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조금 비싼 녹음기를 하나 샀는데, 이걸 아직 제대로 써먹지를 못했다. 이번에 김상봉 선생님 강연에 가서도 손으로 필기도 했고, 귀로도 열심히 들었지만, 그 울림을 남기고 싶어서, 녹음기를 가져갔다. 한번은 녹음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고, 한번은 녹음기가 방전된 상태였고, 한번은 야근하느라 못갔고, 한번은 녹음버튼과 정지버튼을 헷갈려서 강의 내내 정지상태로 있다가 쉬는 시간에 녹음버튼이 눌러졌고, 마지막 한번은 가방 속에서 며칠 동안 내내 켜져있어서 결국 또 녹음을 못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한 강도 녹음을 못했다. 다음주에는 선생님께서 베트남에 세미나 가시고, 다담주에 또 씨알재단에 강의를 하러 오시는데, 그때는 모두 녹음을 해야겠다.

  이번 강의는 20세기 한국 철학을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다음 강의는 그 중 한 분인 함석헌 만을 5회에 걸쳐서 다루신다. 이번에는 함석헌, 유영모, 박동환 세 철학자를 말씀하셨는데, 함석헌 이외에 두 분 유영모와 박동환은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였다. 유영모에 관해서는 그래도 여기저기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박동환에 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선생님의 학창 시절 스승님이었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지향하시는 바와는 상반된 철학을 하시는 분이라고. 그치만,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그를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 선생님께서는 철학자 박동환을 높게 평가하신다. 인터넷 서점에서 '박동환' 세 글자를 치면 저서가 두 권 나오는데, 구할 수 없는 책들이다. 선생님께서는 세 권 말씀하셨다. 헌책방에 혹시 있을까 해서 고고북으로 검색했는데 없다.  

  강의 시간에, 또 술잔을 기울이며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느낀 바 중 하나는, 우리네 현실에 기반한 철학을 해야 한다는 것. 철학, 사회학, 정치학 등 인문/사회 과학을 공부함에 있어 너무 서양의 지식 흐름을 따라가려는 노력만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현실과 그네들의 현실은 분명히 다른데. 물론! 그네들의 현실에 기반한 말말말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전파하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서구 대가들의 번역서가 꾸준히 나오고, 세미나가 이루어지는 것도, 결국 거기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중요한 걸 잊는 듯 하다. 정확히 옮기고 전파하고 그들을 따라가는데 급급한 듯 하다. 이렇게 지금 따라간다고 하지만, 자칫 지금뿐 아니라 평생 따라가기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네 철학, 우리네 사회학, 우리네 정치학, 우리네 역사학이 필요한 것이다.  

  레비나스의 윤리에 대해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레비나스가 인터뷰에서였는지, 책에서였는지 어떤 말을 했는데 - 아, 정확한 문구가 기억이 안난다. 이런. - 선생님께서 전달해주신 그 말을 듣고서 그의 철학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기억이 안나서 답답한데 - 저질 기억력은 여기서 또 훼방을 놓는구나. - 레비나스를 읽을 때 그 부분을 잊지 말고 염두에 두고서 읽어야겠다. 또, 촛불집회 시즌1(2008년 5월~9월) 동안에 나왔던 논의 중 프랑스의 68혁명과 비교해서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 앞으로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보였는데, 이건 아니라고 하셨다. 나도 머릿속으로 프랑스의 68혁명이 이땅에서 재현될까, 생각했던 사람 중 한 명인데, 우리네 운동은 우리의 과거 역사적 현실과 비교해 이야기를 해야 맞다고 하셨다. 동학운동이나 4.19, 5.18, 6월 항쟁, 그리고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야지, 외국의 사례를 근본 바탕에 두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셨다. 끄덕끄덕.  

  자칫 잘못 들으면 선생님께서 외국의 모든 이론과 역사적 사례들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그건 참고사항일뿐 우리가 논의해야 할 기본 바탕이 아니라는 말씀이실 것이다.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네 과거로부터 그 교훈을 얻고, 문제점과 해결방안,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일게다. 선생님께서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시는 것, 또 그 결과물로 내놓은 <서로주체성의 이념>이나 <나르시스의 꿈>은 모두 여기에 닿아있다. 서구의 철학의 한계점을 넘어서서 우리네 철학을 하기 위한 기초 세우기 작업인 것이다. 작년에 나왔던 <5.18 그리고 역사>는 그 고민을 우리네 역사적 현실에 접목시킨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부끄럽게도 선생님을 마음 속의 스승으로 모시면서 아직까지 선생님의 모든 저작을 읽지는 못했다. 열심히 쫓아다님과 동시에 책읽기도 부지런히 따라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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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라 2009-02-10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부럽네요. 김상봉 선생님 강의 한번 들을 기회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늘빵 2009-02-10 09:02   좋아요 0 | URL
저도 뵌 적은 있어도, 강의를 들은 건 처음이에요. 기회가 잘 없으니. 강의도 강의지만 술자리도 좋아요. ^^
 
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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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말할 가치가 없거나, 딱 한 번만 말하면 되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 가치있는 다른 말의 자리를 차지해 버릴 것이다. 그 말이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불러올 수 있는 결과 때문에 그렇다. -48쪽

사방에서 풀이 자라고 있어서, 백 년도 채 지나기 전에 이 진흙 언덕 밑에 누가 묻혀 있는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설사 그때 사람들이 무덤의 주인을 여전히 알고 있다 해도, 그들이 무덤에 관심을 보일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의 말처럼, 죽은 사람은 깨지거나 떨어져 나온 부품을 붙일 때 사용하던, 시대에 뒤떨어진 꺽쇠, 아니면 지금처럼 비유를 이용한다면, 거억과 후회라는 꺽쇠를 붙일 가치도 없는 깨진 접시와 같다. -54쪽

혼란에 빠진 사람에게 우리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다. 마치 자신을 앙는 것이 쉬운 일인 것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매일 이 말을 뒤집어 버리며 즐거워하는 잔혹한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유부단한 사람에게 우리는 모든 것은 첫걸음부터라고 말한다. 마치 느슨하게 감겨 있는 실의 끄트머리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그 끝을 계속 잡아당기기만 하면 반대편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실이 얽히지도 않고 헝클어지지도 않아서 매끄럽게 계속 풀려나오는 것처럼. 실이 이렇게 풀려나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여기서 흔해빠진 표현을 한 번 더 써도 된다면, 인생이라는 실타래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중략) -89-90쪽

(이어서) 이것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의 망상이다. 첫걸음이 실의 끝자락처럼 분명하고 정확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결코 없다. 첫걸음은 길고 고통스럽고 느린 과정이며, 그 첫걸음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알아내려면,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첫걸음은 마치 눈먼 사람처럼 길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고, 첫걸음은 첫걸음일 뿐이다. 그 전에 있었던 일은 거의 가치가 없다. -90쪽

여자들의 생각은 대체로 다르다.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밤이나 오후나 오전을 온전히 둘이서만 보낼 수 있다면, 여자는 사랑의 행위를 하기 전에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편을 더 좋아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남자의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팽이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는 그 성적인 충동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서. 아주 깊어서 서서히 물에 차오르는 물병처럼, 여자는 아주 천천히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아니, 여자가 남자를 자신에게 끌어당긴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마침내 남자의 절박함과 여자의 갈망이 일치하면서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물병 속의 물은 노래를 부르며 물병 가장자리까지 차오른다. -149쪽

모든 사전들은 우스꽝스럽다는 단어의 뜻을 조롱거리나 웃음거리가 될 만한 것, 경멸받아 마땅한 것, 우스워 보이거나 코미디로 변질되기 쉬운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의견일치가 아닐 수 없다. 사전의 입장에서 보면, 개별적인 정황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전에는 정황이라는 단어가 어떤 사실에 동반하는 상태로 정의되어 있고, 괄호 속에는 사실과 정황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되며, 정황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사실을 판단해서도 안 된다는 경고가 분명히 실려 있는데도 말이다.-215쪽

어쩌면 꿀벌의 비밀이라는 것은 고객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어 욕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사용가치가 점점 높아지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용가치가 높아지면 곧바로 교환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교환가치는 교활한 생산자가 구매자에게 강요하는 가치이다. 생산자는 서서히 교묘하게 구매자의 내적인 방어벽을 무너뜨린다. 이 방어벽은 구매자가 자신의 성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오점 하나 없는 결백한 사람이 정말로 존재했다면, 이 방어벽이 비록 불확실하기는 할망정, 그에게 최소한의 저항력과 자제력을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322-323쪽

그냥 살다 보면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죠, 마치 그 흐름에 반항할 힘이 없는 것처럼,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강이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와요, 다른 사람들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지만 우리만 그걸 눈치채는 거죠, 누가 우리를 본다면 물 속으로 빠지기 직전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의 항해기술은 절정에 이르러 있죠. -4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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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구판절판


그때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선택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어느 날 나는 경제적 핍박자들이 몰려 사는 재개발 지역 동네에 가 철거반 - 집이 헐리면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되는 세입자 가족들과 내가 그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들은 철퇴로 대문과 시멘트담을 쳐부수며 들어왔다 - 과 싸우고 돌아오다 작은 노트 한 권을 사 주머니에 넣었다. ‘난장이 연작’은 그 노트에 씌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中)-9쪽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라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작가의 말 中)-11쪽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의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이제 나의 노력이 어떠했나 자신을 테스트해볼 기회가 온 것 같다. -29쪽

공무원 월급표를 보면 뒷집 남자의 월급은 남편의 월급보다 사뭇 적다. 단출한 식구에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자기네는 조용한데, 많은 식구에 적은 월급을 받는 뒷집은 흥청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귀가 아프게 들어온 잘살 수 있는 세상이 뒷집에만 온 것 같다. 뒷집에 가난은 없다. 그래서 신애는 생각한다. 저 집은 도대체 어느 편인가? 우리는 또 어느 편인가? 그리고 어느 편이 좋은 편이고, 어느 편이 나쁜 편인가? 도대체 이 세상에 좋은 편이 있기는 한가?-38쪽

지섭이 하는 말을 나는 들었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왜?"
아버지가 물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일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102-103쪽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노-사가 공평이 나누어 갖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한 해에 두 번 있던 승급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야간 작업 수당도 많이 줄었다. 노동자들도 줄였다. 일 양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은 늘었다. 돈을 받는 날 우리 노동자들은 더욱 말조심을 했다. 옆에 있는 동료도 믿기 어려웠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쫓겨났다. 공장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활판 윤전기를 들여오고, 자동 접지 기계를 들여오고, 옵셋 윤전기를 들여왔다. 사장은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적대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107쪽

그는 내가 죽은 조합을 살려냈다고 말했다. 그의 말들을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어요."
내가 말했다.
"알아."
지섭이 받았다. 나는 그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너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일을 따라 했을 뿐야."
(중략)
"방송통신고교도 중간에서 그만뒀고, 대학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서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고, 모르는 것은 아무나 붙잡고 물었어요. 여기 와서도 모르는 게 많아 노동자 교회에 가 두 어른에게 배웠어요. 대학 부설 기관 교육도 그래서 받은 거예요."
"그래서, 뭘 얻었니?"
"눈을 떴어요."
"너는 처음부터 장님이 아니었어!"
지섭이 큰 소리로 말했다.
"현장 안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깥에 나가서 뭘 배워? 네가 오히려 이야기해줘야 알 사람들 앞에 가서 눈을 떴다구? 장님이 돼버린 거지, 장님이, 그리고, 행동을 못 하게 스스로를 묶어버렸어. 너의 무지가 너를 묶어버린 거야. 너를 신뢰하는 아이들을 팽개쳐버리구."-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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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1-3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쏘공을 읽으셨군요. 29쪽의 저 말은 외우고 다니던 말. 아. 이 책은 제일 좋아하는 책을 물어보면 고민 끝에 대답하게 되는 책이에요...

마늘빵 2009-01-31 21:5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끝까지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전에 단편으로만 읽었는데. 각각의 단편들이 완성도를 갖추면서, 또 이 단편들이 모여서 새로운 틀을 만들더라고요. 조세희씨가 이 책을 집필하고, 그 후로 책을 쓸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구나 생각했어요.

Mephistopheles 2009-01-31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이지 시대의 아픔이에요. 과학과 문명이 발전하고 시대가 흐르면 뭐하나요. 그들의 달력은 저 책이 쓰여진 그 시기에서 한장도 안넘어갔는데요.

마늘빵 2009-01-31 21:5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 책이 처음 쓰여진게 1978년인데, 지금은 이 책에 들어있는 것보다 더 하군요.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후속작으로 보이는 <눈뜬 자들의 도시>를 바로 집어든 독자들 중 상당수는 이 책을 다시 내려놓는 듯 하다. 그건, 사라마구 특유의 쉼표로 이어지는 쉼없는 독특한 문체를 견딜 수 없어서이거나, <눈먼 자들의 도시>만큼이나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장면을 그려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던 지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후자 때문에 책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확실히 <눈뜬 자들의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만큼이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부족하고, 장면의 전환도 빠르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전작보다 못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오히려 더 놀랍다.   

  비가 세차게 오는 투표소, 비가 오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투표를 하러오지 않는다. 다른 도시는  상황이 어떤가 해서 조사를 해봤더니, 여기보다는 조금 나은 듯 하다. 아마도 날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투표율이 매우 저조한 것은. 그러나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백지투표를 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백지투표.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 험한 날씨를 뚫고 투표에 참여한 이들이 백지를 냈다는 사실을 믿으란 말인가. 그러나 정말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지 않지만, 인내심을 갖고 소설을 읽어나가면 점점 의문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궁금해서라도 책장을 넘긴다.  

  정부는 그들을 버리기로 했다. 백지투표를 한 시민들을. 그래 버렸다. 그 말이 정확하다. 행정부와 사법부, 경찰, 군인 등이 모두 빠져나가고 시민들만 덩그러니 도시에 남았다. 정부는 시민을 버렸다. 그리고, 시민들을 일일히 찾아다니며 백지투표를 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왜 했는지, 배후가 누구인지 캐묻는다. 시민들은 그들의 질문에 아무 것도 대답해줄 수 없다. 아는 바가 없으므로. 배후는 없으므로. 지난 촛불 정국 때 이명박 정부는 없는 배후를 자꾸 캐물었다. 이번 용산 참사에서도 또 배후를 묻는다. 배후가 누구냐. 배후는 없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배후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배후는 촛불 공장 사장님이다. 촛불 공장 사장님이 매출을 올려보고자 시민들을 선동했다.  

  급기야 희생량을 찾는다. 처음엔 희생량을 삼을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배후라고 추정했을 뿐이다. 어느날 갑자기 도시를 지배해버린 백색혁명, 그 때 앞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 그가 백지투표를 뒤에서 조정했을 것이다. 찾아라. 그리고 심문하라. 원인을 알 수 없는 시민들의 백지투표에 당황한 정부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범인을 찾는 것 뿐이다. 그는 단지 용의자였다. 하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나올 것이 없자 정부는 또다른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를 아예 범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사태를 해결하는 매우 간편한 방법이다. 있으면 색출하면 되고, 없으면 만들면 된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 집회를 주도한(?) 단체를 압수수색하고, 그 구성원을 연행했다. 연행하는 경찰이나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 그도 잡아갔다. 화나 거리로 나오면 물대포를 쐈고, 곤봉을 휘둘렀다. 물대포에 색소까지 넣어 도망가도 지하철역마다 경찰을 배치해 모두 체포했다. 나는 출근길에 봤다. 시위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하철역에 경찰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것을. 그들은 색소가 묻은 시위자를 찾고 있었다. 용산 참사에서도 그들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거리로 쫓겨나게 생긴,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철거민들을 테러범으로 몰았고, 살아남은 자들을 연행했다. 그리고 사건을 마무리짓기 위해 희생량으로 삼을 배후를 물색하고 있다.

 사라마구가 한국의 현상황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그려지는 모습들은 너무나 지금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다. 그래서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럼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희망적인 것은 우리네 상황과 달리 저들의 무리에 속해 있던 한 사람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고, 절망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되돌릴 순 없었다는 사실이다. 양심적인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비관적인 결말로 끝났다면, 그 양심적인 한 사람조차 없는 우리네 현실은 더더욱 비관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그리도 국회, 행정공무원, 경찰, 검찰, 법원, 언론까지 한통속이 되어 잘들 뭉치시는지. 말하고 싶어도 말할 곳이 없는, 없는 자들은 너무나 서글프다.

  양심적인 한 사람이 진실을 알리고자 신문사를 찾았다. 용의자를 범인으로 발표하지 않은 두 신문사 중 한 곳을 찾아, 진실을 보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저들이 범인으로 찍은 이와는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그로부터 뭘 받아먹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진실은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음에도 행동했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은 모두 회수됐다. 길거리에서 시위에 사용된 방송 장비와 차량을 빌려줬다고 업체 관계자를 잡아가고, 유인물을 찍어내는 단체를 수색하고, 찍어낸 유인물을 압수하는, 심지어 대목만났다고 좋아하며 야밤에 포장마차 운영하던 아줌마, 아저씨까지 조사하는 이 정부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그래도, 작은 희망이나마 있었다. 모두에게 닥친 불행한 사태 속에서도, 상황이 지금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었다. 그러나,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그들이 맞서는 - 아니 맞서지도 못했다 - 정부는 너무나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에 저항하기에 그들은 너무나 약했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현실은 전 작품보다는 후 작품에 더 가깝다. 그래서 더 암울하다. 우리네 현실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눈을 뜨고 있지만, 눈 앞에 놓인 현실을 보지 못하거나 보여도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선거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와도 사람들은 또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실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수가 반복되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된다. 한번 실수는 5년의 재앙을 부른다. 그 재앙의 현실을 지금 우리는 두 눈으로 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물리적인 폭력이나 연행 등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직장에서 퇴직당하고,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취직을 못하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지, 연봉은 내려가지, 매 끼니마다 밥상에 어떤 음식이 오르는지, 그 음식은 믿고 먹어도 되는지 의심해야 하지,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나 거리에 나앉게 되지, 말해 입만 아프다. 예전에도 없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방법은 하나다. 제정신 못차려서 지금의 화를 불렀다면, 앞으로 남은 4년을 보내고, 두 눈 멀쩡히 뜨고,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힘없는 자들이 막강한 힘을 가지는 유일한 순간이다. 루소가 이런 말을 했다. "국민들은 선거 때에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는 순간 노예로 전락한다." 지금 우리가 그걸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자유로운 순간, 힘을 가지는 순간, 그 힘을 보여주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러나 너무 멀다. 그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없는 힘을 모아 의사표시를 해줘야 한다. 질질 시간 끌다보면 또 자기들이 지쳐 알아서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우리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고, 넘어지면 끊임없이 다시 일어선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아 이놈들 참 끈질기다,하고 생각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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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1-2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건... 자본주의는 끝없는 투쟁으로 살아가는 생명체 같은 건데요...
그 안에... '가진자'들이 똘똘 뭉치기는 아주 쉽지만, 못 가진 자들이 똘똘뭉치는 건, 정말 어렵다는 거죠... 더러운 자본주의...

견찰 놈들이 할 짓이 없어서...
사이버 투표 조작질이나 하고...
이 나라도 막장입니다.

http://blog.daum.net/sequncetodispersion/12881800?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sequncetodispersion%2F12881800

마늘빵 2009-01-30 00:0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방금 기사 뜬거 봤지만, 진짜 경찰이 아니라 용역이네요. -_- 철거민 내리찍은 애들은 불법용역, 얘네는 합법용역. 안그래도 건조기후님이 100분 토론 사이트에서 투표한다고 올려서 가봤는데, 이상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눈치는 챘지만, 사실로 드러났군요. 참 쟤네들 할 일 없습니다. 조작이나 하고 있고.

드팀전 2009-01-3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은 눈 뜨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술 한잔 하고 헤롱거리는 제 질문입니다. 햇살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어느정도...라는 답변일까요?

마늘빵 2009-01-30 00:05   좋아요 0 | URL
^^ 점수화시키거나 비율로 따진다면 자신있게 답하지 못하겠지만, 떴냐 감았냐로 나눈다면 떴다고 말할 수는 있을 듯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질문은,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 약자의 아픔을 느끼는가, 부정의에 분노하는가, 등의 질문과도 닿아있는 듯 합니다. 물론 약자가 누구냐, 부정의가 뭐냐, 아픔은 어떻게 느끼냐, 현실이란 뭐냐, 라는 질문을 던지면, 마치 진보냐 보수냐를 나누는 기준만큼이나 모호해지죠. 눈을 더 크게 뜰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해야겠죠.

드팀전 2009-01-3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눈을 뜬 쪽에 가깝다. 어느 순간 자신이 눈을 뜬 줄 알았더 것조차 눈을 감고 눈을 뜬 것으로 믿었다는 순간이 올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눈에 대해 믿으십니까? 저는 술 취한 질문이긴 하지만 제 질문의 무게를 생각보다 쉽게 답변하시는게 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끙' 하셨으면 ..좋았으려면만 하는게 제 바람이었지요.

루소의 질문이 선거에 충실하자로 받아들여지십니까? 아니면 선거가 그런 근원적 한계 밖에 못가지 것이니까 그 밖을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늘빵 2009-01-30 00:15   좋아요 0 | URL
쉬운 질문은 아닙니다. 그래서 짧고 간단한 질문에 길게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쎄요, 눈을 뜬다는 것에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계신 듯 합니다. 드팀전님께서 물어오시는 '눈을 뜬다'는 것의 무게가 무거운 만큼 답변하기는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그렇다,라고 대답한거랍니다. 그 무게에 따라 눈을 감고 있으면서 뜬 걸로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루소의 서술은 단순히 "투표합시다"를 의미하는건 아니죠.

드팀전 2009-01-30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눈을 감았거나 멀었다라고 말하는 편이 났겠군요.

마늘빵 2009-01-30 00:41   좋아요 0 | URL
간만에 야밤의 댓글을 주고 받습니다. 힘드실 줄 압니다. 어떤 상황인지 안다고는 못하지만, 짐작은 되니까요. 드팀전님이 처하신 현실에서 드팀전님께서 스스로를 감았거나 멀었다고 말씀하시면 그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는, 그보다 더 나은 상황만을 멀리서 보고 있는, 저는 역시 감았거나 멀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범위를 좁히지 마시고, 조금 더 열어두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만 먼저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승주나무 2009-01-30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 님의 음주페이퍼, 아니 음주댓글을 보게 되는군요. (요즘 그런 기술도 있군요^^)저도 기냥 들어왔다가 글들을 주섬주섬 보고 있습니다. 마음만큼은 얼근하게 취했구요.
저는 눈과 입의 관계를 보고 있는데, 요즘 눈을 뜨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입은 좀 닫힌 것 같습니다. 쓸 말도 별로 없고 써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 의무감이 항상 부담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쓰고 싶지 않은 마음도 그에 못지 않게 강해진 것 같습니다. 입이 나의 눈을 표현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좀 얌전해진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좀 봤다 싶으면 전에 했던 말들이 참 X팔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마늘빵 2009-01-30 00:45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오랫만에 뵙네요. 페이퍼 하나 올린건 봤습니다. 요새 몸이 많이 바쁘셔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안으로 밖으로. 요즘 모든 게 위기 상황이지만, 저들 입장에서는 언론을 손에 쥐어야 편하니 이쪽으로 힘을 쏟겠지요. 이거 막으시느라 고생하십니다. KBS 기자와 피디들도 제작 거부 운동에 돌입했다죠. 참, 말은 그렇습니다. 예전에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지만, 훗날 보고 있으면 부끄럽죠. 어떻게보면 그건 그때보다 지금 더 나아졌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본지 너무 오래됐습니다.

드팀전 2009-01-30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작 거부 자체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일단 노조가 아닌 협회차원에서 제작 거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방송의 힘을 말해줍니다. 제작거부는 곧 철회될 겁니다. 징계 수위를 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파면에서 몇 개월 정직하는 수준으로 말이지요. 회사가 제작 거부라는 액션에 대해 일단 어느 정도 반응을 보였으니 제작거부라는 극단적 수단을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부족함은 있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입니다.

마늘빵 2009-01-30 09:05   좋아요 0 | URL
날이 밝았네요. 네, 신문 통해서 계속 접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용이 실렸더라고요. 징계 수위가 조절됐다고. 언론이 무너지면 나머지도 하나씩 차례대로 무너지겠죠. 지금까지는 말씀하신대로 잘 막아내고 있는 듯 합니다. 언론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그게 되어야할텐데, 제가 있는 영역에선 거의 일방적으로 지시를 받아야하는 상황이네요. 그렇게 크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라 대응하기도 쉽지 않고. 또,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도 일만 하고 있죠. 대화할 소재가 점차 사라지네요. 말해봐야 공감, 동의를 얻지 못하니.

드팀전 2009-01-30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일과 세상을 편안하게 분리시키거나 또는 최소한 그 연결이 없진 않으나 거리가 멀어서 촉수를 곤두세우지 않아도 좋을...또는 먼길을 천천히 준비할 수 있는...

톨스토이가 했던 말 중에 그런게 있답니다.
'부끄러운 일을 하느니 보단 차라리 아무일도 하지 않는게 낫다.'라구 말이지요.

어제부터 내린 비가 오늘 아침까지 오는군요.

마늘빵 2009-01-30 10:32   좋아요 0 | URL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일만 할 수 있으니 편합니다. 그런데, 자꾸 이거저거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일만 할 수가 없죠.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죠. 다른데 신경쓰이고. 제가 할 수 있는 능력껏 이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막을 수밖에요.

2009-01-30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1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1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1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2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2 0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2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방진너 2009-01-3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는 <눈뜬자들의 도시>를 보고 <눈먼자들의 도시>후속작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읽은 사라마구의 문체 때문에 책을 두세장 읽다가 말았습니다
하지만 줄거리를 읽으니 다시읽을 용기사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9-01-31 22:54   좋아요 0 | URL
첨 뵙습니다. 이어지는 건 맞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4년 이후를 그리고 있어요. 시간상으로. ^^ 근데 내용은 그때 그 상황이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죠. 저는 오늘부터 <동굴> 읽기 시작했습니다. <눈먼>을 읽고 <눈뜬>을 읽으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책을 내려놓는 거 같더라고요. 그 문체를 다시 견딜 수 없고, 이 책은 장면의 전환이 빠르지 않고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요. 지금 시국과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영화 비평이 아니다, 담론의 놀이다." 씨네21과의 한 인터뷰에서 진중권이 김혜리 기자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별 생각없이 무심코 던진 말이었는데, 그 말이 씨가 되어 씨네21의 연재칼럼이 되었고, 그것이 묶여 책으로 나왔다. 진중권의 말처럼 이 책은 "그림의 밖에 있으면서 그림의 안에 영향을 끼치는 액자처럼, 영화의 바깥에 있으면서도 안쪽으로 간섭을 하는 파레르곤 같은 글쓰기"를 지향한다. 칼럼식으로 쓰여졌던 원고라 각각의 글이 하나의 완결성은 가지지만, 글과 글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러운) 연관성을 찾기는 힘들다. 그래서 글과 글을 모아 목차를 짜면서 '주제'에 따라 인위를 부여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영화 비평과는 다르다. 영화의 내용과 주제 중심의 비평이 아닌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면서 영화 제작에 도입된 기술과 기법들이 영화 내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변화시켰는가에 촛점이 맞춰진다. "스크린에 비치는 이미지, 내러티브의 구성, 다루어지는 제재와 소재가 달라지고, 제작의 방식과 수용의 모델이 달라지고, 나아가 해석과 비평의 준거까지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 소재로 쓰인 영화들이 아니다. 이 영화 목록은 이 책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진중권이 '기술합성시대의 예술작품'을 좀더 수월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끌어온 재료에 불과하다. 정작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해당 영화가 아니라, 해당 영화에 들어있는 디지털 기법과 장치, 그리고 이로부터 인문학적 메세지나 상상력을 도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 자체의 무게감이나 완성도 등을 떠나 <다이하드 4.0>, <슈렉>, <스파이더맨>, <트랜스포머>와 같은 오락 영화들부터 <필로우북>, <시계태엽 오렌지>, <라쇼몽>, <베를린 천사의 시>등의 덜 대중적인 영화들까지 가리지 않고 소재로 삼는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발터 벤야민을 자주 언급한다. "예술에서 혁신은 내용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고, 기술에서 나온다." 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진중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중권은 발터 벤야민이 이미 말한 바를 자기식으로 소화해, 몇몇 영화를 대상으로 재해석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벤야민을 접하지 않아서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다. 디지털 기법과 기술에 관한 알 수 없는 생소한 용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해서 빠르게 읽히진 않는다. 이 부분이 씨네21에 연재할 때 독자들이 이건 영화 비평도 아닌데다 또 왜 이렇게 어려운게냐, 라는 투덜거림으로 나타난 것 같다.

  영화 <300>에 관한 글을 읽는 동안엔 지난 디워 논쟁이 떠올랐다. 진중권이 <디워>를 까던 때, 네티즌들은 그럼 영화 같지도 않은 <300>은 왜 까지 않느냐고 힐난했는데, 거기에 대한 대답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중권이 <디워>를 까기 전에 그 영화를 봤는데 매우 지루했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치 오래전에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여고생 시집가기>를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중간중간 건너뛰는 듯한 느낌은 '스토리의 부재' 때문이었다. 왜 진중권이 토론에서 언급해 국민 상식이 되어버린 용어가 있지 않은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 

  "<300>이 가진 '서사의 빈곤'은 어쩌면 비난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어차피 시각적 측면과 서사적 측면은 서로 충돌하는 경향이 있"고, "문학성과 조형성을 어설프게 배합려다가는 자칫 둘 다 산만해질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으면서, <300>이 서사의 복잡성을 포기하고 시각적 과잉으로 대신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원작이 본래 만화이니 소설과 달리 플롯의 전개가 단순할 수밖에 없고, 소설의 서사를 만화로 재현하기는 힘들다는 말도 덧붙인다. 대사가 많으면 서사가 복잡해고 치밀해질 수는 있지만, 우리가 만화를 볼 때 대사가 많으면 짜증을 내고 지루하는 것과 같달까. "이미지를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도취시킬 뿐이다. 이성은 마비되고, 그래서 정신은 황홀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읽기 편한 건 아니지만, 읽다보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드러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우리가 웃고 즐겼던 <슈렉>에서는 하이퍼리얼 효과를, 머리 아프게 봤던 <나비효과>와 <메멘토>를 통해서는 공간적으로 평행한 여섯 개의 가능태들과 기억의 조작과 사건의 연속성에 관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서는 영화의 촉각성을, <다이하드 4.0>을 통해서는 '보기'와 '보여짐'의 권력관계를 읽는다.

  여기 언급된 영화들을 다 봤다면 책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르는 영화를 말할 땐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아직 보지 못한 영화는 챙겨보고, 이미 봤던 영화는 '다시보기'하면서 그 내용을 확인해보면 되겠다. 이 글은 진중권 개인이 자신이 가진 지식과 식견으로 영화와 기술과 인문학을 버무린 결과물이고, 각각의 개개인은 또 제 자신의 지식과 상상력으로 다른 '버무림'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객에 따라 참 다양하고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는 다른 문화 매체에 비해 훨씬 열려있는 텍스트다. 그래서 어떤 하나의 해석이 정답이라고 단정지을 필요도 없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이 책은 진중권의 담론 놀이의 결과물이고, 나머지는 독자, 아니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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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9-01-2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책 보다가 필받아서 여기 나온 영화들 다시 봤지 뭐예요 ㅋㅋ

마늘빵 2009-01-28 09:07   좋아요 0 | URL
어헛, 어떤걸 봤길래? ^^ 꼭지별로 읽고서 영화 하나씩 찾아 봐도 좋을듯.

프레이야 2009-01-28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가요^^

마늘빵 2009-01-28 09:07   좋아요 0 | URL
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