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는 결코 절대적인 강자일 수 없으며 약자 또한 절대적인 약자일 수 없다. 운명에서 힘을 빌려 온 자들은 그 힘에 지나치게 의존해 파멸한다. 힘은 그것을 소유한, 또는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도 희생자에게만큼이나 냉혹하다. 후자는 힘에 억압되고 전자는 힘에 중독된다."(시몬 베유)-9쪽
부적절한 자부심을 뜻하는 '오만'이라는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유독 이를 강하게 비난한 이들은 그리스 인이었다. 자부심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비난을 받은 이유는 정치 질서를 유지하고 선한 삶을 가능케 하는 기본 선인 용기, 절제, 정의, 지혜가 자부심으로 인해 파괴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아이스킬로스, 투키디데스, 플라톤 같은 여러 저술가는 자부심이 주요 악이며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정치적 재앙의 근원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스 인뿐만 아니라 로마의 중세 사상가와 근대 초기의 사상가들도 자부심의 해악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30쪽
각주12 "롤스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선에 대한, 인생 설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실천 가치가 있다는 분명한 확신'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자존심이란 자신의 목표가 능력이 닿는 범위에만 있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한다고도 말한다. 이 주장을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여기서 롤스가 기술하는 대상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긍심에서 나온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자긍심과 자존심의 차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의심치 않는 사람이 특정한 인생 설계의 가치는 확신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둘의 차이를 모르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인생 설계를, 또는 그 중 일부를 새로 꾸미거나 바꾸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자존심이 자긍심에 비해 더 근본적이고 더 견고하다. 자긍심(인생 설계에서의 자신감)이 자존심(자신의 가치에 대한 판단)과 다르다고는 해도 자긍심이 심각하게 저하된다면 자존심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마이클 M. 무디애덤스, '인종, 계층, 그리고 자존심의 사회적 구축', <철학포럼>, vol.12, no.1-3, 1992-1993년 가을~봄, 254쪽)-166-167쪽
각주14 물론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주장대로 아퀴나스는 정의에 관한 도덕적 성찰의 전통을 놓고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여 준 대립을 극복하려 시도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로마 인들은, 미덕을 바라보는 그리스의 시각을 계승하면서 자부심이라는 죄악을 저질렀다. 이는 영광에 목말라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자부심을 겸손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가치로 대체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악으로서의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매킨타이어는 지적한다. -168쪽
각주26 "고대 그리스 사회는 사회적 지위에서 양극화가 심했다. 상류층 자손이나 부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부나 지위 면에서 스스로를 존중했고 타인에게도 존경받기를 기대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대적 사고방식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도덕적 자질이 아닌, 타고난 운명으로 획득한 그릇된 기반에서 존경받기를 기대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D.S.허친슨, 조너선 바네스 편집,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캠브리지 동료>)-169-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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