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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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거짓된 인문학은 여러분에게 더 두텁고 화려한 페르소나를 약속할 것이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ㄹ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15쪽

간혹 인간이 겪는 고통의 양은 불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일시불로 갚느냐, 아니면 할부로 갚느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것은 일시불로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다. 반면 자기 최면과 위로에 빠진다는 것은 할부로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다. 할부로 고통을 겪는다면, 할부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사라진다. 일시불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고통을 겪어내자. 그러면 남은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 우리에게 덤으로 남겨질 것이다. -16쪽

정직한 인문학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더 직면할 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17쪽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25쪽

이 몸이 바로 보리수.
마음은 맑은 거울
날마다 힘써 깨끗이 닦아야 하리라!
먼지가 앉지 않도록
(신수)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며
맑은 거울에는 (거울의) 틀이 없다.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모이겠는가!
(혜능)-66쪽

인문학은 주어진 현실과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꿈꾸려는 학문이다. -69쪽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인간 자신, 세계 그리고 우주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주장의 기초입니다. 관찰자의 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말과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각하고, 말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투라나, <있음에서 함으로>)-93쪽

(아렌트는)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155쪽

선물이 주어지는 조건으로서의 이런 ‘망각’은 선물을 주는 쪽에서만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는 쪽에서도 근본적인 것이다. 특히 선물을 주는 주체에게 선물은 되갚아지거나 혹은 기억에 남겨지거나, 아니면 희생의 기호, 다시 말해 상징적인 것 일반으로 남아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상징은 즉시 우리를 또 다른 상환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사실 선물은 주는 쪽에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선물로 드러나지도, 선물로 의미되지도 않아야 한다. (데리다, <주어진 시간>)-165-166쪽

소통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소통이란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지만 ‘트다’라는 뜻의 ‘소’와 연결하다라는 뜻의 ‘통’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소통이란 개념은 더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통은 구체적으로 막혔던 것을 터서 물과 같은 것이 잘 흐르도록 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이라는 개념보다 ‘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막혔던 것을 터버리지 않는다면, 물과 같은 것이 흐를 수 없다. ‘소’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운다는 것, 그러니까 장자가 말했던 ‘비움’이나 ‘잊음’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워야만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193-194쪽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매체는 우리의 자유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든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국 여가 시간의 활동마저도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251쪽

이상이란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이념이자, 동시에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겠다는 자유정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이란 급류와 맞서 싸우겠다는 결연한 각오이자 다짐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상을 잃지 않으려고 버텼던 몇몇 위대한 인물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는 정말로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고. 주체적으로 살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주인으로서 살았다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노예처럼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주체는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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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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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의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논쟁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다."(알버트 A, 허쉬만, <열정과 이해관계>)-9쪽

나는 진보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이, 또 정치적인 것보다 인간적인 것이 더 넓고 풍부한 세계이며 진보파가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려면 인간과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4쪽

(정치는) "영혼의 구원보다 자신이 태어난 공동체의 위대함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시민을 칭송"하는 일(베버)-31쪽

"내적으로 무력하고 스스로에게 적절한 답을 줄 수 없는 자라면 정치라는 직업을 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베버)-35쪽

"인간의 정신은 과연 우리가 옳은지를 살펴보는 내적 의심이라는 작은 불빛을 통해서만 빛날 수 있다."(알린스키)-56쪽

분노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해 묵인하지 않겠다는 결단일 때가 많다. 인간 사회가 불평등과 부정의를 줄여 갈 수 있는 것은 그런 현실에 대한 누군가의 분노 때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 부모 형제의 도움과 희생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안락한 삶에 안주하기보다 타인의 고통과 불합리한 사회 현실에 분노하고 뭔가 개선을 위해 열정을 갖는 것도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분노와 열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도 많다는 사실이다. 분노와 열정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라 할지라도, 그래도 뭔가 가치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으려면 이성과 합리성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64-65쪽

어떤 경우든 지나친 경제 중심주의는 곤란하다. 경제는 인간 공동체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하위 체제로 이해되어야 하며, 인간 공동체의 통합과 연대의 원리하에서 부분 체제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가 체제 전체를 지배하게 하거나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는 논리나 이론은 모두 좋지 않다.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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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구판절판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까닭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자주 망각한다. 그리고 오직 ‘결과’만 가지고 서로 비교한다. 화장실에서 옆 사람의 그곳을 흘끔거리며 열등감에 젖는 것처럼, 타인의 사회적 지위나 연봉 따위와 자신을 비교하며 한없이 움츠러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결과’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108쪽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항상 불안하다. 타인의 완성된 결과와 내 미숙한 결과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사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살면서 한 번도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또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그리 분명하게 나타나지도 않는 세상이다. 이런 ‘결과 지향적 삶’에는 어떠한 즐거움도 없다. 결과를 이루는 순간, 또 다른 결과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109쪽

세상은 기준을 정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문제는 내가 내 삶의 소실점을 정하고 있는가다. 소실점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변화의 주체가 될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재미’다. 재미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일 때만 얻어진다.
-169쪽

학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공부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교다. 적어도 미국이나 유럽의 학교는 이런 교육학적 이념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는 ‘남의 돈 따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 들어가, 높은 연봉을 받는 좋은 직장을 갈 수 있는가에 관해서만 관심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녀도 평생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존재를 확인할 뿐,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은퇴 이후 정말 황당해진다. -267-268쪽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나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잘 논다는 것은 이렇게 나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이렇게 정반대의 과정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내면의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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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철학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편집부 지음 /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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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한국인의 철학. 한국인은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들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아갈까? 이와 같은 의문으로부터 기획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전공 교수 몇몇과 한국갤럽이 조사 질문을 만들고, 다듬고, 약 1,500명 정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이 책은 그 결과물과, 그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조사하지 않아도 대충 생각은 해볼 수 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접했던 사람들의 '철학'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는. 해당 학문을 공부했기에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철학은 사회, 국가적으로도 돈이 안 되는 학문이고, 그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도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철학은 어렵고, 구름 위에 붕붕 떠서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주고받는 학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며, 관련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철학을 찾게 된다. 대충 이 정도가 아닐까.    

  이 책의 조사 내용을 살펴본 결과 대략 이와 같은 추측은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생각보다' 철학을 인생에 필요한 학문으로 보지 않으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본 사람들도 많았다.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은 철학이 기초 학문이고, 삶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지만, 과반수를 살짝 넘는 그 수치는 예상 외였다. 한 십 년 전이라면 조사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돈이 되는, 삶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철학은 쓸모없는 학문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철학서는 십 년 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생각보다 찾는 독자들이 꽤 있다. 이것은, 지적 결핍을 충족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다. 철학의 쓸모에 대한 생각도 반반으로 나누어지고 있는 셈.  

  몇몇 조사 결과과 분석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먼저, 철학에 대한 생각을 묻는 조사 결과에서는, 아직도 '철학'하면 '점'을 떠올린다는 사람들이 21%이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는 어렵고 재미없다, 진리와 가치관 등 철학적 개념이 떠오른다,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자가 떠오른다, 인생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명언 등의 순서대로 답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점을 떠올린 사람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21% 정도로 다른 선택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점'을 떠올린다니. 아무래도 여기저기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학관' 때문인듯 하다. 

  관련 조사를 확장하여 죽음이나 존경하는 사람, 종교 등에 관한 질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서 부동의 1~3위는 박정희, 세종대왕, 이순신이 나왔다. 이건 아무리 조사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이명박, 육영수, 박근혜, 전두환, 조용기 목사를 언급한 분도 있다는 것. 그 수가 적지 않다. 이명박으로 응답한 비율 10위로, 생존자 중엔 가장 높다. 

  조사 결과에 대한 손동현 교수의 분석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그는 '한국인이 기억하는 철학자'라는 꼭지에서 "김동길 씨나 함석헌 씨가 철학자로 기억에 남아 있다는 건 조금 뜻밖입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다 보니 '철학'이라는 개념 이해가 불분명, 부정확해졌고 그래서 사상가 범주에 들 수 있는 사람들까지 철학자로 여기고 응답하지 않았나 봅니다."라고 하였는데, 김동길이 철학자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함석헌을 한갓 사상가 정도로 간주한다는 것은 아니지 싶다. 물론, 그는 한국 철학사를 공부할 때 다루는 철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철학으로서 주목을 받는 시점에서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물론, 이 분석 내용은 그의 주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표 철학 교수로 선정되어 조사 결과에 대해 분석하는 자리에서는 이 주관적인 생각이 객관화되기 쉽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국갤럽의 조사 내용을 그래프와 도표로 제시하고, 이를 해석하거나 주석을 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겨 철학 교수 네 명을 초청해 대담 형식으로 결과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담았다. 하지만, '대담'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네 사람 각각이 자신의 입장에서 분석을 했을 뿐, 의견을 주고받는 부분이 없다는 것. 물론, 앞서 먼저 분석한 교수의 의견에 대해 나도 동의합니다,라는 식으로 받기는 하지만, 달랑 한 번씩 이야기하고 끝낸다는 부분에서 '대담(對談)'(어떤 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음. 또는 그 이야기)이라고 할 때 기대하는 정도에는 못 미친다.

  하나 더. 관심있는 철학 분야를 묻는 질문을 답변자들이 제대로 이해했을까 궁금하다. 철학의 분과 학문 이름인 인식론, 윤리학, 형이상학, 정치철학, 논리학 등을 질문지에 넣었는데 이를 따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응답자들이 해당 학문명을 듣고서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이해했다고 전제한 셈이 된다. 물론 '인식', '윤리', '정치', '논리' 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나 그림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확히 알고 대답했는지는 의문이다. 질문지의 대상은 학력도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연령대도 청년층에서 노년층까지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학문이 어떤 것을 논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답변했어야만 신뢰할 수 있다.

오자  p.165 '철학 관심 분야 - 성별' 도표. '윤리학'은 '논리학'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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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0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MB를 존경하는 분도 계시다고 하니 푸른 기와집의 모님이 좋아하시겠군요^^;;;

마늘빵 2011-03-24 19:04   좋아요 0 | URL
이게 현실인듯 합니다. 뭐 때문에 '존경'씩이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사 산책 17 - 오바마의 미국, 완결 미국사 산책 1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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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마지막 권. 15권이 부시를, 16권이 9.11테러 이후의 변화한 미국상을 그렸다면, 마지막 권은 오바마의 미국을 그리고 있다. 미국인의 일반적인 이름과는 전혀 다른 '버럭 오바마'의 등장은 미국 정계에서 놀라운 사건이었다. 클린턴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왔고, 부시가 뒷배경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면, 오바마는 미국인들에게 그야말로 듣보잡이었다. 어떤 포털은 오바마의 사진과 함께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고를 치기도 했고, 그의 가운데 이름인 후세인 때문에 기독교인인 그를 모슬렘으로 오해하는, 때에 따라서는 상대 진영에서 그를 일부러 모슬렘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당 진영에서 대선 후보로 떠오른 인물은 본래 힐러리 클린턴. 무엇보다 남편인 클린턴의 이미지가 괜찮고-섹스 사건 빼고는-, 힐러리 또한 권력욕이 강하고, 추진력이 있기에 후보로 괜찮았다. 하지만, 오바마가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전 대통령 클린턴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오바마를 "몇 년 전만 해도 이 친구는 우리한테 커피나 갖다줬을 사람"이라고 말하며 불평하기도 했단다. 클린턴 부부가 이렇게 오바마를 경계하는 것은 이미 그의 지지율이 힐러리의 지지율을 넘어섰기 때문. 힐러리보다 오바마가 더 이슈가 되고, 뉴스 가치가 있다는 것.  

  오바마는 말을 잘 했고, 힐러리는 이런 그를 콘텐츠 없이 말만 잘할 뿐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인이 이슈를 선점하고, 말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 히틀러 또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연설을 통해 한낮 군인 상병에서 총통으로 신분을 바꾸지 않았던가. 그가 오로지 잘한 것은 연설 뿐이었다. 연설로 독일의 총통이 되었고, 주변 여러 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지금이야 그를 미치광이, 전쟁광이라고 부르지만, 당시 독일 민중의 지지율은 엄청났다. 그걸 보면 부시가 연설을 잘 못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건 어쩌면 다행이다.

  오바마는 희망과 흑백 통합을 이야기하며 대통령이 되었고, 당선된지 얼마 안 되어 노벨평화상까지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대통령 당선 못지 않게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또한 그의 연설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가 세계인들에게 심어준 기대감에 비해 현실에서는 딱히 실현한 바가 없었다. 전쟁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고, 관타나모 수용소는 그대로 있으며, 고문과 학살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변화와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그가 이룬 바는 별로 없다. 그런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자, 그의 지지자들 또한 '아니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 오바마의 미국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의 정치 행위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엔 이르다. 임기가 끝날 때 어떤 변화를 이루었는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마지막 권엔, 이전의 열여섯 권에 없던 부분이 하나 있다. 그는 맺음말에 60여 장을 할애하며, '왜 미국은 제2의 한국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미국에 가장 비판적인 미국인이자 미국 자본주의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진보 지식인 노엄 촘스키는 미국을 이렇게 평한다. "전 세계를 그토록 압도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지배한 것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미국을 '초강대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족하고 '초초강대국'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으로 봐서는 중국와 인도가 급부상한다고 해도 미국의 세계 지배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걸까. 다가올 초강대국 중국에 대비하여 중국어까지. 

  '왜 미국은 제2의 한국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강준만은 미국과 한국의 닮은 점으로 압축 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다섯 가지를 뽑는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이로 인한 부작용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복거일과 한홍구, 김진경 등이 모두 비슷하게 언급하고 있듯,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다르지 않다. 미국 또한 한국보다는 더딘 속도였지만 유럽에서 보인 봉건제 등을 거치지 않고 민주 사회에 도달했다. 또한 산업 발전 역시 마찬가지. 게다가 귀족이 없는 미국과 한국은 모두 평등주의 면에서 닮았다고 말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을 중류 계층이라 생각하고,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삶에서는 자본주의로 인한 눈에 빤히 보이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압축적 근대화는 또 물질주의와 깊이 관련된다. 현재도 노동 시간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일만 하고 사는 한국인들은, 여유보다는 돈을 선택한다. 삶의 가치관이 돈에 맞추어져 있고, 그 돈으로 사고픈 물건을 사고, 크고 비싼 집, 남들이 부러워하는 차를 사고 싶어 한다. 노동 시간 면에서 한국인을 따라갈 국가는 없지만, 강준만은 노동 강도 면에서는 미국도 못지 않다고 한다. 철학자 니체는 미국을 이렇게 평가했다고. "오늘날에도 그들은 휴식을 부끄러워하며, 한참 동안 생각에 몰두할 경우엔 양심에 문제가 있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그들은 한쪽 손목에 시계를 찬 상태에서 생각에 잠긴다."  

  각개약진은 적진을 향해 병사 각 개인이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개별적으로 돌진한다는 뜻으로,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이 강한 한국은 모두 사회적 문제도 가족 단위로 돌파하려는 특성을 지닌다. 미국 역시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가족 돌파가 아닌 개인 돌파라는 점에서는 조금 모습이 다를 듯하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키기 위해 각개약진하는 미국인과 달리 코리아 드림엔 학벌과 학력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꼬집는다. 연예인을 해도, 가수를 해도, 청소부를 해도 서울대 출신은 화제가 된다. 수 년 전에 '서울대 출신 버스 기사'가 뉴스인지 화제 현장인지 그런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나온 적이 있다. 이게 뉴스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학벌 사회라는 것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승자 독식. 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다. 이 역시 학벌주의와 떼어 설명할 수 없는데, 강준만은 구체적인 수치를 대가며 서울대 출신이 각 영역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런 기 현상을 두고 형평성이나 연구와 교육의 질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에게는 찌질이, 사회 부적응자 등의 수식어가 붙고, '꼬우면 니가 서울대 나오던가'라는 식의 말이 되돌아 온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제 현실이다. 잘못된 사회 구조와 제도를 비판하기보다는 내가 또는 내 자식이 잘못된 사회 구조의 상층부에 올라가기 위해 애쓰는 사회가 한국이고, 이를 설명하는 단어가 승자 독식이다.  

  미국와 한국의 공통점 다섯 가지는 우연히 맞아 떨어진 요소도 있지만, 다수는 한국이 미국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닮아간 게 아닌가 싶은 부분이 많다. 짝사랑도 사랑인지라 좋아하면 닮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반미(反美)하자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기를. 또 돌아가신 분의 말마따나 반미 좀 하면 어떤가. 한국은 세계 패권 국가 미국이 운전하는 차에 함께 타고 있고, 뒷자리보다는 앞자리에 앉아 좀 더 가까이에서 친밀감을 쌓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십 년 전에는 미국이 운전하는 차를 뒤에서 따라가는 허름한 차에 몸을 실었다가, 지금은 같은 차에 동승하고 있는 셈. 한국은 미국을 닮다 못해 동승한 차의 속력을 높이라고 재촉하고 있다. 그 길의 끝에 낭떨어지가 있어 결국 모두 다 죽게 될 거란 걸 모르고서. 이미 한국은 그 끝과 멀리 있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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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0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과 한 자동차를 타고 있는 나라가 한국뿐만은 아닐텐데 미국이 제2의 한국이라고 한 이유가 책 속에는 나와있겠지요? 차라리 허름한 차를 타고 미국이 운전하는 차를 뒤에서 따라가던 시절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언제든지 방향을 틀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으니. 이제 한 자동차에 타고 있다니 그럴 수도 없으니까요.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이제 몇년인데 열 일곱 권이나 되는 미국사 책을 집필했다니 저자가 대단한건가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한건가요.

마늘빵 2011-03-07 19:32   좋아요 0 | URL
아, 자동차 비유는 제가 한 거에요. ^^ 동승한 국가가 한국뿐만은 아니겠죠.미국과 한국의 공통점은 위의 다섯 가지 요소로 설명을 합니다. 저는 위 글에 축약하고 제 의견을 넣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