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그것! 섹스" 라는 포스터 문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시선을 집중시켰던 영화 <킨제이 보고서>. 하지만 아무리 포스터 문구로 시선을 끈다해도 영화의 본질을 알아버린 예비관객들은 다른 영화로 눈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보고서'를 다루고 있으며 그 대상이 비록 '섹스'가 됐을지라도 영화 자체가 지루하고 따분할 거라는 인상을 받은 예비관객들은 이 영화로 몰리지 않았다. 상영관을 잡지 못한 것도 영화의 상업적 성공의 패배요인중의 하나이다. 나는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봤지만 그곳에서조차도 아주 작은 상영관 하나만을 '킨제이'에게 할애하고 있었다.
영화는 말 그대로 섹스를 다루고 있다. 모든 정신분석을 성적인 것과 관련지어 해석한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나고 나치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성 연구의 주도권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때 성 연구에 있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표본조사를 토대로 한다는 점이다. 독일에서는 특정인의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성 연구를 했지만 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하거나 설문을 실시하는 등의 표본조사를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한 방식을 도입해 최초로 성과를 거둔 인물이 바로 킨제이 박사이다.
그는 미국 전역에서 1만 8천명을 면접해서 1만 2천건의 자료를 가지고 두 권의 책을 냈는데 하나는 남자의 성행위, 다른 하나는 여자의 성행위에 대한 책이었다.
이 책이 파장을 일으킨 것은 표본조사의 결과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정상적인 이성애자 부부 사이에서 정상체위만을 하려니 생각했던 기존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것이다.
동성애를 경험한 남성이 37%나 있었고, 여성의 절반이 혼전성교를 경험했으며, 26%의 유부녀가 간통경험이 있었다. 또한 여성의 오르가슴에 있어서도 남자가 한번 경험하는 동안 여자가 10여차례 경험한 사례도 있었다.
킨제이는 이 책으로 하룻밤만에 일약 스타가 되어있었고 이후 온갖 잡지의 표지모델을 차지했으며,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외면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이 부끄러워서 혹은 이 보고서로 인해 많은 비정상적인(?) 성행위가 난무할까봐 두려워서 사실을 부정하고 킨제이를 비난하기에 이른 것이다.
킨제이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킨제이는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지만 이후로 록펠러는 지원을 끊었고 결국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노력하던 킨제이는 2년후 사망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킨제이 보고서>가 정말 사실일까? 믿어도 되는 걸까? 그 시대의 많은 미국인들이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품었을 것이고 그래서 킨제이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믿을만한 것인가? 킨제이 보고서는 유례없는 대규모의 사람들의 면접과 설문을 통해 얻어낸 결과이므로 믿어도 될 듯 싶다. 하지만 킨제이 보고서의 표본연구 대상자가 1만 8천명이라는 점은 여전히 미국 전역의 인구를 대표하기에는 부족한 수치인 듯 하다. 또 면접에 응한 사람들과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만약 면접에 응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점도 하나의 의문거리다. 정상적인(?)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 특별한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면접에 응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
감독이 <킨제이 보고서>를 영화로 만든 이유는 뭐였을까? 오래된 보고서이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보고서이겠지만 일반인들은 아직 이런 보고서를 접해본 사실이 없고 그래서 당시에 충격적이었던 이 보고서의 내용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감독은 충분히 성과를 달성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킨제이 보고서의 내용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므로.
<킨제이 보고서>는 정말 놀랍다. 하지만 킨제이 보고서가 빠뜨리고 있는 점이 있다면 섹스를 사랑과 분리했다는 점이다. 대개의 섹스는 사랑을 전제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킨제이는 철저하게 섹스를 사랑과 분리했고, 사랑과 연관지어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섹스만을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했을 뿐. 물론 보고서상의 실수는 아니다.
영화 속에서도 킨제이는 자신의 젊은 동료와 동성애를 갖고, 젊은 동료는 또다시 킨제이의 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킨제이 또한 이를 허락한다. 이런 엽기적인 일이. 그리고 그 젊은 동료는 또다시 다른 동료의 부인과 관계를 맺고 결국 그 둘은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후 결과는 불보듯 뻔한 일. 부인의 남편과 젊은 동료는 서로 치고박고 싸우게 된다. 킨제이가 사랑을 제외하고 섹스를 연구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사랑없는 섹스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또한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린 것이다. 오히려 사랑없이 섹스를 하는 경우보다 사랑해서 섹스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을텐데도 말이다.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
나는 성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고, 성관념이 개방적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살고 있지만 킨제이 보고서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는 당시에 킨제이를 비난했던 사람과 비슷한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