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27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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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경고 

<바람피기 좋은 날>은 바람에 관한 영화다. 한 남자와 결혼식장에서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그 순간, 혼인의 기쁨을 표현하는 키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다. 지금의 이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일부일처제는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한 남자와 한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사회적 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남자든 여자든 사람에게 어떻게 단 한명의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것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본성상 그럴수도 없을 것이고, 그것이 법적 도덕적 강요가 되면서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깨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강요는 반드시 일탈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강요하는 내용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책이다.  

 집에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하고,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생각하는 이 여자. 인터넷 챗팅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집으로 불러내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쉽게 수다 떨 수 있는 이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바람을 목적으로 그런건 아니고 대학 초창기에 PC통신을 통해 챗팅하는 것이 낙이었던 때가 있었고, 실제로 몇몇 사람들과 만나게 되기도 했지만, 인터넷 채팅방 속의 그녀는 밖으로 연결되지 않기 마련이다. 외모도, 이미지도, 분위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팅은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중독성이 강했다.  

 명랑무쌍 대담녀 '이슬'과 아무것도 모르는 개념없는 대딩남 '대학생' 한 커플, 남편 잘 챙기고 전형적인 주부로서 손색이 없는 '작은새'와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증권맨 '여우두마리' 한 커플. 그들은 그렇게 채팅방에서 만나 각기 오프모임을 갖는다. 심심하고 외로운 두 남녀가 채팅방에서 만나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미지를 머리속에 가득 심어놓고 현실에서 실제로 만나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은 너무나 설레인다. 게다가 기대 밖의 훈남과 섹시녀가 나온다면 더더욱.



* 신기한듯한 표정으로 노골적으로 대학생을 훑어보는 이슬. 나이차는 좀 나지만 쭉쭉빵빵한 섹시 아줌마가 나와서 기분좋은 대학생. "야 지퍼내려볼래?" "지금요....?" "응" 이쯤 되면 선수다.  

 

- 이슬과 대학생

테이블 양쪽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이슬과 대학생. 더 생각할 거 뭐있어. 대학생의 머리 속엔 오직 그녀와 하고싶단 생각 뿐. 이슬 또한 다르지 않다. 노골적으로 니거 크냐, 잘하냐, 에이 잘못할거 같은데, 핀잔을 주지만, 안다. 벌써 데리고 놀고 있다. 주도권은 이슬에게 넘어갔고, 오로지 대학생은 그녀의 허락만을 기다린다. 볼 거 뭐 있냐, 일단 벗기고 보는거지. 교외 한적한 러브호텔로 데려가 본격적으로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아니 탐닉하기 시작한다. 간지럽히고 서로의 성감대를 찾고 이불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는 모른다. 침대 위의 두 남녀는 어느새 땅바닥에 누워있고, 카메라로 보이는건 오로지 그녀의 다리 한짝과 대학생의 상반신.  



* "얘기 좀 해줘요" "응 내가 여자팬티 속으로 ... " "아니 그런거 말고. 줄거리 있는거" "응. 저기말이야. 지하철을 탔어. 내 앞에 있던 여자가 치마가 짧았는데... " "좀 더 재밌는걸로" "응 알았어.... 그러니까... " 이 여자 참 어렵다. 섹스 한번 하기 힘들다. 무슨 요구사항이 이리도 많은건지.



- 작은새와 여우두마리 

    처음이라 어색하다던 작은새를 위해 여우두마리는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했다. 모텔로 데려갔더니 안하겠다지, 답답하고 미치겠는데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한번 해보려는데 말을 안듣네. 내숭이야 진심이야. 콘돔이 없어서 싫단다. 그래서 콘돔을 사왔다. 그런데 이제는 술을 한잔 해야겠단다. 술을 사왔다. 술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또 사왔다. 그리고 침대에 눕혔는데 마음이 안따라준단다. 와 정말 모텔방까지 들어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답답허다. 그런 그녀가. 돗자리 가지고 야외로 나가 깔아놓고 나보고 누우랜다. 노팬티로 나온 이 여자는 이제 여기서 내 위에 올라타겠다고. 어떡하면 좋냐. 서서히 이 여자가 부담스러워진다.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 
 



 * "야 너 어디야" "뭐 이 00놈아. 니가 어딘지 알면 나 잡을 거 같아? 못잡아 너는." 바람피고 이렇게 당당한 여자가 어딨을까 싶다. 빽빽 소리지르고 약올리고 울고불고 난리치고 다시 바람피우고. 아주 고단수다.


- 바람의 조건

  바람의 첫번째 조건, 사랑하지 말 것. 바람이 사랑이 되는 순간, 더 이상 바람으로서 의미를 사라진다. 사랑하지 말지어다. 그러나 어디 내 마음이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더냐. 그저 한순간 억압된 결혼생활로부터, 너무나 지루하고 평범한 결혼생활로부터 일탈하고 싶었을 뿐인데, 한 순간의 일탈은 영원한 일탈이 되었다. 침대 위에서 사랑한단 말은 서로에게 오르가즘을 선사하기 위한 최상의 섹스를 위한 도구로서가 아닌, 진심이 담긴 말이 되어버렸고, 한쪽의 도구로서의 말과 한쪽의 진심어린 말은 관계의 어긋남을 예고한다.  

  이슬은 남편에게 들통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빽빽 소리지르며 산을 타고 도망다니고, 엄마와 오빠가 대동한 친구 집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잘못했다고 사랑한다고 남편을 껴안음으로써 잠시 멈춘다. 이 여자 정말 전략적이다. 진심이 아니란 걸 아는 남편은 이후에도 미행을 시키고, 그녀는 남편이 진정된 사이 007작전을 펼치며 어린 대학생을 차에 때우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참 재밌겠다. 짜릿하다. 어쩌면 그녀는 이걸 즐기는지도. 인생이 이렇게 재밌어야 살만하지 않은가. 대학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쫓고 쫓기는게 좋아서 바람피는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즐긴다. 그러나 작은새는 결국 여우두마리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그를 향해, 어떻게 하면 그녀와 한번 더 해볼까 돌진하는 그를 향해 목발이 부러지도록 쥐어 패주고 나오며 눈물 훔친다. 바람의 마지막과 사랑의 마지막은 이렇게 다르다.

- 바람의 결말  

   대개의 바람은 좋지 않은 결론을 맺는다. 일부일처제에 동의하지 않고, 나의 정념을 어찌할 수 없는 이라면, 애초 둘이 아닌 홀로를 택해야 할 것이고, 역시 홀로인 이와 만나 서로를 즐기면 그만이다. 즐기다 사랑하면 동거하라. 결혼하지 말고. 동거하다 틀어지면 헤어지라.  서로를 붙들지말고. 상대의 진심을 믿고 결혼한 나의 배우자에 대한 예가 아니다. 한쪽의 진심과 한쪽의 거짓은 필경 두 사람 모두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바람은, 그것이 바람이기 때문에, 평온하고 따분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쾌락을 안겨주는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내가 누군가에게 얽매여있다는 사실은 짜릿함을 선사해주는 필수요소다.

  바람핀 자는 자신의 배우자를 여전히 사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라. 당신이 사랑하는 배우자가 당신의 쾌락으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음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음을. 들키지 않고 바람핀다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들키게 되어있다. 그것이 바람의 마지막 법칙이다. 바람피기 좋은 날. 당신의 바람지수를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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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0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영화 디비디로 봐야겠어요. 재미있겠어요.
님의 영화평론글들이 모두 재미있고 감칠맛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