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 - 당당한 나와 오만한 너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7
마이클 에릭 다이슨 지음, 이창신 옮김 / 민음인 / 2007년 5월
절판


"강자는 결코 절대적인 강자일 수 없으며 약자 또한 절대적인 약자일 수 없다. 운명에서 힘을 빌려 온 자들은 그 힘에 지나치게 의존해 파멸한다. 힘은 그것을 소유한, 또는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도 희생자에게만큼이나 냉혹하다. 후자는 힘에 억압되고 전자는 힘에 중독된다."(시몬 베유)-9쪽

부적절한 자부심을 뜻하는 '오만'이라는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유독 이를 강하게 비난한 이들은 그리스 인이었다. 자부심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비난을 받은 이유는 정치 질서를 유지하고 선한 삶을 가능케 하는 기본 선인 용기, 절제, 정의, 지혜가 자부심으로 인해 파괴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아이스킬로스, 투키디데스, 플라톤 같은 여러 저술가는 자부심이 주요 악이며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정치적 재앙의 근원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스 인뿐만 아니라 로마의 중세 사상가와 근대 초기의 사상가들도 자부심의 해악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30쪽

각주12
"롤스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선에 대한, 인생 설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실천 가치가 있다는 분명한 확신'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자존심이란 자신의 목표가 능력이 닿는 범위에만 있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한다고도 말한다. 이 주장을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여기서 롤스가 기술하는 대상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긍심에서 나온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자긍심과 자존심의 차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의심치 않는 사람이 특정한 인생 설계의 가치는 확신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둘의 차이를 모르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인생 설계를, 또는 그 중 일부를 새로 꾸미거나 바꾸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자존심이 자긍심에 비해 더 근본적이고 더 견고하다. 자긍심(인생 설계에서의 자신감)이 자존심(자신의 가치에 대한 판단)과 다르다고는 해도 자긍심이 심각하게 저하된다면 자존심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마이클 M. 무디애덤스, '인종, 계층, 그리고 자존심의 사회적 구축', <철학포럼>, vol.12, no.1-3, 1992-1993년 가을~봄, 254쪽)-166-167쪽

각주14
물론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주장대로 아퀴나스는 정의에 관한 도덕적 성찰의 전통을 놓고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여 준 대립을 극복하려 시도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로마 인들은, 미덕을 바라보는 그리스의 시각을 계승하면서 자부심이라는 죄악을 저질렀다. 이는 영광에 목말라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자부심을 겸손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가치로 대체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악으로서의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매킨타이어는 지적한다. -168쪽

각주26
"고대 그리스 사회는 사회적 지위에서 양극화가 심했다. 상류층 자손이나 부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부나 지위 면에서 스스로를 존중했고 타인에게도 존경받기를 기대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대적 사고방식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도덕적 자질이 아닌, 타고난 운명으로 획득한 그릇된 기반에서 존경받기를 기대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D.S.허친슨, 조너선 바네스 편집,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캠브리지 동료>)-169-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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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5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3-26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일단 저 사랑스러운 표지 마음에 들어요.

마늘빵 2009-03-27 09:11   좋아요 0 | URL
근데 책은 아녀요. -_- 제목과 내용이 부합하지 않아요. 미국 흑인인 저자가 보고 듣고 한 주변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어요. 그 이야기 안에서 '자만'이란 주제를 튼튼히 붙잡고 있는 거 같지도 않고.

무해한모리군 2009-03-27 15:41   좋아요 0 | URL
전 심리학책은 잘 안읽어요.
에세이에 가까운 모양이네요.
 
시민 비타 악티바 : 개념사 3
신진욱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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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자유와 평등, 박애와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정당성을 부여한 국가 권력이 자신의 궁극적인 권력 원천인 시민들을 탄압하는 기구가 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모순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국가에 압력을 가하고자 타인들과 연합했고, 바로 여기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민 집단인 '시민 계급'과 이들의 연합체들로 구성된 근대적 '시민 사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50쪽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감행하길 원한다."(브란트)-74쪽

칸트는 토지나 화폐를 얼마만큼 소유하고 있는지가 정치적 권리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면 안 된다는 보편주의적 이상을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프랑스어의 공민 또는 인간은 만인의 보편적 존엄성과 동등한 권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수한 신생 지배 계급인 부르주아와 구분되는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칸트는 1780년대와 1790년대에 쓴 저작들에서 이러한 보편주의적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국가 시민'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칸트는 그가 살던 당시의 절대주의 국가와 그 통치하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계약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국가시민이 한 명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인정받ㄴ는 한편 국가의 신민으로서 공적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보았다. -84쪽

"인류는 서로 맞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체다. 이들에게 평화 공존은 불가결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항상적인 갈등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 자신에게서 유래한 법을 서로에게 강제함으로써 '세계시민 사회'로 연합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 연합은 언제나 거기서 이탈하는 자들에게 위협받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점차 발전해갈 것이다."(칸트, <실용적 관점에세 본 인간학>)-99-100쪽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소로우)-116쪽

"폭군은 순교자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지만, 그가 죽음도 불사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포피츠, <권력 현상>)-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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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 1 - 도덕 & 지식인 히스토리아 대논쟁 1
박홍순 글.그림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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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사르트르, 리오타르가 직접 한 말이 아닌 이 책의 저자가 각 학자의 입장이 되어 새로 쓴 대화체 문장입니다. 각 학자가 직접 한 말은 큰 따옴표로 별도로 표기합니다. 이 책은 두 가지 논쟁-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논쟁, 사르트르와 리오타르의 지식인 논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밑줄그은 이 주) -0쪽

올바름에 대해 안다는 것은 단지 어떤 것을 이해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올바른 행위를 실천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진정 ‘안다’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안 그러면 안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일세.(소크라테스)-19쪽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을 넘어선 어떤 것, 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어떤 것, 우리가 그것을 위해 희생해도 될 어떤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와 같은 어떤 것은 바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임해야 할 집단적인 것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희생하라는 말을 듣게 되며, 동시에 그렇게 하면 훌륭한 거래를 한 것이라고 확신한다."(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것은 극소수 사람들만의 가치가 인정되고 평범한 사람들은 버림받는 시대의 미심쩍은 도덕률이요, 역사 교과서에 한 자리 차지할 기회를 가진 정치적 귀족이나 지적 귀족들의 도덕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도저히 정의와 평등주의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도덕률일 수가 없다."(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86쪽

윤리적 의미에서의 복종은 개별적인 인간이 사회를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해 자유 의지로 선택한 자유로운 복종으로 이해해야 하네.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인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억압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네. 그러니 윤리를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의 산물로 바라보는 견해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참으로 어리석은 견해라고 할 수 있네.(소크라테스)-88쪽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위치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사상이 어떻게 지배 계급에 봉사하는지를 인식하고 그러한 자신들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며, 스스로가 지배 계급에 기꺼이 복종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반성하며 지금까지 자신이 교육받아온 이데올로기 자체를 문제 삼을 때, 그리하여 자신이 지배 계급의 하수인으로서 일하는 것을 과감히 거부할 때, 바로 그때 전문 기술자인 실용적 지식의 공작요원에서 벗어나 참된 지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일하지 않고 사회와 민중을 위해 일하는, 그런 지식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르트르)-124-125쪽

지식인으로 불리고 있는 사람들을 학교나 연구소에서 사회적으로 훈련시킬 때 그 목적은 그들의 역량 내에서 보편적 주체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상의 수행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수행성은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산출을 만들어내는 것, 즉 최대한의 효율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규정됩니다. 때문에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채 재정과 시간상의 이득, 손실, 작동 결과에 따른 평가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기술적 기준에 해당하는 지식만을 축적하게 됩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사르트르 선생이 말한 진정한 지식인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리오타르)-128-129쪽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은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사르트르)-161쪽

레비는 대중의 의식에 기초한 집단 지성은 철학적인 인식의 전환이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에 따르면 집단 지성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를 "함께 사유할 수 있도록 우리 서로를 아는 법을 배우자"로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데카르트가 제기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일반화시켜서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공동체로 존재한다"로 전환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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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옵티콘
팬옵티콘 2


  최근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몇 권 연속해서 읽다가 의문점이 생겼다. 엄밀히 예전에 어디서 흘려들었던 건데 떠올랐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아마도 사라마구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에 신문에서 그에 관해 다루느라 알아보다 그것 자체가 기사가 된 경우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땐 사라마구에도, 외래어 표기법에도 관심이 없었던 때라 유심히 살피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관심이 생겼다. 지난해 '파놉티콘'과 '판옵티콘'과 '팬옵티콘'이 왜 함께 쓰이는지, 어떤 것이 정확한 표기법인가에 대해 가졌던 의문의 연장이다. 결론만 말하면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파놉티콘' 맞고, 교과서의 '판옵티콘'과 둘보다 조금 덜 쓰이지만 어쨌든 함께 쓰이는 '팬옵티콘'은 틀렸다(이전에 쓴 글 참조). 

  현재 한국의 '외래어표기법'에는 21개 언어에 관해서만 통일안이 확정됐다고 한다.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타이어, 말레이 인도네시아어, 영어, 도이치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헝가리어,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덴마크어, 그르웨이어, 스웨덴어, 폴란드어, 루마니아어가 21개 언어에 속한다. 그밖에  터키어, 그리스어, 아랍어 3개 언어에 관해선 현재 논의 중이라고 한다.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사람이다. 그러면 이미 외래어 표기법에 포르투갈어에 관한 통일 규정을 두었으므로, 이에 따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주제 사라마구와 호세 사라마구, 호제 사라마구가 함께 쓰이고, 번역된 그의 책은 모두 주제 사라마구로 표기하고 있을까. 

  어떤 것이 맞을까? 정답은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 문의하면 된다. 각 언어마다 통일된 나름의 기준에 따라 맞고 틀리고 여부를 알려주므로 간단하게 그곳에 물어보면 된다. 그런데, 단순히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왜, 어떻게 맞고 틀리는가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아가 이러한 나의 관심이 외래어 표기법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그냥 묻고 끝내기엔 많이 아쉽다는 것. 해서 자꾸 이거저거 틀춰보며 공부하게 된다. 파면 팔수록 어문 규정이라는 게 굉장히 재밌다. 외래어 표기법뿐 아니라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도 알수록 점점 더 새롭게 느껴진다.

 외래어 표기법을 좀더 파보면, 우리말에서는 된소리를 사용하는 외래어 표기는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 예를 들면 'p, t, k'를 'ㄲ,ㄸ,ㅃ'으로 표기하지 않는다 - 언제나 그렇듯이 예외가 있다. 2004년 통일 규범이 나왔다는 베트남어와 타이어는 된소리를 모두 허용하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그 외의 다른 언어는 굳이 된소리가 아니어도 표기가 가능한데, 이 두 나라는 된소리를 써야만 현지어에 가깝게 된다는 것이다. 워낙 된소리를 많이 쓰는 언어인지라. 오래전 신문에서 '호치민'이라고 표기하던 것을 지금은 '호찌민'이라고 표기하고, '푸켓'은 '푸껫'으로 표기하는 것이 그 예다. 

  또 예외가 있는데, 중국어와 일본어이다. 베트남어와 타이어만큼이나 모든 된소리를 허용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특별한 경우다. '양자강'은 '양쯔강'으로, 공자의 현지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할 때 '쿵쯔'로, '강택민'은 '장쩌민'으로, '사천성'은 '쓰촨성'(이상 중국어)으로 표기한다. 또, 일본 회사 '미쓰비시', '대마도'의 일본 발음을 한글로 '쓰시마'(이상 일본어)로 표기한다. 중국어와 일본어 표기에서 위의 "p, t, k'를 'ㄲ,ㄸ,ㅃ'으로 표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건 아니지만, 'ㅆ'과 'ㅉ' 등 부분적으로 된소리 표기를 허용한다. 또 다른 특별한 예외가 있는데 - 예외가 많은 건 규정을 먼저 만들고 언어가 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먼저 사용되고 이에 따라 통일된 규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 일상적인 한국말로 쓰고 있는 '껌'이나 '빵' 같은 경우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지만 인정한다는 사실.  

  이러한 외래어 표기법은 "대한민국의 국립국어원이 정한, 다른 언어에서 빌려온 어휘(외래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규정이다. 현행 규정은 1986년에 제정, 고시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언어마다 음운 체계나 문자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언어의 어휘를 한 국어로 흡수하여 표기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외래어 표기법'의 경우 한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 있는 음운을 표준어에 있는 비슷한 음운과 1대 1로 대응시켜 한글로 표기하는 방식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위키백과) 그래서 베트남어와 타이어에, 중국어와 일본어에 대해 예외를 허용할 수밖에 없고, 껌과 빵 같은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외국어를 자국의 언어로 표기하는 데 있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사람 이름을 표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유명인들의 이름만을 모아 표기한 인명 사전만 모아도 방대한 분량이고, 같은 나라에 산다고 해도 출신마다 이름 표기는 다를 수 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버락 오바마냐 바락 오바마냐 기타 여러 가지 이름 표기가 난무했고, 티모시 가이트너도 티머시 가이스너냐 티모시 가이스너냐 티머시 가이트너냐 혼란을 겪게 된다. 해서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는 사람 이름을 모아 통계를 내, 몇몇 알파벳의 결합으로 자주 쓰이는 발음을 뽑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 이름에 관해선 각종 예외를 두더라도 어떤 규정이나 법칙을 두고서 일관되게 표기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외국어 표기는 우리의 자음과 모음을 가지고 현지어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말이 모든 외국어의 현지 발음을 정확히 표기해내기는 어려우므로 한계가 있다.

  주제 사라마구냐 호세 사라마구냐 호제 사라마구냐. 정답이 뭐든 간에, 그건 현지 발음에 가까운 한글 표기일뿐 현지 발음과 정확히 부합하긴 힘들다. 오래전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불러주는대로 한글로 받아 적었던 기억이 난다. "This is an orange" 을 그때 "디스 이즈 언 오렌지"로 받아적었다. 한글로 받아적은대로 발음하면 외국에서 못 알아듣는단다. "디스 이즈 언"까지는 모르겠지만 - 내가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고, 외국인하고 대화한 적도 없어서 - 오렌지는 작년에 여러가지 발음이 난무했지 않은가. 오렌지, 어렌쥐, 오렌쥐, 어린쥐(?) 등등. (물론, 그것을 정확히 발음하는 것과 그것을 정확히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긴 하다.) 평생을 배우려고 낑낑 거리는 영어도 이러한데 다른 외국어들은 어떨까. 

  그럼에도, 한국에서 비행기 한 번 안타보고 평생을 살아갈 한국인들에겐 외래어 표기법이 꼭 필요하다. 그걸 현지어로 옮겨 적고 읽을 수는 없으므로. 정확히 하려면 그 나라말을 배우고 그 나라말로 표기해야겠지만, 불가능하지 않은가. 대다수의 한국인들을 위해 정확치 않더라도 외래어 표기법은 필요하다.

p.s. 위 내용 중 상당 부분은 한겨레 신문사 최인호 기자가 말한 것을 다듬었다. 일단 먼저 국립국어원에 문의하지 않고 '포르투갈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를 찾아보면 'j'는 'ㅈ'으로 표기한다고 되어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주제 사라마구'가 옳은 표기일 - 현지 발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 가능성이 크다.  

p.s 2. 국립국어원에 문의한 결과 '주제 사라마구'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 엄밀하게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고 -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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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3-0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된 표기법을 쓰는 게 참 어렵네요.

마늘빵 2009-03-05 10:51   좋아요 0 | URL
그게 사실상 통일안이 확정돼도, 한국에서는 그 나라 언어를 이렇게 표기하자는 거기 때문에 어려워요. 최대한 현지 언어에 가깝게 쓰자고 하면서도 한계가 있다보니...
 
히스토리아 대논쟁 2 - 정의론 & 제도 히스토리아 대논쟁 2
박홍순 글.그림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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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롤스, 노직, 아도르노, 겔렌이 직접 한 말이 아닌 이 책의 저자가 각 학자의 입장이 되어 새로 쓴 대화체 문장입니다. 각 학자가 직접 한 말은 큰 따옴표로 별도로 표기합니다. 이 책은 두 가지 논쟁-롤스와 노직의 정의론 논쟁, 아도르노와 겔렌의 제도 논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밑줄그은 이 주)-0쪽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 1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선되거나 폐기되어야 합니다. 정의는 한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원리여야 합니다. (롤스)-15쪽

어떻게 ‘사회’를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만으로 인간의 삶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상식에 속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사회란 그 구성원 상호간에 구속력을 갖는 어떤 행동 규칙을 인정하고, 대부분 그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느 정도 자족적인 조직체라고 가정해보아야 합니다. 개인을 넘어서는 자족적인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협동이 필연적입니다. (롤스)-16쪽

이 모든 것을 폭넓은 의미에서 사회 협동적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서로가 얼마만큼 어떻게 기여하였는가를 구분하기 어려운 곤란함이 일차적인 이유겠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부가 기득권을 비롯한 역사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생산 결과에 대한 기여도를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요. 그러므로 이러한 복잡하고 확인할 수 없는 변수들을 배제할 때 공정한 사회계약이 도출될 수 있겠죠. 사회계약론이 고도로 추상화된 자연 상태를 상정하여 계약의 원칙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계약론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로크나 루소 같은 사상가들도 ‘자연 상ㅇ태’라는, 공정한 계약을 위한 가상의 상태를 설정했지요. 저도 그들이 말한 ‘자연 상태’에 해당하는 ‘원초적 입장’을 제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원초적 입장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원시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공정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론적으로 추상화된 상태인거죠. (롤스)-22-23쪽

로크에 의하면 자연은 기본적으로 인간 모두의 공유물이지만 인간 자신, 즉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인 노동력은 그 개인의 배타적인 소유물입니다. (중략) 이러한 소유권이야말로 노동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일차적이고 중요한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개인의 생산 활동을 전제로 할 경우 당연히 정의로운 사회란 소유권적 권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직)-24쪽

롤스에게 정의로운 국가란, 최소 수혜자를 위한 차등이나 불평등이 공정한 ‘절차’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나라를 뜻하며, 한 사회의 불평등한 제도도 최소 수혜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일 때에만 허용될 수 있다. 즉, 최소 수혜자들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 어떠한 제도도 자유의 이름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34쪽

노직은 사회에서 재화의 분배 양식은 모든 것을 분배하는 중앙기관의 활동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재화의 분배는 무수한 개인적 교환의 결과이다. 중앙의 분배가 없는 상태에서는 롤스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분배적 정의의 문제도 있을 수 없다. 그 대신 개인의 소유 형태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노직은 정의의 문제는 소유권적 정의로 정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6쪽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가들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에 대한 사회계약론자들의 기본적인 정의가 뿌리 깊은 편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사회계약론자들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개념을 마치 중립적인 개념처럼 여기고 이에 근거하여 사회 원리를 구성하고자 하는데, 이는 첫 단추부터 이미 잘못 끼우고 있는 오류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53쪽

재화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산 과정의 산물입니다. 생산 과정에 대한 기여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익은 그 기여도에 따라 나뉘어야 합니다.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소득 수준만을 고려하는 차등의 원칙은 생산 과정에 대한 기여도라는 중요한 문제를 무시하는 논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직)-73쪽

노직 선생의 도덕이란, 소유권에 기초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한 사회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회체계가 어떤 불행과 불평등을 낳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사회적인 의미에서 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져버립니다. 사회적인 도덕이 사라진 자리에 약육강식의 논리, 강자의 논리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롤스)-75쪽

롤스 선생이 나의 논리를 ‘강자의 논리’라고 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결과의 정당성은 불평등의 규모에 따른 게 아니라 취득 수단과 과정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의의 원칙은 개인의 소유권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교환의 공정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공정한 교환을 보장하는 것이 곧 시장이라고 봅니다. 롤스 선생이 주장하는 차등의 원칙에 대한 재분배는 오히려 개인의 권한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자 사회 정의에 대한 침해에 해당합니다. (노직)-85쪽

시장의 규칙도 사회계약의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이 결국 주장하는 것은 소유권과 교환의 절차가 정의 이론의 핵심이라는 것인데요, 소유와 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 논리 자체에는 불평등을 완화시키거나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어떤 장치도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히려 불평등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이 그다지 중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롤스)-86쪽

제도는 이렇게 불안정한 인간이 상호간에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찾아낸 형식이라고 봐야 해요. 외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한계에 의해 내적으로 형성된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제도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온 것이며, 인간은 이 제도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문화라는 것도 그렇잖아요. 불안정한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상호관계의 표현물이 문화잖아요. 그러한 문화도 전체적으로 제도들의 구성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겔렌)-132쪽

인간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실현을 하는 존재입니다. 자기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능동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 이성이 인간을, 단지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자율적 존재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아도르노)-132-133쪽

제도를 인간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과 별도로, 모든 경우에 제도적인 영역 안에서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는 잘못된 상식을 깨는 것도 필요합니다. 현실에서 아웃사이더는 제도 안에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 취급을 받습니다. 아웃사이더로 낙인이 찍히는 순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파멸당하지 않기 위해서 제도가 정한 틀 내에서 경솔하지 않게 처신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개인이 제도에 대해 무저항 상태에 이를 때 사회는 그를 신뢰할 만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합니다. 개인의 반항을 질식시킨 다음 백기를 든 개인들에게 항구적인 자비를 베푸는 통합의 기적은 바로 파시즘의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제도는 불가피한 범위 내에서만 인간에게 요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용인되어야 합니다. (아도르노)-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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