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는 대로 노자의 도덕경 Easy 고전 2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김갑수 지음, 최남진 그림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이지고전을 슬슬 하나씩 구입해다 읽고 있다. '중1부터 고1까지'라고 달아놨지만, 아마도 그 앞엔 '책을 많이 읽는' 혹은 '책을 좋아하는' 이라는 문구가 숨어있다고 봐야한다. 아무리 청소년 용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청소년에게 노자나 공자가 쉽게 다가갈리는 없기 때문이다. 안에 들어있는 내용도 한자원문도 사용하지 않고 한글로 쉽게 풀이해놨지만, 학생들에게는 암기거리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방법은 없다. 이 보다 더 쉽게, 재밌게, 통합적으로 풀어놓을 수는 없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의 각각의 소장철학자들이 맡아 작업한 이 시리즈는, '관심있는' 이들이 공자와 노자, 플라톤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무를 다했다고 봐야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성경 다음으로 많은 번역본, 해석본이 나와있는 책이다. <도덕경>은 노자가 직접 쓴 책도 아니고, 그 내용 또한 분명한 메세지를 주지 않아, 다양한 해석이 난무한다. 대개 학계에서의 해석이란 것이 비슷비슷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면 이렇고, 저렇게 해석하면 저런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이 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노자의 생애, 도덕경이 쓰여진 계기에 대해서, 또 도교와 도가학파를 살피고, <도덕경>의 내용인 무위자연, 도덕, 버리는 삶, 작음의 지향 등을 원문해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본문 중에서 노자와 도덕경을 이야기함에 있어 꼭 필요하다 싶은 부분들, 중요한 부분만 따다가 현재 우리네 삶과 연관하여 서술하는 방식은 노자와 <도덕경>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덜어주리라 본다.

  사상과 철학을 그 자체로만 놓고 읽었을 때와 현재의 나의 삶과 연관하여 읽었을 때는 분명 다르다. 전자는 심한 압박감을 가지고 학문으로서의 그것을 대하게 되며, 후자는 그저 내 삶을 뒤돌아보고 성찰하기 위한 도구로서, 방편으로서, 접할 뿐이다. 부담감은 당연히 후자가 적고, 읽고 생각을 하기에도 후자가 낫다. '통합논술' 이라는 광고문구와 함께 등장했지만, 그것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잘 만들어진 청소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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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1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요~

2007-03-10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3-1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난책님 / 아 이런 허접한 리뷰. -_- 리뷰를 위한 리뷰를 추천하시다니. 감사합니다.
속닥님 / 네. 딩동댕.

얼음장수 2007-03-1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콘서트 읽으면서 도덕경에 관심 생겼는데, 제 마음 아셨는지 관련 리뷰를 올려주시네요^^

mind0735 2007-03-10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시리즈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던걸요. 저도 하나씩 슬슬 구매하고 싶네요. ;

미미달 2007-03-1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asy 고전. 영어로 써야 알아먹지.

마늘빵 2007-03-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장수님 / 철학콘서트는 아직 안봤는데. 도덕경을 보실거라면 현암사 걸 추천해드려요.
나스카님 / 네. 저는 한 눈에 보기에도 좋아서, 또 직업상 청소년서에 관심을 갖다 보니깐 눈에 들어왔습니다. 입문하기 좋은 거 같아요.
미미달님 / 한글로 해도 다 알아먹어. -_-
 
물 흐르는 대로 노자의 도덕경 Easy 고전 2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김갑수 지음, 최남진 그림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절판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짜 도가 아니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진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제1장) -41쪽

성인은 인자하지 않고,
백성을 개허수아비로 여긴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구나.
가운데가 비어 있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많은 것들이 생겨난다. (제5장) -57쪽

노자가 말하는 진짜 성인은 도를 체득한 사람입니다. 요즘 우리가 쓰는 말로 다시 정리하면 성인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연이 착하지도 않고 만물을 사랑하지도 않는 것처럼, 성인 역시 착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일부러 착하지 않을 필요도 없으며, 백성을 가엾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59쪽

도를 잃어버린 뒤에 덕이 나타났고,
덕을 잃어버린 뒤에 인이 나타났고,
인을 잃어버린 뒤에 의가 나타났고,
의를 잃어버린 뒤에 예가 나타났다.
예라는 것은 진실성과 믿음이 거의 없고,
사회 혼란의 시작일 뿐이다. (제38장) -61쪽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딱딱하고 뻣뻣해진다.
초목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무르지만,
죽으면 깡마른 고목이 된다.
그러므로 굳세고 강한 것은 죽음의 부류에 속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생명의 부류에 속한다.
그처럼 군대가 강하면 패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인다.
강대한 것은 하급에 속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상급에 속한다. (제76장)-69쪽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것 속으로 질주해 들어간다."(제43장)라고 한 노자의 말은 누가 들어도 비상식적인 것 같지만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날 더욱 분명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노자가 살던 당시는 모든 제후국이 부국강병을 목표로 했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의 가르침은 바로 이런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세태를 비판한 것이고, 동시에 부드럽고 융통성 있으며, 포용력 있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뻣뻣한 나뭇가지가 쉽게 부러지듯이 지조와 강직함을 앞세운 태도는 많은 적을 만들 수 있고, 따라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하고 사나운 사람은 제 명에 죽지 못한다."(제42장)라고 한 것입니다. -71-72쪽

성인과 현자를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배가 될 것이다.
인과 의라는 도덕규범을 끊어버리면
백성은 다시 효도와 사랑을 회복할 것이다.
기술과 도구를 끊어버리면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문명이라는 것인데 좋은 것이 아니다. (제19장) -77쪽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욕망보다 더 고통스러운 걱정거리는 없다.
그러므로 적당히 그칠 줄 아는 데서 오는 만족스러움은
진짜로 만족할 만한 것이다. (제46장)

만족할 줄 알면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그칠 줄 알면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아서,
영원히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 (제 44장)-86쪽

공부를 하는 것은 날마다 더해 가는 것이지만,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덜어 내는 것이다.
덜어 내고 또 덜어 내다 보면 무위에까지 이르는데,
무위하면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제48장)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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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10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시절 한 때 노장에 풍덩했었지요..
지금은 "So What?" 하하


마늘빵 2007-03-2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장에도 관심이 있는데, 지금은 전 묵가에 빠졌어요. ^^
 
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절판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잃지 않는 일이다. 그 균형은 개인성과 집단성 사이의 균형이거나 회의와 수용 사이의 균형이겠지만, 더 일반적으로는 우익적 세계관과 좌익적 세계관 사이의 균형과도 무관치 않다. 인간은 불평등하게 마련이라는 생각과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 사이의 균형, 인간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과 인간은 사회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생각 사이의 균형 말이다. 그 균형은, 더 나아가, 인간은 (사회적으로든 유전적으로든) 결정될 수 밖에 없다는 차가운 인식과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지녀야 한다는 뜨거운 믿음 사이의 균형이기도 하다. 그런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비평적 거리를 유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겨진 기억 속에서] 中-58-59쪽

요컨대 [변호]의 저자는 친일파 내지는 친일 행위와 일본 식민통치를 동시에 변호하고 있다. 친일파에 대한 변호의 논거는 식민통치가 유난히 혹독했고 잔인했으므로 거기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했다는 데 있고,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변호의 논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조선 사람들의 생존에 이전보다 그리고 동시대의 다른 많은 사회보다 상당히 나은 환경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변호]의 저자의 생각에 따름녀 일본의 식민통치는 조선인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나빴지만 (정치적으로 나빴지만), 조선인의 생활 조건을 개선했다는 점에서는 좋았다(경제적으로 좋았다).
사실 친일파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변호도 없다. "그때는 저항할 처지가 아니었다구, 그만큼 일본 애들이 악독했다니까...... 그런데, 사실 저항할 필요도 없었어, 사실은 일본 애들이 좋은 일을 많이했거든."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유신 체제와 5공을 찬양하고 협력한게 잘 한 일은 아니지만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구, 그 체제가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정도로 혹독했거든... 그런데, 어찌 보면 사실 거기 저항할 필요도 없었어. 박정희, 전두환 때 우리 경제가 얼마나 나아졌는데."
그런데 이런 '균형' , 정치적 차원의 비판과 경제적 차원의 찬사 사이의 균형이 오래 가는 법은 없다. 너무도 쉽게 정치는 경제에 포섭된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中-106-107쪽

기실 [변호]의 저자도 자신의 첫 평론집 [현실과 지향](문학과 지성사, 1990)에 실린 '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라는 글에서 보수주의라는 말에 아우라를 씌우려고 애쓴 바 있다. 그가 그 글에서 인용한 새뮤얼 브리튼에 따르면, 보수주의는 시장에서 나오는 소득과 재산의 분배 상태를 수락하는 데 비해 자유주의는 강력한 재분배 조세를 추천한다. 또 보수주의는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경우에만 시장에 개입하는데 비해, 자유주의는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 사이의 차이에 대해 민감하고 시장에 훨씬 많이 개입한다. 자연히, 보수주의는 민간 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자유주의는 민간 기업에 대해 별다르게 강조하지 않는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中
-110쪽

우리가 인과율의 엄격함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그 자체로 틀린 말들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가 운명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늘 다소곳하게 긍정해야 할까?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다. 만일 조선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우리가 친일과 식민통치를 긍정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과거를 긍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로지 그 과거 때문에 자신이 있게 됐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폴란드의 절멸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미국으로 건너간 유대인 여성의 손녀는 "나는 아우슈비츠라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다. 아우슈비츠가 없었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홀로코스트와 거기 협력한 사람들에게 이해의 눈길을 보내야 할까? 킬링필드의 광란을 피해 20대 시절의 캄보디아인 아버지가 프랑스로 망명한 덕에 '존재하게 된' 프랑스 청년은 "나는 킬링필드라는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다. 킬링필드가 없었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킬링필드와 그것을 주도하거나 협력한 사람들을 이해의 눈길로 바라보아야 할까? 이것은 거의 자기 모멸의 실존이라 할 만하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中

-116-117쪽

그러나 그런 사정이, [변호]가 시도하듯, 친일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안디ㅏ. 친일에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법적 기반이 일본 제국주의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적어도 적극적 친일파는 해방된 조국에서 변두리로 물러나야 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실제의 역사는 첫 걸음부터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제 한 몸 깨끗한 체하며 친일파를 권력 기반으로 삼았던 이승만 개인의 잘못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해방 공간을 메우고 있던 힘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 힘의 관계는 민족 내부의 역학이기도 했고, 국제 정치의 역학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힘의 관계를 뒤집지 못한 채 해방 반세기를 넘겼다.
논리적으로라면, 해방 공간에서 적극적 친일파에게 남겨진 길은 둘이었다. 첫째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비판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었다. 둘째는, 비록 미국의 힘에 눌려 좌절하기는 했으나 대동아 공영권은 아시아의 궁극적 미래라는 논리를 굽히지 않은 채 일본으로 망명하거나 국내의 소수파로 남는 것이었다. 그러나 꾀 많은 그들은 둘 다를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친일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숨긴채, 이제 새로운 가치가 된 반공의 전사가 되었다. 그 꾀는 적중해 그들은 해방된 조국의 주류로 남았다.

[식민주의적 상상력] 中
-118-119쪽

보수주의는 일반적으로 변화를 피하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습속, 태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니 무슨 이유에서든 그것을 억지로 바꾸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나 태도다. 거기에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거의 예외 없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비판적 방어 심리가 깔려 있다. 보수주의적 세계관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거나 적어도 덜 나쁜 것, 견딜 만한 것이다.

[작달만한 시민들의 우람한 보수주의] 中-144쪽

그렇다고 여성과 남성 사이에 또렷한 자연적 차이,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에서 여성은 여성끼리, 남성은 남성끼리 경쟁한다. 더 나아가 그런 자연적 차이,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적 차이를 어느 정도까지는 정당화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인간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구성된 문화나 문명이라는 것은, 이제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이해하고 있듯, 자연에 거스른다는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반생물학적이라는 점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화는 자연의 지침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자연을 제어하는 것이다. 위계적 질서는 자연적 질서다. 평등적 질서는 부자연스러운 질서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평등적 질서를 열망하고, 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싸운다. 평등에 대한 열망은, 그 부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는 유력한 표지 가운데 하나다. 당위는 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지배가 실질적으로 보편적이라는 관찰이 이런 위계적 질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남성의 정치 독점이 역사적으로 보편적이었다는 관찰이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주장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문화와 문명을 건설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반생물학을 위하여] 中-17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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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2. 27 예스24

http://movie.yes24.com/movie/movie_memwr/view.aspx?s_code=SUB_MEMWR&page=1&no=14493&ref=34&m_type=1





  * 스포일러 경고 

<바람피기 좋은 날>은 바람에 관한 영화다. 한 남자와 결혼식장에서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그 순간, 혼인의 기쁨을 표현하는 키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다. 지금의 이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일부일처제는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한 남자와 한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사회적 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남자든 여자든 사람에게 어떻게 단 한명의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것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본성상 그럴수도 없을 것이고, 그것이 법적 도덕적 강요가 되면서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깨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강요는 반드시 일탈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강요하는 내용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책이다.  

 집에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하고,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생각하는 이 여자. 인터넷 챗팅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집으로 불러내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쉽게 수다 떨 수 있는 이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바람을 목적으로 그런건 아니고 대학 초창기에 PC통신을 통해 챗팅하는 것이 낙이었던 때가 있었고, 실제로 몇몇 사람들과 만나게 되기도 했지만, 인터넷 채팅방 속의 그녀는 밖으로 연결되지 않기 마련이다. 외모도, 이미지도, 분위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팅은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중독성이 강했다.  

 명랑무쌍 대담녀 '이슬'과 아무것도 모르는 개념없는 대딩남 '대학생' 한 커플, 남편 잘 챙기고 전형적인 주부로서 손색이 없는 '작은새'와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증권맨 '여우두마리' 한 커플. 그들은 그렇게 채팅방에서 만나 각기 오프모임을 갖는다. 심심하고 외로운 두 남녀가 채팅방에서 만나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미지를 머리속에 가득 심어놓고 현실에서 실제로 만나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은 너무나 설레인다. 게다가 기대 밖의 훈남과 섹시녀가 나온다면 더더욱.



* 신기한듯한 표정으로 노골적으로 대학생을 훑어보는 이슬. 나이차는 좀 나지만 쭉쭉빵빵한 섹시 아줌마가 나와서 기분좋은 대학생. "야 지퍼내려볼래?" "지금요....?" "응" 이쯤 되면 선수다.  

 

- 이슬과 대학생

테이블 양쪽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이슬과 대학생. 더 생각할 거 뭐있어. 대학생의 머리 속엔 오직 그녀와 하고싶단 생각 뿐. 이슬 또한 다르지 않다. 노골적으로 니거 크냐, 잘하냐, 에이 잘못할거 같은데, 핀잔을 주지만, 안다. 벌써 데리고 놀고 있다. 주도권은 이슬에게 넘어갔고, 오로지 대학생은 그녀의 허락만을 기다린다. 볼 거 뭐 있냐, 일단 벗기고 보는거지. 교외 한적한 러브호텔로 데려가 본격적으로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아니 탐닉하기 시작한다. 간지럽히고 서로의 성감대를 찾고 이불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는 모른다. 침대 위의 두 남녀는 어느새 땅바닥에 누워있고, 카메라로 보이는건 오로지 그녀의 다리 한짝과 대학생의 상반신.  



* "얘기 좀 해줘요" "응 내가 여자팬티 속으로 ... " "아니 그런거 말고. 줄거리 있는거" "응. 저기말이야. 지하철을 탔어. 내 앞에 있던 여자가 치마가 짧았는데... " "좀 더 재밌는걸로" "응 알았어.... 그러니까... " 이 여자 참 어렵다. 섹스 한번 하기 힘들다. 무슨 요구사항이 이리도 많은건지.



- 작은새와 여우두마리 

    처음이라 어색하다던 작은새를 위해 여우두마리는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했다. 모텔로 데려갔더니 안하겠다지, 답답하고 미치겠는데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한번 해보려는데 말을 안듣네. 내숭이야 진심이야. 콘돔이 없어서 싫단다. 그래서 콘돔을 사왔다. 그런데 이제는 술을 한잔 해야겠단다. 술을 사왔다. 술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또 사왔다. 그리고 침대에 눕혔는데 마음이 안따라준단다. 와 정말 모텔방까지 들어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답답허다. 그런 그녀가. 돗자리 가지고 야외로 나가 깔아놓고 나보고 누우랜다. 노팬티로 나온 이 여자는 이제 여기서 내 위에 올라타겠다고. 어떡하면 좋냐. 서서히 이 여자가 부담스러워진다.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 
 



 * "야 너 어디야" "뭐 이 00놈아. 니가 어딘지 알면 나 잡을 거 같아? 못잡아 너는." 바람피고 이렇게 당당한 여자가 어딨을까 싶다. 빽빽 소리지르고 약올리고 울고불고 난리치고 다시 바람피우고. 아주 고단수다.


- 바람의 조건

  바람의 첫번째 조건, 사랑하지 말 것. 바람이 사랑이 되는 순간, 더 이상 바람으로서 의미를 사라진다. 사랑하지 말지어다. 그러나 어디 내 마음이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더냐. 그저 한순간 억압된 결혼생활로부터, 너무나 지루하고 평범한 결혼생활로부터 일탈하고 싶었을 뿐인데, 한 순간의 일탈은 영원한 일탈이 되었다. 침대 위에서 사랑한단 말은 서로에게 오르가즘을 선사하기 위한 최상의 섹스를 위한 도구로서가 아닌, 진심이 담긴 말이 되어버렸고, 한쪽의 도구로서의 말과 한쪽의 진심어린 말은 관계의 어긋남을 예고한다.  

  이슬은 남편에게 들통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빽빽 소리지르며 산을 타고 도망다니고, 엄마와 오빠가 대동한 친구 집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잘못했다고 사랑한다고 남편을 껴안음으로써 잠시 멈춘다. 이 여자 정말 전략적이다. 진심이 아니란 걸 아는 남편은 이후에도 미행을 시키고, 그녀는 남편이 진정된 사이 007작전을 펼치며 어린 대학생을 차에 때우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참 재밌겠다. 짜릿하다. 어쩌면 그녀는 이걸 즐기는지도. 인생이 이렇게 재밌어야 살만하지 않은가. 대학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쫓고 쫓기는게 좋아서 바람피는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즐긴다. 그러나 작은새는 결국 여우두마리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그를 향해, 어떻게 하면 그녀와 한번 더 해볼까 돌진하는 그를 향해 목발이 부러지도록 쥐어 패주고 나오며 눈물 훔친다. 바람의 마지막과 사랑의 마지막은 이렇게 다르다.

- 바람의 결말  

   대개의 바람은 좋지 않은 결론을 맺는다. 일부일처제에 동의하지 않고, 나의 정념을 어찌할 수 없는 이라면, 애초 둘이 아닌 홀로를 택해야 할 것이고, 역시 홀로인 이와 만나 서로를 즐기면 그만이다. 즐기다 사랑하면 동거하라. 결혼하지 말고. 동거하다 틀어지면 헤어지라.  서로를 붙들지말고. 상대의 진심을 믿고 결혼한 나의 배우자에 대한 예가 아니다. 한쪽의 진심과 한쪽의 거짓은 필경 두 사람 모두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바람은, 그것이 바람이기 때문에, 평온하고 따분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쾌락을 안겨주는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내가 누군가에게 얽매여있다는 사실은 짜릿함을 선사해주는 필수요소다.

  바람핀 자는 자신의 배우자를 여전히 사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라. 당신이 사랑하는 배우자가 당신의 쾌락으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음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음을. 들키지 않고 바람핀다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들키게 되어있다. 그것이 바람의 마지막 법칙이다. 바람피기 좋은 날. 당신의 바람지수를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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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0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영화 디비디로 봐야겠어요. 재미있겠어요.
님의 영화평론글들이 모두 재미있고 감칠맛 나요!!
 
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30년판이 나온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맨처음 <이기적 유전자>를 접한건 아마도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1992년에 두산동아에서 첫판이 나왔는데, 셈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중학교 1학년 때인듯 하다. 중학교 때는 이 책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 때 읽고 기억하고 있는건 맨처음 어떤 수프 속에서 생명이 탄생했다는 것 뿐이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흘렀고, 30년 기념판을 접했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은 처음과 변함이 없고, 그동안 개정판이 몇 차례 나온 것은, 오직 자신의 주장을 좀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손보고, 더 많은 예들을 집어넣었을 뿐이라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런 말을 한다는건 둘 중 하나다. 자신의 이론이 정말 진리라고 믿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이 진리이거나. 그런데.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서, 심지어는 그와 비슷한 진영에 있는 학자들까지 그의 이론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후자는 아닌 듯 하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던 당시 기독교계의 무수한 비판을 받은 것과 비교하여, 자신의 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 온갖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다고 말한건 그가, 아마도 다윈의 후예임을 자처함과 동시에, 다윈과 동급으로 취급되고픈 마음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이론에 대한 자신감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외부로부터의 귀를 닫아놨을 때는 이건 고집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도킨스는 나름 외부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는 것을 보면,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의 생물학적 주장에서 벗어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비판은 어느 정도 도킨스에게 향할 것은 아닌 듯 하다. 생물학 내에서의 이론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의 영향력은 엄밀히 구분해야하므로 도킨스에게 죄를 부과하는 것은 100% 온당해보이진 않는다.

  유전자는 '자기복제자' 의미로서의 단위이고, 개체는 '운반자'의미로서의 단위이다. 즉 우리의 몸은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 매개체가 되는 것이고, 행위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의 진화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이다.

  도킨스는 일단 이 책의 1장을 통해서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 안에 진화와 다위니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그룹 선택설이라는 소제목을 두고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도킨스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1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기적 유전자'라 할 때 유전자가 이기적이다라는 의미는, 일종의 비유로서 봐야지, 유전자에게 어떤 이타성이나 이기성이 잠재되어있다고 봐서는 안된다. 또한 그가 말하는 이기주의의 개념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이런 것들이 1장에 들어있다.

  이어서 그는 인간의 존재, 행위, 노화, 돌연변이 등 인간의 외양의 변화와 행동양식을 통해 유전자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은 매우 두껍고, 많은 부분이 인간의 모든 양식에 대해서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드러내는가에 대해 말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부분에 대해서 유전자의 영향력을 언급해야만 외부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을 구해야만 유전자를 보호할 수 있고 널리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과 어떤 관계냐에 따라서 이는 다르게 표출된다. 세포는 유전자의 화학공장이며, 유전자는 일종의 뉴런이다.

 도킨스는 유전자 gene에 이어 문화 meme의 개념을 창조하며, 이를 일종의 유전자의 '길게 뻗어나간 팔'정도로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문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문화를 문화라 칭할 때의 그것과 도킨스의 그것은 엄밀히 다르다. 도킨스의 그것은 유전자의 변형된 형태로서 봐야한다. 그리고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리 두거킨의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를 참조하기 바란다)

  애낳기와 애키우기에 있어서, 인구문제에 있어서, 가족계획에 있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유전자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 모든 것이 이 책안에 들어있다. 그것을 믿고 안믿고는 독자 개인의 판단에 달려있으며, 단지 도킨스의 말만을 듣고 결론내리지 말고, 그의 비판자들의 목소리 또한 들어보고 결론을 내렸으면 한다. 도킨스의 이론과 주장은 나름 신선했고 충격적이었지만, 진실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기에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이론이 생물학계를 넘어서 인간사회에 끼칠 영향력은 대단하고 무섭다. 흔히 유전자 결정론, 사회생물학 이라하는 것이 그것이며, 지금 내가 처한 모든 상황들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것이란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만으로는 부족하고, 관련된 다른 책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최근 이상원 교수가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라 하여, 이기적 유전자론을 요약/정리하고, 비판점을 다룬 책이 나왔다. 매우 쉽게 씌여졌고 얇으므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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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0735 2007-03-1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 처음 접하셨다니 조숙하셨네요. 전 사회에 나와서 알았습니다. ㅠ.ㅠ
얼른 읽어봐야할텐데...

마늘빵 2007-03-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모르고 구입한거죠. 그냥. 아마도 추천도서목록 보고 사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몇장 못봤었어요.

hillbilly 2007-04-2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내용 잘 읽었습니다. 내용 중 '이기적 유전자와 사회생물학' 의 지은이는 김상원 교수가 아니고 이상원 교수인 것 같습니다.


마늘빵 2007-04-2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제가 큰 실수를 했군요. -_- 저자의 성을 바꿔버리다니.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