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구판절판


희소성이라는 상황은 "욕망은 무한하고 달성하고픈 목적은 끝이 없는데 수단이 부족할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욕망이 무한하지도 않고 달성하고픈 목적이 많지도 않은 사람들, 자우림의 노래 가사처럼 "하고픈 일도 없고 되고픈 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도 희소성 공리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일까. 배를 곯으면서 낮잠을 즐기는 이들의 사회가 하나의 극단이라면 인간의 운명은 희소성과의 투쟁이라고 선언한 뒤 불철주야 경제 행위에 매진하다가 일 중독증이나 과로사에 봉착하고 마는 근대적 인간형도 또 하나의 극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경제는 희소성에서의 선택이라는 정의의 보편 타당성은 심대하게 타격을 입게 된다.-26쪽

희소성이란 경제나 재화와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주로 권력과 관련이 있다. ‘무한한 욕망’과 더불어 희소성을 낳는 또 하나의 축인 ‘한정된 수단’이라는 것도 의심스럽다.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재화는, 햇빛이나 엄마의 사랑처럼 공짜로 얻을 수 있어 비용 문제가 생기지 않는 자유재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비용을 치러야 하는 희소재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몇십 년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전화는 상당히 희소한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전화를 개인 생필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유재까지는 아니지만 구입을 위해 치르는 비용 또한 상당히 줄어들었다. 반대로 어떤 일들이 만약 자유재였던 지하수나 공기를 독점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가게에서 물이나 공기를 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재화 자체에서 희소성이란, 주로 어떤 것을 희소한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그 사회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결정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지 그 수단의 본질 자체에서 비롯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28쪽

획득의 기술이 가정생활에 종속되는 하위 기술이라면 물자를 조달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마취사가 안전하고 성공적인 수술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망각한 채 제 흥에 겨워 "마취술의 한계에 도전한다"면서 극단을 달리면 그야말로 큰일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획득의 기술도 가정의 행복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무시한 채 "돈벌이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굴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두 기술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더 많은 부의 획득"을 목적으로 가정생활을 관리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사라지고 가정인지 공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혹사당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경제 행위에서의 목적 합리성이 독립되어 따로 노는 것을 피하고 철저하게 가치 합리성의 차원에 복무하도록 묶어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95쪽

"인생은 포이에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이다."(아리스토텔레스)-112쪽

자연적인 생활과는 동떨어진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획득의 기술이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과정은 이미 보았다. 만약 행복한 삶의 내용을 구성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목적으로 삼던 수많은 종류의 프락시스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획득의 기술의 하위 기술이 돼버린다면 이윤이라는 결과를 낳기 위한 포이에시스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또 기존의 포이에시스에 해당하는 활동들도 일단 이윤을 목적으로 획득의 기술의 하위 기술로 전락하게 되면 원래 목적했던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113쪽

"국가란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도덕적 내면이나 일상생활의 영역에 참견하는 도덕적, 윤리적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생겨난 연합에 불과하다."(존 로크)-129쪽

오로지 가장 강하고 효율적인 자들만이 살아남고 대다수의 무능한 자들은 굶어죽거나 지배당하도록 자유방임이 보장되어야 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그러한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사회적 다윈주의)은 공공 교육에 반대하고 아동의 노동금지 법안이나 근로 환경 개선 법안 등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138쪽

그(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통용되던 경제학 이론(편의상 고전파라고 부를 수 있다)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에 대한 욕망, 즉 소비에 대한 욕망만을 가질 뿐이며 화폐는 단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한 교환의 매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폐 자체에 대한 욕망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돈이 생기면 무조건 써버리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 소비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희생일뿐인 저축을 장려하려면 어떤 보답이 따라야 한다. 그 보답으로 주어지는 것이 이자이며, 이자율은 궁극적으로는 실물 생산에서의 생산성과 이윤율에 의해서 결정된다. -158쪽

케인스는 기본적으로 권력욕이나 성욕과 같이 독립적인 욕망의 한 종류로서 ‘돈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한 동기로만 돈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돈 그 자체를 소유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파와 달리 저축이라는 행위는 순수한 희생이기는커녕 그 자체로서 즐거운 놀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케인스가 자본주의의 역동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심리 현상이라고 보았던 유동성 선호 현상이다. 따라서 이자라는 것의 의미도 돈을 모아놓는 것에 맛을 들인 수전노들로 하여금 돈을 풀어 투자로 이끌기 위해 지급되는 유동성에 대한 일종의 웃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자율은 화폐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결정될 뿐 아니라 고전파와는 반대로 오히려 이것이 자본의 한계 효율과의 비교를 통해 실물 생산의 투자에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이자율을 적당히 낮춰가면서 화폐 보유자들의 유동성 선호를 조절하여 장기적으로는 이 금리생활자들을 ‘안락사’시켜버리는 일이다. -158-159쪽

여기서부터 각주

27) 여기서 교역trade와 시장market은 구별해야 한다. 인간 또는 인간 집단 간 물품의 이동을 전부 교역이라고 한다면, 교역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의 교역이 항상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흥정에 의해 자유롭게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고려와 원나라의 교역처럼 조공 형태를 띨 수도 있고, 또 산간 오지의 미개인들처럼 원정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또 요즘 우리가 결혼할 때 겪게 되는 혼수, 예단과 같은 선물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그런데 일부 현대 경제학자들은 교역과 시장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적, 인류학적 지식의 결여에서 온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웨이틀리 주교는 인간 사이의 모든 물물 이동을 시장 교환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을 아예 교환학이라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동서고금의 모든 인간 사회에는 (교역이 아니라) 시장이 존재해왔다"는 혼동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용어상의 혼동만 피한다면 시장 없이도 사회의 발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171쪽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약탈을 자연적인 생계 활동으로 보는 것은 현대인에게는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인간이 먹이를 얻기 위해 동물들과 싸우는 수렵의 기술은 자연적이다. 그렇다면 "수렵은 단지 동물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타인들에게 지배당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그 자연의 뜻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전쟁은 자연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윤을 남기는 상업을 비자연적인 것이며 일종의 도둑질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도둑질도 용감하게 창칼을 휘두르며 하면 자연적인 것이지만 치사하고 쩨쩨하게 판매자, 구매자를 등치는 식으로 하면 비자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상업은 그야말로 "강도질만도 못한 도둑질"이 되는 셈이다. -1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32-33쪽

"기억이 존재하는 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73쪽

정민과 잠을 자고 난 뒤로 나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알고 봤더니 이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서로 몸을 비벼대며 한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온기가 필요한지 깨닫게 된 것뿐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다음부터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마녀의 오랜 저주에서 풀려난 것처럼 저마다 자신만의 입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길거리에 버려진 귤껍질이 방금까지 그 귤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혼난 마음을 달랜 아이의 하루를 얘기했고, 공중전화부스에 펼쳐진 전화번호부는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혹시 오래 전에 서울로 떠난 여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번호부를 펼쳐본 주부의 사연을 들려줬다. -88-89쪽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나의 결론은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으리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오직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닿는 입술의, 그 손길의, 살갗의, 그 몸의 움직임뿐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94쪽

"반석 위에 집을 지어라. 그 반석이란 네가 스스로 말살시킨 고유의 천성이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아내의 사랑에 대한 꿈이며, 네가 열여섯 살 때 가졌던 인생에 대한 꿈이다. 너의 환상들을 약간의 진실과 바꾸어라. 너의 정치인과 외교관들을 짐을 꾸려 떠나보내라. 이웃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올바르게 생각하고 주의를 부드럽게 환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123쪽

한국을 떠나오던 날, 공항에서 정민을 껴안은 채 오랫동안 서 있었던 것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정민은 토요일 저녁이면 외로울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도 토요일 저녁이면 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은 히말라야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도 히말라야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민은 겨울이 오면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나도 겨울이 오면 정민과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민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나는 모두 진짜라고 말했다. 안고 있던 팔을 떼고 바라보니 정민의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정민은 내 뺨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170-171쪽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지. 침묵을 이겨내기 위해 태어났지만, 결국 또다른 침묵으로 끝날 뿐이니까. 삶이 그런 것처럼."-227쪽

"자유란 관념이 아니라 욕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인간의 욕망보다 강한 권력은 이 세상에 없는 모양입니다."-236쪽

"폭력에 관한 한 제비뽑기를 하는 사회인 거죠."-329쪽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378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08-10-0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4쪽 저말. ㅎㅎ 정말 외우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요.

마늘빵 2008-10-03 00:36   좋아요 0 | URL
저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은게 1년반에서 2년은 된거 같은데, 다시 소설을 읽고픈 욕구가 막 솟구쳐요. 이 책으로 인해서. :) 김연수 처음 접했는데 다른 책도 읽고파지네요.

웽스북스 2008-10-03 01:00   좋아요 0 | URL
어머 정말 1년반에서 2년이요? 어휴
저는 소설책 안읽고 인문학책만 계속 읽으면 막 마음이 닭가슴살처럼 퍽퍽해지는 기분이어서 ㅋㅋㅋ (아, 제가 닭가슴살은 좀 좋아합니다만 ㅋㅋ) 김연수의 친한 친구인 김중혁 책도 읽어보세요 ㅎㅎㅎ

마늘빵 2008-10-03 09:02   좋아요 0 | URL
^^ 소설을 안 읽은지 꽤나 오래되었죠. 아무래도 저는 한 주제에 꽂히거나 한 분야에 꽂히면 계속 그거만 파는지라. 소설에 빠지면 또 소설만 읽게 될지도. -_-

하늘바람 2008-10-03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넘 읽고프네요

마늘빵 2008-10-03 09:05   좋아요 0 | URL
^^ 오랫만에 집어든 소설이었는데 좋았습니다.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1
이성숙 지음 / 책세상 / 2002년 4월
구판절판


상업적인 섹스는 인간의 감성적인 욕구와 물질적인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킨다는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는 곧 남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매매춘" 형태가 될 것이며, 나아가 강요된 여성의 삶의 한 형태인 매춘 여성의 삶의 질 또한 향상될 것이다. -22쪽

도덕적, 종교적 페미니즘은 매매춘에 대한 남성 위주의 도덕과 윤리 중심주의 견해에 머물고 있다. 윤리 중심주의의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매춘 여성들은 구석으로 내몰린다. 도덕적 페미니즘 정책이 매춘 여성이라는 '인간'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를 위한 정책이 된 것은 페미니스트 지식인들이 '사려 깊은 척하거나 점잖은 척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1쪽

만약 두 성인남녀가 성적 행위를 위해 경제적 거래에 합의하고, 그들의 행위가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하거나 부도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따라서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다시 한 번 의심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35쪽

자본주의는 여성들로 하여금 성적인 서비스를 파는 매춘 여성이 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파는 임금 노동자가 되도록 몰아넣기도 한다. 매춘 여성과 임금 노동자 둘 다 비인격적인 사회 제도의 희생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 각각의 활동에 관해 도덕성을 부여하는 합리적인 가설이 존재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매춘 여성들을 자본주의에서의 착취가 집약적으로 드러난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매춘 여성의 상황을 또는 임금 노동자의 비천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는 계급에 의해 착취당하지만 매춘 여성은 성과 계급에 의해 이중으로 착취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춘 여성은 임금 노동자보다 더 심각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희생자인 것이다. -57쪽

남성 고객이 매춘 여성을 성적 만족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매춘 여성들 역시 남성 고객을 그녀의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매매춘에 관련된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85쪽

물론 페미니스트 정치 이론가들은 결혼 제도를 반대하고 있지만, 매매춘 제도에 대한 비난만큼 강도가 높지는 않다. 다만 결혼 제도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도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늘 강요된 직업과 삶을 살고 있다. 정치 이론가들은 규정된 아내 역할과 성 서비스의 제공자가 될 가능성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고용 기회의 확대와 평등 임금을 위한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여성도 아내(부엌데기 남편)를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남녀 평등 사회가 실현된다면, 매춘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여성의 수는 줄어들고 아마 매춘 남성의 수가 증가할 것이다. -94쪽

다소 비약하는 측면도 있지만, 섹스는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획득할 수 없다면 구매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영양분이다. 사먹는 음식이 그렇게 항상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96쪽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받고 성적인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규정할 수 있는가?-104쪽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위해 음식물을 판매하는 것은 건전한 일로 인식되어왔으나 감성적인 느낌을 판매하는 것은 더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차이는 문화적, 종교적, 성적 금기의 사회적 영향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나체는 공격이며, 성기는 방어적이고, 여성의 생리는 더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은, 인간의 성을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것이라고 규정하고 싶어하는 신경 과민증 환자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금기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금기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간호사가 신체 장애자들의 목욕을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춘 여성을 남성의 자위 행위 또는 수음을 도와주는 도우미쯤으로 여길 것이다. 간호원의 역할은 환자들의 보건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며, 매춘 여성의 역할은 손님들의 감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105-106쪽

매매춘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강제의 형태가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매춘 여성 역시 매춘을 하나의 승인된 직업으로 간주해야 하고, 매춘이라는 직업을 자율적으로 선택한 성인 여성이어야 한다. 달리 말해 건전한 매매춘이란 강제적이지 않고 자발적인 매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전한 매매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것을 합법화해야 한다. 매춘 여성이 법률 위반죄로 고발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인 불행을 감소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건전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제공받아야 한다. -132쪽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rch 2008-10-0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점이 당혹스러운가요?

마늘빵 2008-10-01 21:44   좋아요 0 | URL
흐음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데, 나름 페미니즘 운동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듯 하면서도, 그 연결고리들이나 논리를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성매매는 정당하고, 여성들이 남성의 성을 구매할 수 있는 것도 더 쉬워져야한다는 식으로 흘러요. 책을 읽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깐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성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해서 신체를 도구로 이용해 사고 팔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니깐 결국은 유럽이나 미국식 성매매 방식으로 가자는건지. 아예 합법화시켜서.

2008-10-02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2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4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5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5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5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2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2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품절


(전략) 나는 그에게 계속 눈을 뜨고 있으라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눈을 뜨고 있으라고 요구한다. 그것은 마치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너무 어렵다고 그가 말한다. 그래도 나는 우긴다. 내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듯이 그가 나를 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나를 바라본다. 그 눈길이 다정한 눈길인지 고통스러운 눈길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와 조용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독서의 장점은 그가 생각하듯이, 사랑의 장점과 그렇게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에게 설득시키려고 애쓴다. 그는 어쩌면 그게 맞는 얘기일진 모르나 지금 당장은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그걸 알고 있고 확신하고 있따. 나는 내 얼굴 윤곽이 가물가물해지지 않도록, 목소리가 지리멸렬해지지 않도록 애를 쓰고, 바라보는 눈길과 입 밖에 내는 말을 또록또록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엉덩이에 두 손을 대고 있다. 그는 사랑의 저 절망적인 힘으로 나를 압박한다. (후략)-183-184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10-02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는 의자 그림이 그려진 옛날 판형을 갖고 있는데, 표지가 새롭게 바뀌었군요.

마늘빵 2008-10-02 18:48   좋아요 0 | URL
옷 옛날건 모르는데... ^^ 판권을 보니 98년에 초판 나오고 2008년에 새로 나왔더라고요. 요고 재밌었어요.
 
정의와 정의의 조건 問 라이브러리 1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절판


법은 여러 사람이 이루는 사회에 없을 수 없는 자유와 그 한계를 밝히는 일을 한다. 법이 특히 중요해지는 것은 합리성과 일관성의 규칙에 입각하여 자유의 테두리를 넘어 경계선을 범하는 사람들에게 제제를 가하는 일에 있어서이다. 이 때의 법률판단에는 일반적 명제만이 아니라 낱낱의 사람의 사정에 대한 검토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학의 교육에는 문학과 철학 등의 교육이 필수적이다. -4-5쪽

그러나 여기에서도 인간에 대한 일정한 도덕적 윤리적 이해가 없을 수가 없다. 타협의 제도에도 인간의 삶에 대한 일정한 가치적 선택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원하든 아니하든 도덕과 윤리의 문제는 사람이 살 만한 사회를 생각하는 데에서 핵심적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시장과 시장의 규율과 도덕윤리 中)-23쪽

동정심은, 정의의 동력이 되는 데에는 너무나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선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의 심리를 나타낸다. 또 그것은 자기의 이익과 맞부딪치게 될 때, 그것을 넘어서기 어렵고, 또 어떤 경우에나 ‘이익의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서 작용하기 어렵다. 흑백 인종갈등에서, 근본적으로 백인은 흑인에 대하여 공동체적 관심, 또 그러니만큼, 동정심을 가질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동정심이 언제나 차단된 것은 아니었지만, 백인의 동정심은 흑백의 상하질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정심은 보이지 않게 흑백 인종차별의 제도를 지속하는 데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몇 가지 연구를 종합한 바발렛의 결론은 백인의 동정심이 흑인의 기본권의 요구에 있어서 분개심에 의하여 대치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억압적 사회제도가 무너질 수 있었다.-53-54쪽

(복수심과 분개심의 차이에 관해)
전자는 권력관계에서의 부당한 불균형을 바로잡아야겠다는 마음 그리고 자존심에 관계되고 후자는 "외적으로 받아들여진 기분과 가치와 규칙의 관점에서의" 부당성을 바로잡고자 하는 감정이다. 앞의 감정은 구체적 개인에 가해진 구체적 상해를 바로잡겠다는 행동에 이어지는 데 반해, 이것을 전체성으로 즉, 보다 넓은 것으로 열어놓는 것이 분개심이다. 바발렛에 의하면, 분개심은 "수긍할 수 있고, 바람직하고, 타당하고, 정당한 결과와 절차를 벗어난 데 대한 감정적 인식"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복수심’을 특정한 상해행위보다는 ‘상해가 일어나게 된, 손상된 권리의 장’, ‘상해의 일반적 형식’을 향하게 된다. 말하자면 분개심이 상해가 일어나게 하는 체제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게 하고 행동을 그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54-55쪽

그(바발렛)는 ‘복수’를 ‘복수심’으로, 이것을 다시 ‘분개심’으로 대치한다. 이것은, 개인의 심성에 일어나는 것이면서도, "외적으로 받아들여진 기준과 가치와 규칙의 관점"을 포함하는 복수심이다. 그러나 이 기준과 가치와 규칙이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될지 또 보편적인 것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어떤 인간의 심성적 특징도 그 자체로 사회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제3자의 관점 또는 더 적극적으로 이성의 여과과정을 거처ㅣ고 그것이 다시 제도화됨으로써만 규범성을 획득한다. -64쪽

분개심은 완전히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에도 그 자체만으로는 삶의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 거기에 어떤 대중적 가치가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분히 사회를 발전시킬 긍정적 가치보다는 부정에 입각해서 성립하는 가치이기 쉽다. -65쪽

‘고귀한 개인’은 그 자신의 값어치, 자신의 존재의 충만함에 대하여 천진하고 무반성적인 의식 - 자신의 존재가 우주에 뿌리하고 있다는 듯, 깨어 있는 매순간을 풍부하게 하는, 막연한 자아의 존재에 대한 천진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자존심’이 아니다. 자존심은 이 ‘천진한’ 자신감이 줄어든 것을 경험하는 데에서 나온다. 자존심은 자신의 값어치를 억지로 ‘부여잡고’ ‘잃지 않으려는’, ‘쥐어 잡음’의 표현이다. 고귀한 사람의 천진한 자신감은, 근육에 그 긴장감이 자연스럽듯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그 실질 그대로 그리고 모양 그대로 받아들인다. (계속)-85-86쪽

(이어서) 그럴 도리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것을 기뻐하고, 그로 인하여 세계가 보다 사랑에 값하는 것이 된다고 느낀다. 그의 천연스러운 자신감은 특정한 자질이나 재능이나 덕성에 기초한 평가에서 나오는 ‘복합물’이 아니다. 그것은 당초부터 그의 본질과 존재를 향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우월한 자격을 가졌거나 타고난 자질을 가졌거나 또는 다른 어떤 점에서 낫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러한 인정은 자신의 값어치에 대한 천진한 의식을 줄어들게 하지 않는다. 그 자신감은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고 업적이나 능력에 의하여 증명할 필요가 없다. (셸러)-85-86쪽

사과는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는 일이고, 되돌아봄은 반성작용의 일부이고, 자신이 관계된 일이지만, 제 3자적 관찰자 ‘사리에 밝은 관찰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을 말한다. 상징적 사과는 당초부터 과거사에 대한 반성적 회고의 일부를 이룬다. 이 반성에는 처음부터 제 3자 개입의 공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제3자가 할 수 있는 일의 핵심은, 엄밀하게 말하면, 사과라기보다는 당사자들에게 그러한 사과와 화해를 권고하는 일이다. 권고에는 권고자와 당사자들 간의 관계에 의한 정당화가 필요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당사자가 아니면서 사과한다고 할 때, 그 근거는 한국과 베트남 간의 문제라면, 권고자가 한국이나 베트남인이 과거의 사건에 책임을 느끼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사과는 사과에 대한 권고이면서 자신의 사과이기도 하다. -1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