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엄청났다. 정말 유명 뮤지션의 콘서트 현장 같았다. 퇴근하고 잽싸게 가도 지각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리니 마을버스가 이미 사람들을 가득 채우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뒤이어 또다른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앞문, 뒷문 할 것 없이 사람들을 가득 채우고 떠난다. 어떤 이는 한 손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고, 어떤 이는 여자친구, 남자친구와 샌들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은 20대에서 30대였지만, 가끔 나이 좀 있으신 분들도 보였다.
경희대 앞에 내리자, 샌들 사진을 건 세로 현수막이 세워져 있고, 가는 길목을 안내하고 있었다. 김영사에서 준비 잘 했다. 갈 길이 먼 데 지각한 마당에 길 찾으라 땀 뺄뻔 했다. 어차피 사람들 따라 가면 되긴 했지만. 지하철역에서 경희대는 꽤나 멀었고, 경희대 정문에서 강연장까지는 더욱 멀었다. 택시를 탈까도 했는데, 금방 도착하려니 하고 걸었건만, 한참이다. 가파른 언덕을 지나 정상에 세워진 건물에 들어선다. 티켓을 꺼내 보여주고는 얼른 문으로 들어간다. 주변에는 택시들이 줄을 잇는다.
이미 15분 가량이 지났다. 시작했을까 걱정했지만, 아직 시작 전. 자리를 찾아 앉자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 분이 나와 연구원 소개를 간략히 하고, 샌들을 소개한다. 시작 딱 맞췄다. 넓은 강연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고 빈자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 대단한걸. 샌들이 이렇게 인기 있다는 것, 그의 책이 그렇게 많이 팔렸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샌들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샌들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방가방가 라고 말하며 할 줄 아는 한국어를 다 해버렸다고. 방가방가는 누가 알려준거야. ^^ 정의에 관한 세 가지 견해를 이야기하고, 바로 사례로 들어간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구명 보트에 선원 네 명이 탔는데, 한 명은 선장, 셋은 선원입니다. 한 선원은 열일곱 살이고, 바닷물을 먹어 몸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한 선원이 생존을 위해 제비뽑기를 하자고 제의합니다. 다른 한 선원이 이를 반대합니다. 시간이 지납니다. 선장이 제의합니다. 쓰러진 열일곱 선원을 죽이자. 그들은 그의 시신을 먹으며 구조대를 기다리고, 결국 구조됩니다. 당신이 판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강연장에 앉은 청중들이 샌들의 말에 따라 손을 들고 대답을 한다. 대부분의 답변자는 영어로 답했고, 샌들은 영어로 묻고 또 답한다. 통역사 대신 손으로 타자를 치는 번역가가 바빠진다. 다행히 거대한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번역된 한글이 올라와 강연을 따라가기는 쉽다. 오랜 시간 번역하며 타자친 분 고생하셨습니다. 한국어로 질문할 땐 샌들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통역사의 말을 전해듣는다. 질문자들은 각기 전공자이거나 윤리학의 핵심 주장들을 알고 있는 듯, 공리주의와 칸트,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반영한 질문을 제때 잘 던져주었다. 샌들이 유도하긴 했지만.
초반에 공리주의 견해가 많이 나왔는데 답변자들이 공리주의적 입장에 동의해서 그런 답을 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일부러 논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강연을 재밌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철저한 공리주의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보통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철학과 수업에서는 이런 형태가 일반적이다. 발제자는 철저히 자신이 발제하는 철학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머지 앉아있는 학생들은 다른 입장에서 발제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비판한다. 답변을 하고 나면 샌들은 답변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며 압박한다. ^^ 위트 있는 멘트와 함께.
이렇게 대충 공리주의와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훑고 나서, 본격 현실적인 이슈에 적용한다. 가상의 상황을 마련하는데 앞으로 10년 후 남북한이 통일이 되었고, 평양에 하버드 대학이 생겼다. 총장이라면 어떤 사람을 입학시키겠는가? 한 답변자 왈 성적이 유일한 기준이다. 한 총장 왈 소수 우대 정책에 따라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지 못한 북한 학생들을 우대한다. 이것이 미국에서 한참 뜨거웠던 대학의 소수자 우대 정책 논쟁이다. 샌들은 그걸 한국의 가상 상황에 끌어온 것. 하버드 내에서도 한참 시끄러웠다고 들었다. 하버드의 엘리트 보수학자 하비 맨스필드가 대표적으로 소수자 우대 정책 반대자이다.
이에 관한 논쟁이 지나고, 샌들은 청중의 개인적인 질문을 받는다.정의와 진리는 어떤 관계냐, 당신은 무엇이 공동선이라고 생각하느냐, 왜 우리는 정의롭게 살아야 하느냐,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 어렵고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샌들은 솔직하고 충실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대충 둘러대지 않고. 오바마가 성공한 것은 정치에 윤리와 도덕적 논쟁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연설을 하면서 항상 도덕적 정책을 확립하고 실시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용토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샌들은 오바마에 대해 호의적이었지만,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에 관한 여러 이견들이 광장에 놓여져 논의될 때 좀 더 정의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비판한 정의론의 창시자격인 롤스의 견해이기도 하다. 롤스는 자유롭고 평등한 합리적인 개인들이 광장에서 각자의 의견을 내놓고 논박을 펼치며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샌들은 강연에서 자신의 철학적 견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지역 공동체와 신념, 인종, 마을 등등으로부터 나오는 정체성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이것이 그의 공동체주의 철학을 살짝 흘린 부분이다. 그 외에는 여러 철학자들의 정의관을 객관적으로 안내하고 느끼게 해주었다.
나도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 당시 말한 바 있고, 이택광도 한 칼럼에서 언급했지만, 사실 샌들보다는 롤스가 더 읽혀야 한다. 샌들은 공동체주의 - 본인은 공동체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 자이다. 반면 그가 비판한 롤스는 정치적 자유주의자로 불리는데, 롤스가 자유주의자라고 불린다고 하여 그가 우파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정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때문에 그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에 국한된다. 경제적 부분에 있어서는 평등을 내세우고, 소수자 우대를 중시한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말할 건 못된다, 솔직히.
이런 우려는 있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사실 정의의 철학사적 견해들을 재밌게 해설해놓은 것이어서 많이 읽히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물론 샌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자신의 견해를 뒷배경에 깔아놓고 있기는 하다. 공리주의와 칸트를 소개하고, 롤스를 소개하며 비판하고, 후에 매킨타이어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치하는 목차 자체가 그렇다. 오늘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주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제일 나중에 배치했고. 옳음에 대한 우선성보다는 좋음에 대한 우선성을 내세우는 샌들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샌들은 우려하듯 그렇게 위험한 철학자는 아니다. 샌들보다 롤스를 읽는 것이 훨씬 낫지만, 그는 적어도 이 땅에 '정의'에 관한 붐을 일으켰다. 토론의 장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덕분에 정의에 관해 언급한 철학자들을 해설한 책을 30만 명 이상이 읽었고 - 산다고 다 읽는 건 아니지만 빌려 읽은 이도 있으니 - 수천명이 한 강의실에 앉아 정의에 관한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건 대단한 열기다. '하버드' 간판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의에 목마른 사람들만 여기에 모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건 샌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부분이다. 샌들을 읽었으면 이제 롤스를 읽을 차례다. 그게 진짜 정의론이다.
p.s. 샌들을 초청한 아산 측과 자리 마련하느라 고생한 김영사에 감사의 인사를! :) 앞으로 유명 학자들을 초청할 땐 이런 식의 대중 강연을 기획해보는 건 어떨까. 맨 대학교수, 강사, 대학원생들 몇몇 모여서 학자와 질문 몇개 주고 받으며 끝내지 말고. 물론 대중 강연에 익숙한 샌들이기에 이런 대규모 대중 강연이 가능했겠지만. 적어도 다른 학자들과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론 피터 싱어 한 번 보고 싶은데. 연세가 너무 많아서 힘드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