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15인 시공초월 맞장 인터뷰
김중현 지음 / 서해문집 / 2008년 9월
장바구니담기


혁명가 자기 스스로가 적일 때 혁명적 미래는 가장 밝다(체 게바라)-169쪽

행복한 혁명가

쿠바를 떠날 때
누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내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들이 많다.
그래서
난 더욱 행복한 혁명가"라고... -169-17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問 라이브러리 5
강수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품절


(국제노동기구는) 노동자 10명 중 1명꼴로 업무에서 비롯된 우울증, 정서불안, 스트레스 내지 신경쇠약 등 각종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한국에서는 직장인의 70퍼센트가 스트레스성 정신신체 증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50퍼센트가 직장에서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3분의 2가 이직을 고려한 바 있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직장생활이 삶의 스트레스를 높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정작 이들은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가짐에도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느낌을 ‘그냥 옆에 제쳐두고’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갈 뿐이다. 이것이 일중독의 심각성이다. -19-20쪽

"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에 묻혀 바삐 지내는 것은 실제 그 일이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바쁠 필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A.W.셰프)

"우리는 스스로 자기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가, 거기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A.W.셰프)-21쪽

‘팔꿈치사회’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마라톤경주와 차원이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마라톤에서는 설사 번번이 일등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생존 자체가 위협에 처하는 것은 아닌데 비해, 자본주의 상품경쟁에서는 남보다 계속 뒤처지게 될 때 생존 자체가 큰 위협을 받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시대에 와서는 생존경쟁이 범지구적 범위에서 치열해지기에 심지어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팔꿈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지에 대한 동정은커녕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냉혹해야만 하는 ‘경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6-37쪽

생존에 대한 두려움, 강자와의 동일시, 경쟁의 내면화가 초래하는 자기소외나 자기고립을 적극 넘어 ‘관계적 존재’로 다시 서려는 것이 소통이며, 문제상황의 정면 돌파를 위해 힘을 합쳐 해결의 주체로 ‘함께 ,당당히’ 나서는 것이 연대다. (중략)

"만약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면 그냥 돌아가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뿌리가 같다고 보고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사파티스타 농민군 여성의 말) -47-48쪽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모든 기업들은 서로 일등을 하기 위해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부단히 경쟁적으로 추출한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일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등과 꼴찌의 차이가 있다면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엑기스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누가 좀더 많이 가져 가고 누가 좀더 덜 갖고 가는가 하는 차이일 뿐이다. 심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파산하고 소멸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인하여 서로 살벌하게 경쟁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전략이라 믿고 따르는 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자로 행위하고 또 그러한 경쟁을 당연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배적 시스템에 ‘모두’ 지배당하게 되는 근본원리다. 결국 경쟁은 지배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만이 살 길’이라며 사람과 자연을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것, 그러면서도 소수의 기득권층은 사치와 향락에 젖어 세상이 얼마나 병들어 가는지 눈치 채지도 못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기업체제의 근원적 무책임성이 아니고 무엇인가. -79-80쪽

미국 주도의 군사력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제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에마뉘엘 토드는 "문제의 근원은 미국이 강해서가 아니라 너무 약해서"라고 말한다. 즉 세계적 무력행사 뒤에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경제 의존이라는 취약함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의 무역적자는 1990년에 천억 달러였는데 2000년엔 4천 5백 억 달러, 2005년에 5천억 달러 이상으로 급증했다. 대량소비 위주의 낭비적 생활 양식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를 시장화, 세계를 공장화한 결과가 대형적자로 나타나고 또다시 이를 모면하기 위해 더욱 강제적으로 시장자유화를 추진하려 하니, 역설적이게도 세계의 파국과 제국의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다. -140-141쪽

일리치 선생에 따르면 평화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 하나는 가진 자, 위로부터의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기층민중, 아래로부터의 정의다. 전자는 ‘평화의 유지’를 강조한다. 즉 온 세상이 자기들 뜻대로 굴러가는 것, 아무도 기존질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잘 따르는 상태, 바로 이것이 위로부터의 평화 개념이다. 후자는 ‘평화로이 내버려두어져 있기’를 평화로 보는 것이다. 즉, 세상 살림살이를 민중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그대로 제발 그냥 놔두라는 것이다. 풀뿌리 민중에 의한 삶의 자율성, 바로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평화다. -154-155쪽

"나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한 인간이 된다." (일리치)-15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구판절판


희소성이라는 상황은 "욕망은 무한하고 달성하고픈 목적은 끝이 없는데 수단이 부족할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욕망이 무한하지도 않고 달성하고픈 목적이 많지도 않은 사람들, 자우림의 노래 가사처럼 "하고픈 일도 없고 되고픈 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도 희소성 공리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일까. 배를 곯으면서 낮잠을 즐기는 이들의 사회가 하나의 극단이라면 인간의 운명은 희소성과의 투쟁이라고 선언한 뒤 불철주야 경제 행위에 매진하다가 일 중독증이나 과로사에 봉착하고 마는 근대적 인간형도 또 하나의 극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경제는 희소성에서의 선택이라는 정의의 보편 타당성은 심대하게 타격을 입게 된다.-26쪽

희소성이란 경제나 재화와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주로 권력과 관련이 있다. ‘무한한 욕망’과 더불어 희소성을 낳는 또 하나의 축인 ‘한정된 수단’이라는 것도 의심스럽다.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재화는, 햇빛이나 엄마의 사랑처럼 공짜로 얻을 수 있어 비용 문제가 생기지 않는 자유재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비용을 치러야 하는 희소재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몇십 년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전화는 상당히 희소한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전화를 개인 생필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유재까지는 아니지만 구입을 위해 치르는 비용 또한 상당히 줄어들었다. 반대로 어떤 일들이 만약 자유재였던 지하수나 공기를 독점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가게에서 물이나 공기를 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재화 자체에서 희소성이란, 주로 어떤 것을 희소한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그 사회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결정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지 그 수단의 본질 자체에서 비롯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28쪽

획득의 기술이 가정생활에 종속되는 하위 기술이라면 물자를 조달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마취사가 안전하고 성공적인 수술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망각한 채 제 흥에 겨워 "마취술의 한계에 도전한다"면서 극단을 달리면 그야말로 큰일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획득의 기술도 가정의 행복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무시한 채 "돈벌이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굴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두 기술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더 많은 부의 획득"을 목적으로 가정생활을 관리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사라지고 가정인지 공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혹사당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경제 행위에서의 목적 합리성이 독립되어 따로 노는 것을 피하고 철저하게 가치 합리성의 차원에 복무하도록 묶어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95쪽

"인생은 포이에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이다."(아리스토텔레스)-112쪽

자연적인 생활과는 동떨어진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획득의 기술이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과정은 이미 보았다. 만약 행복한 삶의 내용을 구성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목적으로 삼던 수많은 종류의 프락시스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획득의 기술의 하위 기술이 돼버린다면 이윤이라는 결과를 낳기 위한 포이에시스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또 기존의 포이에시스에 해당하는 활동들도 일단 이윤을 목적으로 획득의 기술의 하위 기술로 전락하게 되면 원래 목적했던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113쪽

"국가란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도덕적 내면이나 일상생활의 영역에 참견하는 도덕적, 윤리적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생겨난 연합에 불과하다."(존 로크)-129쪽

오로지 가장 강하고 효율적인 자들만이 살아남고 대다수의 무능한 자들은 굶어죽거나 지배당하도록 자유방임이 보장되어야 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그러한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사회적 다윈주의)은 공공 교육에 반대하고 아동의 노동금지 법안이나 근로 환경 개선 법안 등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138쪽

그(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통용되던 경제학 이론(편의상 고전파라고 부를 수 있다)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에 대한 욕망, 즉 소비에 대한 욕망만을 가질 뿐이며 화폐는 단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한 교환의 매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폐 자체에 대한 욕망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돈이 생기면 무조건 써버리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 소비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희생일뿐인 저축을 장려하려면 어떤 보답이 따라야 한다. 그 보답으로 주어지는 것이 이자이며, 이자율은 궁극적으로는 실물 생산에서의 생산성과 이윤율에 의해서 결정된다. -158쪽

케인스는 기본적으로 권력욕이나 성욕과 같이 독립적인 욕망의 한 종류로서 ‘돈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한 동기로만 돈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돈 그 자체를 소유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파와 달리 저축이라는 행위는 순수한 희생이기는커녕 그 자체로서 즐거운 놀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케인스가 자본주의의 역동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심리 현상이라고 보았던 유동성 선호 현상이다. 따라서 이자라는 것의 의미도 돈을 모아놓는 것에 맛을 들인 수전노들로 하여금 돈을 풀어 투자로 이끌기 위해 지급되는 유동성에 대한 일종의 웃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자율은 화폐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결정될 뿐 아니라 고전파와는 반대로 오히려 이것이 자본의 한계 효율과의 비교를 통해 실물 생산의 투자에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이자율을 적당히 낮춰가면서 화폐 보유자들의 유동성 선호를 조절하여 장기적으로는 이 금리생활자들을 ‘안락사’시켜버리는 일이다. -158-159쪽

여기서부터 각주

27) 여기서 교역trade와 시장market은 구별해야 한다. 인간 또는 인간 집단 간 물품의 이동을 전부 교역이라고 한다면, 교역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의 교역이 항상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흥정에 의해 자유롭게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고려와 원나라의 교역처럼 조공 형태를 띨 수도 있고, 또 산간 오지의 미개인들처럼 원정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또 요즘 우리가 결혼할 때 겪게 되는 혼수, 예단과 같은 선물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그런데 일부 현대 경제학자들은 교역과 시장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적, 인류학적 지식의 결여에서 온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웨이틀리 주교는 인간 사이의 모든 물물 이동을 시장 교환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을 아예 교환학이라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동서고금의 모든 인간 사회에는 (교역이 아니라) 시장이 존재해왔다"는 혼동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용어상의 혼동만 피한다면 시장 없이도 사회의 발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171쪽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약탈을 자연적인 생계 활동으로 보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인간이 먹이를 얻기 위해 동물들과 싸우는 수렵의 기술은 자연적이다. 그렇다면 "수렵은 단지 동물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타인들에게 지배당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그 자연의 뜻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전쟁은 자연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윤을 남기는 상업을 비자연적인 것이며 일종의 도둑질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도둑질도 용감하게 창칼을 휘두르며 하면 자연적인 것이지만 치사하고 쩨쩨하게 판매자, 구매자를 등치는 식으로 하면 비자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상업은 그야말로 "강도질만도 못한 도둑질"이 되는 셈이다. -1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32-33쪽

"기억이 존재하는 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73쪽

정민과 잠을 자고 난 뒤로 나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알고 봤더니 이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서로 몸을 비벼대며 한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온기가 필요한지 깨닫게 된 것뿐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다음부터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마녀의 오랜 저주에서 풀려난 것처럼 저마다 자신만의 입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길거리에 버려진 귤껍질이 방금까지 그 귤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혼난 마음을 달랜 아이의 하루를 얘기했고, 공중전화부스에 펼쳐진 전화번호부는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혹시 오래 전에 서울로 떠난 여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번호부를 펼쳐본 주부의 사연을 들려줬다. -88-89쪽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나의 결론은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으리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오직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닿는 입술의, 그 손길의, 살갗의, 그 몸의 움직임뿐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94쪽

"반석 위에 집을 지어라. 그 반석이란 네가 스스로 말살시킨 고유의 천성이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아내의 사랑에 대한 꿈이며, 네가 열여섯 살 때 가졌던 인생에 대한 꿈이다. 너의 환상들을 약간의 진실과 바꾸어라. 너의 정치인과 외교관들을 짐을 꾸려 떠나보내라. 이웃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올바르게 생각하고 주의를 부드럽게 환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123쪽

한국을 떠나오던 날, 공항에서 정민을 껴안은 채 오랫동안 서 있었던 것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정민은 토요일 저녁이면 외로울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도 토요일 저녁이면 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은 히말라야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도 히말라야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민은 겨울이 오면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나도 겨울이 오면 정민과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민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나는 모두 진짜라고 말했다. 안고 있던 팔을 떼고 바라보니 정민의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정민은 내 뺨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170-171쪽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지. 침묵을 이겨내기 위해 태어났지만, 결국 또다른 침묵으로 끝날 뿐이니까. 삶이 그런 것처럼."-227쪽

"자유란 관념이 아니라 욕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인간의 욕망보다 강한 권력은 이 세상에 없는 모양입니다."-236쪽

"폭력에 관한 한 제비뽑기를 하는 사회인 거죠."-329쪽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378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08-10-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4쪽 저말. ㅎㅎ 정말 외우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요.

마늘빵 2008-10-03 00:36   좋아요 0 | URL
저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은게 1년반에서 2년은 된거 같은데, 다시 소설을 읽고픈 욕구가 막 솟구쳐요. 이 책으로 인해서. :) 김연수 처음 접했는데 다른 책도 읽고파지네요.

웽스북스 2008-10-03 01:00   좋아요 0 | URL
어머 정말 1년반에서 2년이요? 어휴
저는 소설책 안읽고 인문학책만 계속 읽으면 막 마음이 닭가슴살처럼 퍽퍽해지는 기분이어서 ㅋㅋㅋ (아, 제가 닭가슴살은 좀 좋아합니다만 ㅋㅋ) 김연수의 친한 친구인 김중혁 책도 읽어보세요 ㅎㅎㅎ

마늘빵 2008-10-03 09:02   좋아요 0 | URL
^^ 소설을 안 읽은지 꽤나 오래되었죠. 아무래도 저는 한 주제에 꽂히거나 한 분야에 꽂히면 계속 그거만 파는지라. 소설에 빠지면 또 소설만 읽게 될지도. -_-

하늘바람 2008-10-03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넘 읽고프네요

마늘빵 2008-10-03 09:05   좋아요 0 | URL
^^ 오랫만에 집어든 소설이었는데 좋았습니다.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1
이성숙 지음 / 책세상 / 2002년 4월
구판절판


상업적인 섹스는 인간의 감성적인 욕구와 물질적인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킨다는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는 곧 남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매매춘" 형태가 될 것이며, 나아가 강요된 여성의 삶의 한 형태인 매춘 여성의 삶의 질 또한 향상될 것이다. -22쪽

도덕적, 종교적 페미니즘은 매매춘에 대한 남성 위주의 도덕과 윤리 중심주의 견해에 머물고 있다. 윤리 중심주의의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매춘 여성들은 구석으로 내몰린다. 도덕적 페미니즘 정책이 매춘 여성이라는 '인간'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를 위한 정책이 된 것은 페미니스트 지식인들이 '사려 깊은 척하거나 점잖은 척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1쪽

만약 두 성인남녀가 성적 행위를 위해 경제적 거래에 합의하고, 그들의 행위가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하거나 부도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따라서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다시 한 번 의심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35쪽

자본주의는 여성들로 하여금 성적인 서비스를 파는 매춘 여성이 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파는 임금 노동자가 되도록 몰아넣기도 한다. 매춘 여성과 임금 노동자 둘 다 비인격적인 사회 제도의 희생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 각각의 활동에 관해 도덕성을 부여하는 합리적인 가설이 존재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매춘 여성들을 자본주의에서의 착취가 집약적으로 드러난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매춘 여성의 상황을 또는 임금 노동자의 비천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는 계급에 의해 착취당하지만 매춘 여성은 성과 계급에 의해 이중으로 착취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춘 여성은 임금 노동자보다 더 심각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희생자인 것이다. -57쪽

남성 고객이 매춘 여성을 성적 만족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매춘 여성들 역시 남성 고객을 그녀의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매매춘에 관련된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85쪽

물론 페미니스트 정치 이론가들은 결혼 제도를 반대하고 있지만, 매매춘 제도에 대한 비난만큼 강도가 높지는 않다. 다만 결혼 제도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도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늘 강요된 직업과 삶을 살고 있다. 정치 이론가들은 규정된 아내 역할과 성 서비스의 제공자가 될 가능성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고용 기회의 확대와 평등 임금을 위한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여성도 아내(부엌데기 남편)를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남녀 평등 사회가 실현된다면, 매춘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여성의 수는 줄어들고 아마 매춘 남성의 수가 증가할 것이다. -94쪽

다소 비약하는 측면도 있지만, 섹스는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획득할 수 없다면 구매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영양분이다. 사먹는 음식이 그렇게 항상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96쪽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받고 성적인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규정할 수 있는가?-104쪽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위해 음식물을 판매하는 것은 건전한 일로 인식되어왔으나 감성적인 느낌을 판매하는 것은 더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차이는 문화적, 종교적, 성적 금기의 사회적 영향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나체는 공격이며, 성기는 방어적이고, 여성의 생리는 더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은, 인간의 성을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것이라고 규정하고 싶어하는 신경 과민증 환자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금기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금기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간호사가 신체 장애자들의 목욕을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춘 여성을 남성의 자위 행위 또는 수음을 도와주는 도우미쯤으로 여길 것이다. 간호원의 역할은 환자들의 보건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며, 매춘 여성의 역할은 손님들의 감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105-106쪽

매매춘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강제의 형태가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매춘 여성 역시 매춘을 하나의 승인된 직업으로 간주해야 하고, 매춘이라는 직업을 자율적으로 선택한 성인 여성이어야 한다. 달리 말해 건전한 매매춘이란 강제적이지 않고 자발적인 매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전한 매매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것을 합법화해야 한다. 매춘 여성이 법률 위반죄로 고발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인 불행을 감소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건전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제공받아야 한다. -132쪽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rch 2008-10-0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점이 당혹스러운가요?

마늘빵 2008-10-01 21:44   좋아요 0 | URL
흐음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데, 나름 페미니즘 운동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듯 하면서도, 그 연결고리들이나 논리를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성매매는 정당하고, 여성들이 남성의 성을 구매할 수 있는 것도 더 쉬워져야한다는 식으로 흘러요. 책을 읽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깐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성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해서 신체를 도구로 이용해 사고 팔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니깐 결국은 유럽이나 미국식 성매매 방식으로 가자는건지. 아예 합법화시켜서.

2008-10-02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2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4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5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5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5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2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2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