시간도 없으며, 졸업선물을 해줄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둘의 일상 속에서 이안은 언제나 사만다를 소외되게 만든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집 제목은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해준다. 함께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만다. 

 졸업연주회가 끝나고 밥을 먹고 이안에서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해버린 사만다는 택시를 타고 훌쩍 떠난다. 미국으로 가려는 셈. 하지만 이안은 함께 택시를 타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사만다의 죽음이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이안은 그때서야 자신이 사만다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를 이안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이런 자고 일어나니 사만다가 내 옆에? 이안을 놀라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사만다가 살아있고 나는 꿈을 꾼 것인가? 그러나 너무 생생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이상하게도 사만다의 죽음 이전의 상황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안은 사만다의 죽음을 막기 위해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하지만 아무리 피해도 결국 이전과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안은 깨닫게 된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나에게 사랑을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는. 그리고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 사만다와 함께 택시를 타고 교통사고는 난다. 하지만 정면충돌한 것은 이안이고 사만다는 이안의 품에서 살아남았다.

 슬픔은 이안에서 사만다에게로 옮겨갔지만 적어도 이안은 저 세상에서 행복하다. 나중에서야 사만다는 깨닫는다. 이안이 이런 결과가 올 것을 짐작했었다는 사실을. 이안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켰고 이로써 이안이 사만다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은 증명되었다. 물론 이는 이안에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었지만.

 나는 이안와 참 비슷한 놈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사랑은 다른 것과 함께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되뇌이곤 하지만 솔직히 다 드러내고 말하자면 나는 나의 자아실현이 첫번째이고, 사랑은 그 다음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만다와 같은 소외감을 느낄 것이며 나 또한 이를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하지 않고 있다. 사만다의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서일까.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사랑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까. 그건 모르겠다.

 단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순위가 내게 있어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또 내가 그녀에게 미안해한다는 사실. 그것뿐.


 아래는 제니퍼 러브 휴잇이 영화 속에서 졸업연주회 마지막에 직접 부른 노래이다.

  <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

Today, today I bet my life
You have no idea
What I feel inside
Don't, be afraid to let it show
For you'll never know
If you let it hide

I love you
You love me
Take this gift and don't ask why
Cause if you will let me
I'll take what scares you
Hold it deep inside
And if you ask me why I'm with you
And why I'll never
Leave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One day
When youth is just a memory
I know you'll be standing right next to me

I love you
You love me
Take this gift and don't ask why
Cause if you will let me
I'll take what scares you
Hold it deep inside
And if you ask me why I'm with you
And why I'll never
Leave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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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워지고 여름이 다가오다 보니 이제 서서히 공포영화들이 속속 개봉하고 있다. 올 여름 공포영화물의 시작을 알리는 <그루지>는 사실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일본의 공포영화 <주온> 1편과 2편의 미국 리메이크작인 <그루지>는 이미 <주온>시리즈를 본 사람에겐 익숙한 장면들이다. 단지 달라진 것은 주연인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이라는 점만 다를 뿐.

 이제 더 이상 미국식 공포물은 우리에게 식상하다. 매번 똑같이 등장하는 잔인하고 엽기적인 살인마들. 미국의 공포영화를 보면서 으례 이런 장면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런 시점에서 일본의 공포영화가 안겨주는 그 섬뜩함은 참신하다. 미국의 공포영화가 단 하나의 괴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오로지 그에 의한 공포를 조성한다면 일본의 공포영화는 괴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처해진 상황이 안겨주는 섬뜩함을 공포의 요인으로 삼고 있다.

 이미 일본의 또다른 공포영화 <링>이 미국식으로 리메이크된지 오래고 곧 리메이크작 <링2>가 다시 나온다. 그리고 <그루지>는 단지 일본 공포영화 <주온>을 이름만 바꿔 내놓은 작품이다. '주온'은 본래 '죽음 사람의 저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고, '그루지'는 '원한'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뜻은 그대로 지닌채 단어만 교체한 것이다. 이는 어쩌면 영화 <그루지>가 <주온>의 재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술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모르고 봤으니.

 <그루지>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주온>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이미 <주온>을 봤지만 내가 <주온>을 봤을 때 느꼈던 그런 섬뜩함은 <그루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영화를 두번 보면 처음의 느낌이 반감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루지>를 볼 때는 그렇지는 않았다. 단지 이 영화 주온이랑 비슷하네? 재탕이구나! 라는 생각만 가졌을 뿐. 그런 점에서 <주온>을 재탕한 <그루지>는 나름대로 제대로 리메이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내가 <주온>을 본지 오래됐고 이를 전부 기억해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무감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주온>을 이미 본 사람에게 영화표 값을 지불하고 다시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주온>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봐도 무방할 듯. 아니 어쩌면 이 영화는 <주온>을 보고 푹 빠져들었던 사람들이 봐야할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줄거리와 공포가 목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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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06-0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온 받는데, 제가 3초 기억력? 뭐 그런 비슷한거라서
그루지에서 '아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봤는데 ..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야 주온을 리메이크한 걸 알았다는 ;
근데 정말정말 무서웠어요! 역시 이런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 ! +_+

마늘빵 2005-06-0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쵸 주온을 기억못한다면 재밌는 영화죠. 전 봤던 장면이 또 나와서 다음엔 이렇겠구나 하고 예상을 하고 보니깐 조금 진부하더라구요.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그것! 섹스" 라는 포스터 문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시선을 집중시켰던 영화 <킨제이 보고서>. 하지만 아무리 포스터 문구로 시선을 끈다해도 영화의 본질을 알아버린 예비관객들은 다른 영화로 눈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보고서'를 다루고 있으며 그 대상이 비록 '섹스'가 됐을지라도 영화 자체가 지루하고 따분할 거라는 인상을 받은 예비관객들은 이 영화로 몰리지 않았다. 상영관을 잡지 못한 것도 영화의 상업적 성공의 패배요인중의 하나이다. 나는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봤지만 그곳에서조차도 아주 작은 상영관 하나만을 '킨제이'에게 할애하고 있었다.

영화는 말 그대로 섹스를 다루고 있다. 모든 정신분석을 성적인 것과 관련지어 해석한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나고 나치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성 연구의 주도권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때 성 연구에 있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표본조사를 토대로 한다는 점이다. 독일에서는 특정인의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성 연구를 했지만 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하거나 설문을 실시하는 등의 표본조사를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한 방식을 도입해 최초로 성과를 거둔 인물이 바로 킨제이 박사이다.

그는 미국 전역에서 1만 8천명을 면접해서 1만 2천건의 자료를 가지고 두 권의 책을 냈는데 하나는 남자의 성행위, 다른 하나는 여자의 성행위에 대한 책이었다.

이 책이 파장을 일으킨 것은 표본조사의 결과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정상적인 이성애자 부부 사이에서 정상체위만을 하려니 생각했던 기존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것이다.

동성애를 경험한 남성이 37%나 있었고, 여성의 절반이 혼전성교를 경험했으며, 26%의 유부녀가 간통경험이 있었다. 또한 여성의 오르가슴에 있어서도 남자가 한번 경험하는 동안 여자가 10여차례 경험한 사례도 있었다.

킨제이는 이 책으로 하룻밤만에 일약 스타가 되어있었고 이후 온갖 잡지의 표지모델을 차지했으며,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외면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이 부끄러워서 혹은 이 보고서로 인해 많은 비정상적인(?) 성행위가 난무할까봐 두려워서 사실을 부정하고 킨제이를 비난하기에 이른 것이다.

킨제이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킨제이는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지만 이후로 록펠러는 지원을 끊었고 결국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노력하던 킨제이는 2년후 사망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킨제이 보고서>가 정말 사실일까? 믿어도 되는 걸까? 그 시대의 많은 미국인들이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품었을 것이고 그래서 킨제이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믿을만한 것인가? 킨제이 보고서는 유례없는 대규모의 사람들의 면접과 설문을 통해 얻어낸 결과이므로 믿어도 될 듯 싶다. 하지만 킨제이 보고서의 표본연구 대상자가 1만 8천명이라는 점은 여전히 미국 전역의 인구를 대표하기에는 부족한 수치인 듯 하다. 또 면접에 응한 사람들과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만약 면접에 응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점도 하나의 의문거리다. 정상적인(?)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 특별한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면접에 응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

감독이 <킨제이 보고서>를 영화로 만든 이유는 뭐였을까? 오래된 보고서이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보고서이겠지만 일반인들은 아직 이런 보고서를 접해본 사실이 없고 그래서 당시에 충격적이었던 이 보고서의 내용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감독은 충분히 성과를 달성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킨제이 보고서의 내용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므로.

<킨제이 보고서>는 정말 놀랍다. 하지만 킨제이 보고서가 빠뜨리고 있는 점이 있다면 섹스를 사랑과 분리했다는 점이다. 대개의 섹스는 사랑을 전제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킨제이는 철저하게 섹스를 사랑과 분리했고, 사랑과 연관지어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섹스만을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했을 뿐. 물론 보고서상의 실수는 아니다.

영화 속에서도 킨제이는 자신의 젊은 동료와 동성애를 갖고, 젊은 동료는 또다시 킨제이의 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킨제이 또한 이를 허락한다. 이런 엽기적인 일이. 그리고 그 젊은 동료는 또다시 다른 동료의 부인과 관계를 맺고 결국 그 둘은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후 결과는 불보듯 뻔한 일. 부인의 남편과 젊은 동료는 서로 치고박고 싸우게 된다. 킨제이가 사랑을 제외하고 섹스를 연구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사랑없는 섹스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또한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린 것이다. 오히려 사랑없이 섹스를 하는 경우보다 사랑해서 섹스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을텐데도 말이다.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

나는 성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고, 성관념이 개방적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살고 있지만 킨제이 보고서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는 당시에 킨제이를 비난했던 사람과 비슷한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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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나는 선생님이란 직업은 꿈도 안꿨다. 내게 별 매력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매우 좋다. 꼭 천직같이 느껴진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내게 자아만족감을 주기 위한 내 안의 나의 자기합리화인가, 아니면 정말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낸 자아실현인가? 사실 헷갈린다.

 언젠가 나의 꿈은 유전공학자였고, 언젠가 나의 꿈은 도시공학자였으며, 언젠가 나의 꿈은 공인회계사였고, 언젠가 나의 꿈은 철학자였으며, 언젠가 나의 꿈은 기자였고, 언젠가 나의 꿈은 라디오 PD 이자 DJ 였으며, 언젠가 나의 꿈은 출판업자였다. 그리고 지금 나의 꿈은 중고딩 도덕/윤리 혹은 철학/논리학 선생님이다.

 누구나 꿈은 하나만 키우질 않고 어릴적부터 수많은 희망직업을 기재하고 꿈꾸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보지만 누구나 꿈을 이루지는 못하며, 그 누군가는 결국에 도달하게 된 현실상의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만족하기도 하고 불만족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런데 불만족은 제외하고,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이들이 느끼는 그 만족스러움이란 자기합리화인가 진정한 자아실현인가 에 대해 의문이 간다.

 나는 정말 글을 쓰고 싶었고, 정말 라디오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멘트를 날리고 싶었으나 지금 나는 그와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대학원생이기도 하며, 사교육장의 철학교사이기도 하며, 공교육장의 도덕, 국사 강사이기도 하다. 어쨌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의 방향의 종착역은 '교사'로 결론지어진다. 나는 정말 내가 교사를 하고 싶어서 하는걸까? 아니면 마지못해 주어진 상황을 자기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나 자신조차 내가 이것을 자기합리화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합리화를 시킨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 일에 매진하고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일한다면 시작은 자기합리화였을지 모르나 도달점은 자아실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나는 몇달 안되는 이 기간동안 이 여정을 거쳐왔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나는 시간의 여유로움과 정년보장이라는 점에 이끌려 불순한 의도로 교사를 택했지만 지금의 내 마인드는 확실하게 달라졌다.

  생각보다 나는 잘하고 있는 듯 하고 아이들의 반응도 좋다. 내 스스로가 말빨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말로 해먹고 사는 직업인 교사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말빨이 안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긍정'이지만 나는 말빨이 안되는 대신 나의 논리를 개발주이며 그 논리가 적용된 안되는 말빨은 그래도 말빨있게 보이나보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결론은 내가 교사를 택한 것이 자기합리화인지 자아실현인지는 중요치 않다. 나는 지금 이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으로 족하다는 사실이다. 그럼 그것이 자아실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피곤한 몸을 이끌로 매일같이 수업을 진행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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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2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나요. 좋아하신다는 다행입니다^^

BRINY 2005-05-2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신다는 게 제일이지요. 아무리해도 애들이 좋아지지 않는다, 교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느끼고 있어요..라는 기간제 교사들이 주위에 있거든요.

마늘빵 2005-05-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두분 모두 감사합니다. ^^

2005-05-2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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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클베리핀. 굳이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이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허클베리핀은 '모험'을 상징하는 인물의 일반명사가 되어버렸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모험을 상징하는 다른 문학서 <톰 소여의 모험>과 함께 언급되곤 한다. 실제 <허클베리핀의 모험>에는 톰 소여가 중심인물로서 등장하고 <톰 소여의 모험>에도 역시 허클베리핀이 그의 친한 친구로서 등장한다. 두 소설은 어느 하나만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수많은 번역서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 언급하고 있는 1998년에 민음사에서 나온 이 번역서는 이전의 다른 번역서들과 달리 <허클베리핀의 모험> 완역판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가을 로스엔젤레스의 한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된 마크 트웨인의 친필원고.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허클베리핀의 모험> 보다 100페이지 가량이 더 첨가되었으며 질적으로도 더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민음사에서 번역한 이 책은 분량이 매우 두껍다. 해설을 빼고만도 600페이지에 달한다. 그래서 어쩌면 청소년추천도서로 소개되곤 하지만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인해 쉽게 읽히는 내용과 상관없이 청소년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책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어릴적부터 인쇄소 견습 식자공, 저널리스트, 수로 안내인, 출판업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미시시피 강 주변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소설뿐 아니라 <톰 소여의 모험>과 <미시시피강의 추억>에서도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으며 후에 이 세 소설을 일컬어 미시시피 3부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장난꾸러기 허클베리핀이 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있을 무렵 만난 흑인노예 짐과 함께 겪는 모험담을 담고 있다. 소설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쉴새없이 펼쳐지는 구조로 되어있으며, 각각의 에피소드들에서 그리고 소설 전체에서 작가는 자연과 문명을 대립시키고, 문명을 비판하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문명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타락한 모습들을 아버지, 공작, 왕 등의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주고 헉과 짐, 톰 소여는 이들을 조롱하는 대립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헉, 짐, 톰이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조롱하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작가는 재미를 부각시키려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진중권씨가 어디선가 신랄한 비판보다는 웃음을 자아내는 조롱이 더 효과적인 비판 방법이라고 말했듯 마크 트웨인의 문명을 향한 조롱은 매우 유쾌하다.

 쉽고 재미있는 내용임에도 600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은 역시 내게도 부담스러웠고 이 책을 읽는데 이주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것은 시간의 부족과 여유없음, 게으름의 조합으로 인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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