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 언어가 춤을 춘다 세상을 다 말하라!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3
윤세진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구판절판


책은 책의 속도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책은 다른 매체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다른 매체와 접속하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15쪽

우리말의 ‘오염’을 개탄하는 지식인들 중에는 그 ‘오염’의 원인을 모두 외국어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 한자가 가져온 오염, 일본말이 가져온 오염, 영어가 가져온 오염…. ‘우리말 오염’을 개탄하는 ‘애국자’들의 비장한 글들을 보며 나의 지저분한 언어 사용을 반성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세계화 시대’가 될수록 우리말의 ‘순수’를 지킨다는 일이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오염되기 이전의 순수한 우리말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태초부터 ‘순수한 단일체’였다는 발상만큼이나 근거가 없다. -118쪽

중요한 것은 지배적인 언어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 즉 지배적인 언어 안에 낯설고 이질적인 언어들을 뒤섞고 그럼으로써 지배적 언어를 변형시키는 것이며, 한 언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언어를 넘나들면서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과 한자 중에 뭘 선택하는가’라는 사실 자체는 그리 중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쓰는 표현이 ‘영어식 표현이냐 일본식 표현이냐’ 하는 것도 중요치 않다. 그 표현들이 언어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생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언어를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빵빵’하게 해줄 것이다. -125쪽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릴는 결국, 영어가 보편의 언어이므로 그것을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쟁의 논리다. 전세계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수적으로 절대 소수지만, 세계 질서 속에서 권력을 쥔 제국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그것은 ‘지배적인 다수어’가 된다. 영어의 보편성이란, 그런 의미에서 권력과 자본의 보편성인 것이다.-130쪽

브루노의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의 언어 단일화는 절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진행되었다고 한다. 즉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사용하던 언어가 고상하고 학식 있는 언어로 공식화되고, 상대적으로 민중들이 사용하던 여러 지역 방언들은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의미의 ‘사투리’로 격하된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는 의미였던 ‘사투리’라는 단어가 1690년에 발행된 퓌르티에르 사전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비속하고 천한 말’이라는 의미로 정의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의 언어가 공식 언어, 즉 표준어로 승격함으로써 부르주아들의 정치적 독점을 보장해주었다는 사실이다. -134쪽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배에 낭랑하여 그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어서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둘째, 차츰 날씨가 추워질 때 읽게 되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유전하여 체내가 편안하여 추위를 잊을 수가 있게 되며,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땐, 눈을 글자에 마음은 이치에 집중시켜 읽으면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지게 되고, 넷째, 감기를 앓을 때에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부딪힘이 없게 되어, 기침 소리가 갑자기 그쳐버리게 된다. (이덕무, <이목구심서>)-176-177쪽

무릇 글을 읽을 때에는 높은 소리로 읽는 것이 좋지 않다. 소리가 높으면 기운이 떨어진다. 눈을 딴 데로 돌려도 안 되니, 눈이 딴 데에 있으면 마음이 딴 데로 달아난다. 몸을 흔들어도 안 된다. 몸이 흔들리면 정신이 흩어진다. 무릇 글을 욀 때에는 착란하지 말아야 하고 중복하지 말아야 하며 너무 급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급하게 하면 조급하고 사나워서 맛이 짧다. (홍대용, <매현에게 주는 글>)-177쪽

소설가 베게트는 여행에 대해 멋진 정의를 내린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꿈이나 영혼 등으로부터 나온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눈이 파란 사람이 세상에 정말 존재하는지, 꿈에서 본 그 황홀한 하늘빛이 어딘가에 정말로 펼쳐져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 그게 여행이라는 거다. -179쪽

텍스트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건설 중인 건물 같은 것이다. 건축가는 자신의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짓지만, 사실 그 건물을 ‘건물’로서 완성시키는 사람은 건축가가 아니다. 건물을 완성하는 건 그 건물 안에서 생활하게 될 거주자의 몫이다. 거주자야말로 건물을 ‘사용’함으로써 건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하나의 텍스트에 숨어 있는 ‘결정된 의미’ 같은 건 없다. 텍스트의 모든 가능한 의미들은 그 텍스트와 접속하는 독자에게 맡겨져 있다. 텍스트라는 건물이 만들어진 시대의 건축 양식에 주목할 것인지, 그 건물이 사용되어온 역사에 주목할 것인지, 아니면 내 나름의 기준으로 건물을 리모델링할 것인지, 그건 독자의 몫이다.-201-202쪽

텍스트를 읽는 것은 텍스트를 내 신체의 일부로 느끼는 것이며, 거기에 하나의 해석을 가하는 것이다. -225쪽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낙타가 사자로 변신해야 하는 것과 같다."(니체)-231쪽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공리니 정의니 하는 미명으로, 성인군자란 간판으로, 점잖고 성실한 체하는 가면으로, 유언비어와 여론이란 무기로,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의 글로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칼도 없고 붓도 없는 약자들을 숨도 못 쉬게 하는지를. 나에게 이 붓이 없었다면 수모를 받고도 어디가서 하소연할 길조차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깨어났다. 그러기에 늘 이 붓을 들어 기린의 피부 속에 감춰진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있다.(루쉰, <화개집 속편>)-247쪽

페이지(page)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파구스’(pagus)는 농부가 일구는 밭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쓰여진 글들이 경작된 밭고랑을 닮은 것도 같다. 좋은 농부의 덕목이 토양과 기후, 경작물에 대한 앎과 성실함, 그리고 뿌린 것 이상을 탐내지 않는 정직함이듯이,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세상에 대한 앎과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다. 물론 이때의 ‘앎’이란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터득한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글을 이루는 것은 어떤 법칙이나 현란한 수사, 잡다한 지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걸음걸이와 세상에 대한 시각, 그가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 등이다. -247쪽

글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떠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251쪽

글을 쓴다는 건, ‘언어’라는 ‘도구’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을 뛰어넘는 실험이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모험이며, 다른 이들과 공감하기 위한 공명통이다. 자신의 신체가 공명할 수 있는 만큼 글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지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293쪽

보통 책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아끼는 것이라도 남에게 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전에 동춘 송준길 선생은 남에게 책을 빌려 주었는데 그 사람이 되돌려줄 때 종이에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았으면, 반드시 책을 읽지 않았음을 나무라고 다시 빌려주었다. (이덕무, <이목구심서>)-309-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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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요 2009-09-1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맘에 드는데요. 아프님 소개라는 것만으로도...
저도 보관함에 담아두기 했어요.^^

마늘빵 2009-09-14 09:21   좋아요 0 | URL
내용 전개가 약간 어수선한 감이 있는데, 도입부를 좀 지나면서 점점 빠져듭니다. ^^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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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읽는 방법 :  이 책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책을 펼친다.

  가슴이 쿵딱쿵딱 거렸다. 이거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거지? 때로는 몇 초의 간격을 두고, 때로는 몇 주의 간격을 두고 메일 놀이(?)를 하는 두 사람에게 빠져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읽어버렸다. 주연 배우 레오와 에미 둘, 조연 하나. 내 부실한 기억력에 의하면 출연진은 이 셋이 전부지만 어쩌면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한둘 더 나올 수도.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읽었고, 지인에게 추천해줬다. 이 책을 읽은 두번째 지인이 말하길, 너무 가슴이 답답하다, 라고 했다. 어쿠. "왜?" 라고 물어봤다. 들어보니 지인은 읽는 동안 바람난(?) 에미의 남편에게 감정이입했던 것이다. 아니 주인공인 레오와 에미에게 집중해야지 왜 하필 에미의 남편을 선택(?)한거야. 모르겠단다. 자기 남자친구가 에미같이 그러면 화가 날 거 같다,고 했던가. 그래도, 그래도, 이건 소설이잖아. 어쨌든 화가 났단다. 의도치 않은 반응인 걸.  

  서로 생김새도 알지 못하고, 우연으로라도 만난 적도 없고, 어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익명의 남자(혹은 여자)에게 메일을 보낸 것도 아닌, 두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을까. 가끔은, 그들의 메일을 훔쳐 읽다가 얘네, 지금 사랑하는 거 맞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사랑이라고 결론짓는 내 생각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져야 할지도. 호기심이든, 장난이든, 조건만남이든, 목적이 무엇이든 두 사람은 서로의 모니터를 앞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었다. 보고 싶어요, 레오. 잘자요, 에미.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모닝, 굿모닝. 그러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채팅창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에게 호감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어린 시절 숱하게(?) 채팅을 하다가 아, 이 사람 참 궁금하다,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만나고 싶다, 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생김새를 묻는다. 키는 몇인가요, 몸무게는 몇인가요, 파마했나요, 생머리인가요, 어떤 옷을 즐겨 입으세요, 안경은 썼나요, 눈은 큰가요?  마음과 마음으로 오가던 두 사람은 이제 물음과 물음과 물음을 통해 어느새 서로의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 마침내! 아, 우리 만나요.  

  그래서 만났다. 만났는데 이상하다. 그때 그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나도, 그 사람에게 그때 그 사람이 아닌가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반할 만한 외양이 아니어서였는지, 아니면 스타일이 문제였는지, 몽타주를 잘못 그린건지, 원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난 건 실수였다. 채팅창을 통해서만 계속 인연을 이어가는건데. 그렇게 오랜 세월 메일을 주고 받은 레오는 에미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 에미는 레오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 건지 궁금한 건 '이들이 만났을까', '만났다면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라는 물음에 닿아있기 때문인지도.  

  미리 이야기해버리면 재미없으니까 여기까지. 분명한 건, 나에게 에미는 무척 매력적인 인물이란 거. 어느날 나에게 이런 메일이 왔(으면 좋겠)다.

  "제목 : 구독 취소. 정기구독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메일로 취소 신청을 해도 되겠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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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선물은 아무나 하나
    from 남은 건 책 밖에 없다 2009-09-04 17:09 
    8월의 어느 여름 밤. 존경하는 B선배와 W를 이태원에서 만났다. B선배가 출판사를 운영하는 L님을 모시고 나왔다. 비록 수준이 좀 높지만(!!) 내가 무척 좋아라 하는 출판사. L님에게 처음 인사드리면서 "출판해주신 좋은 책들 덕분에 행복한 밤들이 꽤 있었다"는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반응이었음에도 불구, 나 멘트가 넘 매끄럽구나, 빠다 바른듯...하면서 살짝 스스로 놀랐던..ㅋ ) 처음에 갔던 멕시칸+
 
 
반딧불이 2009-09-0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방문취소, 아프님의 서재 정기방문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댓글로 취소신청을 해도 되겠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이런것도 되나요?

마늘빵 2009-09-04 09:15   좋아요 0 | URL
으흣. ^^

머큐리 2009-09-0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 책 한 번 읽으려구요..ㅎㅎ 정말 괜찮으려나???

다락방 2009-09-04 08:22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라니깐요!! (이젠 막 화낸다 ㅎㅎ)

마늘빵 2009-09-04 09:15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라니깐요!! (이젠 막 화낸다 ㅎㅎ) 2

비로그인 2009-09-04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책이 너무 좋아서 리뷰를 못쓰겠어요. 정말 너무 멋진 연인을 만나 그저 하릴없이 그녀 얼굴만 쳐다보는 그런 사람의 기분이어요.

마늘빵 2009-09-04 09:16   좋아요 0 | URL
일곱번째 파도 리뷰를 쓰려다가, 쓰다가 책을 바꿨어요. 일곱번째 파도는 쓸 수 있으려나. 소설의 느낌을 살려 쓰고 싶었지만, 못 쓰겠더라고요. ^^

다락방 2009-09-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아프락사스님이 써주셨고,
[일곱번째 파도]를 재미있게 읽는 방법: 반드시, 반드시 새벽 세시를 먼저 읽고 읽는다.

후훗.
저 둘의 순서가 바뀌면 재미는 절반도 안될거에요, 정말.

마늘빵 2009-09-04 09:16   좋아요 0 | URL
딩동댕.

머큐리 2009-09-05 19:20   좋아요 0 | URL
참고로 이 책은 밤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새벽이면 더 좋고...

또치 2009-09-0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거 이제야 읽었는데...
레오, 에미, 베른하르트, 모두 다 내 곁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출근길에 그 생각하니까 살짝 눈물도 나려고 했어요...
암튼 이건 다 애초에 다락방님, "넛 때문이다" !

마늘빵 2009-09-04 09:46   좋아요 0 | URL
엇, 또치님도 설마 베른하르트에 감정이입한거에요? 그런거에요? ^^

또치 2009-09-04 09:52   좋아요 0 | URL
세 사람 모두에게 다 감정이입이 돼요. 휴, 힘들어.

다락방 2009-09-04 10:55   좋아요 0 | URL
어? 여기에 나 있네요 ㅎㅎ

마늘빵 2009-09-04 11:26   좋아요 0 | URL
여기에 나 없다.

무해한모리군 2009-09-0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so-so였지만,
가슴이 콩닥콩닥 뛰게하는 대목이 있었어요.

아프락사스님은 뵙고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너무 똑같아서 놀랐는데~

마늘빵 2009-09-04 09:46   좋아요 0 | URL
엇, 나를 만났을 때 상상했던 이미지랑 같았다고요? ^^ 이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흐흐. <일곱번째 파도>보다는 이 책이 더 입이 바싹 마르고, 두근두근 거려요. 두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들은 어떻고. 번역 참 잘한듯.

무해한모리군 2009-09-04 11:01   좋아요 0 | URL
목소리는 생각보다 조금 느끼했고 ^^
모습은 생각처럼 부드러운 가운데 단정한 모습이 보였어요~
금요일이니까 칭찬모드~~

마늘빵 2009-09-04 11:25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도 눈이 크고 맑고 다정다감한 인상이 딱 맞았어요. 금요일은 칭찬모드. ㅋㅋㅋ

레와 2009-09-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장 이메일 친구를 만들고 싶어 몸을 부르르르 떨었어요! ㅋㅋ

마늘빵 2009-09-04 11:25   좋아요 0 | URL
메일 주소 입력란에 아무 주소나 쓰고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스팸 메일이라고 지워버리려나. -_-

레와 2009-09-04 14:14   좋아요 0 | URL
음.. 그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요! ㅎㅎ

무스탕 2009-09-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아프님 페이퍼의 첫 줄, 붉은 글씨만 읽고 바로 요기로 마우스 내려버렸어요 ^^
아프님 권장대로 아무 소식도 접하지 않고 읽을거에요!!
(눈 감고, 귀 막고 앞으로만 가야지, 꼭!!)

마늘빵 2009-09-04 23:0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네, 사전 정보 없이 읽으시는 게 제일 좋아요. 야심한 시각에 두 시간이면 다 보지 않을까 해요. ^^ 분위기 잡고.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 이제 베짱이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한경애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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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유명한 책의 저자 호이징가는 중세의 생활은 놀이로 충만했으며,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 또한 놀이 정신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노동과 생산, 발전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많이 만들고 많이 버는 것, 즉 물질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러한 삶이 스포츠와 예술 같은 놀이마저 노동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호이징가는 탄식한다. -33쪽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모두 파괴되고 모든 것이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버린 이곳에서, 아무도 나의 생존과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공포는 끝없는 노동을 강요한다. 과거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사람들의 삶은 훨씬 바쁘고 힘들어졌으며 노동은 고통스럽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행복은 끝없이 연기되고, 미래에 대한 공포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55쪽

1900년대 초에 미국의 기업가 헨리 포드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여주며 영리하게 제안했듯이, 사람들을 착실한 노동자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탐욕스러운 소비자로 만드는 것이다. (중략)
즐거우면서도 생산적일 수 있는 여러 활동, 그 자체로 예술이고 창조인 장인의 작업, 놀이와 섞여 리듬을 타던 노동은 사라졌다. 이제 ‘노동’은 목적을 향해 달리는 고통스럽고 맹목적인 과정이며, 추방되었던 ‘놀이’는 화려하게 포장된 ‘여가용 상품’이 되어 돌아왔다. -65쪽

자유의 왕국은 궁핍과 외부적인 편의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장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칼 맑스, <자본론>)-72쪽

놀이는 무엇이건 ‘노는 것’, 어떤 일을 할 때 취하는 특정한 태도이며, 움직임으로만 포착되는 동사이다. -73쪽

무엇이든 그 자체로 즐기는 태도는 인간의 가장 탁월한 능력이며, 인간은 이를 통해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창조하고 배울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무언가를 진심으로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헉, 노는 데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물론이다. 사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그 자체로 학습일 수밖에 없다. 광장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연습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스스로를 훈련시키는지 생각해보라.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피나는 연습을 거듭하던 어느 순간 전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칼 맑스가 말했듯이, "작곡과 같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일이야말로 동시에 가장 진지하고 가장 맹렬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는 ‘학교’(school)의 어원이기도 하다. -75쪽

니체는 놀이야말로 ‘어떤 세계에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중략) 니체는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믿으며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는 자들이 미래마저 고정된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79쪽

삶을 노는 것은 삶의 규칙을 바꾸는 것, 규칙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고정된 규칙이 있다고 믿는 순간 놀이는 불가능해진다. 어떤 규칙이건 절대적인 명령이 되는 순간, 놀이는 멈추고 모든 움직임은 지루하게 반복되기 시작할 테니. 놀이는 무엇보다도 규칙을 넘나들고 변신시키는 ‘규칙의 놀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고정되는 순간 다른 틈새를 만들어 돌파하라. 삶의 규칙들을 놀이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그 어떤 명령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즐거움으로만 만들 수 있는 그 틈새가 바로 새로운 흐름을 시작하는 물꼬가 될 것이다.-97-98쪽

행동은 반응이 아니라 창조다.(1968년, 프랑스 파리 벽의 낙서)
혁명이란 일상적이 아닌 것을 일상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쿠바의 한 건물의 낙서)-116쪽

현실의 규칙을 몸에 새긴 놀이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듯이, 우리가 ‘노동하거나 돈을 쓰라’는 욕망에 한없이 끄달릴 때 노동의 세계는 더욱 견고해진다.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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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0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 인생역전 으흐흐흐

마늘빵 2009-09-03 10:22   좋아요 0 | URL
로또로 안돼서 인문학으로 인생역전 해보려고... ㅋㅋ

머큐리 2009-09-0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탈주하라는 말인데...글처럼 쉬운일은 아닌듯해서...흠

마늘빵 2009-09-03 10:22   좋아요 0 | URL
말은 쉬운데 이게 참... 그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 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 안녕 고양이 시리즈 1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8월
품절


아이가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추냥이를 발견하고는 "와아! 고양이다, 고양이!"하면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아채면서 한마디 던졌다. "도둑고양이야, 도둑고양이, 도둑고양이는 나쁜 고양이야!"
졸지에 추냥이는 도둑 누명을 뒤집어썼다. 음식물 쓰레기는 엄연히 사람이 버린 것이고, 추냥이는 그저 그것을 헤집었을 뿐인데 도둑고양이란다. 고양이는 억울하다. 아무것도 훔친 적도 없는데, 도둑이라니.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야 ‘도둑고양이’를 ‘길고양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나이 많은 어른들은 집 밖에 있는 모든 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도 과거에는 고양이를 뒷골목을 배회하는 불량배에 빗대 ‘뒷골목 고양이’라고 불렀으나, 요즘에는 ‘방랑 고양이’로 고쳐 부르고 있다. -34-35쪽

옛말에 이슬 하나에도 신이 내린다고 했다. 수천의 인연이 모여서 하나의 생명이 된다고도 한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길고양이 하나 하나도 감정이 있는 생명이란 사실을 잊고 있다. 아무리 나이 드신 어르신이라고 해도 고양이를 죽일 권리는 누구도 부여한 적이 없다. 인간이라고 해서 고양이를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는 심판관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면 고양이는 쓰레기봉투를 뜯지 않게 되므로 거리를 오히려 깨끗해진다. 이는 미국이나 그리스, 스페인에서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거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고양이를 싫어할 수는 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처럼 고양이를 돌보고 먹이를 주는 사람도 비난해서는 안 될 일이다.
누군가는 고양이의 수가 늘어나면 인간이 피해를 입는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다분히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정작 이 지구상에서 개체수 조절에 실패한 건 인간이다. 이건 인간이나 고양이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의 문제이다. 대상이 고양이라고 해서 모든 폭력과 살생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300-301쪽

고양이도 인간과 똑같이 지구의 생명체로 태어나 같은 지층 연대를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는 외계의 생명도 마녀의 동물도 아닌 존재로 그저 우리 곁에 살아갈 뿐이다. 잘못이 있다면 하필 전 세계에서 길고양이가 가장 천대받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 한국이란 곳에서 길고양이는 늘 두려움과 불안, 배고픔으로 떨고 있다. 사실 길고양이의 세계를 알기 전까지 나 또한 고양이가 두려움에 떨고 있든 말든 그냥 무관심했었다. 녀석들을 적으로 여기지도, 친구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녀석들이 한국이란 곳에서, 더구나 도심이란 공간에서 얼마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며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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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품절


왜 당신에게 메일을 쓰느냐고요? 그럴 마음이 내켜서요. 그리고 일곱 번째 파도를 말없이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요. 이곳 사람들은 무척이나 거칠고 고집스러운 일곱 번째 파도가 있다고들 해요. 처음 여섯 번의 파도는 예측할 수 있고 크기가 엇비슷하대요. 연이어 이는 여섯 번의 파도는 깜짝 놀랄 만한 일 같은 건 만들어내지 않아요. 일관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여섯 번의 파도는 멀리서 보면 서로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늘 같은 목적지를 향하죠.
그러나 일곱번째 파도는 조심해야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게 단조로운 도움닫기를 함께 하면서 앞선 파도들에 자신을 맞추지요. 하지만 때로는 갑자기 밀려오기도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거리낌 없이, 천진하게, 반란을 일으키듯,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 만들어놓아요. 일곱 번째 파도 사전에 ‘예전’이란 없어요. ‘지금’만 있을 뿐. 그리고 그뒤에는 모든 게 달라져요. 더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그건 그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 그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지요.-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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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8-30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마늘빵 2009-08-31 09:40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도 곧 읽겠군요. ^^

무해한모리군 2009-08-31 13:32   좋아요 0 | URL
일요일날 책방에서 만지작거리다 바람의 그림자를 사들고 왔어요 ㅎ
전작이랑 너무 비슷한거 같아서..
아프님 밑줄을 보니 읽어야 겠는데요~

글샘 2009-08-31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마늘빵 2009-08-31 09:40   좋아요 0 | URL
글샘님도 혹시 그 책 읽으셨나요? 1권은 두근두근 했는데, 2권은 그렇지는 않아요. ^^

다락방 2009-08-3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곱 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일곱 번째 파도는 거리낌 없이, 천진하게, 반란을 일으키듯,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 만들어놓아요.

아, 정말 좋지요?

:)

마늘빵 2009-08-31 09:40   좋아요 0 | URL
또 밑줄긋기 옮기고픈 부분도 있었는데, 너무 다 옮겨버리면 안 될 거 같아서 이거만 가지고 왔어요.

머큐리 2009-08-3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전작부터 빨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다락방님에 이어 아프님까지...이거 가을에 읽으면 시름시름 앓게되는 소설 아닌가 불안합니다...ㅎㅎ

마늘빵 2009-08-31 11:09   좋아요 0 | URL
1권인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를 먼저 보셔야 해요. ^^

다락방 2009-09-01 10:25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반드시 1권을 먼저 읽으셔야해요. 시름시름 앓는 것 보다는 심장이 벌렁벌렁 할거에요. 후훗.

2009-08-3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