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
김욱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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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기구인 국회는 오직 국민의 의사와 일치할 경우에만 그 정당성을 갖는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이 정당성을 잃는 순간 대의기관으로서 정당성을 상실하며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권이라 할지라도 헌법에서 정해진 임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18쪽

오늘날 대의제가 정당화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체계의 승리가 아니라 대의를 행하는 정치인들이 ‘지역적 이익’이 아닌 ‘국가의 공공선’을 양심적으로 행한다는 버크 식의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120쪽

법정은 국가의 공권력으로 복종을 요구하며 강제로 그 불일치를 종료시키는 세속의 장소일 뿐이다.
법의 이러한 기본적인 속성을 이해한다면 판사는 자신의 판결에 대해 승복을 요구할지언정 결코 신성함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원의 판결이 판결문의 형태로 법정을 떠나는 순간, 그 판결문은 이미 법원의 신성한 경전이 아니다.
판결문은 인간 사회의 과거의 모순을 담은 채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고 있으며, 새로운 모순을 잉태한 채 미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출발선에 놓여 있는 공공의 유물일 뿐이다. 그 유물을 가능한 한 자랑스러운 역사의 유물로 만드는 것은 판사의 자폐적인 아집도 아니고 일반인들의 맹목적인 승복도 아니다. 그것은 세속적 모순에 세련된 해결책을 제시해보려는 모두의 공개된 고민이다. -144-145쪽

법은 세상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의 힘’을 ‘의식의 힘’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총체적 운동과정이다. -215쪽

분쟁이 당사자에 의해 해결된다면
법원은 그 보수를 박탈당하리라. (마르크스)-250쪽

이(헌법에 양심의 자유를 둠으로써 법치주의와 대립하게 만드는 것)는 일종의 내성을 기르는 자본주의 헌법체계의 정교한 자기방어 기제다. 모순을 허용치 않는 헌법체계에서 사회적 모순이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축적되어 폭발한다면 헌법은 회복할 수 없는 위험에 빠질 것이다.
그 절묘한 대비책이 바로 양심의 자유다. 양심의 자유는 바로 ‘법’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법은 자신을 부정하는 양심의 도전에 모순적으로 타협(적 처벌)함으로써 자신을 끊임없이 진보시켜 나가려는 것이다.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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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6-3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하여간 부지런하시네요,,,ㅎㅎ

마늘빵 2009-07-03 13:33   좋아요 0 | URL
아하핫. ^^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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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식 교수가 또한번 '사고'를 쳤다. <헌법의 풍경>과 <평화의 얼굴>로 이미 사고를 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가 감당해야 할) 충격(?)이 그나마 덜하지 않을까 싶은데, 사안이 사안인만큼 '업계'의 비난과 압력이 은근 들어오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베일에 싸인 법조계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뒤집어 깐 책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전화 사건에 대해 수많은 판사들이 모여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했지만, 법원은 꿈쩍도 않는다. 꼭 누구 같다. 지적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세요,하는 태도. 이 정부 들어 자주 목격한다.  

  김두식은 희망제작소 '우리시대 희망찾기'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기독법률가회 사무국장으로 있는 김종철과 함께 판사, 검사, 변호사, 법원 일반직 공무원, 경찰, 변호사 사무실 직원, 신문기자, 교수, 철학자, 시민단체 간사, 결혼소개업자, 비정규직 노동운동가, 각종 소송 경험자 등 모두 스물세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책으로 엮었다. 이 프로젝트는 애초 사법부와 법조계를 까는 것이 아닌, 단지 현실 상황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사법부와 법조계를 까는 책이 되었다. 드러내놓고 알려진 바가 없다해도 이미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법조계를 불신한다는 것은 여러 차례 통계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가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문제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도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제도를 만들어도 다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모두 온전히 사법부와 법조계의 개혁을 주장하진 않는다. 어쩔 수 없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관행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문제 있어 보이는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옹호하기까지 하는데,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이들도 이러한데 집단 안에서 똘똘 뭉치는 이들은 오죽 하겠나 싶다. 

  서로 각을 세워야 할 검사와 판사, 변호사는 돈, 상품권, 골프 회원권 등 뇌물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남이 아니에요", "선배님, 후배님" 하며 재판이 열리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사전에 협의(?)해서 일찌감치 판결문을 내고, 뭣도 모르는 피고와 원고는 그들에게 열심히 돈 갖다 바치며 잘 봐 주십사 손바닥을 비빈다. 하긴 대한민국에 딱 정해진 수수료만 줘서 통하는 데가 어디있나. 심지어 운전면허학원에 가서도 얼마라도 현금을 쥐어주면 말투가 바뀌는데. 그들에게 추가 비용 갖다바치며 잘 봐주십사 하는 시민들보다는 그걸 안주면 재판이 원하는대로 안될 것처럼 구는 변호사, 판사들이 문제다.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돈을 갖다주는 건 일상적인 '관행'이지만, 돈을 받지 않은 판사가 돈을 준 판사를 고발하는 경우는, 불행히도 없다. 왜냐. 돈을 안받는 것만해도 이상한 데, 돈을 주는 변호사를 고발하는 건 또라이 짓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라이가 되지 않으려면 판사는 돈을 받지 않았어도, 분명 부정의를 멀쩡한 두 눈으로 목격했으면서 해당 변호사를 신고하지 않는다. 판사가 또라이로 낙인 찍히는 순간, 그는 더이상 판사복을 입을 수 없을 뿐더러, 변호사를 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변호사 이 바닥도 서로들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판사복 벗은 것도 억울(?)한데, 변호사도 못 해먹으면, 그는 정말 갈 데가 없다. 그냥 삼성 비리 고발해서 새된 김용철 변호사처럼 빵집이나 차려야 한다.  

  변호사와 판사들에게 삼성은 든든한 미래의 직장이다. 삼성을 비판한다는 건 나 빵집 차리겠소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김용철 변호사, 노회찬, 심상정 다 달려든 삼성 사건이 이모냥으로 판결나지 않았겠나. 삼성과 김앤장은 대한민국의 절대 강자요, 판검사들의 미래의 희망 직장이다. 내가 몸담아야 할 곳을 어찌 감히 비판할 수 있겠나. 김앤장은 삼성을 변호하고, 삼성은 판검사에게 떡돌리고, 판검사는 삼성을 감싸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만사 오케이다. 이들은 절대로 서로에 대해 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 바로 '신성가족'에서 추방당하는데 그 누가 감히 그럴 수 있겠나.  그러니 아무리 의식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내부 비판을 할 수 없다.

  문제는 다시 한번 사람이다. 법조계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거나 사람이 통째로 바뀌지 않는한 지금의 관행은 절대로 깰 수 없어 보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법조계 내부의 누군가가 혹은 어느 집단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외부에서 아무리 비판하고, 들춰내봐야 소용 없다. 자기들끼리 더 똘똘 뭉치기만 한다. 명박이식 소통(?)은 사람 힘 빠지게 만든다. 더 이상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루쉰은 "희망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다. 걸을 수 밖에 없으니 걷는 것이고, 걷다보니 길이 생기는 것이다. 걸을 수 있는 동안에는 걸을 따름이다." 라고 말했지만, 걸을 만한 땅이라도 보여야 걷지, 걸을 땅을 무너뜨려버리면 갈 수조차 없지 않겠나. 다행히 신영철 대법관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소장 판사들이라도 들고 일어났으니 희망이라도 가져본다.  

  "‘거절할 수 없는 관계’란 누군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순간 마치 모래더미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리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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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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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6월 민주 항쟁. 내겐 아무런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 신문이나 뉴스도 안 보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에 대해 내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기억엔 없지만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당시 무척 바빴으리라 생각한다.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경찰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거의 들은 바 없다.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며 경찰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대답이 나올까 두려워 묻지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그를 미워하게 될까봐. 다행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현장을 뛰는 쪽에 소속되지는 않았다는 것.  

  8살,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집에서 학교로 이어지는 십여분 거리의 골목이 전부였다. 8시면 냉큼 일어나 세수하고 밥먹고 전날 시간표대로 싸두었던 책가방을 들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며 집을 나섰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방과 후엔 친구의 책가방 뒤를 붙잡고 기차놀이하며 집으로 왔다. 방 안에서 숙제를 하고, 레고를 가지고 놀다, 아버지가 빌려온 비디오를 보다 잠드는 게 전부였다. 내게 87년 6월은 그냥 긴팔 옷에서 반팔 옷으로 갈아입는, 조금 더워지는 시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나는 87년 6월에 관심이 없었다. 그건 그 누구도 내게 그 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대학에 오고 나서도 87년 6월은 얼핏 들은 것도 같지만,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그게 87년 6월이었는지, 80년 5월이었는지, 60년 4월이었는지 알 수 없는 무참히 피터진 시민, 경찰이 곤봉으로 내려찍고 짓밟는 사진 몇 장을 정말, 얼핏, 본 것이 전부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배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당시 역사 교과서에는 87년 6월을 싣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은 그나마 암기의 대상으로서 87년 6월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87년 6월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나 알게 된 '숨겨진 진실'이다.

  흔히 대학에서 '교양'이라 하여 선배들이 후배들을 강제로 데려다 앉혀놓고 가르치던 때도 아니었고, 운동권이 서서히 대학에서 사라지고 노는 동아리들이 많아지던 때, 딱 주식 동아리나 재테크 동아리 등이 생기기 바로 전에 학교를 다녔다. 시위나 집회는 당연히 나간 경험이 없고, 오히려 보도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노점상을 보고 왜 이렇게 길을 다 막아놓은거야, 불평불만을 하던,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재수없는 녀석이었다. 불과 십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더이상 노점상을 걸어다니기 불편하게 만드는, 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지 않고, 철거민을 불법 폭력 집단으로 보지도 않으며,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집단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거부감을 갖지도 않는다.      

  87년에 그랬듯이 여전히 국가에게 철거민은 국민이 아닌 불법 폭력 분자이고, 사회 구조로 인해 비관 자살하는 이들은 그냥 우울증에 걸린 좀 안쓰러운 시민일 뿐이다. 퇴근길 촛불 한 자루 들고 시청 광장에 모인 이들은 할일 없는 촛불 좀비들이고, 대규모 상경해 가투를 벌이겠다는 화물 연대 노동자들은 그냥 큰 트럭을 가지고 거리를 막고 나라 경제 파탄내는 주범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국민이 아니다. 국가는 그렇게 국가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이들,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 시위와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누고, 비국민을 싹쓸이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이 모든 것에 화가 난다. 불과 1년 사이 우리 사회의 온도는 끓는 점을 향해 가고 있다. 
 
  한숨에 읽어나갔다. 최규석의 6월 항쟁 본편을 읽으며 몸이 뜨거워졌다. 본편도 본편이지만, 이 만화책이 지금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본편이 아닌 부록에 있다. "그래서 어쩌자고?" 시민교육센터 강사로 활동 중인 이한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교육안'을 만화로 그린 이 부록은, 청소년뿐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봐야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지 알고, 이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공부할 것을 권장한다. 이한과 최규석의 말마따나 "이렇게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99도씨. 지금 우리의 마음은 99도씨다.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는다. 이 만화 속의 누군가의 말처럼, 그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조금만, 조그만 더 가열하면 우리 가슴은 100도씨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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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23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당시엔 파출소도 습격하고 했습니다. 그래야 병력이 분산되니까요. 파출소 앞마다 철망을 가득 가렸고, 그래도 툭하면 불타곤 했지요.

마늘빵 2009-06-23 10:31   좋아요 0 | URL
촛불 집회 게릴라전과 비슷하네요. 경찰들 분산시키려고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머큐리 2009-06-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수없는 녀석이 이렇게 멋지게 변할 수도 있군요...명박이한테 감사해야 하나?...ㅎㅎ

마늘빵 2009-06-23 10:30   좋아요 0 | URL
깜짝이야! ^^a

2009-06-23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6-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진지하고 충실한 리뷰에요, 아프락사스님. 추천 하나 더해 화제의 서재글로 보냅니다.

마늘빵 2009-06-24 20:52   좋아요 0 | URL
아 부끄럽게... 리뷰를 띄엄띄엄 써서...

무해한모리군 2009-06-24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올리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렇죠 우리 또래에겐 머리론 알아도 마음으로 느끼기 쉽지 않은 사건이지요.
작가도 그랬기에, 촌스러울 정도로 정공법으로 이 만화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99도가 아니라 80도쯤 되는듯해 큰일 입니다 --;;

마늘빵 2009-06-24 20:53   좋아요 0 | URL
네, 마음으로도 잘 느끼지 못하고, 머리로도 잘 알지도 못해요. 최규석은 그래도 이 만화를 그리면서 공부라도 했겠지만, 저는 이제 공부를 해야죠.

rumie0201 2010-06-0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어쩌다 들르게 됐는데 진지한 글 반갑네요.
우리세대는 87년 한복판에 섰던 세대들이고,
살면서 잊지 않으려 애쓰며 열심히 살고자 하는데,
아직도 그렇게 살아?란 동기의 말을 들을때 가슴이 싸해지지만,
그래도 뜨겁게 자기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그들이 있기에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100도라....그 뜨거운 삶의 열정을 다시 지피고 싶어집니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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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의 재임시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고 흔들었던 부시가 물러나고 미국 역사상 최초로 놀랍게도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는 대선 당시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주변의 압력 때문인지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이슬람을 향해 화해의 메세지를 보내고, 이슬람은 오바마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손짓과 메세지만 있을 뿐, 사실상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여기 쓰인 관타나모는 진행 중이다.  

  마이애미 대학 로스쿨 여대생인 마바쉬 록사나 칸은 2006년 1월부터 관타나모에 갇힌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담담하게 써나갔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피를 가진 미국인이다. 태어나기 전, 의사인 그녀의 부모님이 잠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떠난 것이, 영원히 미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외형은 아프가니스탄인이지만, 몸에 뵌 습관이나 사고 방식,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녀는 철저히 미국인이다. 그녀는 왜 관타나모로 가게 되었고, 관타나모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록사나는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는 정의로운 법학도로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들에 분통을 터뜨렸고, "불평만 하지 말고 직접 뭐라고 해보는 게 어때?"라는 약혼자의 말에 자극받아 통역봉사를 자원했다. 세상은 이렇게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자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한다. 언제나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록사나는 그걸 몸으로 실천에 옮겼고, 이 책은 그 행동의 결과물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누가 갇혀 있을까? 쉽게 상상해볼 수 있듯 테러리스트들도 있겠지만, 그 못지 않게 일반 시민들도 많다는 사실. 따지고보면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테러리스트이고, 누구는 처음부터 일반 시민인 건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들뿐. 실제 폭탄을 들고 뛰어드는 이와 물품을 대는 상인 등 어디까지를 테러리스트라고 볼 건지도 의문이다. 또, 명백히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우리가 그들을 마치 짓눌러 죽여야 할 해충인양 취급할 권리도 없다. 누구나 최소한의 인권은 지켜줘야 한다. 다시 한번 묻자. 여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소아과 의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무역 회사 사장, 관타나모에 수감된 이들이 갇히기 전에 가졌던 직업이다. 미국은 양치기와 의사와 무역 회사 사장을 왜 가두었을까? 서로 관련도 별로 없어보이고, 미국이 딱히 이용할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인다. 정치인도 군인도 아닌 이들이 왜 여기에 있을까?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일단 조사를 받기 위해 나섰다가 수년 간 이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탈레반을 없앤다는 이유로. 미국은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수천 장의 전단을 살포했고, 전단지엔 어느 누구라도 알 카에다와 탈레반 일원들을 신고하면 5,000달러에서 25,000달러를 준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라고 한다. 이건 분명 로또 이상의 거액이었다. 사람들은 돈에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알 카에다 조직원 혹은 탈레반이라고 신고하였다. 이후 미국은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고 그들을 모두 관타나모로 데려갔다. 염소치기와 소아과 의사와 무역 회사 사장은 이렇게 순식간에 테러리스트로 둔갑했다.  

  이들은 관타나모에 와서도 왜 갇혀있는지 설명을 들은 바도 없고, 재판조차 받을 수 없었다. 어쩌다 재판이라도 하면, 형식적으로만 재판을 했다뿐, 오히려 재판을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얻었다. 한 번 재판을 하고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박탈 당하고, 영원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며 이곳에서 죽어가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운명이다. 부모와 아내와 자식은 그들이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멀리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관타나모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기뻐한다. 적어도 어디에 있는지, 살아있는지는 알게 되었으니까. 현실이 이렇다.  

  록사나의 인터뷰와 방문 일지가 <워싱턴포스트>에 커버스토리로 게재되면서 미국은 록사나의 출입을 한때 막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의외로 록사나에게 몇몇 주의만을 주고서 여전히 방문을 허가해줬다. 록사나는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그곳에서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계속 글로 썼다.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관타나모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위에서 언급한 일부 수감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수년간 그들이 그곳에서 당한 강간과 폭력 등 수치스러운 일들에 문제제기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게 된 것만으로 감사한다. 다시 부모 형제, 처 자식과 만난 것만으로도 신에게 감사한다. 

  록사나는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화도 났겠지만, 록사나는 그곳에서 경험한 바를 담담히 기술해 수많은 미국인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록사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언론이 해야 할 제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록사나의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고, 관타나모의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록사나와 워싱턴포스트가 제 할 일을 다 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많은 이들의 분노와 행동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관타나모의 현실을 알리고, 미국 정부가 외치는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한국 땅에도 관타나모만큼이나(관타나모보다) - 관타나모는 적어도 순수 미국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 끔찍한 국가보안법이 있지만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없애지 못했다. 오바마가 지금 주저하고 있지만, 오바마 시절이 아니라면 관타나모는 폐쇄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의 관타나모 폐쇄를 위해 당장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 여러 곳에 관타나모의 현실을 알리는 것 외에는 - 오바마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미국인들이 관타나모 폐쇄에도 일조하길 희망할 뿐이다. 길 한복판에서 신부가 말 그대로 짓밟히고 사복 경찰이 나타나 아무 말도 없이 순식간에 사람을 연행하는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희망을 가져봐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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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6-2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관타나모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를 읽으면서..이 책이 매우 궁금했더랍니다. 꼼꼼한 리뷰에 감사.

마늘빵 2009-06-22 23:42   좋아요 0 | URL
아프가니스탄계 미국 여성의 눈으로 담담하게 서술해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워싱턴포스트지에 연재되는 글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감정적으로 쓰기보다는 침착하게 보고 느낀 바를 옮겨놨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6-25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이 사회문제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면 이런 식으로 담담하게 잘 쓰실텐데 ^^
요즘 리뷰 러쉬군요 ㅎㅎ

마늘빵 2009-06-25 20:48   좋아요 0 | URL
리뷰는 한번 쓰면 계속 쓰게 되고, 한번 안쓰면 계속 안쓰게 돼요. 이게 머리가 '리뷰 모드'가 되면 그 다음 리뷰도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오네요. ^^
 
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구판절판


"그동안 나는 어디서나 평안을 찾았지만, 책이 있는 한쪽 구석을 제외하곤 어디서 찾을 수 없었다."(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천국은 도서관과 같으리라."(가스통 바슐라르)-24쪽

이민족 정복자가 정복지의 책을 불태우는 일은 현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 봄 30개 대학에서 ‘독일정신에 위배되는’ 책들을 분서한 이래 12년 동안 1억 권이 넘는 책과 600만이 넘는 사람들을 화염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나치는 독일뿐 아니라 피정복국의 도서들도 약탈했는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폴란드의 경우 1,600만 권이 파괴되고 12세기의 희귀 필사본들이 설탕공장의 연료로 사라졌습니다. 히틀러만이 아닙니다. 티베트를 침략한 중국군은 불교사원을 약탈하고 수십만 권의 책을 불태웠으며, 사라예보를 공격한 세르비아군은 국립 도서관을 겨냥해 포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21세기에도 이런 일은 사라지지 않아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문화예술의 산실인 ‘지혜의 전당’이 폭격으로 불타고, 국립 도서관을 비롯한 희귀 고문서 보관소들이 약탈되거나 불타 없어졌지요. -88-89쪽

"책을 불사르는 것은 인간을 불사르는 것과 같다."(하인리히 하이네)-172쪽

재판정에서 빈센테(1830년 에스파냐의 수도원 장서 관리자로 책을 훔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인물)는 왜 사람을 죽였냐는 물음에 "사람은 언제나 죽게 마련이지만 좋은 책은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고 태연히 답해 주위를 경악시켰습니다.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면서, 검찰 측이 살인의 증거로 삼은 유일본에 대해 그 책이 프랑스에도 한 권 있으므로 유일본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 어떤 말에도 태연하던 빈센테는 변호인의 이 말에 놀라 이성을 잃었습니다. 처형되는 날에도 그는 "그 책이 유일본이 아니라니!"하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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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22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국은 도서관과 같을거란 말, 정말 그럴 것 같아요.

마늘빵 2009-06-22 09:05   좋아요 0 | URL
네, 요즘 책값으로 너무 많이 써서... 원하는 책이 모두 다 있는 그런 천국에 갔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글샘 2009-06-22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도서관도 지옥이던데요... ㅠㅜ
애들 기말셤 공부한다고 바글거리면서 공분 안하고 놀기만... 떠들고...

마늘빵 2009-06-22 09:06   좋아요 0 | URL
한국의 도서관은 -_- 독서실이죠.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시험 공부하고 노는...

비로그인 2009-06-23 07:56   좋아요 0 | URL
제가 가는 도서관은 정말 도서관 같다는 생각이..
도서관 강좌도 지방 치고는 꽤 되었고, 서고에서는 개인 학습을 금지하고 있어 모두가 책을 읽고 있거든요. 그런데 개인 열람실은 아마 정말 독서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진짜 도서관 풍경'은 그러고 보니 아동실, 유아실이란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