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인의 철학
한국갤럽조사연구소 편집부 지음 /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2011년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한국인의 철학. 한국인은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들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아갈까? 이와 같은 의문으로부터 기획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전공 교수 몇몇과 한국갤럽이 조사 질문을 만들고, 다듬고, 약 1,500명 정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이 책은 그 결과물과, 그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조사하지 않아도 대충 생각은 해볼 수 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접했던 사람들의 '철학'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는. 해당 학문을 공부했기에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철학은 사회, 국가적으로도 돈이 안 되는 학문이고, 그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도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철학은 어렵고, 구름 위에 붕붕 떠서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주고받는 학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며, 관련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철학을 찾게 된다. 대충 이 정도가 아닐까.
이 책의 조사 내용을 살펴본 결과 대략 이와 같은 추측은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생각보다' 철학을 인생에 필요한 학문으로 보지 않으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본 사람들도 많았다.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은 철학이 기초 학문이고, 삶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지만, 과반수를 살짝 넘는 그 수치는 예상 외였다. 한 십 년 전이라면 조사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돈이 되는, 삶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철학은 쓸모없는 학문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철학서는 십 년 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생각보다 찾는 독자들이 꽤 있다. 이것은, 지적 결핍을 충족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다. 철학의 쓸모에 대한 생각도 반반으로 나누어지고 있는 셈.
몇몇 조사 결과과 분석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먼저, 철학에 대한 생각을 묻는 조사 결과에서는, 아직도 '철학'하면 '점'을 떠올린다는 사람들이 21%이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는 어렵고 재미없다, 진리와 가치관 등 철학적 개념이 떠오른다,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자가 떠오른다, 인생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명언 등의 순서대로 답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점을 떠올린 사람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21% 정도로 다른 선택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점'을 떠올린다니. 아무래도 여기저기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학관' 때문인듯 하다.
관련 조사를 확장하여 죽음이나 존경하는 사람, 종교 등에 관한 질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서 부동의 1~3위는 박정희, 세종대왕, 이순신이 나왔다. 이건 아무리 조사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이명박, 육영수, 박근혜, 전두환, 조용기 목사를 언급한 분도 있다는 것. 그 수가 적지 않다. 이명박으로 응답한 비율 10위로, 생존자 중엔 가장 높다.
조사 결과에 대한 손동현 교수의 분석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그는 '한국인이 기억하는 철학자'라는 꼭지에서 "김동길 씨나 함석헌 씨가 철학자로 기억에 남아 있다는 건 조금 뜻밖입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다 보니 '철학'이라는 개념 이해가 불분명, 부정확해졌고 그래서 사상가 범주에 들 수 있는 사람들까지 철학자로 여기고 응답하지 않았나 봅니다."라고 하였는데, 김동길이 철학자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함석헌을 한갓 사상가 정도로 간주한다는 것은 아니지 싶다. 물론, 그는 한국 철학사를 공부할 때 다루는 철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철학으로서 주목을 받는 시점에서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물론, 이 분석 내용은 그의 주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표 철학 교수로 선정되어 조사 결과에 대해 분석하는 자리에서는 이 주관적인 생각이 객관화되기 쉽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국갤럽의 조사 내용을 그래프와 도표로 제시하고, 이를 해석하거나 주석을 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겨 철학 교수 네 명을 초청해 대담 형식으로 결과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담았다. 하지만, '대담'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네 사람 각각이 자신의 입장에서 분석을 했을 뿐, 의견을 주고받는 부분이 없다는 것. 물론, 앞서 먼저 분석한 교수의 의견에 대해 나도 동의합니다,라는 식으로 받기는 하지만, 달랑 한 번씩 이야기하고 끝낸다는 부분에서 '대담(對談)'(어떤 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음. 또는 그 이야기)이라고 할 때 기대하는 정도에는 못 미친다.
하나 더. 관심있는 철학 분야를 묻는 질문을 답변자들이 제대로 이해했을까 궁금하다. 철학의 분과 학문 이름인 인식론, 윤리학, 형이상학, 정치철학, 논리학 등을 질문지에 넣었는데 이를 따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응답자들이 해당 학문명을 듣고서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이해했다고 전제한 셈이 된다. 물론 '인식', '윤리', '정치', '논리' 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나 그림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확히 알고 대답했는지는 의문이다. 질문지의 대상은 학력도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연령대도 청년층에서 노년층까지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학문이 어떤 것을 논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답변했어야만 신뢰할 수 있다.
오자 p.165 '철학 관심 분야 - 성별' 도표. '윤리학'은 '논리학'으로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