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거짓된 인문학은 여러분에게 더 두텁고 화려한 페르소나를 약속할 것이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ㄹ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15쪽
간혹 인간이 겪는 고통의 양은 불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일시불로 갚느냐, 아니면 할부로 갚느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것은 일시불로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다. 반면 자기 최면과 위로에 빠진다는 것은 할부로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다. 할부로 고통을 겪는다면, 할부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사라진다. 일시불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고통을 겪어내자. 그러면 남은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 우리에게 덤으로 남겨질 것이다. -16쪽
정직한 인문학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더 직면할 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17쪽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25쪽
이 몸이 바로 보리수. 마음은 맑은 거울 날마다 힘써 깨끗이 닦아야 하리라! 먼지가 앉지 않도록 (신수)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며 맑은 거울에는 (거울의) 틀이 없다.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모이겠는가! (혜능)-66쪽
인문학은 주어진 현실과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꿈꾸려는 학문이다. -69쪽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인간 자신, 세계 그리고 우주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주장의 기초입니다. 관찰자의 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말과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각하고, 말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투라나, <있음에서 함으로>)-93쪽
(아렌트는)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155쪽
선물이 주어지는 조건으로서의 이런 ‘망각’은 선물을 주는 쪽에서만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는 쪽에서도 근본적인 것이다. 특히 선물을 주는 주체에게 선물은 되갚아지거나 혹은 기억에 남겨지거나, 아니면 희생의 기호, 다시 말해 상징적인 것 일반으로 남아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상징은 즉시 우리를 또 다른 상환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사실 선물은 주는 쪽에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선물로 드러나지도, 선물로 의미되지도 않아야 한다. (데리다, <주어진 시간>)-165-166쪽
소통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소통이란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지만 ‘트다’라는 뜻의 ‘소’와 연결하다라는 뜻의 ‘통’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소통이란 개념은 더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통은 구체적으로 막혔던 것을 터서 물과 같은 것이 잘 흐르도록 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이라는 개념보다 ‘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막혔던 것을 터버리지 않는다면, 물과 같은 것이 흐를 수 없다. ‘소’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운다는 것, 그러니까 장자가 말했던 ‘비움’이나 ‘잊음’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워야만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193-194쪽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매체는 우리의 자유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든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국 여가 시간의 활동마저도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251쪽
이상이란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이념이자, 동시에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겠다는 자유정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이란 급류와 맞서 싸우겠다는 결연한 각오이자 다짐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상을 잃지 않으려고 버텼던 몇몇 위대한 인물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는 정말로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고. 주체적으로 살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주인으로서 살았다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노예처럼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주체는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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