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놈의 예비군 훈련만 갔다오면 안 하던 욕도 입에서 막 나오는데, 제발 좀 욕 안하게 해줄 순 없는건가. 단지 얇은 군복 입고 산속에서 추위에 발발 떨며 하루 종일 있었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그건 그럴 수 있다. 어제 날씨가 갑자기 워낙 추워졌으니. 배려 안 해줬다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예비군 훈련 중에는 정신교육 혹은 안보교육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약 한 시간 반 정도 강당에 들어가서 예비역 별님 혹은 현역 대대장의 말을 들어야 한다. 예비군들이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유일하게 추위에 발발 떨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일전에 내가 어떤 예비역 중령인지 대장인지 하튼 좀 높다하는 양반의 필리핀 여자 엉덩이가 어쩌고 저쩌고, 러시아는 또 어떻고, 이런 말들에 대해서 분노하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여성 비하적인 발언은 아니었고, 도무지 논리와 맥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 오늘 기사에 맥락도 논리도 없는 안상수의 '좌파 교육이 오늘날 성폭행 낳아' 발언과 비슷하다 - 내용이었다. 우리가 미국과 붙어먹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서너가지로 요약을 해서 말해주는데, 자면서도 이런 어이 없는 말들은 다 들린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 일본과 달리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를 침략할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러시아 중국과 일본이 우리를 지금 호시탐탐 먹으려고 그런다는 거지, 게다가 미국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거고.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분이신고. 예비역 별님께서는 아무래도 조선시대에 살다 환생하셨나보다. 칼틀고 창들고 딱총들고 배타고 혹은 말타고 경계를 건너가서 찌르며 땅따먹기 하는 시절인가 지금이. 지금 세계를 지배한 국가가 어디인지 몰라서 하는 말인가. 지금은 땅을 뺏는 시대가 아니라 주권과 문화를 뺏는 시대임을 모르시는가. 

  이어서 하는 말이, 미국이 세계 최강자이기 때문에 붙어야 한단다. 그러니까 이 말은, 가장 강한 일진을 찾아서 그 아래 꼬붕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의 속국이 되자는 발언이라고 봐야겠다. 예비군 별이라는 사람도 오랫동안 군인이었는데, 군인 그만뒀다고 이런 막말해도 되는 건가. 한국을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자니. 고작 안보 교육 혹은 정신 교육장 단상에 올라서서 미국 꼬붕이나 하자고 말하는 겐가. 앞서 말한 미국이 멀리 떨어져서 우리를 노릴 가능성이 없다는 발언과도 충돌한다. 이미 영향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의미니까. 이 외에도 맥락도 논리도 없는 말은 차고 넘치는데 다 까먹어서 정확한 말을 전하기 어렵다.

  이 안보 교육이라고 한다는 사람들은 왜 하나 같이 수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은 우리가 6.25 전쟁을 겪을 때 얼굴도 친분도 없는 상태에서 도와준 국가이니 우리가 지금 이렇게 주한미군 물러가라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들이 그런 말을 내뱉느냐, 는 등등의 말. 순간, 머리 속이 반짝하며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이 사람은 한 시간 강좌 하고 얼마나 받아갈까. 전역했다지만 자기네 상사였으니 돈 무지하게 퍼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런 맥락도, 논리도, 설득력도 없는 발언 하고서 도대체 얼마나 가져갈까.  

  모두들 동의하나요? 교육 내용 좋죠? 교육 잘 받았죠? 자 박수 칩시다. 짝짝짝짝, 알아서들 잘 노시네요.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0-03-17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교육!!!!!!

차라리 공사현장 가서(지하철 공사였대요) 땅 파고 왔다는 지인이 낫군요! 지인은 `다들 가서 졸고 온다는데 난 왜 이모양이냐' 하고 신세한탄을 하던데, 차라리 저라면 땅 파고 오겠어요. 아, 안보 교육, 정신 교육, 제가 좋아하는 아프락사스 님과 정말 안어울려요. 정신 고문이 따로 없군요. 그런데,









아직도 저런 걸 합니까? 정말, 진정으로요? 하긴, 아프 님이 왜 거짓 페이퍼를 쓰시겠어요. 아, 무서운 세상입니다.

마늘빵 2010-03-17 08:08   좋아요 0 | URL
아마 진보신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 해도 군대에서는 50년 후에도 저런 정신 교육을 할 겁니다. -_- 저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만 하지요. 무서운 세상 맞습니다. 저런 거 안 듣는다고 자꾸 깨워서 한 마디 하려다가 말았습니다. "이런 X신 같은 교육을 하면서 나보고 들으란 말이야?"라고요.

쎈연필 2010-03-1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내일 예비군훈련 깔짝 다녀오는데...
정신교육, 정말 단어 자체로도 졸리네요.
미국은 무적, 북한은 주적으로 요약되는 정신교육을 또 들어야 한다니 ㅠ.ㅠ

마늘빵 2010-03-17 13:53   좋아요 0 | URL
이 교육에 호응(?)하며 박수 쳐주는 사람들은 또 뭔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그냥 의례적으로 박수를 치는 것 같기도 하고.

yamoo 2010-03-17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놀랍군요~ 그런 걸 다 듣고계시다니..ㅎㅎ 그냥 자는 시간아닌가요?ㅋㅋ 항상 예비군 훈련 다녀오면 추웠던 기억과 정신교육시간에 앞에서 뭐라뭐라 떠들던 동대장의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ㅋㅋ

마늘빵 2010-03-17 13:57   좋아요 0 | URL
저도 대부분은 자느라 안 듣는데, 자다 깰 때가 있거든요. 아, 어제는 또 막 깨우더라고요. 꼭 대학 때 채플 듣는 시간처럼. -_- 올해 이사를 가서 새로운 장소에서 받았는데 이 부대는 심하네요. 북소리 울리며 제식 훈련을 시키질 않나. 아휴. 어제가 제일 고생스러웠어요.

sweetrain 2010-03-17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저런 교육을 받아야하는 남자분들이 안쓰러워지네요...

마늘빵 2010-03-17 13:58   좋아요 0 | URL
예비군 제도 폐지하네 어쩌네 이야기는 나왔던 걸로 아는데 그냥 그렇게 쑥 다시 들어간 듯. 진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시간인데. 훈련시키는 교관들하고 정신교육 강사 돈 벌어다주는 제도죠.

비로그인 2010-03-17 15:10   좋아요 0 | URL
저런 교육(?) 시간을 보내고도 돈을 받는답니까???

비로그인 2010-03-17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 나가야하는 사람들 발 묶어놓고 고작 한다는 짓이 이런 고문이군요?...으이궁~~딱해라~~

마늘빵 2010-03-18 09:31   좋아요 0 | URL
고문 맞습니다. 군복도 고문이고, 정신교육도 고문이고.

pjy 2010-03-17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비군이 세뇌교육을 받기엔 너무 많은걸 알고있죠,,,전 어릴때 진짜 북한사람은 곰처럼 가슴에 털난줄 알아씀다 ㅠ.ㅠ 같은 사람인걸 알았을때의 그 놀라움이란~~

마늘빵 2010-03-17 19:37   좋아요 0 | URL
자기들도 어이 없는 교육이란 거 알 텐데 - 아니 모를까요? -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머큐리 2010-03-1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군대 안가고 사회에 버티는 저는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죠...ㅎㅎ
그나저나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이 나라..대략난감입니다.

마늘빵 2010-03-17 19:38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은 행복한 사람 맞습니다. 군대는 되도록이면 안 가는 게 좋습니다.

순오기 2010-03-17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에는 예비군 훈련가면 이런 짓거리를 하는군요.ㅜㅜ
에휴~ 그나 저나 추운날 고생하셨어요.

마늘빵 2010-03-17 19:38   좋아요 0 | URL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저런 소리 강제로 듣고 있으면 욕이 바가지로 나오죠.

무스탕 2010-03-18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예비군이세요? 젊으시네... ^^
울 드럼선생님 지난주에 예비군 훈련 받느라 하루 수업 못하셨죠. 어제 만나서 훈련 잘 받으셨어요? 물으니 날씨가 안좋아서 하루종일 실내교육만 받았다고 하시더라구요.
문득 아프님 생각이 났어요.
(글은 어제 아침에 읽었거든요)

마늘빵 2010-03-18 09:31   좋아요 0 | URL
아, 비오는 날은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수년째 받으면서 비온 날은 없어서... 할 건 다 했죠. 제가 일반적인 예비군치고는 나이가 좀 많죠. ㅎㅎ

turk182s 2010-03-2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인간들이..동네에서는 고액연봉에 유지 행세하며 거들먹거립니다. 예비군제도는 진짜루 장교군바리들 노후대책같아요..

마늘빵 2010-03-24 10:32   좋아요 0 | URL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예비군 제도는 예비역 장교들의 노후대책 때문에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당장에 폐지해야 합니다.