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김두식 교수가 또한번 '사고'를 쳤다. <헌법의 풍경>과 <평화의 얼굴>로 이미 사고를 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가 감당해야 할) 충격(?)이 그나마 덜하지 않을까 싶은데, 사안이 사안인만큼 '업계'의 비난과 압력이 은근 들어오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베일에 싸인 법조계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뒤집어 깐 책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전화 사건에 대해 수많은 판사들이 모여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했지만, 법원은 꿈쩍도 않는다. 꼭 누구 같다. 지적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세요,하는 태도. 이 정부 들어 자주 목격한다.  

  김두식은 희망제작소 '우리시대 희망찾기'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기독법률가회 사무국장으로 있는 김종철과 함께 판사, 검사, 변호사, 법원 일반직 공무원, 경찰, 변호사 사무실 직원, 신문기자, 교수, 철학자, 시민단체 간사, 결혼소개업자, 비정규직 노동운동가, 각종 소송 경험자 등 모두 스물세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책으로 엮었다. 이 프로젝트는 애초 사법부와 법조계를 까는 것이 아닌, 단지 현실 상황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사법부와 법조계를 까는 책이 되었다. 드러내놓고 알려진 바가 없다해도 이미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법조계를 불신한다는 것은 여러 차례 통계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가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문제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도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제도를 만들어도 다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모두 온전히 사법부와 법조계의 개혁을 주장하진 않는다. 어쩔 수 없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관행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문제 있어 보이는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옹호하기까지 하는데,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이들도 이러한데 집단 안에서 똘똘 뭉치는 이들은 오죽 하겠나 싶다. 

  서로 각을 세워야 할 검사와 판사, 변호사는 돈, 상품권, 골프 회원권 등 뇌물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남이 아니에요", "선배님, 후배님" 하며 재판이 열리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사전에 협의(?)해서 일찌감치 판결문을 내고, 뭣도 모르는 피고와 원고는 그들에게 열심히 돈 갖다 바치며 잘 봐 주십사 손바닥을 비빈다. 하긴 대한민국에 딱 정해진 수수료만 줘서 통하는 데가 어디있나. 심지어 운전면허학원에 가서도 얼마라도 현금을 쥐어주면 말투가 바뀌는데. 그들에게 추가 비용 갖다바치며 잘 봐주십사 하는 시민들보다는 그걸 안주면 재판이 원하는대로 안될 것처럼 구는 변호사, 판사들이 문제다.

   변호사들이 판사에게 돈을 갖다주는 건 일상적인 '관행'이지만, 돈을 받지 않은 판사가 돈을 준 판사를 고발하는 경우는, 불행히도 없다. 왜냐. 돈을 안받는 것만해도 이상한 데, 돈을 주는 변호사를 고발하는 건 또라이 짓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라이가 되지 않으려면 판사는 돈을 받지 않았어도, 분명 부정의를 멀쩡한 두 눈으로 목격했으면서 해당 변호사를 신고하지 않는다. 판사가 또라이로 낙인 찍히는 순간, 그는 더이상 판사복을 입을 수 없을 뿐더러, 변호사를 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변호사 이 바닥도 서로들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판사복 벗은 것도 억울(?)한데, 변호사도 못 해먹으면, 그는 정말 갈 데가 없다. 그냥 삼성 비리 고발해서 새된 김용철 변호사처럼 빵집이나 차려야 한다.  

  변호사와 판사들에게 삼성은 든든한 미래의 직장이다. 삼성을 비판한다는 건 나 빵집 차리겠소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김용철 변호사, 노회찬, 심상정 다 달려든 삼성 사건이 이모냥으로 판결나지 않았겠나. 삼성과 김앤장은 대한민국의 절대 강자요, 판검사들의 미래의 희망 직장이다. 내가 몸담아야 할 곳을 어찌 감히 비판할 수 있겠나. 김앤장은 삼성을 변호하고, 삼성은 판검사에게 떡돌리고, 판검사는 삼성을 감싸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만사 오케이다. 이들은 절대로 서로에 대해 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 바로 '신성가족'에서 추방당하는데 그 누가 감히 그럴 수 있겠나.  그러니 아무리 의식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내부 비판을 할 수 없다.

  문제는 다시 한번 사람이다. 법조계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거나 사람이 통째로 바뀌지 않는한 지금의 관행은 절대로 깰 수 없어 보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법조계 내부의 누군가가 혹은 어느 집단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외부에서 아무리 비판하고, 들춰내봐야 소용 없다. 자기들끼리 더 똘똘 뭉치기만 한다. 명박이식 소통(?)은 사람 힘 빠지게 만든다. 더 이상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루쉰은 "희망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다. 걸을 수 밖에 없으니 걷는 것이고, 걷다보니 길이 생기는 것이다. 걸을 수 있는 동안에는 걸을 따름이다." 라고 말했지만, 걸을 만한 땅이라도 보여야 걷지, 걸을 땅을 무너뜨려버리면 갈 수조차 없지 않겠나. 다행히 신영철 대법관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소장 판사들이라도 들고 일어났으니 희망이라도 가져본다.  

  "‘거절할 수 없는 관계’란 누군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순간 마치 모래더미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리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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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2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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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2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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