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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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배우되 뜻을 독실하게 하여,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일에서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주희, <근사록>)-9쪽

책이란 순전히 자신의 체제하에서 자신이 지휘하므로 읽는 자의 절대권력에 의해서 서평이 나온다. -10쪽

"모든 책은 빛이고 다만 그 빛의 밝기는 읽는 사람이 발견하는 만큼 밝아진다."-27쪽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스티븐 킹, <인생론>)-100쪽

"소설이란 쓰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마르케스)-111쪽

가난은 결핍의 문제다. 자본가들도 항상 결핍을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결핍과 6세 미만 어린이들이 네 명당 한 명꼴로 사망하는 아이티의 결핍은 차원이 다르다. 그들의 결핍은 탐욕을 낳았다. 그런데 가해자의 탐욕론은 종종 운명론으로 대변된다. 헨리 키신저가 말한, 바구니 밑바닥에 처박힌 신세는 언제까지고 바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배스킷 케이스는 가난 운명론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잘 써먹고 있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가난을 항변하는 것을 피해의식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면서 자신의 탐욕을 채운다. 수전 손택은 의도적인 무관심을 ‘방치된 폭력’이라고 부른다.-206쪽

그런데 이 책(<나쁜 기업>)을 읽고 심히 화가 나서 인터넷 홈페이지에 서평을 올렸더니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느냐’는 댓글이 달렸다. 맞는 말이다. 달라지는 건 없다고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계속 나쁜 기업의 부당한 노동착취를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냐고 나는 반문했다. "스타벅스나 이케아도 기부 같은 것 많이 해요!" 앞에서 내 글에 항변한 독자가 다시 달아준 댓글이다. 그 말도 맞다. 인도네시아에 지사를 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14세 미만의 어린이 노동을 수용함녀서 한편으로는 유니세프에 지속적으로 재정 협력을 한다. 스타벅스는 수익금의 일부를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쓰러뜨리는 이스라엘 폭탄 값으로 보내고 한편으로는 미국 빈민가의 공립학교를 지원한다. 콩고의 탄탈광산에서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에게 하루 1달러의 임금을 주는 삼성은 휴대폰 사업으로 번 수익금을 저소득층 탁아소 운영에 기부한다. 유니세프에 지속적인 기부를 하고 숲 가꾸기 비용을 부담하고 저소득층 자녀 장학금 재단을 만드는 기업정신은 훌륭하다. 거의 완벽한 톨레랑스로 보인다. 설마.-216쪽

"사람에게 마음이 없다면 자신을 칭송하는 말이 천하에 가득 퍼져도 원숭이 한 마리가 태어났다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남명집>)-241쪽

"사진이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우리 눈앞에 가져온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수전 손택)-269쪽

수전 손택은 대중의 ‘의도적 방관’을 무너뜨리는 일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하지만 과자 앞에서 금방 온순해지는 어린아이 같은 대중에게 기대할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나는 부화뇌동의 대중을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소수자의 피 끓는 혁명이다. 그들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본다. -269-270쪽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중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중할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른바 난쟁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어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아,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그저 따라서 좋다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전까지는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속분서 권2 성교소인> 중)-290-291쪽

박정희에 대한 또 하나의 날조는 그의 예술가적 감성을 확대한 것이다.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고 아내를 위해 시를 짓고 피아노를 치는 로맨티스트 아버지는 아우슈비츠 소장이 가스실에 유대인을 밀어 넣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아이들에게 슈베르트 가곡을 피아노로 들려주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박근혜의 부성 콤플렉스는 독재자로서의 이미지를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윤색했다. 실제로 다른 독자 서평에서 박근혜의 이런 이미지 조작에 넘어가 인간 박정희와 어린 딸에게 향수와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중략) 진실의 의도적인 은폐와 은닉과 봉합의 삼박자 리듬을 탄 박근혜의 자서전은 한마디로 역사의 날조를 기술하는 것에 불과하다. 환상조작이란 얼마나 쉬우며 그것에 속아 넘어가기는 또 얼마나 쉽던가!-300-301쪽

"은퇴 이후로 독서가 나를 위로한다.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고통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기대기만 하면 된다."(<드 보통의 삶의 철학 산책> 중)-388쪽

"책 문화에서 하수구 구실을 하는 곳이 헌책방입니다. 책이라는 흐름에서 맨 위에 윗물인 새 책방이 있다면 흘러흘러 맨 아래에는 아랫물인 헌책방이 있어요. 이곳에서 바다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책을 갈무리합니다. 그리고 값어치를 매기며 새롭게 빛을 보도록 이끌어요. 빛을 본 어떤 책은 새 책으로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말라서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빗물로 내려오는 흐름고리라고도 말할 수 있는 책이 헌책방 책입니다."(최종규, <모든 책은 헌책이다>)-436쪽

꿈과 현실의 혼합이 개인의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고통의 파장을 줄일 수는 있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 젊다. 그러니 앞으로 지갑 걱정 없이 마음껏 로브스터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될 수도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돈을 밝히는 일은 속물이다. 그런데 속물이 되지 않고는 부자가 되기도 어렵다. 돈을 속물이라고 비웃지만 돈은 좋은 것이다. 속물로 전락되지만 않는다면.
-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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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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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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